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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보이스 - 0.001초의 약탈자들, 그들은 어떻게 월스트리트를 조종하는가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제용 옮김, 곽수종 감수 / 비즈니스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 여의도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증권가이다. 실제로 여의도에 가보면 수많은 증권사들이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사람을 증권맨이라고 하는데 보통 '여의도'증권맨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여의도에 증권사들이 모여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먼저 금융결제원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4시 이전에 처리해야 되는 모든 서류를 직접 금융결제원에 가서 결제해야 했었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한국거래소가 여의도에 있기 때문이다. 증권에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에 매수 매도 신호를 거래소에 전달해야 되는데 물리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당연히 도달하는 시간도 더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들 거래소 근처에 하나둘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시간 차이가 얼마나 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소개하려는 책은 그 시간 차이로 돈을 버는 초단타매매(High Frequency Trading, HFT)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로 마이클 루이스의 <플래시 보이스>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초단타매매는 'High Frequency Trading(HFT)'을 뜻하는 것으로 분,초 단위의 주가 흐름에 따라 하루에 수십 번에서 수백 번씩 거래를 하며 매매차익을 남기는 데이트레이딩이나 스캘핑과는 다른 개념이다. HFT는 고성능 컴퓨터를 통해 수백만 분의 1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고빈도로 매매하는 거래 방식으로, 알고리즘 이용이 필수적이다.
책의 처음 설명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에게는 수백만 분의 1초가 중요하다. 그들은 이 시간을 얻기 위해 몇 천억 원을 투자해서 케이블을 설치한 회사(이 회사는 강 아래 터널을 뚫기 위해 세상에 단 한 대 밖에 없는, 대여 비용만 200만 달러(한국 돈으로는 무려 약 20억 원)인 드릴을 이용하기도 했다)에 몇 억원 혹은 몇 십억 원의 수수료를 낼 용의가 있다. 즉,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이 초단타매매를 통해 몇 억, 몇 십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책에 보면, 어떤 초단타매매 회사는 휴먼 에러로 인한 한 번의 손실 말고는 1년 넘게 매일 수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수익을 내는 것인가? 간단히 설명하면,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매수 주문을 넣을 때 그 누구보다도 먼저 그 주문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100원에 10만 주를 사려고 주문을 넣으면 그들은 먼저 100원짜리 물량을 싹 거둬들인다. 왜냐하면 십만 주를 사야 되는 주체가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주식을 101원 혹은 더 위에 가격으로 매도한다. 10만 주를 사려는 사람은 반드시 물량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거래를 하면 그들은 그날 무조건 매도를 하기 때문에 밤에 위험 포지션이 없다. 두 발 두 팔 뻗고 잘 수 있는 것이다. 시장은 다음 날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데(밤에 갑자기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유가가 급락할 수도 있고) 이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잘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포지션을 청산하고 장을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그저 부럽다라고만 생각할 수 있다. 혹은 '역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달라도 뭐가 다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이 그치면 안 된다. 우리는 '그렇다면 저런 방식으로 매매를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첫 번째 문제는, 증권거래소가 이 매매에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뉴욕 시 상원의원 찰스 슈머는 SEC에 편지 한 통을 쓴 다음, 그 내용을 알리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편지에서 슈머는 증권거래소의 행위를 비난했다.
"증권거래소들은 거래 정보가 트레이더들에게 공개되지 전에 약삭빠른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먼저 그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거래소는 매매주문 정보가 공개되기 전 몇 분의 1초 동안 그 정보를 '순간적으로 노출해주는'flash 대가로 수수료를 챙겼습니다."
증권거래소는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먼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이 허용 대가로 수수료를 받은 것이다. 이렇게 정보를 순간적으로 노출해준다는 것으로부터 flash라는 단어가 나왔고 이 책의 제목도 플래시 보이스가 된 것이다. 2011년 볼러맨이라는 사람이 나스닥을 나올 때 나스닥은 수입의 3분의 2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초단타매매회사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거래소와 브로커들이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를 돕는 대가로 돈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이러한 HFT회사의 선행매매는 시장 참여자들의 참여에 브레이크를 건다는 것이다. 자신이 보는 화면이 실제 화면이 아니라는 것을 투자자들이 알게 되면 당연히 매수 매도를 하는 것을 꺼리게 되고 이는 시장 활성화에 방해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어떤 종목을 매수하려고 버튼을 누를 때마다 사려고 했던 물량이 사라진다면 그 누가 시장에 참여하겠는가.
세 번째 문제는 필요 없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금융 중개가 필요했다. 그리고 중개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하여 직접적인 거래가 가능하다면 당연히 비용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비용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졌는데도 여전히 중간에서 누구도 원하지 않는 중개를 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초단타매매 트레이더가 미국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8년 이후로 50%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고 하니, 이들의 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책에서 묘사한 대로 '스캘퍼 주식회사는 시장에 아무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서도 시장의 핵심 참여자로 잘 못 인식될 수 있다.'
이런 불합리하고 소모적이며 공정하지 못한 시스템과 트레이더들을 발견한 사람은 브래드였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풀기 위해 시장에 도전하였다. 해법은 일단 간단해 보였다. 바로 주식 매매주문이 동시에 모든 거래소에 똑같이 도달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래소에서도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직접 거래소를 세우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문제는 금융계 안의 편협한 이기주의와 돈이었다. '금융계 안의 모든 사람들이 편협한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금융계가 얼마나 부패하고 사악해졌는지에 상관없이 금융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이미 기득권인 그들은 굳이 체제나 시스템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또한 거래소를 설립하려면 돈이 있어야 했는데, 브래드를 부추기던 대형 기관 투자자들은 갖가지 이유를 들며 돕기 힘들다고 변명했다.
"그들은 모두 브래드가 새로운 거래소를 만들기 원했고, 모두 새 거래소의 혜택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모두 다른 누군가가 그 일에 자금을 대리라 생각했다. 다들 그럴듯한 변명 거리가 있었다. 사실 신생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대형 연기금의 본업을 벗어나는 일이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웠다."
사람 마음이 이렇다. 모두가 혜택을 받고는 싶다. 혜택을 못 받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혜택을 얻기 위해 그 누구도 먼저 나서지는 않는다. 먼저 나서면 그만큼 위험도 크고 수고해야 하며 노력해야 되기 때문이다. 다들, 나무에서 열매가 언제 떨어지냐를 바라보고만 있지, 나무 심는 이는 없으며 물주는 이도 없고 열매를 따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어쨌든 브래드는 고생 끝에 거래소를 설립할 수 있었다. 거래소를 세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injustice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나 싶다.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힘과 마음. 이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고 브래드와 함께 할 사람들이 힘을 합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브래드는 거래소를 설립하고 이름을 IEX라고 지었다. 이 거래소의 특징은 주문이 거래소에 동시에 도착하도록 장치를 만들어 선행매매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효과는 엄청났다. 주문의 92%가 적정가격에서 거래가 되었는데, 이렇게 적정가격에서 거래되는 것은 다른 거래소는 20%도 안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골드만이 이 IEX 거래소에 손을 들어줌으로써 IEX는 빠른 시간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먼 이야기 같지만 불과 몇 년 전의 이야기이다. IEX는 2012년에 설립되었고 작년에 드디어 미국 SEC는 IEX를 새 증권거래소로 승인하였다. 그리고 2016년 8월 19일 IEX 거래소가 정식 거래소로 개장되었다.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규제의 허점을 이용해 돈을 버는 많은 트레이더들이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차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구멍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injustice이다. 그 구멍을 메우려고 나설 때, 함께 그 구멍을 메울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던, 그 구멍을 브래드와 IEX 거래소는 해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