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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탐식가들
김정호 지음 / 따비 / 2012년 2월
평점 :
요즘은 먹을것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돈만 있다면 못 사먹을 음식이 없다.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들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의 음식을 비롯해 유럽이나 미국 등 전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들을 손쉽게 접할 수가 있다. 이렇게 많은 음식들을 접하다보니 어떤이들은 그 요리들 중에서 좀더 특별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다. 소위 말해 미식가라 불리는 이들이 그러하다. 사실 미식가라고 해서 특별할것은 없다. 자신만의 기호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먹는 사람이면 누구나 미식가로 불릴수가 있을테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미식가는 시대와 지역을 떠나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라 생각된다. 사람은 무언가 먹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는 존재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기 바로 직전에 존재했던 나라 조선은 어떠할까? 조선시대는 법적으로는 양천제로 구분된 사회였지만 실제로는 양반과 중인, 평민과 천민 이렇게 4개의 계급으로 구성된 사회였다. 그 중에서도 양반 즉 사대부 중심의 국가가 바로 조선이다. 성리학으로 똘똘 뭉쳐진 그들은 보통의 백성들과 자신들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온갖 혜택들을 향유해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당연히 먹는 것에 있어서도 일반 백성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이렇다보니 조선에서 미식가들을 찾는다면 일반 백성들보다는 양반 사대부에서 찾는게 옳은 방향인거 같다. 백성들이 먹을수 있는 음식은 한정된 반면 사대부들은 귀한 음식들을 접했을 것으로 추정되니 그렇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여러가지에서 변화가 생겨났는데 그중에는 육식 금지 해제가 있다고 한다. 고려가 성종 이후 유교를 숭상해왔지만 고려 사회 전반을 지배해온 사상은 불교였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므로 그 시대에 육식을 권장할지가 만무하다. 하지만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는 성리학을 숭상했고 불교를 전면적으로 배척했기에 그들의 살생 금지를 따를 필요가 없었다. 사대부의 육식 열풍을 조선 정부는 '소 도살 금령'으로 통제하려 한거 같다. 농업사회에서 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소가 있고 없고는 농사에 있어서 하늘과 땅 차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소고기의 맛을 본 사대부가 그 맛을 쉽게 잊을리 만무하다. 나라가 금지한다면 당연히 밀거래가 성행할 것이고 실제로 <비변사등록>에는 남의 소를 강탈하여 도살장에 팔거나, 직접 밀도살하여 소고기를 유통하는 범죄 집단이 존재했음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소고기의 맛은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거 같다.
소고기뿐만 아니라 개고기 역시 조선시대에 많은 사랑을 받은 음식인거 같다. 비싸고 농사에 꼭 필요했던 소에 비해 개는 조선의 서민들이 즐겨먹던 육식이다. 그렇다고해서 사대부들이 개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음식디미방>, <원행을묘정리의궤> 등 다양한 서적에서 개고기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도 개고기가 놓여졌다고 하니 왕실에서도 개고기는 애용되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은 개고기 애호가였다고 한다. 예전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려있던 글중에 다산이 유배지에서 손수 텃밭에 채소를 길러 먹는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것은 다산이 채식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였다고 책은 말하고 있었다. 다산은 흑산도로 유배된 형에게 쓴 편지에서 산개를 잡는 묘안은 물론 개고기 삶는 법도 설명해주고 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개고기 마니아였는지 알 수가 있다. 또한 조선전기의 문신 김안로는 개고기를 워낙좋아했기에 그에게 개고기를 접대하며 벼슬자리를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실로 웃음이 지어졌다.
책을 읽다보니 음식에 대한 탐욕은 권력이나 재물에 대한 탐욕 못지않게 강하다는 것을 느낄수가 있다. 특히나 사대부의 나라로서 '예'를 중시하고 성리학의 명분론을 중시한 조선의 선비들이 먹을 것 앞에서 사족을 못썼다는 이야기는 놀랍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느껴졌다. 인간은 무언가를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고 또한 기왕 먹을것이라면 좀더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본능이 아닌가 싶다. 책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미식가와 탐식가를 구분하고자 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말을 빌려 탐식은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이라 했고, 미식은 "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이 책에 등장하는 조선의 사대부들은 미식가였을까, 탐식가였을까? 그리고 문전성시를 이루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은 미식가일까, 탐식가일까?
먹는 것을 워낙 좋아라하고 그래서 맛있는 것을 먹으로 다니는 것을 좋아하며 여행을 가더라도 먹는 것에 돈을 가장 많이 쓰는 나이기에 책 속의 사대부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여유가 되는 사대부라면 양반의 체면을 체져두고 먹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소 밀수 조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을 보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조선 사회의 또다른 모습을 바라본거 같다. 혹자는 이러한 모습이 사대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들의 모습은 인간의 당연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더욱더 흥미롭게 그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던거 같다. 또한 앞으로 음식을 먹으면서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소잿거리를 얻을수 있었던거 같다. 역시나 음식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