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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2 - 이기원 장편소설
이기원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신분제 사회였다. 왕족이나 귀족, 양반이거나 그 자손들은 공음전, 음서, 문음 등의 혜택을 받으며 능력이 없더라도 떵떵거리며 살 수가 있었다. 반면에 일반 백성들은 차별을 받으면서도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 일반 양민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아왔던 천민들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는거 같다. 노비나 광대, 백정, 기생 등의 천민들은 전혀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으며, 내가 만약 그러한 신분이라면 정말 살고 싶지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894년 갑오개혁때 신분제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백성들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양반들은 계속적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왔으며 자신들은 일반 백성들과는 다른 고귀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며 백성들을 무시하며 살아왔다. 그러한 사상들은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은거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공식적인 신분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 11조에는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훈장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와 권력이라는 신분제가 말이다.
'제중원'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광혜원이라고 알고 있었던것이 사실 제중원이었던 것이다. 제중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의료기관으로 선교사 알렌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전까지는 주로 한의학에 의존해 왔었는데 한의학으로는 질병을 치료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서양식 의료기관은 꼭 필요한 것이었고, 갑신정변을 계기로 하여 결국 조선에 세워지게 되었다. 제중원이 세워질 당시 과연 양반들이나 백성들이 반가워했을까 궁금했다. 침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탕약을 달여먹고, 굿을 하여 잡귀를 쫓아내는 그러한 문화속에서 서양 의학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광혜원과 같은 의료기관에 대해 궁금한게 많았다. 보통 선교사들이 치료를 했다고 하는데 어째서 선교사들이 의사 역할을 해야했느냐는 것과 과연 그 시대의 서양 의학은 지금과 같이 분야가 여러개로 갈려져 있었는지 아니면 한명의 의사가 모든 의료분야를 커버했는지 하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궁금한게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도 어느정도 이해가 될거 같았다.
이 책은 하얀거탑을 번역했던 이기원 작가의 장편 소설이다. '신분의 벽을 뚫고 의사가 된 백정의 이야기' 정말 매력적인 소재인거 같다. 물론 의사란 직업이 지금에야 최고의 직업으로 선망의 대상이지만 그 시대에는 중인으로서 말그대로 양반과 양민의 중간 신분 정도였다. 하지만 일반 양민도 아니고 천민으로 취급받는 백정이 의사가 그것도 조선 최초, 최고의 의사가 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정말로 1908년 6월 우리나라 최초로 면허를 받은 의사 7명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 박서양이라는 인물이 백정의 아들인것이다. 이러한 실제 내용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이 책은 쓰여졌다. 과연 어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해졌다.
황정이라는 인물이 있다. 사실 황정은 그의 본명이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소근개였다. 즉 개의 새끼라는 의미였다. 그는 백정이기에 그러한 이름을 얻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도 백정이었고, 그 역시 백정이었다. 그는 어느날 한 역관의 잔치에 소고기를 가져다주러 갔다가 일본의 의원이 환자를 치료하는걸 보게 되고 아픈 어머니를 그 일본인 의원에게 데려가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된다. 그래서 돈을 구하기 위해 나라에서 금지하는 밀도살을 하게 되지만 그로 인해 총에 맞아 죽을 고비를 맞게 된다. 하지만 천운이 있었던지 다 죽어가는 그를 역관의 딸이 발견하게 되고 결국 알렌에 의해 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면서 서양 의학의 길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는 신분의 벽에 의해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지만 의학에 대한 열정으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의사의 길에 한걸음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었다.
이 책속의 이야기는 너무도 흥미진진했다. 이 책속의 이야기들 중 상당수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에 내가 몰랐던 많은것을 알 수가 있었다. 가령 제중원이 갑신정변때 민영익의 치료를 계기로 설립하게 되었다는 점이라던지 우정국 총판을 지냈던 홍영식의 집으로 옮긴거라던지 등등해서 이 책을 통해서 알 수가 있었다.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역사 공부를 지루하게 생각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팩션 소설을 통해서라면 100% 정확한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역사에 대해서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역사에 흥미를 붙인후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다면 더욱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것이니 말이다.
이 책속의 황정이라는 인물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가 있었던거 같다. 지금 나의 상황은 황정이 처해있었던 상황보다는 한결 수월할지도 모른다. 나보다 어려운 환경과 역경속에서도 황정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었듯이 나 역시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기보다는 이 상황을 나의 노력으로 돌파해보고자하는 의지가 필요한거 같다. 황정에게는 그의 노력을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유석란이란 인물이 있었듯, 나에게도 나를 믿고 지켜봐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올 가을쯤 sbs에서 드라마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박용우씨가 황정 역할을 맡는다고 하는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고 기대가 되어진다. 이 책을 통해 개화기의 여러가지 사정도 알 수 있었고, 나에게 있어서는 유익한 시간이었던거 같다. 이 책을 만나볼 수 있어서 너무도 좋았던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