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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평점 :
남들이 좋다는 것, 유명해진 것은 기어이 피하고야 마는 음침한 습성이 또 한 번 작용해 책을 사 두고도 몇 년이나 집에 묵히다가 올 여름 드디어 처음으로 펼쳐 보았다.
신선하고 좋았다. 특히 앞의 세 작품,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과 <공생 가설>이 남기는
여운이 포근하게 다가왔다.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을 수 있어서였을까.
몇 년 전인가 연애놀음 사랑타령은 1세계 제국의 인간들에게나 주어진 사치인 거라고, 사랑? 관절에 기름칠이나 해줘 형씨 라고 삐딱한 소리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도 남의 연애이야기에는 별로 가슴이 뛰진 않지만, ‘비정상’의 몸들, 탈락되고 누락되고 걸러진 것들, 한마디로 부질 없고 약하고 ‘열등한’ 몸들이 서로를 포용하고 서로에게 닿기 위해 애쓰는 몸짓에는 무방비 상태로 마음이 녹아내린다.
그런 의미에서 <공생 가설>도 상당히 재밌었는데, 욕구와 본능에 충실한 언어를 구사하기 이전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법과 타자에 대한 윤리와 따뜻한 마음을 배워 알고 있었다는 가정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한편 인간은 역시 나약하고 연약해서 서로 의지하고 보듬어 주던 시절의 어떤 공동체가 존재했다는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일상의 평범한 장면에서 문득 차오르는 그리움,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역시 우리 모두가 ‘류드밀라의 행성’에서 온 존재들이 키워낸 존재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면 몇 년 전부터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기에 조금 기대했던 <관내분실>과 마지막 수록작인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기대에 못미쳐 아쉬웠다. 작품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근 몇 년간 도서시장에 쏟아져 나온 여성주의 현대 소설의 일정한 도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 식상하다고 느껴진 탓이었다. 삼 년 전쯤 쓰인 글임을 감안하고 봐도 너무 도식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맥이 풀렸달까, 다른 작품에 비해 여운이 조금 적게 느껴졌다.
다양한 상상력과 부드러운 감성을 지닌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주의 소설이 꼭 ‘안전하고 재미 없는’ 도식을 따라야만 하리라는 법은 없겠지. 특유의 상상력과 감상으로 더 다채로운 시도를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다양한 관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의 입을 빌려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