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부터 역겨워서 더는 읽어줄 수가 없다. (노파심에 말하는데 나 또한 사회과학분야에 몸 담고 있는 회의주의자라는 사실을 미리 밝혀 둔다.) 제국주의에 젖은 백인 남성의 오만함이 문장 곳곳에 스며 있다.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최전선”에서 “맞서”왔던 사람이라니 알만하달까, 리처드 도킨스 특유의 ‘학계 사람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졌을 뿐더러 별로 참신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교양과학서라는 이름 아래 우매한 대중을 교화하고야 말리라는 태도로 마치 복음인 양 전파하는’ 화법이 매우 닮아 있다. 과학적 회의주의를 설파하며 그 반대의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매도하는데, 양 극단의 인간들은 어쩐지 닮은 데가 있다는 사실을 본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저자 본인도 모르는 것 같고, 회의주의자가 되라는 말을 있는 그대로 주워 섬기며 함부로 ‘나 아닌 그들’을 바보 취급하는 사람들 역시 확실히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의 젠더 관련 ‘과학(생물학) 맹신자’들의 바보짓도 겹쳐 보여 배로 열받는다.)근본적으로 인류애가 느껴지지 않는 인간들의 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 사람들이 유사과학과 종교에 목맬 수밖에는 없는지, 따라서 이들에게 ‘다른’ 사유법을 조금이라도 더 소개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없는 ‘회의주의자’의 글은 비방이나 나르시즘에 다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마따나 과학은 ‘도구와 수단’이지 목적이나 완결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 것 같다. 당파성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당파성이다. 과학은 ‘믿는’ 것이 아닐 뿐더러, 과학을 믿는 행위가 본인에게 자동으로 객관성을 부여하고 본인을 평가자의 위치에 놓는다고 착각하지 말길.
소재도 참신하고 만화적 구조 안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단순한 그림체와 시너지를 발휘하는 연출력 또한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작가가 본인의 철학을 은근히 강요하는 느낌을 받았던 건 이 책이 단편집+외전 형식을 취했기 때문일까. 게다가 출간된 지 십 년, 그 철학이란 것의 내용이 지금의 나에게는 묘하게 낡은 느낌을 줘서 아쉬웠다. 책과의 인연에도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다시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