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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카페


 

나는 MBTI I이다. 해외는커녕 국내 여행도 혼자 못 간다. 내 친구들이 나를 집 밖으로 끌어 내려다 실패한 지 어언 몇 년, 그 대신 혼자 노는 것을 잘한다. 책 읽고 글 쓰고 음악 듣고 가끔 노래하고 영화를 본다. 그러다 혼자 노는 방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나 홀로 카페이다.

 

데크에 육각돔 텐트를 세우고 온갖 잡동사니로 장식하고 난방기구와 찻주전자와 찻잔, 커피, 허브차 등을 준비하니 작지만 그럴듯한 카페가 되었다. 지금도 카페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2개의 출입문과 4개의 창문과 천창을 가진 육각돔 텐트는 개방감이  바깥 풍경을 보기에 매우 좋다. 나는 태풍이나 폭설에만 카페를 닫을 예정이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님은 당연히 오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들도 이 카페의 존재를 모른다. 누군가 카페에서 놀고 있는 나를 보게 되면 드디어 혼자 놀기의 최고점에 오르고 있군.’이라고 하겠지?

 

얼마 전 합창단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대기실은 단원들이 한데 모여 얘기를 하느라 시끄러웠다. 나는 옷걸이가 있는 구석으로 가서 연주복을 갈아입고 접이식 의자 하나를 펼치고 벽에 기대앉았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며 이리 오라무리에 합류하라고 말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몇 사람의 얼굴에 질렸다는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에게 합창단은 노래를 부르고 싶어 참여한 집단이다. 수다는 내 선택 항목에 없다.

 

나는 주인과 손님을 합쳐 한 명인 내 카페가 좋다. ‘나 홀로 카페조차도 모든 출입문과 창문을 닫고 천창만 열고 가스히터를 켜고 찻주전자에 물을 끓여 허브차를 마시는 이 시간이 좋다. 나와 내가 대화하는 시간이 좋다. 텐트의 천창으로 어두운 하늘이 보인다. 저기 소나무숲 위로 오리온자리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다. 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카페가 좋다. 나는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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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나에게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가끔 나도 놀란다. 어려서부터 거의 은둔자 수준으로 살아서 그렇다. 생각해보니 학교에 다니지 않았으면 정말 친구가 없었을 것 같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은 거의 학교에 다닐 때 만났다. 어려서는 친구에 대한 기준이 없었나 보다. 그냥 나이가 비슷하니까, 같은 학년 같은 반이니까 친구가 되기도 했다. 내 친구들은 일찍부터 내 까칠함에 대해 면역이 생겨서 그런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거나 시비를 걸지 않는다. 아마 도 닦는다는 기분으로 나를 봐주는 것 같다. (친구들 정신수양을 시키니 나도 조금은 쓸모가 있군)

 

회사에 다니는 긴 시간 동안 마지못해 참여한 회식 외에 동료들과 친목 행위를 한 적이 없다. 입사 초기, 여직원들이 이리저리 같이 몰려다니고 같이 점심을 먹고 퇴근 후에 같이 쇼핑 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혼자 밥 먹고 혼자 다니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상사들이 그런 나를 안타까워했다. 지나치게 정 많은 과장님 한 분이 나에게 님은 왜 다른 여직원들에게 왕따를 당하지?”하고 물으셨다.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말씀드렸다. 누구와 어울리는 것이 불편해 내가 혼자 있기를 선택한 거니까, 왕따를 당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라고. 내 말을 들은 과장님의 놀란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람에게서 위안을 찾은 적이 있다. 젊은 날의 달콤쌉싸름한 기억도 있다. 마주 안고 있을 때 사람의 체온은 따듯하지만 뒤돌아선 모습에서는 눈보라가 치더라. 나는 짐작할 수 없는 사람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두렵고 불편하다. 언제 태풍이 불까 염려하는 것도 싫다. 오두막에 살면서 느낀 것은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자는 사람에 대해 집착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다정한 이웃이 있고 나를 걱정하는 가족과 친구가 있지만 결국 나를 돌보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 자신과 친구가 되는 길은 가파르다.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내 마음의 언덕에 오르는 날이 오겠지.

 

언덕 위에는 큰 나무가 있고 그 나무가 허락하면 새집처럼 작은 집을 짓고 싶다. (내 오두막이 작다거나 불편해서가 아니라 트리하우스에 대한 로망이 있다) 해가 뜨면 일어나서 책을 읽고 어두워지면 조그만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가곡들을 하나씩 부르다 보면 달빛이 찾아와 같이 노래하지 않을까? 나와 친구가 되면 세상이 덜 무서울 것 같다. 사람에게 기대하고 살 때는, 혼자일 때보다 둘이 있을 때가 더 외로웠다. 외로움이 나를 끝없는 어둠으로 끌고 갔다. 어차피 외로울 거라면 혼자 있는 외로움이 가볍다.

 

알라딘서재에 조그만 둥지를 만들기 위해 마른 풀잎과 잔가지들을 물어 나르고 있다. 외지고 캄캄한 구석에서 한발 세상으로 걸어 나온 것 같다. 오래된 책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싶다. 가다가 동행을 만나면 좋고 끝내 혼자여도 좋다.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는 것 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 다만 너무 빨리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내자, 나여. 이 세상 소풍이 조금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니? 아직은 친하기 힘든 나에게 말을 건다. 너는 이미 좋은 친구이고 나는 좋은 친구가 되려고 노력할 테니 우리 같이 사이좋게 잘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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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선물 받은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오래되어 낡았다고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식품을 제외한 선물은 오랜 시간 동안 쌓여 예쁜 쓰레기 더미를 만들었다. 오두막 입구에 있는 창고에는 정리되지 않은 기억들이 가득하다. 날이 좋아서, 날이 뜨거워서, 날이 너무 추워서, 정리는 더디다. 마음의 빚이 늘어나는 선물을 받기도 한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는 무심한 나를 한결같이 챙기는 사람이 있다. 시골로 이사하고 만난 다정한 이웃이다.

 

산자락에 있는 밭(지목은 대지였다)을 사서 오두막을 짓고 있을 때, 그분은 음료수와 사과를 든 봉투를 들고 찾아오셨다. 그리고 틈틈이 간식을 주시며 오두막을 짓는 인부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하셨다. 혹시 화장실이 필요하면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말씀도 하셨다. 동네 어르신들이 10평짜리 집을 짓는다는 나를 보고 이왕 지을 거면 좀 더 크게 짓지.”하며 한 말씀씩 거들거나 농사 잘 되는 땅에 돌은 왜 깔아?”하고 나무라실 때도 그분은 사는 사람 맘이지.”하며 내 편을 들어 주셨다. 정원에 과실수를 심지 않고 꽃나무, 단풍나무만 심는다고 돈지랄이라는 표현을 하는 어르신께는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지.”라며 내 말을 대신해주셨다.

 

그분은 오늘도 새로 담은 열무김치를 가져오셨다. 해마다 김장김치도 나누어 주신다. 수시로 열무나 얼갈이김치를 주시고 철마다 여러 가지 채소를 주신다. 내 냉장고에 있는 반찬은 대부분 그분이 준 식재료로 만들었다.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나물, 장아찌가 넉넉하다. 그렇게 베푸시고도 내가 만든 빵 몇 개와 마트에서 산 과일을 드리면 사양하다가 받으시고 또 무언가를 계속 가져오신다. 작년 겨울 눈이 많이 내린 날, 우리는 첫 데이트(?)를 했다. 카톡으로 보낸 내 데이트 신청을 그분이 기쁘게 허락하신 것이다. 그 뒤로 가끔 서로의 집에서 차를 마신다.

 

선물을 받으면 고맙기도 하지만 부채감이 크다. 내 강박은 가족과 친구들 선물에도 고집스럽게 답례를 한다. 착하고 부지런한 언니는 게으른 내가 굶을까 걱정이다. 오두막으로 이사한 첫해, 온갖 반찬들을 택배로 보내 주었다. 그러다 다정한 이웃이 주신 김장김치 사진과 채소가 쌓인 사진을 보냈더니 감탄을 하면서 다행이라는 말을 거듭했다. 그리고 나 같은 모난 성격이 어쩌다 그런 분을 사귀었는지 신기해했다. 정답은 사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무조건 베푸시는것이다. 어느 날 부추를 다듬는 그분의 날개뼈를 살짝 만졌더니 왜 그러느냐?”고 물으셨다. “님은 천사가 분명한데, 날개를 숨겨서 보이지 않는 것 같아 확인 중이라고 하자, 마당을 구르며 너무 웃어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2023712일 알라딘 회원 가입 후, 서재에 올린 첫 글이 맡겨진 소녀리뷰였다. 그 글이 나에게 적립금 5만원과 뱃지를 선물로 보내 주었다. 선물을 받으면 어떻게든 갚아야 하는 나는 알라딘에 어떤 선물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책이나 커피를 사는 것 말고 마음의 빚을 갚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은 미숙하지만, 언젠가 내가 좋은 글을 쓰면 알라딘이 기뻐할까? 그때까지 알라딘이 오래오래 남아 나랑 같이 늙어가면 좋겠다. 첫 글이 준 선물로 정말 오랜만에 그의 시집을 살 예정이다. 시골스럽고 애늙은이 같은 언어가 오히려 신선해서 좋았던 그가 이제는 유명시인이 되셨더라. 그의 수런거리는 뒤란맨발을 책장에서 꺼내본다. ‘옥수수 수염을 타고 들어간 바람이 이빨을 꼭 깨물고 빠져나온다던 그는 여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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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다

 

 

어떤 사랑은 작별인사도 없이 떠난다. 헤어짐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사랑한 시간과 자신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그 최소한의 예의도 모르는 행위는 마음에 깊게 베인 상처를 남긴다. 나는 지나간 사랑을 가만히 내버려 둔다.’ 흘러간 사랑은 아프다기보다 먹먹하다. 가끔 둔한 통증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제 날카롭지는 않다. 아픔의 모서리가 닳아 둥글게 되었나 보다.

 

한동안 집착한 작가가 있다. 17년 전에 만난 아멜리 노통브. 그녀의 초기 글은 30도 소주처럼 독하다. 행간마다 독버섯이 숨어 있다. 언젠가부터 그녀의 신간을 검색하지 않는다. 중독성 강한 그녀의 책을 내려놓은 이유는,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까칠한 문장을 좋아했던 입맛을 세월이 변하게 만든 것이다. 피라칸사스(불의 가시)같던 나도 시간을 이길 수는 없었다.

 

예전 직장에서 내 별명은 갱까도리(싸움닭)’였다. 상사에게 대들었기 때문이다. 상사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았을 때, 생각할 틈도 없이 그냥 들이받았다. 인생 참 고단하게 살았다. 동료나 후배에게 시비를 건 적은 없다. 친구들이 가끔 나를 주먹 쥐고 일어서라고 부른다.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나온 등장인물의 인디언식 이름이다. 내 피부가 유독 까무잡잡하고 긴 머리를 땋고 다녀서 내가 봐도 인디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인디언 주술사가 되고 싶었다. 주술사가 되면 별들의 대화를 엿듣고 바람의 말을 이해하고 특별한 약초를 찾아내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인디언 주술사는 마법사와 비슷하다. 이 세상 너머 다른 어딘가를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지금도 내가 태어난 별이라고 우기는 안드로메다같은 곳 말이다.

 

나는 멀고 먼 별에서 태어나 우연히 지구에 불시착했다고 생각했다. 사춘기 시절, 내 안식처는 책상 아래 좁은 공간이었다. 그 속에 들어가 책상 앞을 의자로 막고 숨어서 책을 읽곤 했다. 식사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나에게 언니는 밥 먹을래? 책 읽을래?’ 하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책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밥 대신 책을 먹고 살았던 시간도 지나갔다. 외로움이 가장 친한 친구였던 나를 위로해준 문장들도 이제 기억이 희미하다. 그래도 사랑했던 마음은 시들지 않는다. 피라칸사스꽃은 눈처럼 하얗다. 꽃 진 자리에 붉은색 열매가 송이송이 열린다. 마치 순수함이 핏빛 구슬로 단단해진 것 같다. 사람, 책과 공상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마음에 옹이로 남았다.

 

한때는 소중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지나간다. 나는 나를 미워했다. 그 이유를 태어나면서부터 환영받지 못한 존재라고 핑계를 댔다. 오래 우려먹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이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내일이면 오늘의 나도 지나갈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나하고 사이좋게 지내야겠지? 우선 쓰기 울렁증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이니 칭찬해주자. 잘하고 있다, 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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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도둑

 

 

고등학교 시절, 내 습작 노트를 읽은 친구가 그중 한 편을 훔쳐 잡지에 응모하여 상을 탄 적이 있다. 우연히 친구 책꽂이에서 그 잡지를 발견하고 도둑질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대학에 막 입학한 남동생이 홀딱 반한 여자에게 연애편지를 쓰기 위해 (짝사랑한 대상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로 가득한) 내 노트 한 권의 글을 그대로 베껴 쓴 적도 있다. 이 경우는 그냥 사소한개인사이니, 범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 나는 친구에게 한동안 무관심으로 대했고 남동생은 내 손이 퍼렇게 멍들도록 그 녀석의 몸을 두드려 팼다. ‘최소한 사랑의 편지는 네 언어로 써야지!’

 

그런데 세상이 다 알도록 시끄럽게 남의 글을 훔치고도 모른 척하는 사람이 있더라. 나는 그()의 첫 작품집을 읽고 좋은 느낌을 받아 작품마다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하나에 집착하는 내 성격은 한동안 그()의 작품이 출간되는 것을 기다리기도 했다. 나름 충실한 독자였단 말이다. 심지어 그()가 출연하는 작가와의 대화에서 사인을 받은 책도 있다. 그러나 사건 이후 대응 태도마저 부실했던 그() 덕에 끝내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분노가 희석되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다시 글을 쓰겠다고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애초에 그()의 뇌세포에는 수치를 느끼는 특별한 성분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것일까? 중학교 시절, 어느 잡지 수상자의 시를 그대로 특정 언론지에 투고하여 상을 받고 온 동네에 자랑하던 선배가 있었고 백일장에 나가서 기존 시인의 시를 내고 장원을 했다고 좋아하던 동창생도 있었다. 나는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훔친 글을 알지 못하나?’하고 온통 그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쏘았는데, 도둑보다 업무에 무능한 경찰에게 화를 낸 꼴이었다. 그 당시 내가 보기에 도둑질한 당사자들은 누가 뭐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의 목적은 무슨 짓을 하든지 오직 상을 받는 것에 있는 것 같았다.

 

주변의 인정에 목말라 신춘문예에 매달린 적이 있다. 내가 쓴 글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고 내게 그 자격(?)이 있나 알고 싶었다. 상이 목적이었다면 그 무렵 내게 내밀었던 유명시인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싹수가 보이는데, 내가 너를 키워 줄게.’라는 그의 말이 과연 나에게만 향한 것이었을까? 어린 창작자들을 향한 특정 문인의 갑질이 뉴스에 나왔을 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한기를 느꼈다. 어쩌면 나도 한순간의 선택에 따라 슬프고 무기력한 이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창작하는 것이 때로는 고통스럽다. 요즘은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곰이 20년이 넘도록 쑥과 마늘만 먹고 동굴에 있다 나왔는데, 지금은 예전처럼 시를 읽는 세상이 아닌 거다. 그래서 곰은 다시 동굴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나도 정말 좋은 글을 보면 훔치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을 읽으며 그랬다. 그래서 훔쳤다. 내가 글을 훔치는 방법은, 그의 글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문장이 보여주는 이미지를 느끼고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걷다가 아름다운 소풍의 기억을 기록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행위는 누군가의 생각을 훔치는 것이기도 하다. 차라리 작가가 창조한 세상을 통째로 훔쳐라. 제발 촌스럽게한 편의 시나 소설의 문장 한 부분을 몰래 가져가서 니가 쓴 것처럼 시치미 떼지는 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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