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한때 신춘문예에 목을 맨 적이 있다. 결과는 지방신문 신춘문예에서 최종심에 세 번 오르고 포기했다. 그 당시 몇 년 동안 11일 신문에 당선자 누구누구와 최종적으로 겨룬 것이 내 작품이라고 이름이 언급되었다. 운동경기에 출전했다면 은메달을 받은 셈인데, 신춘문예에서 2등은 빈속에 깡소주를 마시라는 상을 주었다.

 

20년이 넘도록 를 쓰지 않은 이유가 신춘문예 때문은 아니다. 전혀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처음에는 가족이, 나중에는 내가 많이 아팠다. 지금도 여전히 아프다. 다만 달라졌다면 어느 정도 아픈 것에 내가 익숙해진것 같다.

 

먹고사니즘이 위안이 되던 시절이 있다. 매일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과 매달 지정일에 입금되는 돈이 있다는 것이 마음을 붙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 촉수는 늘 허공을 향해 있었다. 허공에 길을 내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창작자에게 익숙한 고민이다.

 

그 길 끝에 지금의 집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오두막에서 나는 발을 멈추었다. 우선 이 작은 집안에 어떤 가 숨어 있나 찾아볼 예정이다. 20년 전처럼 내 창작물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나이가 먹어 철들어서인지, 아니면 기력이 딸려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기에는 후자 쪽이 유력하다.

 

나에게 다시 가 찾아올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오래전처럼 초조하거나 불안하지는 않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나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은 내가 나를 인정하면 그만이다. 혹시 내가 부족하다면 안쓰럽게 생각하며 쓰다듬어 주려고 한다. 돌아보면 어느 순간에도 나 자신을 안아준 적이 없다.

 

나는 사는 일에 매우 서툴다. 특히 사람들과 관계를 맺거나 유지하는 것에 피로를 느낀다. 아주 드물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불안하다. ‘왜 굳이 나에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합창단 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원 한 분이 사적인 만남을 원했다. 카페에 모시고 가서 차 대접을 하면서 나는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공손히 말씀드렸다. 그분이 나를 미친년으로 생각하거나 내가 표현한 대로 자발적 고립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거나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건 그분의 몫이다.

 

외로움이 반드시 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를 빚는 여러 가지 재료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 질량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보여주는지는 를 짓는 사람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부디 외로움이 나의 를 단단하게 제련하는 도구가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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