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이 다 가도록 가을이 언제 오나, 기다렸는데

문득 푸르고 높아진 하늘을 보고 이미 가을이 왔다는 걸 안다.





구절초가 피고 있다.

해마다 잊지 않고 가을 소식을 전해주니 고맙구나.





남천 열매도 익어가기 시작한다.

봄에는 하얀 꽃, 여름에는 푸른 열매로 계절마다 새롭다.

가을에 익은 열매는 한 겨울 눈 속에서도 붉은 등을 켠다.


산 아래 작은 오두막에 찾아온 가을은

올해도 여전히 깊고 다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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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에서 살기

 

 

내가 사는 집은 10평이다. 면 소재지 마을의 산자락에 있다. 작지만 주택으로 등록하여 해마다 재산세도 내고 있다. 집이 작으면 미니멀하게 살아야 할 텐데, 나는 저장강박증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짝꿍(남자아이)이 준 머리핀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하다. 게다가 레고를 좋아해서 한쪽 벽을 온통 레고가 차지하고 있다. 레고로 만든 트리하우스와 해적선, 중세시대 성과 캠핑카는 방안이 삼천리라고 생각하는 내게 하나의 세상이다.

 

작은 집에 작은 정원, 작은 언덕이 있다. 올해 엄청난 폭우로 언덕이 약간 무너졌다. 언덕에는 봄이면 머위가 가득 돋아난다. 해마다 공짜 나물이 주변에 널려 있다. 내 돈 주고 산 땅이 아니라도 눈에 보이는 풍경이면 다 내 것이다. 데크에서 바라보면 왼쪽에는 소나무숲이, 오른쪽에는 대나무숲이 보인다. 아무나 가지기 힘든 정원이다.

 

드물지만 다정한 이웃분도 계신다. 때때로 식재료를 나누어 주신다. 요즘은 가지, 오이, 고추, 호박을 들고 오신다. 나는 서툰 베이킹을 한 결과물을 드린다. 아주 가끔 서로의 집에서 차를 마시기도 한다. 날이 좋으면 데크에 있는 파라솔을 펼치고 벤치에 앉아 거의 하루를 보낸다. 데크에서 밥도 먹는다.

 

수시로 구름멍, 바람멍을 한다. 머릿속이 비워지는 것이 좋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글자와 숫자로 채웠던가? 비워진 머릿속에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 넣고 싶다. 회사를 그만두면 가장 하고 싶었던 것들을 순서대로 진행하며 좋은 기억들을 남기고 싶다.

 

가까운 가족 외에 작은 집을 방문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체부 아저씨나 택배기사님이 가끔 오신다. 주로 인터넷으로 쇼핑을 한다. 외출하는 일도 드물다. 일주일에 한 번 수비드 재료를 사기 위해 로컬푸드로 장을 보러 간다. , 합창연습을 하러 가야 하는구나.

 

가끔 내 집이 작은 연못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물결이 일지 않는 수면에 비가 내리면 일렁이는 연못, 그래서인지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오래전이지만 소나기 오는 거리를 우산을 안 받고 천천히 걸어 본 적이 있다. 온몸이 젖으며 오스스 떨리는 느낌이 좋았다. 지금은 우산을 수집한다. 혼자 쓰기에는 너무 많은 우산이 창고에 있다. 우산이 필요한 나이라고 느끼게 된 걸까? 하긴 아주 조금 비를 맞았는데도 며칠을 끙끙 앓기도 했다.

 

이제는 방안에서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빗방울이 배수관을 타고 흘러내리며 작은 폭포를 만든다. 내 작은집이 빗물에 갇혔다. 다시 방안이 삼천리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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