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도둑

 

 

고등학교 시절, 내 습작 노트를 읽은 친구가 그중 한 편을 훔쳐 잡지에 응모하여 상을 탄 적이 있다. 우연히 친구 책꽂이에서 그 잡지를 발견하고 도둑질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대학에 막 입학한 남동생이 홀딱 반한 여자에게 연애편지를 쓰기 위해 (짝사랑한 대상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로 가득한) 내 노트 한 권의 글을 그대로 베껴 쓴 적도 있다. 이 경우는 그냥 사소한개인사이니, 범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 나는 친구에게 한동안 무관심으로 대했고 남동생은 내 손이 퍼렇게 멍들도록 그 녀석의 몸을 두드려 팼다. ‘최소한 사랑의 편지는 네 언어로 써야지!’

 

그런데 세상이 다 알도록 시끄럽게 남의 글을 훔치고도 모른 척하는 사람이 있더라. 나는 그()의 첫 작품집을 읽고 좋은 느낌을 받아 작품마다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하나에 집착하는 내 성격은 한동안 그()의 작품이 출간되는 것을 기다리기도 했다. 나름 충실한 독자였단 말이다. 심지어 그()가 출연하는 작가와의 대화에서 사인을 받은 책도 있다. 그러나 사건 이후 대응 태도마저 부실했던 그() 덕에 끝내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분노가 희석되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다시 글을 쓰겠다고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애초에 그()의 뇌세포에는 수치를 느끼는 특별한 성분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것일까? 중학교 시절, 어느 잡지 수상자의 시를 그대로 특정 언론지에 투고하여 상을 받고 온 동네에 자랑하던 선배가 있었고 백일장에 나가서 기존 시인의 시를 내고 장원을 했다고 좋아하던 동창생도 있었다. 나는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훔친 글을 알지 못하나?’하고 온통 그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쏘았는데, 도둑보다 업무에 무능한 경찰에게 화를 낸 꼴이었다. 그 당시 내가 보기에 도둑질한 당사자들은 누가 뭐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의 목적은 무슨 짓을 하든지 오직 상을 받는 것에 있는 것 같았다.

 

주변의 인정에 목말라 신춘문예에 매달린 적이 있다. 내가 쓴 글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고 내게 그 자격(?)이 있나 알고 싶었다. 상이 목적이었다면 그 무렵 내게 내밀었던 유명시인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싹수가 보이는데, 내가 너를 키워 줄게.’라는 그의 말이 과연 나에게만 향한 것이었을까? 어린 창작자들을 향한 특정 문인의 갑질이 뉴스에 나왔을 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한기를 느꼈다. 어쩌면 나도 한순간의 선택에 따라 슬프고 무기력한 이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창작하는 것이 때로는 고통스럽다. 요즘은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곰이 20년이 넘도록 쑥과 마늘만 먹고 동굴에 있다 나왔는데, 지금은 예전처럼 시를 읽는 세상이 아닌 거다. 그래서 곰은 다시 동굴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나도 정말 좋은 글을 보면 훔치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을 읽으며 그랬다. 그래서 훔쳤다. 내가 글을 훔치는 방법은, 그의 글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문장이 보여주는 이미지를 느끼고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걷다가 아름다운 소풍의 기억을 기록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행위는 누군가의 생각을 훔치는 것이기도 하다. 차라리 작가가 창조한 세상을 통째로 훔쳐라. 제발 촌스럽게한 편의 시나 소설의 문장 한 부분을 몰래 가져가서 니가 쓴 것처럼 시치미 떼지는 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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