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쓸모 - 슬기로운 언어생활자를 위한 한자 교양 사전
박수밀 지음 / 여름의서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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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오면서 한자의 중요성을 단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어렸을 적부터 역사를 좋아했던 역사더쿠이다보니, 남들보다 더 한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 유적지 답사를 다니다보면 한자로 쓰여진 현판, 비석 등을 만나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데 서울 노원구 초안산 내시&궁녀 분묘군을 찾았을 때, 제단 또는 상석 등에 쓰여진 한자를 읽을 줄 알았기에 그 봉분이 어떤 성씨를 가진 내시의 묘인지, 혹은 궁녀의 묘인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뿐인가? 파주에서 율곡선생 가족 묘원에 들어섰을 때도, 비문을 읽을 줄 알았기에 어떤 묘가 율곡선생의 묘인지, 또 어떤 묘가 신사임당의 묘인지를 찾을 수 있었다. 하다못해 서울 경복궁이나 창덕궁 등 5대 궁을 찾을 때도 한자로 쓰여진 현판을 읽을 줄 알기에, 각 전각의 이름을 바로 알 수 있었던 건 기본이다.


내가 이렇게 한자를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알고 있는 이유는, 그저 초등, 중등, 고등 전 학창시절에 걸쳐 주 1~2회 있었던 한문 시간을 즐겼기 때문이다. 코흘리개 초딩때부터 역사를 좋아한 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를 즐기고 좋아했던 건 아마도 ‘한자’에 담겨있는 원리가 신기했기 때문이다. 


어떤 한자는 그 뜻을 담고 있는 외형을 그림화하여 단순하게 상형문자, 또 어떤 한자는 두 개 이상의 뜻을 가진 한자를 조합하여 새로 만든 회의문자, 또 어떤 한자는 두 개 이상의 한자가 합쳐졌는데, 한쪽은 ‘발음’을 맡고 또 한 쪽은 ‘뜻’을 맡고 있는 형성문자. 이 얼마나 신기한 조합인지! 그래서 더 한자 공부에 몰두했던 것 같다. 뭐, 여기에 더해 꽤 오랫동안 일본 성우 덕질을 하며, 자연스레 습득한 일본어로 인해 한자 스킬이 한층 높아진건 안 비밀이다.


그렇게 어렸을 때 부터 한자를 즐기고, 공부하고 그러다보니 남들보다 문해력이 높은 건 당연지사다. 거기에 부차적으로 따라온 게 있었으니 바로 자격시험! 올해 시험을 본 식물보호기사, 종자기사 시험에서 한자 덕을 솔찬히 보았다. 임업/농업 용어들을 보면 대체로 한자용어이다보니, 정의 외우는데 있어서 꽤나 많은 도움이 된것이다. 왜? 그냥 용어에 쓰인 한자 뜻풀이 그대로 쓰면 되니까 ㅋㅋㅋ 진짜 개꿀!!!


여튼 이렇게나 중요하고 재미있는 한자인데, 요즘 공교육에선 한자시간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아예 안가르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공교육에서도 이럴진데, 가정에서라고 다를까? 그렇게 모두가 한자교육을 외면하기 시작하니,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다들 보면 요즘 아이들, 사회초년생들의 문해력 문제를 지적만 하는데 그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문해력이 왜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는지, 그 해결방법은 어디있는지를 찾을 생각들은 안하고 다들 문제만 제기하는 꼴이라니.


..................TMI는 여기까지!!!!!!!!!!!!!!!!!!!



그래서 오늘 리뷰하는 책이 무엇인고 하면! 앞서 그렇게 예찬한 한자에 관한 인문학책 『한자의 쓸모』다. 한자가 얼마나 중요한 문자인지, ‘한자’를 아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알 수 있는지, 이 책에서 속속들이 알려준다.


인간에게 족보가 있듯 글자도 그 기원이 되는 뿌리가 있다. 뿌리를 잘 알면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넓힐 수 있다. 한자는 글자 하나마다 개별적인 뜻이 있으며 때로는 여러 의미가 있다. 그런 까닭에 한 글자의 다름이 미묘한 차이를 빚고 때로는 천 리의 차이를 만든다. (…) 선조들은 한자를 문자 체계로 삼아왔기에 우리의 삶과 문화를 담아내려면 한자라는 도구를 이용해야 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결혼 문화, 죽음 문화, 의복 문화에서 김치, 우리 명절, 궁궐, 산과 강, 섬과 고개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에 담긴 한자의 속뜻을 살펴 우리의 정신사와 문화사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p 006


 



▶비슷하지만 다른 한자


절切도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흔히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안주 일절’이라고 쓴 글귀를 보게 된다. 그런데 ‘안주 일체’라고 쓴 곳도 있다. 두 문구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실은 일절一切과 일체一切의 절과 체가 같은 한자라서 빚어진 오해다. 모두 한자로는 ‘一切’이라고 쓰는데, ‘切’에 ‘끊을 절’과 ‘모두 채’라는 두 가지 음과 뜻이 있는 것이다. (…) 곧 ‘안주 일체’란 모든 안주가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가게 주인이 안주가 전혀 없다고 쓸 리는 없을 터이니 ‘안주 일체’라고 써야 맞다. p 024


세世와 대代도 비슷한 듯 보이나 다른 뜻이다. 흔히 족보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는 박혁거세의 60세손이다” 라거나, “너의 3대조 할아버지는 ㅇㅇㅇ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세世와 대代는 같은 뜻으로 함께 쓰기도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서로 다르다. 대는 나를 기준으로 나를 빼고 윗대로 올라가는 것이고, 세는 시조의 출발이 되는 1세로 하여 차례로 내려가는 것이다. 곧 세는 시조를 중심으로 삼아 차례로 내려가는 것이고. 대는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아버지, 할아버지 순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p 056




▶우리말의 뿌리


순라巡邏는 예전에 도둑이나 화재등을 경계하기 위해 궁중과 도성 안팎을 순찰하는 군대였다. 이를 순라군巡邏軍이라고 했는데 거기에 소속된 군졸을 순라巡邏라고 했다. 순은 돈다는 뜻이고 라는 순행한다는 뜻이니 순라는 순찰한다는 뜻이다. 또는 순경이라고도 했다. 순라가 술라로 발음되고 다시 지금의 술래가 되었다. p 089



‘을씨년스럽다.’는 말은 을사조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유래했다. 을사조약은 1905년 을사년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강제적으로 맺은 조약이다. 우리나라 백성들로서는 굉장히 분하고 억울한 날이었다. 그리하여 분위기나 기운이 몹시 어둡고 쓸쓸할 때 ‘을사년스럽다.’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이 을사년乙巳年이 ‘을씨년’으로 바뀌어 뭔가 싸늘하고 스산한 기운이 돌면 ‘을씨년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p 089



어떤 일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을 때 ‘풍지박살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풍지박살이란 말은 없다. 풍비박산風飛雹散이라고 해야 맞다. 풍비風飛는 바람에 날린다는 뜻이고 박산雹散은 우박이 흩어진다는 뜻이다. 곧 풍비박산은 바람에 날려 우박이 흩어진다는 뜻이다.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날아가거나 흩어지는 상황을 비유한 표현이다. p 091



혈혈단신孑孑單身을 홀홀단신으로 잘못 쓰는 경우도 있다.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처지가 되었을 때 ‘그는 가족을 두고 홀홀단신으로 멀리 떠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홀홀’이란 가볍게 날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혼자’라는 말을 떠올려 ‘홀홀’이라 생각하는 듯 한데, ‘혈혈’이라고 해야 한다. 혈혈의 혈은 외롭다는 뜻으로 의지할 곳 없이 외롭다는 말이다. p 093



분위기나 상황을 망칠 때 ‘산통 깨다.’라고 말한다. ”네가 실수하는 바람에 산통 깨졌어.”등과 같이 쓴다. 산통의 어원은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점치는 도구와 관련된 것이 있다. 점쟁이가 점을 칠 때는 젓가락처럼 생긴 가늘고 긴 산가지를 통에 넣어 흔든다. 이 산가지를 넣는 대나무로 만든 통을 산통이라고 부른다. 운세를 점치는 과정에서 점쟁이가 실수로 산통을 떨어뜨려 깨트리면 점을 칠 수가 없다. 일을 망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잘 되어 가던 어떤 일을 망치게 되면 ‘산통을 깨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p 127




▶대비되는 뜻의 한자


동쪽은 근본이 되는 방향이다. 그리하야 집의 주인은 동쪽에 머물고 손님은 서쪽에 모시도록 했다. 이와 같은 의례는 오늘날에도 적용되고 있다. 흔히 사위를 서방西房잉라고 불렀는데 백년손님인 사위를 서쪽 방에 머물케 한 데서 유래했다. 왕세자나 태자를 ‘동궁東宮마마’라고 불렀는데 장차 주인이 될 세자가 거처하는 궁을 궁궐 안의 동쪽에 둔 데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동국東國 혹은 해동海東으로 불렀다. 우리나라가 중국에서 보았을 때 동쪽에 자리한 까닭이다. 해동은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발해渤海의 동쪽 나라’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고구려 유민인 대조영이 세운 발해는 그 당시 고구려땅과 만주, 연해주를 포괄하는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 p 164


출出은 ‘나가다, 나타나다’는 뜻이다. 집을 나가면 가출家出이고, 속세를 떠나 불교에 귀의하는 것은 출가出家다. 여자가 다른 곳으로 시집가는 것도 출가出嫁라 하는데, 여기서 가嫁는 ‘시집간다.’는 뜻이다. 사회적으로 크게 지위가 오르거나 유명해지면 ‘출세出世했다’고 하는데 명성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본래 불교에서 나왔다. 출세본회라 하여 세상에 나타나 많은 사람을 교화시키고 중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했다. p 182




여기까지가 한자책이자 인문학책이자 교양책인 『한자의 쓸모』 맛보기! 한자라는 언어와 우리 삶에 녹아있는 생활문화, 거기에 인문학적 소양이 한 스푼 더해진 책. 한자 공부용으로도, 인문학적 소양쌓기로도, 킬링 타임용으로도 그 어떤 방면으로도 활용도가 높은 책으로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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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 국경선은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가
존 엘리지 지음, 이영래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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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투비 역사더쿠로서 온갖 세계사책을 읽어보았다. 그저 시간순으로 쓴 일반적인 세계사(통사, 거시사)는 물론이오, 일부 지역에 한한 세계사 책도 읽어보았다. 그 뿐인가? 지도, 식물, 특정한 날, 약(drug), 전쟁, 경제, 기후, 범죄, 지리 등 수많은 테마를 주제로 쓴 세계사책도 읽어봤더랬다. 이제는 더이상 나올 테마별 세계사책이 없겠지? 싶었는데. 이야. 역시 역사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이번엔 ‘경계’를 주제로 한 세계사책이다. 책의 제목도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다.



‘경계’라는 단어를 네이버에 검색하면 어떤 답이 나올까? 명사로써 “지역이 구분되는 한계”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다. 이 세계사책은 각 국가를 구분하는 경계선, 국경을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일단 주제를 보았을때, 이 세계사책은 일반적인 통사의 흐름대로 쓰여지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들었다. 통사가 아니라는 말은 뭐다? 최소 단락단위로 끊어 읽을 수 있는 세계사책 이라는 이야기다.



보통 통사로 쓰여진 세계사책은 시간순으로 기록되다보니,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한다. 하지만 특정한 주제를 기준으로 쓰여진 미시사는, 그 주제에 한정하여 쓰여지기 때문에 단락별로 명확하게 끊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하여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고, 흥미있는 단락만 골라서 읽을 수도 있다. 이는 시간이 금인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부분인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할나위 없는 장점이다.



이 세계사책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는 경계, 즉 국경을 주제로 쓰여진 책이다. 고로 일반적인 거시사(통사)가 아니다. 거시사가 아니기에, 이 책의 시작도 일반적인 통사와 다르다. 으레 나오는 인류의 시작, 또는 사대문명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시간순으로 배열되지도 않는다. 저자는 책 제목에 썼듯 ‘경계’라는 큰 틀을 기준으로 하여 ‘유산, 역사, 외부효과’ 로 세부적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한다.



유산: 경계 자체가 유형 또는 무형의 ‘유산’이 된 중국(만리장성), 로마, 영국과 아일랜드(지도), 독일(철의 장막) 등을 이야기한다.


역사: 경계 자체가 커다란 역사적 사건을 불러일으킨 한반도 분단,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미국-캐나다 분쟁등을 이야기한다.


외부효과: 땅 위의 통제권이 아닌 다른 유형의 경계, 즉 날짜와 시간, 바다와 상공등의 경계에 영향을 미친 본초자오선, 국제날짜변경선, 남극의 영유권 분쟁등을 이야기한다.



나는 책을 읽기 전 항상 머릿말(또는 서문, 프롤로그)를 빠짐없이 읽는다. 머릿말은 항상 저자가 책을 집필한 뒤에 쓰는 기록이기에, 해당 책이 어떤 방향으로 쓰여지는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다. 그 뿐인가?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책을 썼는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책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짧지만 작가와 독자에게 있어선 정말 중요한 글의 시작이다. 만약 머릿말을 읽었는데, 오히려 내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된다? 그럼 그 책은 덮어야한다. 특히 역사책은 머릿말의 중요도가 더 높다. 머릿말에서 보이는 저자의 자세에 따라, 역사를 대하는 저자의 자세를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저자의 역사 이해도가 어떤지까지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저자가 겸손한 자세로 머릿말(또는 프롤로그)를 쓴 역사책은 오랜만이다. 



이 책은 세계사 전체를 아우르지는 않는다. 수 세기 동안 지속된 역사는 물론이고, 아예 다루지 못한 문명도 있다. 이러한 공백은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반영하기도 하며, 중복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는 ‘나’라는 인간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영국인, 영국시민, 유럽인, 서구인, 백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이 내 시각에 영향을 미쳤다. 나는 나 자신의 편향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지만, 세상의 많은 문제가 나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려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결국 나의 시각에서 쓰인 역사이며, 나의 편견이 반영된 결과이다. 만약 내가 당신이 관심을 가진 특정한 국경이나 문명을 빠트렸다면, 그저 사과드릴 수 밖에 없다. p 013






역사는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야면 살아남는 분야다. 예컨데 우리가 선사시대, 역사시대로 구분하는 방법은 바로 ‘기록’이다. 자신들이 살아온 일을 문자로 기록을 하여 후세에 남기면서 역사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숨어있는 ‘함정’이다. 어떠한 개인이 기록한 기록물은, 기록한 당사자의 가치관이 묻어나올 수 밖에 없다. 최대한 가치중립적으로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살아왔던 모든 가치관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그 누구보다 역사가들에게 필요한건, 역사 앞에서의 겸손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역사가들이(또는 역사가라 지칭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쓴 기록이야말도 제대로된 역사라며 우후죽순으로 나오고있는 요즘을 보고 있노라면, 역사가들에게 제일 중요한 ‘겸손함’이라는 가치가 이제는 빛바랬구나 하고 씁쓸함만 느꼈더랬다.



그런데! 이 책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의 저자는 달랐다. 자신이 살아오며 정립된 가치관과 편향성을 최대한 극복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수 없이 지극히 자신의 주관적인 시각에서 쓰여졌음을 인정하는 자세, 자신이 살아온 배경이 자신의 시각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 이게 바로 역사가들에게 제일 필요한 자세다. 하지만 내가 읽은 수많은 역사책 중 이런 자세를 가진 저자들이 얼마나 있었는가.....




만리장성은 그들이 보호하는 하나의 통일된 중국을 상징하는 역할은 여전하지만, 영원히 그 뒤에 숨어 있을 수는 없다. 성벽을 뚫은 것은 몽골과 만주족만이 아니었다. 19세기 유럽인들은 중국 항구에 군함을 대고 중국에 침입했다. 수천 년 전 초나라, 제나라, 그리고 17세기 명나라가 깨달았듯이, 외부인을 영원히 막아주는 국경은 없다. p 038



지도 위의 선이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왜 다른 곳에 그려지지 않았는지 설명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역사를 단순히 현재에 이르는 필연적인 사건들의 연속으로 읽다 보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가 유일한 가능성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려 아주 사소한 몇 가지 요소만 달라졌다고 해도 결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스코틀랜드는 컴브리아를 포함했을 수도 있고, 잉글랜드가 로디언 지역을 차지했을 수도 있으며, 웨일스는 완벽히 흡수됐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논의 자체가 어찌 보면 속임수일 수도 있다. 대브리튼 섬에는 세 개의 민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단 하나의 국가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대브리튼섬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줄여서 영국 혹은 UK다. p 073



몽골의 정복과 약탈이 끝난 후 교통과 교역이 훨씬 원활해졌고, 이 시기는 ‘평화로운 몽골’이라는 다소 아이러니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몽골은 무역의 원활한 흐름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책을 도입했다. 여행자들에게 식량과 숙소를 제공하는 역참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오르토그’라는 무역조합을 공식적으로 지원하여 상인들이 자원을 공유하고 위험을 분산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합은 일종의 보험과 같은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빌려주기도 했다. p 087



오늘날 약 6,000만 명의 미국인이 군사력으로 멕시코에서 정복한 땅에서 살고 있다. 한때는 미국인들이 경제적 기회를 찾아 멕시코로 건너갔지만, 이제 미국은 멕시코인들이 같은 이유로 국경을 넘는 것을 막기 위해 장벽을 세우고 있다. 물론 이 장벽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p 137




외침을 막기위해 거대한 장벽을 쌓았지만, 실상은 온갖 유목민들에게 뚫리고, 바다를 통해 몰려들어온 유럽인에게 뚫린 만리장성, 잔학하기로는 지구 반대편 유럽에서까지 악명을 떨친 몽골 정복의 이면, 멕시코인들이 국경을 넘는 것을 막으려는 현재 트럼프 장벽과 좋게 말하면 멕시코 할양지이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미국이 삥뜯어낸 멕시코의 땅 텍사스. 경계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가 오늘 추천하는 이 세계사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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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의 고독
양선미 지음 / 파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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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하는 소설책은 『영이의 고독』. 오랜만에 읽는 한국 장편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역사장르가 가미된 글만 읽는 편이지만, 독서 편식은 좋지 않으므로! 취향이 아닌 책이라도 한 해에 5권 정도는 읽으려고 노력중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영이는 교실 한 켠에, 사무실 한 켠에 있을 법한 그런 여학생 또는 여성을 대변한다. 좋게말하면 착하고 온순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내성적이고 주체적이지 못하며 소극적이다. 누군가 대신 나서서 자기를 꺼내주기를 원한다. 이러한 영이의 성격(또는 성향)은 그녀의 인생은, 흔히들 말하는 그저 그런 인생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바라던 행운이 들어왔음에도, 그간의 삶에서 배운거라곤 ‘주체적이지 못한 본인’이었기에 행운을 잡을 수 조차 없는 소극적인 여성으로 말이다.


현경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아이였다면, 영이 역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주변 상황에 지나치게 긴장하고 걱을 먹고 위축되는 아이였다. 물론 영이도 걱정했던 거소가 달리 자신에게서 의외의 재능이 발현될 수도 있나는 희망을 잠깐 품긴 했다. p 028



말을 하고 보니 논리가 그럴듯하다 싶었던지 아버지는 뻥튀기 튀기듯 화를 부풀렸고 종내에는 자신이 그날 직장을 때려치우고 대낮부터 술을 먹게 된 것도 어머니의 아둔함과 교양 없음과 무신경 때문이라고 핑계대기에 이르렀다. 지난번 실직 이후로 꼬박 1년 2개월을 무직으로 지낸 뒤 옜 동료의 소개로 다시 일을 시작한 지 고작 8개월 만에 다시 일을 하지 않겠다는, 혹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선언을 그런 식으로 한 것이었다. p 047




영이의 일생은 학창시절 사격부원, 중학교 졸업 후에는 주/야간이 나뉜 상고 학생, 상고 야간반으로 변경 후 낮에는 대학교 급사(사무보조원)을 했고, 이 후에는 경리, 그리고 요양보호사로 나뉜다. 청소년기 사격부원이 되었던 그저 키가 크다는 이유로 강제 차출이었다. 총소리를 무서워하고, 재능도 없었던 영이가 사격부원을 계속 했던건 ‘하고싶지 않다’는 의사표현을 할수 없었기 때문에. 사격부 내에서 각종 폭력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영이는 그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었다. 



영이의 성인기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사무보조원, 경리, 요양보호사, 그녀가 종사한 직업이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직군들은 고스펙 고임금은 커녕, 고난도의 능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소득기준으로 볼때는 하위에 속하는 직업군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회에서 없으면 안되는 직업군이기도 하다. 



사무보조원이 있어야만 사무실 행정이 원할하게 돌아가고, 경리가 있어야만 회사의 자금 흐름이 원할하게 돌아가며, 요양보호사가 있어야만 노년층의 일상을 지원해줄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직업군들은 꼭 필요로 하지만, 고된 일을 도맡아야 하며, 임금은 적고, 누군가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직업군인 것이다. 슬프게도 현재 이런 직업군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이며, 영이가 해당 직업을 가졌을 때와 비슷한 연령대다. 어찌보면 영이는 희생이 당연했고, 희생을 강요당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속에서 잊혀진 그 시절 여성을 집약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성인이 되자 영이는 조금 변했다. 소심하고 주눅 들고 주변의 눈치를 보는 성정에 새로운 것들이 보태졌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으나 염증, 불안, 절망, 상실 혹은 긴장과 비슷한 감정들이었다. 그것들은 원래 있던 것들과 뒤섞여 시시때때로 영이를 괴롭혔다. 낮에는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으나 밤이 되면 미래에 대한 희망없음으로 인해 숨이 막히는 듯 했다. p 131



너는 어쩜 하나도 안 변했다. 깨순이도 영이를 신기해했다. 누군가 부르면 겁먹은 표정을 짓고, 늘 고개를 숙인 채 걷고 너무 작은 목소리로 예기하던 어릴 때와 전혀 다르지 않다며 지금도 속이 상하거나 억울한 일이 생기면 따지거나 불평하는 대신 눈물을 흘리며 눈만 껌벅이느냐고 물었다. p 177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떨어지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 불운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무보조원, 경리,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다들 영이처럼 살지는 않는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도 많다. 언젠가 찾아올 행운을 모르고 놓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기를 갈고 닦는 사람도 많다. 적어도 영이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고 살았던 사람들이, 모두다 영이처럼 사는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난 이 소설을 다 읽은 이 시점에서도, 영이의 삶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공감하기가 어렵다. 내가 살아온 환경 조건이 영이와는 너무 달라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난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기에. 어쩌면 영이에게 공감 못하는 내 자신이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끝맛이 쓴 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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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문해력 - 끊어진 대화의 시대, 텍스트와 세상을 새롭게 읽는 법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6
조병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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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리뷰를 쓴 도서중에는 문해력 관련 도서가 꽤 있다.  해마다 1~2권은 꼭 읽었다. 왜? 시간이 흐를수록, 내 주변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국민 전반적으로 문해력 저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 딸이 올바른 문해력을 갖출 수 있도록 가르쳐야한다는 사명감이 솟아난다.



보통 사람들은 ‘문해력’이라고 말하면, 단지 ‘책을 읽는 것(문자를 읽는 것)’에 국한해서 생각한다. 한마디로 ‘문해력이 떨어지면, 문자를 읽었을 때 이해도가 떨어진다’ 정도로 가볍게 치부하는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도 가벼운 문제가 아닌데, 다들 그저 가볍게 생각하고 만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나라 전반적인 문해력 저하의 근거 중 하나다.




▶ 문해력을 구성하는 네가지 요소 p 026~027



나의 문해력을 이해하려면 먼저 ‘텍스트’를 알아야 한다. 내가 읽고 쓰는 텍스트는 내용, 영역, 표현, 형식, 양식, 구조, 자질, 출처, 생산, 유통과정 등 모든 면에서 다양하다.


누가 읽고 쓰는가, 즉 읽고 쓰는 나는 누구인가에 따라서도 문해력은 달리 이해된다. 여기서 누구는 ‘주체’를 말한다. 각각의 주체는 기술, 능력, 지식, 동기, 태도, 신념, 주도성, 정체성 모든 측면에서 다르다.


문해력은 왜 무엇을 어떻게 일고 쓰는거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글을 읽고 쓸 때 우리는 어떤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는 목적, 과정, 과제, 결과가 서로 조화되어 이루어진다.


나의 문해력은 맥락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맥락은 아주 작은 과제나 일의 맥락일 수도 있고, 내가 살아가는 집단 혹은 사회의 맥락일 수도 있다. 학교, 회사, 법원, 경찰서와 가은 생활 및 전문 영역의 맥락일 수도 있다. 


 

 




‘문해력’은 문자를 읽었을 때 이해하는 것에 대해 국한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 그나마도 읽기 뿐만 아니라, 쓰기 및 말하기, 심지어는 영상매체를 시청하는데 있어서도 문해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영상매체 시청하는데도 문해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요즘 시대에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지금같이 유튜브나 각종 릴스들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팩트 체크가 되지 않은 영상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었을 때, 과연 사람들은 팩트체크와 교차검증, 그리고 제대로된 비판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특히나 영상 속에서 말하는 인물이 공신력이 있는 기관을 이야기하거나, 혹은 부와 명예를 지닌 사람이라거나, 또는 고학력 고스펙 전문 직종의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올바른 문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릇된 영상 속에서 말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사실이 맞는지 교차검증을 하고, 팩트체크도 하고,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사실처럼 말했다면 올바른 비판도 할 것이다. 



문해력 논란의 원인이 단지 미디어에만 있지 않다. 근원적으로 그것은 읽기의 문제다. 그리고 읽기가 지식의 문제와 결부된다는 점에서, 가짜에 속거나 흔들리는 읽기를 ‘지식의 역설’로 여겨볼 수 있다. 지식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식은 우리 글 읽기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모순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p 047





하지만 문해력이 떨어진, 또는 그릇된 문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릇된 영상을, 그릇된 말을 하는 사람을 신봉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팩트체크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누군가 올바르게 비판을 했을 때, 근거를 갖춘 비판으로 상대하는게 아닌 원색적인 ‘비난’으로 상대한다. 여기에 더해 똑같이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일종의 여론전도 벌인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최근 몇 년간 너무 많이 봐왔고, 지금도 보고있지 않은가. 



예컨데 AI가 만든 영상이 유튜브에서 유행하자 언론사가 앞다퉈 팩트체크도 하지 않은 채 뉴스로 내보낸다거나, 불법계엄을 계몽이라 칭한다거나, 사이비 배불린다는 생각은 못하고 그저 교단에서 하라는 불법적인 행동을 서스름없이 하는 사람들을. 이 모든게 그릇된 문해력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된 문해력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조작된 허위정보와 맹목적인 믿음에 있다. 



가짜와 허위에 속는 이유도 지식의 문제일 수 있다. 지식이 부족하거나 잘못되었거나 혹은 적합하게 활용되지 못하면 가짜를 걸러내지 못하고 허위 정보 앞에서 무너질 수 있다. 특히, 매우 전문적인 영역에서 전문적인 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용어와 형식으로 설계된 허위 정보 앞에서는 내가 가진 지식이 무용지물일 수도 있다. 잘 읽고 잘 판단하기 위해서는 질적, 양적으로 적합한 세상 지식과 전문 지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p 050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잘 속을까? 지식 못지않게 믿음도 중요하다. 지식의 역설에 버금가는 것이 ‘믿음의 반란’이다. 우리는 지식도 가지고 있지만 믿음도 가지고 있다. 지식이 강화되면 믿음이 되고 믿음이 검증되면 지식이 된다. 세상에 부적합한 지식이 있듯이 틀린 믿음도 있다. p 055



그렇기에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올바른 지식인지, 내 믿음이 틀린 믿음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 글을 읽기에 앞서 자신의 배경지식이 아래 네 가지 조건에 충족하는지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p 053


지식이 충분한가? 글의 주제, 소재, 영역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지식이 정확한가? 글 내용에 관하 얼마나 최신의 믿을 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지식이 구체적인가? 글 내용에 관련된 경험, 사례, 개념, 맥락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배경지식이 상세하고 구체적인가?


지식이 유기적인가? 글 내용에 관련한 배경지식이 일관성과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가?



▶ 틀린 믿음을 불러 일으키는 요인


직관적 사고의 문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근거가 뭔데?”라고 물으면 잘 설명하지 못한다. 직관적 사고 자체가 나쁘진 않지만, 상황에 따라선 치밀한 근거가 필요하다.


인지적 판단 실패. 어떤 정보가 눈에 들어왔을 때는 덥석 물기보다 우선 출처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눈 앞의 정보와 반대되는 주장이나 근거가 무엇일지 내용도 따져보아야 한다.


인지적 익숙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믿음을 너무 잘 설명해주는 가짜 정보를 만난 경우에 특히 문제가 된다. 더군다나 이런 부류의 정보는 아주 전문적으로 꾸며져 있다. 그럴듯한 통계와, 인용, 참고문헌과 함께 보기 좋게 디자인 되어 있다.


우리의 세계관. 각자가 세계를 인식하고 바라보는 눈이 실은 판단력을 멀게 한다. 어떤 정보가 누군가가 이미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 딱 맞는 것이라면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 정보가 맞든 틀리든 간에 자신의 세계관과 삶의 성향에 맞는 것만을 취하는 태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안혹 조건 없이 따르는 우리의 경향성이 깊은 사색과 질문보다 앞에 나서기 때문이다. p 055~059



앞으로 이 세상엔 지금보다 더 정교하게 조작된 허위정보가 판을 치고, 그 정보를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내 딸이 잘못된 세상에 빠지지 않도록, 올바른 문해력을 갖출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 시작은 바로 나부터 올바른 문해력을 갖추는 것이다. 내가 자리를 잘 잡아야, 내 딸이 그런 나를 보며 올바른 문해력을 갖출 수 있을 테니까.



가짜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가짜를 판별하는 힘을 기르려면 적당하게 가짜에 노출될 필요도 있다. 신체의 면역 원리와 같다. 독감 바이러스를 약하게 만들어 몸 안에 집어넣어 독감 면역력을 키우는 예방접종처럼, 위험하지 않을 정도의 순화된 허위 정보와 잠재적 위험성을 관찰하고 한발 앞서 사실, 논리, 출처 기반의 분석과 평과를 수행할 수 있는 허위 정보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가짜 정보가 가지는 잠재적 위험에 대해 교육할 필요가 있다. 가짜 범람의 시대에 언제나 옳은 텍스트만 읽는 것이 문해력을 키우는데 능사가 아니다. p 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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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발칙한 사생활 - 우리 곁 식물들의 영리한 생존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장은주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5월
평점 :
품절


작년에 출간한 식물 책 『식물의 발칙한 사생활』. 이 책 저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일본의 식물학자이다(농학부 교수). 내 책장에는 이 분이 쓴 식물 책이 세 권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 포스팅하는 『식물의 발칙한 사생활』이다. 사실... 작년에 출간되었을 당시에 샀던 책이긴한데, 공부한다는 핑계로 읽지 못하고, 1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읽었다. 이 책 이후로도 동 저자가 식물 책 신간을 몇 권 더 냈다는건 안 비밀(얼른 사놔야지).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꽤 많은 식물 책을 읽었는데, 저자가 쓴 책은 내가 읽은 식물 책 중 단연코 베스트 5 안에 든다. 진짜로!!!



이 식물 책 『식물의 발칙한 사생활』은 지상에서 사는 식물들의 생존전략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한다. 심지어 책의 시작부터!




식물은 인류의 삶에서 뗄레야 뗄 수가 없다. 오랜 옛날, 인류가 불을 발견하기 전까지 인류의 에너지 섭취 수단은 오직 식물이었다. 불을 발견하고 육식을 하기 시작한 뒤에도 인류는 식물을 중요한 식재료로 생각했다. 그뿐인가? 현재 식물은 주식으로 먹는 식재료를 떠나,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 인류가 먹고, 마시고, 바르는 모든 것들의 원료가 되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바르는 모든 것들은 대부분 ‘식물유래 추출물’을 전면에 내세운다. 분명 합성원료임에도 불구하고, 식물 추출물로 만들었다는 내용만으로도 왠지 안전하고, 믿을 수 있고, 더 건강해질거라고 믿는다. 식물유래 추출물질의 대표적 기능으로는 항산화, 항히스타민, 혈액순환개선, 인지기능향상 등이 있다. 정말 어마무시하지 않은가? 항산화의 대표주자인 각종 비타민을 비롯하여, 메리골드, 안토시아닌 등 대부분의 원료가 식물 추출물이거나, 혹은 식물 그자체를 사용하거나 둘 중 하나다. 아니, 이쯤되면 식물은 인간의 건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창조된 생물인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삐- 그 의심은 틀렸습니다.




식물에서 유래한 성분에는 다양한 기능과 특징이 있는데, 식물의 화학물질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뿌리에서 흡수한 양분과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당분, 식물은 이 한정된 자원으로 모든 생명 활동을 영위해가야만 한다. 영양분을 투자하여 튼튼하게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고, 경쟁력을 높여 주위 식물보다 몸집을 키워 빛도 더 많이 쬐어야 한다. 물론 꽃을 피우고 꽃가루와 씨앗을 만드는 일 역시 다음 세대를 육성하는 데 중요한 예산 배분이다. 자원을 축내며 생산하는 화학물질도 비효율적이어서는 안된다. 이를테면 안토시아닌은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물질인 동시에 항균활성화 작용도 한다. 혹은 물에 녹아 침투압을 높여 건조 시 세포의 보습력을 높이거나 저습일 때 동결 방지 역할을 하기도 한다.  p 023



고추냉이나 양파의 매운밧 성분도 식물의 화학병기로, 고추냉이나 양파는 이 화학병기에 좀 더 지혜를 더했다. 고추냉이의 화학병기는 시니그린이라는 물질이다. 이 시니그린 자체는 매운맛이 없지만, 곤충이 갉아먹어 세포가 파괴되면 세포속 시니그린이 세포 밖 산소로 인해 화학 반응을 일으켜 알릴겨자유라는 매운맛 성분을 생성한다. 고추냉이를 얇게 저밀수록 매워지는 이유가 세포가 그만큼 파괴되기 때문이다. 양파도 마찬가지다. 많은 식물이 온갖 머리를 짜내어 다양한 화학병기를 만들어 내는 이유는 식물에게 곤충이 그만큼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p 030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해주는 식물유래 추출물. 그것들은 식물이 지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낮없이, 매일같이 만들어낸 삶의 지혜였다. 우리는 식물이 만들어낸 삶의 지혜를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던 것이었다. 




여기까지 내용은 그저 이 책의 시작일 뿐이다. 아래 목차를 보라. 식물들이 지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지난한 삶을 살아내는지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근데 이 내용을 그저 방구석 가드너가 볼 때와, 식물보호기사 자격증 수험생이 볼 때가 또 다르다. 이게 무슨말이냐면...




 

 




방구석 가드너가 볼 때는 ‘아! 그렇구나!’, ‘그럼 이렇게 해봐야겠다!’ 라는 정도의 감상에서 끝난다. 하지만 식물보호기사 자격증 수험생 입장에선, 어머 세상에! 이렇게 친절한 개념 교과서가 있다니!!!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특히 비전공자 수험생에게 말이다.




방구석 가드너 n년차 피로는, 식물관련 전공은 1도 아닐 뿐더러 관련 업종에서 근무한적도 없다. 완전 식물계의 햇병아리. 그런 내가 식물보호기사를 쉽게 취득한 건 종종 읽었던 식물 책의 도움이 컸다. 특히 이 책의 저자가 쓴 여러 식물 책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만 과거에 읽었던 저자의 다른 책들에선 대체로 재배학 관련에서 도움을 받았다면, 이 책 『식물의 발칙한 사생활』은 다르다. 재배학 뿐만 아니라 농림해충학, 식물병리학 까지도 아우르고 있다. 무려 해충과 병리다!!! 수험생들 골치 꽤나 아프게하는 식물 병충해!!! 식물 병충해 기초 개념잡기 딱 좋은 책이라는 이야기다.



아.. 식보기사 취득하고 얼마전에 종자기사 실기까지 퍼풱트..하게 마무리한 상태라, 아직 뇌가 수험생 모드에서 깨어나오질 못하고있다..하....


얼른 일반인 모드로 돌아가서, 책좀 더 읽어야하는데...!! 레드 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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