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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문해력 - 끊어진 대화의 시대, 텍스트와 세상을 새롭게 읽는 법 ㅣ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6
조병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월
평점 :
내가 리뷰를 쓴 도서중에는 문해력 관련 도서가 꽤 있다. 해마다 1~2권은 꼭 읽었다. 왜? 시간이 흐를수록, 내 주변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국민 전반적으로 문해력 저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 딸이 올바른 문해력을 갖출 수 있도록 가르쳐야한다는 사명감이 솟아난다.
보통 사람들은 ‘문해력’이라고 말하면, 단지 ‘책을 읽는 것(문자를 읽는 것)’에 국한해서 생각한다. 한마디로 ‘문해력이 떨어지면, 문자를 읽었을 때 이해도가 떨어진다’ 정도로 가볍게 치부하는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도 가벼운 문제가 아닌데, 다들 그저 가볍게 생각하고 만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나라 전반적인 문해력 저하의 근거 중 하나다.

▶ 문해력을 구성하는 네가지 요소 p 026~027
나의 문해력을 이해하려면 먼저 ‘텍스트’를 알아야 한다. 내가 읽고 쓰는 텍스트는 내용, 영역, 표현, 형식, 양식, 구조, 자질, 출처, 생산, 유통과정 등 모든 면에서 다양하다.
누가 읽고 쓰는가, 즉 읽고 쓰는 나는 누구인가에 따라서도 문해력은 달리 이해된다. 여기서 누구는 ‘주체’를 말한다. 각각의 주체는 기술, 능력, 지식, 동기, 태도, 신념, 주도성, 정체성 모든 측면에서 다르다.
문해력은 왜 무엇을 어떻게 일고 쓰는거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글을 읽고 쓸 때 우리는 어떤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는 목적, 과정, 과제, 결과가 서로 조화되어 이루어진다.
나의 문해력은 맥락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맥락은 아주 작은 과제나 일의 맥락일 수도 있고, 내가 살아가는 집단 혹은 사회의 맥락일 수도 있다. 학교, 회사, 법원, 경찰서와 가은 생활 및 전문 영역의 맥락일 수도 있다.
‘문해력’은 문자를 읽었을 때 이해하는 것에 대해 국한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 그나마도 읽기 뿐만 아니라, 쓰기 및 말하기, 심지어는 영상매체를 시청하는데 있어서도 문해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영상매체 시청하는데도 문해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요즘 시대에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지금같이 유튜브나 각종 릴스들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팩트 체크가 되지 않은 영상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었을 때, 과연 사람들은 팩트체크와 교차검증, 그리고 제대로된 비판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특히나 영상 속에서 말하는 인물이 공신력이 있는 기관을 이야기하거나, 혹은 부와 명예를 지닌 사람이라거나, 또는 고학력 고스펙 전문 직종의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올바른 문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릇된 영상 속에서 말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사실이 맞는지 교차검증을 하고, 팩트체크도 하고,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사실처럼 말했다면 올바른 비판도 할 것이다.
문해력 논란의 원인이 단지 미디어에만 있지 않다. 근원적으로 그것은 읽기의 문제다. 그리고 읽기가 지식의 문제와 결부된다는 점에서, 가짜에 속거나 흔들리는 읽기를 ‘지식의 역설’로 여겨볼 수 있다. 지식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식은 우리 글 읽기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모순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p 047
하지만 문해력이 떨어진, 또는 그릇된 문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릇된 영상을, 그릇된 말을 하는 사람을 신봉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팩트체크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누군가 올바르게 비판을 했을 때, 근거를 갖춘 비판으로 상대하는게 아닌 원색적인 ‘비난’으로 상대한다. 여기에 더해 똑같이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일종의 여론전도 벌인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최근 몇 년간 너무 많이 봐왔고, 지금도 보고있지 않은가.
예컨데 AI가 만든 영상이 유튜브에서 유행하자 언론사가 앞다퉈 팩트체크도 하지 않은 채 뉴스로 내보낸다거나, 불법계엄을 계몽이라 칭한다거나, 사이비 배불린다는 생각은 못하고 그저 교단에서 하라는 불법적인 행동을 서스름없이 하는 사람들을. 이 모든게 그릇된 문해력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된 문해력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조작된 허위정보와 맹목적인 믿음에 있다.
가짜와 허위에 속는 이유도 지식의 문제일 수 있다. 지식이 부족하거나 잘못되었거나 혹은 적합하게 활용되지 못하면 가짜를 걸러내지 못하고 허위 정보 앞에서 무너질 수 있다. 특히, 매우 전문적인 영역에서 전문적인 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용어와 형식으로 설계된 허위 정보 앞에서는 내가 가진 지식이 무용지물일 수도 있다. 잘 읽고 잘 판단하기 위해서는 질적, 양적으로 적합한 세상 지식과 전문 지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p 050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잘 속을까? 지식 못지않게 믿음도 중요하다. 지식의 역설에 버금가는 것이 ‘믿음의 반란’이다. 우리는 지식도 가지고 있지만 믿음도 가지고 있다. 지식이 강화되면 믿음이 되고 믿음이 검증되면 지식이 된다. 세상에 부적합한 지식이 있듯이 틀린 믿음도 있다. p 055
그렇기에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올바른 지식인지, 내 믿음이 틀린 믿음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 글을 읽기에 앞서 자신의 배경지식이 아래 네 가지 조건에 충족하는지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p 053
지식이 충분한가? 글의 주제, 소재, 영역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지식이 정확한가? 글 내용에 관하 얼마나 최신의 믿을 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지식이 구체적인가? 글 내용에 관련된 경험, 사례, 개념, 맥락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배경지식이 상세하고 구체적인가?
지식이 유기적인가? 글 내용에 관련한 배경지식이 일관성과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가?
▶ 틀린 믿음을 불러 일으키는 요인
직관적 사고의 문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근거가 뭔데?”라고 물으면 잘 설명하지 못한다. 직관적 사고 자체가 나쁘진 않지만, 상황에 따라선 치밀한 근거가 필요하다.
인지적 판단 실패. 어떤 정보가 눈에 들어왔을 때는 덥석 물기보다 우선 출처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눈 앞의 정보와 반대되는 주장이나 근거가 무엇일지 내용도 따져보아야 한다.
인지적 익숙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믿음을 너무 잘 설명해주는 가짜 정보를 만난 경우에 특히 문제가 된다. 더군다나 이런 부류의 정보는 아주 전문적으로 꾸며져 있다. 그럴듯한 통계와, 인용, 참고문헌과 함께 보기 좋게 디자인 되어 있다.
우리의 세계관. 각자가 세계를 인식하고 바라보는 눈이 실은 판단력을 멀게 한다. 어떤 정보가 누군가가 이미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 딱 맞는 것이라면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 정보가 맞든 틀리든 간에 자신의 세계관과 삶의 성향에 맞는 것만을 취하는 태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안혹 조건 없이 따르는 우리의 경향성이 깊은 사색과 질문보다 앞에 나서기 때문이다. p 055~059
앞으로 이 세상엔 지금보다 더 정교하게 조작된 허위정보가 판을 치고, 그 정보를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내 딸이 잘못된 세상에 빠지지 않도록, 올바른 문해력을 갖출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 시작은 바로 나부터 올바른 문해력을 갖추는 것이다. 내가 자리를 잘 잡아야, 내 딸이 그런 나를 보며 올바른 문해력을 갖출 수 있을 테니까.
가짜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가짜를 판별하는 힘을 기르려면 적당하게 가짜에 노출될 필요도 있다. 신체의 면역 원리와 같다. 독감 바이러스를 약하게 만들어 몸 안에 집어넣어 독감 면역력을 키우는 예방접종처럼, 위험하지 않을 정도의 순화된 허위 정보와 잠재적 위험성을 관찰하고 한발 앞서 사실, 논리, 출처 기반의 분석과 평과를 수행할 수 있는 허위 정보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가짜 정보가 가지는 잠재적 위험에 대해 교육할 필요가 있다. 가짜 범람의 시대에 언제나 옳은 텍스트만 읽는 것이 문해력을 키우는데 능사가 아니다. p 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