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쓸모 - 슬기로운 언어생활자를 위한 한자 교양 사전
박수밀 지음 / 여름의서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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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오면서 한자의 중요성을 단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어렸을 적부터 역사를 좋아했던 역사더쿠이다보니, 남들보다 더 한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 유적지 답사를 다니다보면 한자로 쓰여진 현판, 비석 등을 만나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데 서울 노원구 초안산 내시&궁녀 분묘군을 찾았을 때, 제단 또는 상석 등에 쓰여진 한자를 읽을 줄 알았기에 그 봉분이 어떤 성씨를 가진 내시의 묘인지, 혹은 궁녀의 묘인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뿐인가? 파주에서 율곡선생 가족 묘원에 들어섰을 때도, 비문을 읽을 줄 알았기에 어떤 묘가 율곡선생의 묘인지, 또 어떤 묘가 신사임당의 묘인지를 찾을 수 있었다. 하다못해 서울 경복궁이나 창덕궁 등 5대 궁을 찾을 때도 한자로 쓰여진 현판을 읽을 줄 알기에, 각 전각의 이름을 바로 알 수 있었던 건 기본이다.


내가 이렇게 한자를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알고 있는 이유는, 그저 초등, 중등, 고등 전 학창시절에 걸쳐 주 1~2회 있었던 한문 시간을 즐겼기 때문이다. 코흘리개 초딩때부터 역사를 좋아한 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를 즐기고 좋아했던 건 아마도 ‘한자’에 담겨있는 원리가 신기했기 때문이다. 


어떤 한자는 그 뜻을 담고 있는 외형을 그림화하여 단순하게 상형문자, 또 어떤 한자는 두 개 이상의 뜻을 가진 한자를 조합하여 새로 만든 회의문자, 또 어떤 한자는 두 개 이상의 한자가 합쳐졌는데, 한쪽은 ‘발음’을 맡고 또 한 쪽은 ‘뜻’을 맡고 있는 형성문자. 이 얼마나 신기한 조합인지! 그래서 더 한자 공부에 몰두했던 것 같다. 뭐, 여기에 더해 꽤 오랫동안 일본 성우 덕질을 하며, 자연스레 습득한 일본어로 인해 한자 스킬이 한층 높아진건 안 비밀이다.


그렇게 어렸을 때 부터 한자를 즐기고, 공부하고 그러다보니 남들보다 문해력이 높은 건 당연지사다. 거기에 부차적으로 따라온 게 있었으니 바로 자격시험! 올해 시험을 본 식물보호기사, 종자기사 시험에서 한자 덕을 솔찬히 보았다. 임업/농업 용어들을 보면 대체로 한자용어이다보니, 정의 외우는데 있어서 꽤나 많은 도움이 된것이다. 왜? 그냥 용어에 쓰인 한자 뜻풀이 그대로 쓰면 되니까 ㅋㅋㅋ 진짜 개꿀!!!


여튼 이렇게나 중요하고 재미있는 한자인데, 요즘 공교육에선 한자시간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아예 안가르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공교육에서도 이럴진데, 가정에서라고 다를까? 그렇게 모두가 한자교육을 외면하기 시작하니,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다들 보면 요즘 아이들, 사회초년생들의 문해력 문제를 지적만 하는데 그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문해력이 왜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는지, 그 해결방법은 어디있는지를 찾을 생각들은 안하고 다들 문제만 제기하는 꼴이라니.


..................TMI는 여기까지!!!!!!!!!!!!!!!!!!!



그래서 오늘 리뷰하는 책이 무엇인고 하면! 앞서 그렇게 예찬한 한자에 관한 인문학책 『한자의 쓸모』다. 한자가 얼마나 중요한 문자인지, ‘한자’를 아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알 수 있는지, 이 책에서 속속들이 알려준다.


인간에게 족보가 있듯 글자도 그 기원이 되는 뿌리가 있다. 뿌리를 잘 알면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넓힐 수 있다. 한자는 글자 하나마다 개별적인 뜻이 있으며 때로는 여러 의미가 있다. 그런 까닭에 한 글자의 다름이 미묘한 차이를 빚고 때로는 천 리의 차이를 만든다. (…) 선조들은 한자를 문자 체계로 삼아왔기에 우리의 삶과 문화를 담아내려면 한자라는 도구를 이용해야 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결혼 문화, 죽음 문화, 의복 문화에서 김치, 우리 명절, 궁궐, 산과 강, 섬과 고개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에 담긴 한자의 속뜻을 살펴 우리의 정신사와 문화사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p 006


 



▶비슷하지만 다른 한자


절切도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흔히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안주 일절’이라고 쓴 글귀를 보게 된다. 그런데 ‘안주 일체’라고 쓴 곳도 있다. 두 문구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실은 일절一切과 일체一切의 절과 체가 같은 한자라서 빚어진 오해다. 모두 한자로는 ‘一切’이라고 쓰는데, ‘切’에 ‘끊을 절’과 ‘모두 채’라는 두 가지 음과 뜻이 있는 것이다. (…) 곧 ‘안주 일체’란 모든 안주가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가게 주인이 안주가 전혀 없다고 쓸 리는 없을 터이니 ‘안주 일체’라고 써야 맞다. p 024


세世와 대代도 비슷한 듯 보이나 다른 뜻이다. 흔히 족보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는 박혁거세의 60세손이다” 라거나, “너의 3대조 할아버지는 ㅇㅇㅇ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세世와 대代는 같은 뜻으로 함께 쓰기도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서로 다르다. 대는 나를 기준으로 나를 빼고 윗대로 올라가는 것이고, 세는 시조의 출발이 되는 1세로 하여 차례로 내려가는 것이다. 곧 세는 시조를 중심으로 삼아 차례로 내려가는 것이고. 대는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아버지, 할아버지 순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p 056




▶우리말의 뿌리


순라巡邏는 예전에 도둑이나 화재등을 경계하기 위해 궁중과 도성 안팎을 순찰하는 군대였다. 이를 순라군巡邏軍이라고 했는데 거기에 소속된 군졸을 순라巡邏라고 했다. 순은 돈다는 뜻이고 라는 순행한다는 뜻이니 순라는 순찰한다는 뜻이다. 또는 순경이라고도 했다. 순라가 술라로 발음되고 다시 지금의 술래가 되었다. p 089



‘을씨년스럽다.’는 말은 을사조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유래했다. 을사조약은 1905년 을사년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강제적으로 맺은 조약이다. 우리나라 백성들로서는 굉장히 분하고 억울한 날이었다. 그리하여 분위기나 기운이 몹시 어둡고 쓸쓸할 때 ‘을사년스럽다.’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이 을사년乙巳年이 ‘을씨년’으로 바뀌어 뭔가 싸늘하고 스산한 기운이 돌면 ‘을씨년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p 089



어떤 일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을 때 ‘풍지박살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풍지박살이란 말은 없다. 풍비박산風飛雹散이라고 해야 맞다. 풍비風飛는 바람에 날린다는 뜻이고 박산雹散은 우박이 흩어진다는 뜻이다. 곧 풍비박산은 바람에 날려 우박이 흩어진다는 뜻이다.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날아가거나 흩어지는 상황을 비유한 표현이다. p 091



혈혈단신孑孑單身을 홀홀단신으로 잘못 쓰는 경우도 있다.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처지가 되었을 때 ‘그는 가족을 두고 홀홀단신으로 멀리 떠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홀홀’이란 가볍게 날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혼자’라는 말을 떠올려 ‘홀홀’이라 생각하는 듯 한데, ‘혈혈’이라고 해야 한다. 혈혈의 혈은 외롭다는 뜻으로 의지할 곳 없이 외롭다는 말이다. p 093



분위기나 상황을 망칠 때 ‘산통 깨다.’라고 말한다. ”네가 실수하는 바람에 산통 깨졌어.”등과 같이 쓴다. 산통의 어원은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점치는 도구와 관련된 것이 있다. 점쟁이가 점을 칠 때는 젓가락처럼 생긴 가늘고 긴 산가지를 통에 넣어 흔든다. 이 산가지를 넣는 대나무로 만든 통을 산통이라고 부른다. 운세를 점치는 과정에서 점쟁이가 실수로 산통을 떨어뜨려 깨트리면 점을 칠 수가 없다. 일을 망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잘 되어 가던 어떤 일을 망치게 되면 ‘산통을 깨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p 127




▶대비되는 뜻의 한자


동쪽은 근본이 되는 방향이다. 그리하야 집의 주인은 동쪽에 머물고 손님은 서쪽에 모시도록 했다. 이와 같은 의례는 오늘날에도 적용되고 있다. 흔히 사위를 서방西房잉라고 불렀는데 백년손님인 사위를 서쪽 방에 머물케 한 데서 유래했다. 왕세자나 태자를 ‘동궁東宮마마’라고 불렀는데 장차 주인이 될 세자가 거처하는 궁을 궁궐 안의 동쪽에 둔 데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동국東國 혹은 해동海東으로 불렀다. 우리나라가 중국에서 보았을 때 동쪽에 자리한 까닭이다. 해동은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발해渤海의 동쪽 나라’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고구려 유민인 대조영이 세운 발해는 그 당시 고구려땅과 만주, 연해주를 포괄하는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 p 164


출出은 ‘나가다, 나타나다’는 뜻이다. 집을 나가면 가출家出이고, 속세를 떠나 불교에 귀의하는 것은 출가出家다. 여자가 다른 곳으로 시집가는 것도 출가出嫁라 하는데, 여기서 가嫁는 ‘시집간다.’는 뜻이다. 사회적으로 크게 지위가 오르거나 유명해지면 ‘출세出世했다’고 하는데 명성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본래 불교에서 나왔다. 출세본회라 하여 세상에 나타나 많은 사람을 교화시키고 중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했다. p 182




여기까지가 한자책이자 인문학책이자 교양책인 『한자의 쓸모』 맛보기! 한자라는 언어와 우리 삶에 녹아있는 생활문화, 거기에 인문학적 소양이 한 스푼 더해진 책. 한자 공부용으로도, 인문학적 소양쌓기로도, 킬링 타임용으로도 그 어떤 방면으로도 활용도가 높은 책으로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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