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한국인으로서 진하승을 모른다는 것은 아일랜드 사람이 미국의 케네디가 아일랜드 사람임을 모르는 것과 같고, 스코틀랜드 사람이 미국의 카네기가 스코틀랜드 사람임을 모르는 것과 같은 셈이다. 그리고 이미 이민간 지 150년도 더 지난 하타씨의 진하승을 여전히 한반도 도래인이었다고 강조하는 것은 아일랜드 사람이 케네디를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말하고, 스코틀랜드 사람이 카네기를 스코틀랜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결국 하타씨와 진하승은 한민족 이민사에서 첫번째 보이는 위대한 성공사례 정도로 기억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 P91

히에이산 연력사는 난폭한 승병으로 악명 높았다. 연력사는 창건 이래 왕족과 귀족의 기진으로 많은 장원을 소유하여 든든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막강한 불교세력으로 성장했다. 돈이 생기니 이를 지키기 위해 승병까지 조직했던 것이다. 나라 흥복사와 세력다툼이 일어나면서 급기야 첨예하게 대립하게 됐다. 이를 남도북령이라고 했다. 남도는 흥복사, 북령은 연력사를 말한다. 남도북령의 승병들이 싸우면서 불태운 절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들은 무사들도 압도하는 무력을 갖고 있었다. - P195

이렇게 전투와 합전으로 군사력을 키우고 신불을 앞세우고 나오는 승병들을 조정에서도 감당하지 못했다. 이리하여 조정과 귀족은 경호와 진압을 위해 무사를 키웠다. - P198

일본에선 오래된 전문 상점을 노포라 쓰고 ‘시니세’라 읽는데, 그냥 오래된 것이 아니라 한자리에서 4대, 5대를 이어가며 집안의 전통을 이어가는 전문 상점을 말한다. 단팥죽 장사를 해도 남에게 꿀릴 것 없이 당당히 살아가는 일본인의 생활 자세는 부럽고 배울 만 하다.

모두가 그 전문성을 높이 사고 장하게 생각해준다. 이거 해서 돈 벌면 때려치우고 딴 것 하겠다는 자세나 내 자식은 큰돈 되지 않는 이런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는 전통이 지켜지지 않는다. 전문인의 자부심, 장인정신을 존중하는 자세가 낳은 전통이다. 그것이 바로 현대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정신적인 하나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된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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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간편식 - 귀찮지만 집밥이 먹고 싶어서
이미경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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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신랑은 아침을 먹지 않고, 점심은 회사에서 먹는다. 고로 집에서 먹는 밥은 저녁식사와 주말동안인데, 이게 참. 매일 뭘 해먹어야할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김치찌개를 정말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김치찌개만 끓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반찬은 또 어떤가. 솔직히 말해서 반찬을 만든다고 해도, 집에서 1일 1끼만 먹다보니 냉장고에 오래 저장할만한 반찬이 아니면 냉장고에서 썩히다, 휴지통 신세!


거기다 반년전까지만해도 주말마다 여행을 다녀서, 외식을 자주했던지라 집에서 해먹는 밥은 뭐 많아야 일주일에 8끼정도 되려나? 헌데 이 놈의 망할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가서 주말 총 6끼까지 전부 집에서 해결해야한다. 하, 진짜 매번 뭘해먹어야 할지 눈앞이 깜깜할 정도. 근데 또 각 잡고 뭔갈 하자니, 재료사러 마트 갔다와야하고, 손질해야하고 아 귀찮아!!


제일 좋은 방법은 자주 사다놓은 기본 식재료로 매번 색다른 음식을 해먹는 방법밖에 없는데, 요리연구가도 아닌이상 재료만 보고 뭘 해먹을지 딱 떠오르지도 않으니까. 진짜 회사에서도 머리쓰느라 힘든데, 집에서조차 뭘 먹어야 하는지 머리를 써야하는 내 뇌가 불쌍하고 또 불쌍하던 찰나! 나를 구원해주는 책‘님’이 오셨으니! 간단한 재료를 사용해서, 세상 간단한 방법으로, 밖에서 사먹는 것만 같은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 북, 「가정간편식」 되시겠다.


하지만! 레시피로 넘어가기 전에 먼저, 음식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부터 먼저 알고 가는 건 기본 중의 기본!



레시피에서 제일 중요한건 계량인데, 이 책은 모두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숫가락&종이컵 계량을 사용한다. 


간혹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보면 어떤 사람은 밥숟가락을, 또 어떤사람은 계량전용 스푼을, 어떤사람은 비이커를, 계량도구가 아주 가지각색이라 힘들었다. 진짜 모처럼 레시피를 따라하려고 했는데, 레시피에서 말하는 계량도구가 없으면 요리하려는 의지도 훅훅 떨어지기도 하고. 다시금 느끼는 거지만 집에서 요리를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방법은, 단연코 손 쉽게 계량할 수 있는, 어느집이든 무조건 있을 법한 도구로 계량하는 레시피를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가정간편식」같은 이 레시피북처럼.



이 레시피북에 기본이 되는 재료들은 대체로, 언제나 집에 있는 식자재들. 그러니까 항상 냉장/냉동고에 묵혀있는(..) 것들이다. 재료에 따라서는 오래 묵힌 것들도 많으니,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위해 냉장/냉동식품의 보존기간을 확인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가끔 냉장고 청소할 때, 먹지 못할 상태의 반찬이나 식자재가 나올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이 책 덕분에 모처럼만에 냉장고 청소까지 완료.



맛있는 요리 탄생의 기본은 바로 양념! 어느 집이든 찬장을 열어보면, 못해도 간장, 소금, 설탕, 고춧가루는 있을거다. 왠만한 양념은 이 4가지 재료만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으니까! 뭐 여기다 요리를 조금 하는 사람이라면 설탕은 황설탕, 백설탕, 흑설탕 아니면 스테비아나 사카린 등 종류별로. 소금도 가는 소금, 굵은 소금. 간장도 국간장/양조간장에, 요리당도 올리고당이나 알룰로스 등등 종류별로!


그런의미에서 우리집엔 생각보다 기본양념이 종류별로 있으니, 난 나름대로 요리하는 사람 인증인가(나름대로 각종 볶음 요리 양념에 자신감 뿜뿜)?!




나름 만든 요리마다 완벽한 맛을 구현(?)해내다보니, 요리에 대한 자신감은 뿜뿜인데 참 이상하게도 재료 손질이나, 재료를 쉽게 써는 법은 하(ㅠㅠ).


이건 정말 아무리 봐도 요령을 익히지 못하면 답이 없다. 그런의미에서 내 칼질은 정말 겨우 손가락 안 써는 정도ㅋㅋㅋㅋㅋ. 그 외 요리하는 건 정말 자신만만인데!


칼질이나 재료손질은 역시...반복학습이 답인가? 하지만, 칼질 연습할 시간이 1도 없는 직장인의 삶이란. 나도 집에만 있으면 칼질 잘할 수 있는데, 하..




 귀찮음에도 불구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간편가정식」 답게, 각 요리별로 레시피는 단 4컷이다. 그러니까 한 페이지당, 요리 한 개씩이라는 이야기.


정말 이렇게 간단한 레시피는 라면봉지 뒷면이나, 카레봉지 뒷면 말고는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간단한 레시피로 음식이 탄생할 수 있는것인가?


.....싶어서, 요리 하나를 따라해보았다(그냥 배가 고팠음ㅋㅋㅋㅋㅋ). 때마침 재료들이 다 있었으므로! 그 이름하야, 여름 별미 “두부 콩국수”



책에는 필요한 재료로 흰콩 1컵, 물1컵+2컵, 면두부 2팩, 오이 약간, 소금 약간, 얼음 적당량을 이야기 했지만, 우리 집에 오이는 없으니 과감히 생략!

까르보나라를 해먹기 위한 면두부였는데, 뭐... 콩국수로 탄생해도 맛있을 것 같기도 하고 ♡



레시피에 따르면...

1. 흰콩을 물에 4시간 정도 불린뒤, 냄비에 콩을 넣고 비린내가 날아가도록 끓는 물에 3~4분 삶는다. 콩을 꼭 푹~~~ 삶는다.


2. 믹서에 콩과 물을 함께 넣고 아주 곱~~~~~~~~~~~게 갈아준다. 기호에 따라 콩물에 물을 조금더 추가하고 잠시 냉장보관!


3. 면두부는 물기를 뺀다.


4. 콩국과 면두부 합체! 맛있게 냠냠


그래서 4시간 동안 콩을 불려서, 끓는물에 푹 삶은 뒤, 믹서기를 이용하여 콩물 완성!

까르보나라를 만들어 먹으려 했던 면두부를 꺼내어, 물기 쪽 빼고(끓는 물에 살짝 데치고 ㅋㅋ) 콩물에 풍덩!

그리고 배치김치와 함께 맛있게 냠냠★ 



생각보다 콩국물이 많이 나와서, 남은 콩국물은 다음날에 은근슬쩍 콩비지찌개로 환생시켰는데. 오올,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맛나맛나. 이 레시피북 덕분에 콩국수&비지찌개 1타 2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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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남자들이여, 국가를 약하게 만드는 악습을 고치지 않으면 비록 오늘은 비단옷과 명주옷을 입고 있을지라도 내일은 등에 채찍이 내릴 것이다. 대한의 여자들이여, 사회를 부패하게 만드는 추한 행동을 버리지 않으면 비록 오늘은 얼굴에 분을 발랐어도 내일은 똥을 바를 것이다. - 안창호

바로 오늘부터 우리나라를 괴롭히는 강국과 전쟁을 시작해 국권을 회복할 것이다. 의아하게들 여길 것이다. 병력도 미약하고 군함과 대포도 부족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싸울 생각이냐고. 러일 전쟁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선전포고는 이삼 년 전의 일이나 개전 준비를 시작한 것은 38년 전이다. 일본은 개전을 준비한 지 38년 후에 결과를 얻었다. -안창호

1919년 전무후무한 세계적 회의가 열렸고 약소민족들에게도 권리를 준다는 말이 전해졌다. 이에 동경유학생들이 독립운동의 첫소리를 냈다. 도쿄에서 사관학교를 마치고 일본 육군 기병 제1연대 사관으로 재직하던 때였다. 꿈처럼 기쁜 중에도 불 보듯 뜨거워지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김경천

여름이 끝나가고 초가을이 다가온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군사행동을 하기 어려우니 어서 무기를 준비해 압록강 한 번 건너는 것이 소원이라고들 말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는 압록강은 고사하고 개천도 건너기 어렵다. -김경천

나는 평생을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에 바쳤다. 젊은이들은 그 정신을 잊지 말고 이어 가야할 의무가 있다. -이동휘

칼날보다 날카로운 삭풍이 나의 살을 벤다. 살은 깎여도 참을 수 있고 창자는 끊어져도 슬프지 않다. 내 발 내 집 빼앗은 것도 모자라 내 처자까지 넘겨다보니 차라리 머리를 잘릴지언정 무릎 꿇어 종이 되지는 않겠다. -이상룡

한국인들이 열망하는 건 단 두가지였다. 독립과 민주주의. 다른말로 바꾸어 쓰면 바로 자유.

자유를 모르는 이들에게 자유는 금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그 무엇! -김산

우리 혁명가들에게 나라가 넷이나 있다. 시베리아, 만주, 중국, 일본, 그러나 나라를 넷이나 가진 인간은 나라를 하나도 갖지 못한 인간보다도 훨씬 비참하다. 한국인들은 일본인, 중국인, 상하이의 영국인과 프랑스인 경찰, 심지어는 같은 한국인 경찰들에게도 합법적으로 체포된다.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는 보호받지 못한다. -김산

젊은이들은 서로 내가 먼저 죽으러 국내에 들어가겠다는 자세였다.

나가겠다는 사람을 모두 내보낼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 나중에는 제비를 뽑기도 했다.

먼저 죽으러 가겠다고 제비까지 뽑는다?

지금 사람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 김성숙(의열단)

의로운 일을 행하자. 의로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자. - 이종희(의열단)

내가 몸을 돌보는 방법은 오직 하나,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다. - 김시현(의열단)

한 번 죽기로 결심했으니 어찌 즐거운 마음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나석주(의열단)

우리가 반드시 강도 왜적을 섬멸하고 최후 목적을 이룰 날이 조만간 다가올 것이다. -윤세주(의열단)

나 홀로 적국에 들어와 사형을 선고받다니, 진실로 넘치는 영광이다. -김지섭(의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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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물처럼 소중하다. 없으면 대지는 메마르고 생명은 사멸한다. ‘지금’과 ‘여기’를 규정하는 존재가 역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시간이 흐른다. 그 시간 속에 기억이 추억이 되고, 추억은 역사가 된다. 역세는 세상을 규정한다. 나는, 역사다.

1555년 5월 21일, 비변사가 명종에게 보고했다. "왜인 평장친이 가지고 온 총통이 지극히 정교하고 제조한 화약 또한 맹력합니다. 당상의 직을 제수함이 어떻겠습니까?" (중략) 다음달 사간원이 명종에게 "총통을 주조해야 하는데 철재가 없으므로 버려둔 큰 종으로 총통을 주조하게 해 달라"고 건의했다. 그때 남대문과 동대문 문루에는 만들어놓고 설치하지 않은 종이 뒹굴고 있었다. (중략) "이미 철재를 사들이도록 했으므로 윤허하지 않는다." 사간원이 "철재를 시장에서 사들이게 하니 원망과 한탄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해도 듣지 않고 비변사와 홍문관까지 철포 제작허가를 청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명종은 이렇게 답했다. "어진 장수가 있어 잘 조치한다면 적들이 멋대로 날뛰지는 못할 일이다." (중략) 이에 세 정승이 "조선이 가지고 있는 중화기 천자총통, 지자총통 또한 잡철로는 만들 수 없다"고 거들었다. 명종이 딱 부러지게 답했다. "오래된 물건은 신령스러우니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물건을 부수어서 쓰는 것은 옳지 못하다." 스스로 억지임을 알았는지, 명종은 "이 말은 삭제함이 옳겠다"고 사관에게 일렀다. 사관 또한 어이가 없었는지 ‘삭제함이 옳겠다’는 말까지 실록에 기록해버렸다. - P51

다른 나라 군주 명을 받아 공자와 주자가 일본을 공격해온다면 내가 먼저 나서서 철포를 들고 공자와 주자의 목을 쳐 깨뜨리리라 - P144

1550년 11월 흠경각 수리공사가 있었다. 물을 받는 그릇 하나가 문제였다. 관상감 책임자 이기가 공사를 마치고 명종에게 보고했다. "(이 그릇은) 옛날 성인들이 권계하던 기구이니 언제나 옆에 두고 물을 부으며 살피고 반성하는 것이 좋겠나이다." 명종은 "그리 하겠다"라고 답했다. 때는 7년 전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을 소수서원이라고 사액한 지 8개월 뒤였ㄷ. 물그릇에 빗물이 고이듯, 어느 틈에 실용을 목적으로 만든 기계가 ‘덕목 수행’용으로 변경이 된 것이다. - P83

"조선인은 전 세계에 나라가 12개 뿐이라고 생각한다. 옛 기록에 나라가 8만 4000개라고 적혀 있지만 태양이 한나절 동안 그렇게 많은 나라를 다 비출 수 없기 때문에 지어낸 얘기라고들 했다." - P125

"선왕(중국 요/순 임금)의 옳은 말씀이 아니면 노자, 석가, 제자백가가 모조로 이단이다." - P189

정부에 복귀한 지도자들은 영국에서 취한 산업과 미국에서 취한 언론과 스위스의 교육과 독일의 법률을 그대로 정책에 적용했다. 영국에서는 광업을 배웠다. 산업혁명 기초가 석탄과 철에 있음을 이들은 깨달았다. (중략) 그리고 이들이 찾아낸 서양 근대화의 힘은 교육이었다. 사절단이 정치 및 경제 분야 이외에 관심을 기울인 분야닌 교육 부문이었다. - P265

이홍장이 물었다. "왜 귀국은 서양옷을 입는가."

모리가 대답했다. "옛날 옷은 놀기에 좋았지만 열심히 일하는 데는 절대 맞지 않는다. 우리는 가난하고 싶지 않다. 부자기 되기 위해 옛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했다."

이홍장이 반격했다. "의복 제도는 조상에 대한 존중 표시다. 만세 후대에 이어야 한다."

모리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조상이 살아 있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천 년 전 조상들은 중국 옷이 당시 일본 옷보다 우월해서 중국 옷을 택했다. 남의 나라 장점이 보이면 일본은 어떻게든 배워서 따라한다. 그게 일본의 미풍양속이다." - P287

개방과 교류, 다양성과 대중의 각성. 이 네 가지 단어에 임하는 지도자의 자세가 한 나라 백성을 고난으로 이끌었고 한 나라 백성을 부강한 나라로 이끌었다. 유럽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게 서기 1543년에 벌어진 세가지 사건과 21세기 대한민국을 연결하는 ‘징비’의 열쇠다.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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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에게 오키나와는 또 다른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은 전쟁의 피해자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말이다. 지들이 일으킨 전쟁인데!!! 오키나와 전투 당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 당연히 “일본이 피해자다”라고 생각하는거다. 물론 오키나와 한 섬만 봤을 때는 전쟁의 피해지역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죽었던 수 많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누구 손에 죽었나?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체 가해자는 대체 누구인가? 싶은거다. 학살당한 수 많은 오키나와인이 일본군인 손에 강제 자살당했다. ‘미군에게 잡히는 수치를 당하느니, 그냥 죽어라’ 라는 미명하에. 일본은 그 점을 묵살하고 있다. 오로지 오키나와의 ‘전쟁의 피해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원폭을 맞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와 함께.

류큐 왕국의 신화는 역사적 장르다. 이 말은, 신화가 역사의 문학적 서술이라는 뜻은 아니다. ‘아마미쿠가 천상에서 오키나와에서 내려왔다라는 신화를, 문화적으로 발전된 곳에서 오키나와로 도래한 이주자 집단이 있었다라는 역사로 읽을 수 있다는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 류큐 신화가 역사적 장르인 까닭은 역사 속에서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여러 집단의 사유, 여러 집단의 사고방식이 류큐 신화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류큐 왕국에는 다양한 집단과 그 집단이 상상해낸 다양한 신화적 우주가 자리하고 있있고, 그 우주가 다른 우주와 대면할 때 발생하는 우주의 조정은 신화라는 서사 방식으로 출현하곤 했다. 반복하건대, 류큐의 신화가 역사적 장르인 까닭은, 그 신화가 현실과의 부단한 작용 속에서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라는 데 있다.

신화의 문자화, 다시 말해 사유나 관념, 상징으로 향유되는 신화가 이야기의 형태로 기록될 때, 그것은 신화를 즉정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재편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다는 신화 일반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 P175

조선과 거의 겹치는 역사적 시간위에 존재했던 류큐왕국은 동아시아 책봉-조공 체제의 일원이었고 동아시아 문명권의 공통적 문화기반이었던 유교와 불교, 한자문화를 공유했다. 동아시아 중세 왕조 국가로서의 일반적 특성을 지닌 듯 보이지만, 왕국을 지배한 류큐 왕권의 주요 기조 가운데 하나는 고유의 신화적 논리였다. - P19

조선과 거의 겹치는 역사적 시간위에 존재했던 류큐왕국은 동아시아 책봉-조공 체제의 일원이었고 동아시아 문명권의 공통적 문화기반이었던 유교와 불교, 한자문화를 공유했다. 동아시아 중세 왕조 국가로서의 일반적 특성을 지닌 듯 보이지만, 왕국을 지배한 류큐 왕권의 주요 기조 가운데 하나는 고유의 신화적 논리였다. - P178

류큐 라는 역사를 지닌 채 일본의 일부가 된 오키나와는 일개 지방이 아니라 제국 일본의 내부 식민지 였다. - P26

하지만 ‘평화의 나라’로 환기되곤 하는 류큐도 실제가 아닌 이미지에 가깝다. 류큐 왕국 역시 여느 왕국처럼 투쟁과 정복 위에 세워진 국가였고, 왕권을 둘러싼 피의 쟁투와 그로 인한 왕통의 변화도 겪었다. ‘평화왕국 류큐’라는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낸 오키나와 전투의 경험, 제국 일본의 패전 이후 실시된 미군정, 섬 곳곳에 설치된 미군 기지로 인해 상존해온 전쟁에 대한 공포 등 평화롭지 않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빚어낸 또 하나의 허상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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