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에게 오키나와는 또 다른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은 전쟁의 피해자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말이다. 지들이 일으킨 전쟁인데!!! 오키나와 전투 당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 당연히 “일본이 피해자다”라고 생각하는거다. 물론 오키나와 한 섬만 봤을 때는 전쟁의 피해지역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죽었던 수 많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누구 손에 죽었나?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체 가해자는 대체 누구인가? 싶은거다. 학살당한 수 많은 오키나와인이 일본군인 손에 강제 자살당했다. ‘미군에게 잡히는 수치를 당하느니, 그냥 죽어라’ 라는 미명하에. 일본은 그 점을 묵살하고 있다. 오로지 오키나와의 ‘전쟁의 피해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원폭을 맞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와 함께.

류큐 왕국의 신화는 역사적 장르다. 이 말은, 신화가 역사의 문학적 서술이라는 뜻은 아니다. ‘아마미쿠가 천상에서 오키나와에서 내려왔다라는 신화를, 문화적으로 발전된 곳에서 오키나와로 도래한 이주자 집단이 있었다라는 역사로 읽을 수 있다는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 류큐 신화가 역사적 장르인 까닭은 역사 속에서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여러 집단의 사유, 여러 집단의 사고방식이 류큐 신화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류큐 왕국에는 다양한 집단과 그 집단이 상상해낸 다양한 신화적 우주가 자리하고 있있고, 그 우주가 다른 우주와 대면할 때 발생하는 우주의 조정은 신화라는 서사 방식으로 출현하곤 했다. 반복하건대, 류큐의 신화가 역사적 장르인 까닭은, 그 신화가 현실과의 부단한 작용 속에서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라는 데 있다.

신화의 문자화, 다시 말해 사유나 관념, 상징으로 향유되는 신화가 이야기의 형태로 기록될 때, 그것은 신화를 즉정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재편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다는 신화 일반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 P175

조선과 거의 겹치는 역사적 시간위에 존재했던 류큐왕국은 동아시아 책봉-조공 체제의 일원이었고 동아시아 문명권의 공통적 문화기반이었던 유교와 불교, 한자문화를 공유했다. 동아시아 중세 왕조 국가로서의 일반적 특성을 지닌 듯 보이지만, 왕국을 지배한 류큐 왕권의 주요 기조 가운데 하나는 고유의 신화적 논리였다. - P19

조선과 거의 겹치는 역사적 시간위에 존재했던 류큐왕국은 동아시아 책봉-조공 체제의 일원이었고 동아시아 문명권의 공통적 문화기반이었던 유교와 불교, 한자문화를 공유했다. 동아시아 중세 왕조 국가로서의 일반적 특성을 지닌 듯 보이지만, 왕국을 지배한 류큐 왕권의 주요 기조 가운데 하나는 고유의 신화적 논리였다. - P178

류큐 라는 역사를 지닌 채 일본의 일부가 된 오키나와는 일개 지방이 아니라 제국 일본의 내부 식민지 였다. - P26

하지만 ‘평화의 나라’로 환기되곤 하는 류큐도 실제가 아닌 이미지에 가깝다. 류큐 왕국 역시 여느 왕국처럼 투쟁과 정복 위에 세워진 국가였고, 왕권을 둘러싼 피의 쟁투와 그로 인한 왕통의 변화도 겪었다. ‘평화왕국 류큐’라는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낸 오키나와 전투의 경험, 제국 일본의 패전 이후 실시된 미군정, 섬 곳곳에 설치된 미군 기지로 인해 상존해온 전쟁에 대한 공포 등 평화롭지 않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빚어낸 또 하나의 허상이다. - P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