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도쿄 깊숙이 일본 1
진나이 히데노부 지음, 안천 옮김 / 효형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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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여행으로 자주 방문했던 곳이다. 관광객들이 즐겨가는 도쿄 시가지 뿐만 아니라, 외곽도시까지 포함해서. 내 여행 목적은 주로 답사가 많았기에, 교통편을 이용하기보단 걸어다니는 일이 많았다. 도쿄에서 걷다보면 자연스레 만나는게 있으니 바로 마을 주변을 흐르고 있는 인공 수로다. 우리나라처럼 더러운 수로가 아니라, 정말 깨끗한 물이 흐르는 수로. 도쿄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내 발길이 닿는 곳곳에는 언제나 깨끗한 물이 흐르는 수로가 있었다. 그때 알았다. ‘아, 일본이라는 나라는 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생각해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섬나라인 일본은 ‘식수’ 확보가 정말 중요하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주변이 바다이니, 물을 쉽게 구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이 사용하는 물은 ‘담수’, 즉 염분이 없는 물이다. 염분이 기본값인 바닷물은 절대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바닷물을 쉽게 구할 수 있을 지언정, ‘담수’를 구할 수 없다면 그 곳에서는 사람이 절대로 살 수 없다. 물론 바닷물을 담수화 시키면 사용할 수도 있지만, 아직 그런 기술이 상용화 되어있지 않을뿐더러, 있는 기술마저도 적용하는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인간이 담수를 구하는 방법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강(+개천, 저수지 등)’, 하늘에서 내리는 ‘비’ 밖에 없다. 그래서 인류의 터전은 언제나 강변 주변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일본을 떠나 모든 나라가 동일하다.


일본은 그냥 섬나라가 아닌, 화산 섬나라다. 일반적인 ‘산’보단 ‘화산’의 비중이 월등이 높다. 그래서 더더욱 물을 구하는데 진심이었다. 얼마나 진심이었냐면, 고대 일본은 수로, 제방, 토목 공사 기술을 가지고 있는 한반도 도래인이 하타씨를 중용했을까. 


각설하고! 그만큼 일본에게 ‘물’은 중요했다. 


이 책 『물의 도시 도쿄』 은 일본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물’과 명실공히 일본의 수도 ‘도쿄’를 엮었다. 정확히는 도쿄라는 공간에서, 그 공간을 흐르는 강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게 도쿄와 강변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역사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난 역사책이다. 




물의 도시’의 상징, 도쿄 스미다강



스미다강은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과거에는 일본 전통극인 ‘노’와 ‘가부키’, ‘닌교조루리’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와세다-게이오 조정 경기, 스미다강 불꽃놀이 등 도쿄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스미다강변 주변에 센소지를 시작으로 스모의 중심지인 료고쿠 국기관, 에도도쿄박물관, 도쿄 스카이트리 등이 즐비해 있다. 이로인해 도쿄 시민 뿐만 아니라 해외관광객까지도 스미다강을 찾는 이가 해마다 늘어났다. 지금은 명실상부 도쿄 핫플레이스 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스미다강이 도쿄 중심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심지에서 벗어난 스미다강이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우메와카키가 이어져 왔다는 점이다. 그 무대인 모쿠보지 사원은 큰 의미가 있어 쓰루오카 로스이의 <동도 스미다강 양안 알람>에도 묘사되어 있다. 센소지 사원에서 약간 북동쪽에 있는 마쓰치산도 중요한 곳으로, 작은 언덕이 성지로 여겨진다. 595년에 용이 나타나 이곳이 신성한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센소지 사원은 7세기 전반에 스미다강에서 낚시하던 형제의 그물에 관음상이 걸려, 강에서 건져 올린 그 관음상을 모신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p 026



스미다강은 에도가 도시로서 발전해 가는데 꼭 필요한 오랜 역사의 뿌리가 되는 문화적 정체성을 낳는 장소, 즉 에도에서 정신문화의 원류라는 의미를 지녔다. 에도보다 기원이 훨씬 오래되며, 사람들의 의식 구조와 연관이 있는 종교 시설이 많고, 에도가 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주변부의 성격을 띠게 된 덕택에 자연의 풍요로움이 보전되었다. 이로 인해 스미다강은 일본인이 선호하는 독특한 개방감 넘치는 곳이 되었고, 신앙과 유희의 요소가 맞물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p 029



그렇다. 도쿄 중심부에서 벗어난 스미다강은 아주 오래전, 에도 시민들의 ‘정신적 중심지’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에도가 권력의 축으로 성장하기 전에는 에도의 중심부랄게 없었다. 그러다 도쿠가와 가문이 에도를 발전시키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에도의 중심부가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스미다강을 사랑한 거주민들은 끝까지 스미다강을 향한 애정을 지켰다. 그리하여 발전한 에도/도쿄 중심부에 있는 니혼바시강은 그저 물류, 경제와 관련된 ‘실체적’인 문화가 발달한 반면, 스미다강은 에도/도쿄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정신적’인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도쿄의 역사는, 17세기 무렵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에도가 역사의 전면으로 나온 시기가 도쿠가와가 에도 발전을 꾀한 17세기 부터이지 어찌보면 맞는말이긴 하다.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도쿠가와가 에도로 들어가기 전에도, 에도는 사람이 사는 땅이었다. 7세기에 창건된 센소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9세기에는 스미다강을 건너는 사람이 늘어나 선박을 증편했다는 태정관부 기록도 있다. 심지어 7세기 이전에는 거슬러가면, 스미다강을 포함한 도쿄 일대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자리잡은 터전이기도 하다. 에도는 도쿠가와가 개발하기 이전부터, 고대부터 시작되는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인 것이다.



에도라는 도시에서는 권력의 상징(에도성)과 큰 강(스미다강)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이 선착장에 다다르면 막번 체체하의 도시였음에도 일상의 여러 속박에서 벗어나 물가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축제와 행사를 즐기고, 세속적인 놀이를 경험할 수도 있었다. 스미다강 중상류 유역의 에코인이나 센소지를 비롯한 사원에 참배하러 간다는 구실도 있었다. 이처럼 에도는 스미다강 건너 보쿠토 지역 또는 스미다강을 거슬러 올라 더 깊숙이 들어가는 원심력이 작용하는 도시였던 것이다. p 042



도쿄 스카이트리가 스미다 강변 동쪽에 지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전망이다. 스카이트리에서 내려다보는 도쿄 전망은 이 백 년전 구와가타 게이사이가 그린 에도 조감도와 놀랍도록 일치한다. 구와가타 게이사이가 그린 에도 조감도는 스미다강 동쪽 고지대에서 서쪽 에도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형태로 그렸다. 이는 에도 조감도의 원형이 되어, 후대 화가들이 계승하여 동일 각도의 에도 조감도가 계속해서 그려졌다. 즉 도쿄 스카이트리에서 내려다보는 도쿄 전망은, 이 백 년전 에도 사람들이 보던 에도와 같다. 게이사이가 그린 에도 조감도부터 후대 화가들이 계승하여 그린 조감도, 그리고 현재 도쿄 스카이트리에서 내려다보는 전망. 그야말로 같은 공간에 이 백 년 차이를 둔 에도와 도쿄가 공존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나라 현립 미술관이 소장한 <아사쿠사 요시와라 그림 두루마리>는 스미다강의 역할과 의미를 상징하는 매우 흥미로운 회화 사료다. (중략…) ‘물의 도시’의 다양한 상징, 스미다강변의 지리적 특성, 그리고 ‘깊숙함’을 품은 에도 특유의 도시 공간이 여기 모두 표현되어 있다. 정치 권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도시 창건 전설과 신화가 저변에 있는 스미다강 상류, 이 주변이ㅡ 센소지 사원과 마쓰치산, 나아가 ‘주변의 나쁜 곳’이라고도 불리는 신요시와라가 에도 도시 공간 안쪽에 자리해 사람들을 매료하는 독특한 구조를 이 두루마리는 보여준다. p 054



에도도쿄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 스미다강. 늘 반짝이는 스미다강, 그 이변에는 무거운 그림자도 있다. 에도도쿄 시민들은 이미 잊어버린 그림자. 하지만 우리는 꼭 기억해야할 그림자. 바로 ‘관동대학살’이다. 스미다강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관동대학살’이라는 단어는 너무 뜬금없는 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살짝 이야기해보자면.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 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관동 지역에 속한 에도는 지진으로 집이 무너졌다. 하필 지진이 일어난 시간이 점심시간이라 불을 사용한 집이 많았다.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밥 짓던 아궁이 불이 무너진 자재들에 옮겨붙으며 대형 화재가 일어났다. 에도에 있는 집은 대게 나무집이었기 때문에, 에도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믿기지 못할 재난에 에도인은 분노했다. 그 분노를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했다. 바로 조선인 학살이다. 한국인이라면 절대 잊어선 안될 ‘관동대학살’이 시작이다. 그렇게 학살된 조선인 시체는 스미다강에 버려졌다. 당시 스미다강물이 빨갛게 변했다고 할 정도니, 얼마나 많은 조선인의 피가 스미다강에 흘러들어갔는지는 말해 무엇할까. 



슬프지만 이 책 『물의 도시 도쿄』에는 이런 내용은 없다. 대신 관동대지진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수질 오염된 스미다강, 고도 성장기에 요정가가 즐비해 있던 스미다강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저자는 스미다강 역사를 이야기했지만, 그 역사는 일본인 저자에게 선택된 역사였다. 이 사실이 이토록 씁쓸한 이유는 내가 조선의 후예이기에 그런걸까. 아니면 저자가 한국과 교류가 깊은 일본인이기에, 혹시나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서 그런걸까. 



이런 씁쓸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 『물의 도시 도쿄』은 역사책으로, 인문학책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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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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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판에 눈이 내린다. 그 곳엔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져 있다. 마치 엉크린 사람들 같다. 그 뒤로 봉분들이 즐비하다. 검은 통나무는 묘비인가. 어느 순간부터 바닥에 물이 차기 시작한다.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은 바다였다. 물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내어 말했다. ‘왜 이런 데다 무덤을 쓴거야?’ 무덤이 모두 바다에 쓸려가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한다. 그리고 꿈에서 깬다. 



소설은 경하의 꿈 이야기로 시작한다. 5월의 광주를 소재로 소설을 쓴 이후에 시작된 꿈이었다. 길몽은 아니다. 악몽이라고 치부하기엔 무언가 찝찝하다. 아마도 경하의 꿈은 살아남은 자가 느끼는 죄책감,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미안함, 국가에 대한 분노 등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무의식중에 발현된게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꿈은 경하만의 꿈이 아닌, 제 2의 경하, 제 3의 경하가 꾸었을 꿈이기도 하다. 어쩌면 5월의 광주를 소재로 소설을 썼던, 한강 작가가 꾸었을 꿈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5월의 광주에 메여있던 한강 작가가 제주 4.3에 눈길을 돌린 건 필연이었다. 그리하여 한강 작가는 제주 4.3을 주제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했다. 다만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지극한 사랑이야기’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자의 말이 이해가 갔다. 이 책 저변에는 정말 사랑이 깔려있었다. 진짜로 지극한 사랑이야기가. 그렇다. 이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은 증언문학이기 이전에, 정말 지극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소설이었다.


소설 속 인물인 경하도 작가처럼 제주 4.3에 다가섰다. 인선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인선, 그녀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인선은 자신을 향한 부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의 뜻모를 고통과 슬픔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부모의 감정이 자신에게 옮겨지는게 두려웠다. 그래서 인선은 제주를 떠났다. 그렇게 육지에서 인선은 경하와 만났고 친해졌다. 경하는 인선에게 꿈 이야기를 했고, 자신의 꿈을 영상으로 만들기로 했다. 인선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각박한 현실을 살아내느라 경하와 인선은 잠시 멀어져있었다. 그 사이에 인선은 다시 제주로 돌아갔다. 자신이 업으로 삼던 일조차 뒤로한채.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겨울, 경하는 인선의 연락을 받았다. 병원으로 와달라는 연락을. 그렇게 경하는 인선을 찾아 병원으로 갔고, 인선의 요청으로 제주로 내려갔다. 눈이 세차게 내리던 겨울 날에. 그날 경하는 마주하고야 말았다. 제주에서 벌어졌던 참극과, 그 참극으로 인해 무너져내렸던 인선의 가족사를. 



인선의 엄마는 한날 한시에 부모와 동생을 잃었다. 겹겹이 쌓인 시신들 사이에서 부모 시신을 찾겠다고, 시신에 쌓인 눈을 쓸어 내리는 열 일곱 살 언니 옆에 붙어서, 열 세살 동생은 시신들 얼굴을 확인했다. 부모 시신은 찾았으나, 동생은 보이지 않아서 불타 무너져 내린 집으로 돌아갔다. 그 곳에서 숨만 붙어있던 동생을 발견했다. 동생이 살아나길 바라며,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동생 입에 물렸다. 그저 살아나기만을 바랐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생사확인이 안된 오빠를 찾고자 노력했다. 오빠가 주정공장에 갖혀있었단 사실을 알았고, 잠시나마 오빠를 만났다. 하지만 오빠는 대구로 이감되었다. 그렇게 인선 엄마의 오빠, 인선의 외삼촌은 영영 실종상태다.



인선의 아빠는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한 예비검속(보도연맹)을 피하기 위해 낮에는 산에 숨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주민 명부에 있는 사람이 집에 없다는 이유로, 남은 가족들이 군경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렇게 인선의 할아버지가 죽었다. 인선의 아빠도 결국은 예비검속으로 끌려갔다.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러다 대구로 이감되었다. 대구로 이감된 대다수의 재소자들은 학살되었지만, 형기가 길었던 인선의 아빠는 살아남았다.



오빠를 찾던 인선의 엄마는, 그렇게 인선의 아빠와 만났다. 오빠 소식을 듣기 위해. 그렇게 몇 년 후 그들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 인선이다. 인선이 그렇게나 도망치고 싶었던, 인선이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의 행동과 감정. 인선은 성인이 되어, 어머니가 성치 않아 돌보기 위해 제주로 돌아오고 나서야 알았다. 자신의 부모가 그런 행동을 보인건, 자신을 진정 사랑해서였노라고. 다만, 인선을 사랑하는 부모가 어린날 겪었던 참극이 그러한 사랑의 형태를 만들어 냈을 뿐이라고. 그렇게 벗어나고자 했던 인선 또한, 부모를 사랑했기에, 부모의 사랑을 알았기에, 그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뿐이라고.



집담과 밭담들, 돌로 된 집들의 벽체들만 남기고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어. 아버지가 집에 들어서자 마당 가득 붉은 게 흩어져 있어서 놀랐는데, 달아오른 고추장 장독이 터진거였어. 집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총소리가 들렸던 팽나무 아래로 달려가보니 일곱 명이 죽어 있었대. 그중 한 사람이 할아버지였어. 가호마다 주민 명부를 대조한 군인들이, 집에 없는 남자는 무장대에 들어간 걸로 간주하고 남은 가족을 대살한 거야. p 218


젖먹이 아기도? 절멸이 목적이었으니까.

무엇을 절멸해? 빨갱이들을. p 220


당숙네에서 내준 옷으로 갈아입힌 동생이 앓는 소리 없이 숨만 쉬고 있는데, 바로 곁에 누워서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p 251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했어. 허깨비. 살아서 이미 유령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 삼 년 동안 대구 실종 재소자 제주 유족회가 정기적으로 그 광산을 방문했다는 걸 나는 몰랐어. 엄마가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p 288


잠들어 던 내 입에 손가락을 물리고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엄마는 아이처럼 울었어. 짜고 끈끈한 그 손가락을 억지로 빼내지 못하고 나는 견뎠어. 장사처럼 힘이 세진 엄마가 숨을 못쉬도록 나를  껴안을 때는 다른 길이 없어서 마주 껴안았어. 엄마는 나를 죽어가는 동생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어. 언니라고 믿을 때가 더 많았고. 어떨 때는 낯선 사람으로 여겼어. 자신을 구하러 온 모르는 어른. 무서운 악력으로 내 손목을 붙잡고 엄마는 말했어. 구해줍서. p 312







이 책은 분명 소설이다. 하지만 책 속 인선의 가족들이 겪었던 일들은, 1947년 4월 제주도민이 겪었던 일들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소설이지만 실화다. 제주 4.3은 국가의 주도하에 일어난 국민 학살극이었고, 국가의 주도하에 잊혀져야 했다. 그렇게 군사정권이 끝나고, 민간인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 제주 4.3는 언급할 수 없었다.


난 제주도를 갈때마다 4.3유적지를 찾아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학살된 북촌, 터진목, 광치기해변, 성산일출봉, 서우봉, 종남밭, 당오름, 섯알오름, 화북동 등.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 곳에서 죽어간 그들을 추모했다. 내가 제주 4.3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소설 속 경하가 꿈을 꿨듯,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모르고 살았던 미안함, 국가에 대한 분노 등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연장선상에서 블로그에도 제주 4.3과 관련된 글을 자주 올렸다. 그래서 누군가 제주 4.3이 왜 일어났냐고 물어본다면, 당장이라도 대답할 수 있을 정도다. 제주 4.3의 배경과 도화선, 국군과 미군정의 제주도 초토화 계획, 제주도민을 학살하기 위한 국군과 미군정의 사기극까지. 그 뿐만인가? 한국전쟁 당시 제주에서 자원입대자가 많았던 이유가, 빨갱이라는 굴레를 벗기 위해서라는 것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는 여전히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다. 그저 제주 4.3이다. 제주4.3 평화공원기념관에 있는 백비에 비문이 새겨질 날이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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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기는 연결되어 있다
조현철 지음 / 파람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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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사는 인간은, 아니 모든 생명체는 현재 생존에 빨간불이 켜졌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가 시작했다. 더운 나라에는 폭설이, 추운 나라에서 폭염이 일어났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선 계절 구분이 희미해졌다. 더운 계절은 폭염이 지속되었고, 추운 계절에는 혹한의 날씨가 지속된다. 기후재난이 시작된 것이다.


다들 ‘기후위기’라고 말한다. ‘탄소중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말 쉽게 말한다. 쉽게 말한 것 치고는, 이를 이겨낼 해결 방안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전 인류가 해결 방안을 알고는 있다. 머리로 알고 있지만, 몸으로 실행하지 않을 뿐이다. 이를 실행하는 순간 인간은 지금까지 누려왔던 ‘편리함’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편리함’을 놓고 싶지 않은 인간의 이기심. 이런 이기심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지구상에서 살아남는게 더이상 당연한게 아닌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문제는 ‘생존게임’이 인간에 한정된게 아닌,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대상이라는 점이다.


인간이 만든 기후위기. 그 업보를 지녀야할 대상은 인간이어야 함이 마땅한데,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나눠지게 되었다. 


이 인문학책 『모든 위기는 연결되어 있다』는 기후위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인간을, 기후위기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파괴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적한다. 기후위기는 비단 환경 문제가 하나만이 아니라고. 기후위기는 노동의 위기,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위기 등 사회 전반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자본주의는 언제나 ‘최대화의 원칙’으로 자연에 개입해왔다. 자본은 더 큰 이윤을 얻으려고 자연에서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추출하며 배타적 자기 증식을 거듭한다. 하지만 힘이 아무리 커도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일부다. 자연의 질서를 무시한 채, 할 수 있다고 무엇이든 다 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당장은 이익이 될지 몰라도 결국은 탈이 난다. 기후를 비롯한 오늘의 총체적 위기가 잘 보여준다. 오늘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자발적 자기 제한의 겸손과 지혜가 필요한다. 이제라도 비인간 생물과 공존하는 쪽으로 생각과 행동을 바꿔야 한다. p 047



나는 쇼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_미국 예술가 ‘바버라 크루거’


미국의 시인이나 농부 웬델 베리는 소비주의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직접 “찾아내거나 만들거나 기르기보다는 사는 게 낫다고 여기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소비주의가 강해질수록 직접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만들고 길러내는 능력은 줄고, 사서 쓰고 버리는 소비 과정은 확대 재생산된다. 삶이 상품 소비에 잠식될수록 우리는 사서 쓰고 버리는 데 길든다.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소비자가 된다. 소비자는 결국 ‘쓰레기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p 024


21세기, 모든 게 연결되어 있는 시대다. 한마디로 말해 ‘초연결 사회’다. 덕분에 우리가 사는 지금은 그 어떤 시대보다 역대급으로 ‘편리’한 삶을 영유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터치 또는 클릭 한 번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쉽게’ 살 수 있다. 옛날처럼 물건 하나를 구하는데 오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원하는 제품군을 모아서 가격까지 비교해주는 쇼핑몰, 터치 또는 클릭 한 번이면 구입 끝! 다음 날이면 집 앞에 내가 구매한 물건이 도착한다. 이처럼 원하는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시대가 또 있었을까. 동, 서양을 막론하고 역대 모든 전제군주들 조차도 원하는 것을 바로 이렇게 바로 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초연결은 이렇듯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는 사회로 이끌었다. ‘쉽게’ 구할 수 있자, 사람들은 ‘쉽게’ 버리기 시작했다. 왜? 원하면 언제든, 다시 구매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 우리에게 편리함을 준 ‘초연결’ 사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쓰레기’라는 무서운 그림자를 숨기고 있었다. 쓰레기가 된 물건들. 우리는 그저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하지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것들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 쓰레기들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 누구도 쓰레기의 종착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라는 전인류적인 비상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올 여름이 당신 생애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다


이번 더위는 언제 수그러들지에 관심이 크다. ‘지금 당장’을 견디기도 힘든데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에 눈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 지 몇 년 전 일본 정부는 에어컨을 최대한 사용하는 것을 폭염 대책으로 내놓았다. 올여름에 우리 정부도 폭염은 상시적인 자연재난이고 냉방기기 사용은 국민의 기본적 복지라며, 에어컨 사용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고 전기 요금 누진에 완화 방안을 마련한다고 한다. p 049



에어컨. 여름에 없어서는 안되는 인류 최대의 발명품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캐리어 아저씨에게 감사해요’라는 말이 여름마다 나오기도 한다. 에어컨을 키게 되면, 당장 나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에어컨의 이면을 보자. 에어컨과 같은 공간에 있는 나는 시원하지만, 에어컨 가동열이 배출되는 실외기가 있는 공간은 덥다. 폭염 그자체다. 쉽게 말하면 에어컨은 A라는 공간에 있는 열을 흡수하여 시원하게 해주지만, 그 흡수한 열을 B라는 공간에 배출하는 것이다. 에어컨이 열을 배출하는 공간은 당연히 바깥, 외부다. 그 열을 흡수하는 것은 지구다. 결국 에어컨을 키면 그 공간은 시원해지지만, 에어컨 열을 흡수하는 지구 전체적으로는 더 뜨거워지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또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폭염 대비에 대한 불평등 이다.에어컨의 냉방혜택은 에어컨을 소유한 사람만 누릴 수 있다. 에어컨이 없는 가정은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에어컨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에어컨을 사용하며 폭염에 일조하고, 에어컨이 없는 사람들은 그 폭염에 노출되어 더 많은 피해를 본다. 폭염에 노출된 사람들은 심할 경우 온열질환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잊지 말자. 올 여름 맞이한 폭염은, 작년 여름 내가 켰던 에어컨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 폭염으로 인해 가깝게는 우리나라에, 멀게는 지구 반대편에서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나부터 시작하자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기술과 설비의 ‘절대 안전’은 모순이다. 원인이 실수든 재해든 사고는 일어나는 법이다. 이에 반해, 온실가스의 최대 배출원인 석탄화력발전소 공사 ‘중단’이나 정치적으로 밀어붙인 가덕도나 새만큼 공항 건설 계획 ‘포기’는 안전 문제가 전혀 없을뿐더러 당장 효과가 있는 확실한 탄소 감축 방안이다. 지난 해 2월 영국 법원은 런던 히스로공항 제3활주로 건설계획이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감축 의무를 위반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지난 2월 프랑스는 기후변화 대응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5월 기차로 2시간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의 항공기 운항 금지를 포함한 ‘기후와 복원 법안’을 통과시켰다. 저들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할지’ 골몰한다. p 058


기후, 자본, 노동, 정책, 불평등 거창한건 다 모르겠고,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시작하자. 소비부터 줄여보자. 편리함을 쫓던 이기심을 버리고,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자.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에코프랜들리’한, 매우 친환경적인 소비자라는 사람들. 대표적인 사례가 텀블러와 에코백이다. 과연 텀블러와 에코백이 친환경적일까? 환경오염의 지표로 ‘탄소발자국’이라는 게 있다. 어떤 제품의 생산부터 시작해서 소비자에게까지 도달하는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말한다. 텀블러와 에코백은 탄소발자국이 높은 제품 중 하나다. 우리가 그렇게 사용을 지양하던 일회용 종이컵과 일회용 비닐봉지보다 매우 높은 탄소발자국을 가지고 있다.


텀블러의 탄소발자국은 일회용종이컵보다 월등히 높다. 심지어 텀블러는 버릴 때 분리수거가 어렵기에, 그대로 지구를 오염시키는 쓰레기가 된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고 환경을 위해 텀블러를 쓰고자 한다면 적어도 하나의 텀블러를 1일 1회, 최소 6개월 이상을 사용해야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회용 종이컵은 사용하지 않아야한다. 이정도를 사용해야 텀블러 탄소발자국 수치가, 일회용 종이컵 1회 사용한 것과 비슷해진다. 에코백도 그렇다. 동일한 에코백을 비닐봉지 대신 최소 130회 이상을 사용해야, 일회용 비닐봉지 1회 사용한 것과 같아진다. 



이 사실을 알고난 뒤 나는 텀블러와 에코백을 직접 산 적이 단연코 없다. 사은품으로 받은 텀블러와 에코백은 주변에 사용하라고 나눠준다. 심지어 지금 출퇴근 가방으로 사용하는 에코백은 벌써 8년째 사용중이다.


머리로만 알고 있는 기후위기 해결방안.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만 것 부터 실천하기를 바란다. 소비를 지양하고 편리함을 조금 내려놓기만 해도 좋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성찰하여,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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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세계사 - 세계를 뒤흔든 결정적 365장면 속으로!
썬킴 지음 / 블랙피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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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스토리텔러 썬킴 교수님의 신간이 나왔다. 한 때 스브스 러브에펨 쳐돌이를 하며, 라디오를 들을 적 《허지웅쇼 - 히스토리 월드》 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고 들었던 나다. 오죽하면 《허지웅 쇼》가 끝난 뒤에는, ‘히스토리 월드’ 만큼은 팟캐스트로 무한 정주행을 했다. 원래 역사더쿠였던 나였지만, 히스토리 월드에서 정말 맛깔나게(?) 이야기해주는 썬킴 교수님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죽하면! 썬킴 교수님이 말하는 세계사를 듣다보면 분명 아는 이야기인데, 왜이렇게 처음 듣는 이야기(?) 같은지!! 들어도 들어도 새롭기 그지 없었다.



각설하고! 그런 썬킴 교수님의 세계사책 신간을 소개한다. 제목은 『그날의 세계사』. 정말...진짜.. 제목 그대로 그날의 세계사다ㅋㅋㅋ. 아니 교수님, 어쩜 이렇게 직관적인 제목을 쓸 수가 있죠? 정말 책 내용이 진짜로 완전 ‘그날’의 세계사...아 이걸 더 어떻게 설명해야해 ㅋㅋㅋ



『그날의 세계사』 내용 자체는 지면 하나당, 말 그대로 ‘그날’에 있었던 일화가 적혀있기에, 막힘 없이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는 세계사 책이다. ‘그날’에 따라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거시적인 역사 일화도 있고, 또 어떤 날은 매니아 조차도 모를만한 미시적인 일화가 적혀있기도 하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세계사 책인가! 


어떤 날은 1537년, 또 어떤 날은 1983년. 일화에 따라 해당 사건이 발생한 연도가 다르기에, 당연히 책 내용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끊어읽기에 아주 제격인 세계사책이다. 만약 내가 태어난 달, 날에 일어난 사건이 궁금하면 해당 지면만 찾아서 읽어도 무방하다. 정말 쉽게 읽을 수 있는 세계사책으로 추천추천 왕추천이다!


이 세계사책을 펴서 제일 먼저 찾아본건, 내 생일이다. 나도 궁금했다구. 내 생일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읽고 나서 실망했다. 에이, 내가 푸이와 생일이 같다니. 썩 유쾌하진 않다. 차라리 그 다음날인 표트르 1세 사망일과 같았다면 좋았을 것을. 적어도 표트르1세는 촌동네 러시아를, 유럽의 최강국으로 만든 대제가 아닌가! 쳇. 아쉽다 아쉬워.



기세를 몰아 신랑 생일도 찾아봤는데 에잇, 여기도 썩 유쾌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 상전 생일은? 허허허. 이번엔 유명인 사망일과 같다. 심지어 그 사람은 ‘전설’이라는 칭호까지 얻은 아주 유명인! 그래 차라리 이게 낫지!!


이번엔 개인적으로 궁금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날을 찾아봤다. 예컨데 발렌타인 데이라던가, 메이 데이 같은...?



1863년 1월 1일, 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북부의 링컨 대통령은 그 유명한 노예 해방 선언을 했다.


1766년 2월 14일, 영국의 인구학자 토머스 맬서스가 태어났다.


1879년 3월 14일,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독일에서 태어났다.


1865년 4월 14일, 미국 제 16대 대통령 링컨이 암살 저격을 당했다(저격 다음날 사망).


1865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주장하며 총파업 궐기대회를 열었다(노동절의 시작).


1821년 5월 5일, 전직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서아프리카 앞 대서양 세인트 헬레나섬에서 사망했다.



오 뭔가 세계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도 있고, 매니아들만 알법한 사건도 있다. 신기하다 신기해. 이번엔 12월로 넘어가보자! 



노벨상의 ‘노벨’인 알프레드 노벨과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중국의 유일한 여황제 측천무후가 사망한 달도 12월이었다. 죽기만 했는가? 12월엔 누군가 태어나기도 했다. 중국의 마오쩌둥, 미국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 에펠탑의 구스타브 에펠, 대한제국 의병장 최익현 선생이 태어난 달도 12월이다. 하룻강아지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침공한, 일본이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날도 12월이다. 그 일본이 중국에서 일으킨 난징대학살도 역시나 12월이었다. 


31건이나 되는 12월에 일어난 모든 역사적 사건 중 내 눈에 들어온 사건은 1956년 12월 30일에 일어났던 일이다. 나라에서 버림받았던 섬 독도. 오랜기간 백성들이 지켜온 섬 독도. 그 독도를 나라에서 직접 지키기로 결정했던 그 날이 바로 12월 30일 이다.



▶ 1956년 12월 30일, 독도의용수비대가 해체되고 그 자리에 독도경비대가 들어갔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울릉도민들이 독도를 지키고자 자발적으로 결성한 민간인 경비대다. 경찰의 독도경비대 창설로 임무를 끝맺었다. 자, 독도는 누구 땅? 당연히 우리 땅이다. 그럼 이유를 설명해보라. 대부분 정광태의 노래 <독도는 우리 땅>만 부르고 끝이다. 자, 일본과 독도 논쟁이 벌어지면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1877년 태정관지령. 책 앞에서 언급했는데(8월 28일 글) 독도는 너무 중요한 문제이므로 또 짚고 가자.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후 신일본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지도 작성에 들어간다. 시마네현으로 파견된 지도 제작팀이 일본 태정관(일본 정부)에게 문의한다. ‘동해(자기들 표현으론 일본해)상의 두 섬(독도, 울릉도)은 누구 섬인가?’란 문의를. 여기서 태정관은 답변한다. ‘그 두 섬은 일본과 아무 관계가 없는 섬이다. 명심하라.’ 라고! p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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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인문 기행 2 그리스 인문 기행 2
남기환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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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인문 기행2』가 출간되었다. 1권을 올 여름에 읽었는데, 반 년 만에 2권이 나온 것이다. 앞서 1권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책은 그리스 여행에세이라는 옷을 입은, 술술 읽히는 인문학 책이다. 그리스 고전을 독파한 저자가, 그 고전 속에 나온 지역들을 따라 인문학 여행을 나섰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그저 여행에세이 라고 치부하기에는, 내용이 깊다. 모든 챕터마다 그리스 신들이 살아숨쉬고, 그리스 고전의 향기가 난다. 


본디 그리스 고전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조차도,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런 고전을 토대로 여행을 하고, 다시 책을 쓴다? 그건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해냈다. 어려운 그리스 고전과 여행에세이를 합쳤다. 그렇게 저자가 쓴 이 책 『그리스 인문 기행』은 그리스 고전의 길라잡이가 되었다. 


 

트로이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 오디세우스. 그의 귀향길은 힘겨웠다. 항해 중에 제우스의 폭풍을 만나 표류하였고, 부하들을 잃기도 하고, 괴물도 만났다. 심지어 저승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렇게 힘겨운 고난과 역경에도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야 한다는 다짐 하나로, 끊임없이 앞으로 향했다. 그러다 불멸의 존재인 칼립소를 만났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며, 그를 사로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디세우스는 유혹을 뿌리쳤다. 이런 오디세우스를 지켜보던 그리스 신들이, 신탁을 내렸다. 오디세우스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20일 만에 스케리아 섬에 도착하면, 그에게 명예와 재물은 물론 편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오디세우스는 신탁에 따라 20여일을 표류하였고, 결국에는 신들이 말한 스케리아 섬(현 케르키라로 추정)에 도착했다. 그 섬에서 오디세우스는 한 소녀를 만났다. 소녀의 이름은 나우시카. 이 스케리아 섬을 다스리는 알키노오스 왕의 딸이었다. 왕은 오디세우스를 사위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이 역시 거부했다. 오디세우스는 표류하기 전 부터 지금까지 늘 단 한가지만 생각했다.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오디세우스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케르키라 섬이다.



고난과 역경은 신들의 뜻으로 주어진 것이지만, 그 고난을 극복하고 계속 나아가는 것은 인간 오디세우스의 의지였다. ‘이미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이들 고통에 또 다른 고난이 추가되어도 상관없다’는 호메로스의 명문은 ‘불운한 일은 언제나 다른 불운과 함께 닥치기 때문에, 한 가지 불운만 온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크레타 속담과 이어진다. p 036


인간의 강한 의지는 신 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꺾을 수 없는, 그야말로 불멸이다. 드라마 《도깨비》 주인공인 지은탁도 그러지 않았는가. 하물며 오랜 기간 고난과 역경, 유혹을 견디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 오디세우스는 정말, ‘의지’가 인간으로 태어난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케르키라 섬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빌미가 된 섬이기도 하다. 기원전 448년 페르시아 전쟁 후 그리스는 스파르타와 아테네라는 두 도시가 권력을 나눠가졌다. 두 도시는 상호 평화조약을 맺었고 잘 지켜지는 듯 했다. 하지만 아테네가 케르키라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함선을 파견하면서 평화에 균열이 생겼다. 이후의 결과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27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시간을 건너 뛰어 중세로 가보자. 이번엔 케르키라 섬에 지어진 견고한 요새에 대한 이야기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세 차례나 케르키라 요새를 함락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는 것은, 그 성채의 위엄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채는 오직 ‘선택된 자들’만을 보호했다고 한다. 성 밖에 남겨진 여성, 어린이, 노인들은 죽거나 노예로 전락했다. 성안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은 ‘쓸모없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결국 인간의 어리석음과 잔인함만 드러낸 셈이다. p 055


오디세우스의 강한 의지가 남겨있는 케르키라 섬.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었던 케르키라 섬. 아이러니하게도 오디세우스 이후의 케르키라 섬은 그 ‘의지’가 나쁜 방면으로 작용했다. 권력을 향한 끊임없는 탐욕. 이런 인간의 질 나쁜 의지는 케르키라 섬을 전쟁으로 이끌었고, 약자들을 학살로 내몰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그러했고, 오스만 제국 침공 당시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쓸모없는 존재’라 치부하며 성밖으로 내보내 죽어가게 버려둔 것이 그러했다.


케르키라 섬은 알려준다.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또한 그 의지가 마냥 좋은 길로만 안내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스 고전은 흔히들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가 아니다. 아니, 반은 맞다. 다만 반이 틀릴 뿐.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리스 고전은, 어린이 만화에서 본 올림푸스가 고작이 아닌가. 이는 그리스 고전을 사유하기는 커녕,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조차 없다. 그렇기에 이 인문학책을 읽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으로 하여금 그리스 고전을 어떻게 사유하는지 경험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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