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도쿄 깊숙이 일본 1
진나이 히데노부 지음, 안천 옮김 / 효형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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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여행으로 자주 방문했던 곳이다. 관광객들이 즐겨가는 도쿄 시가지 뿐만 아니라, 외곽도시까지 포함해서. 내 여행 목적은 주로 답사가 많았기에, 교통편을 이용하기보단 걸어다니는 일이 많았다. 도쿄에서 걷다보면 자연스레 만나는게 있으니 바로 마을 주변을 흐르고 있는 인공 수로다. 우리나라처럼 더러운 수로가 아니라, 정말 깨끗한 물이 흐르는 수로. 도쿄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내 발길이 닿는 곳곳에는 언제나 깨끗한 물이 흐르는 수로가 있었다. 그때 알았다. ‘아, 일본이라는 나라는 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생각해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섬나라인 일본은 ‘식수’ 확보가 정말 중요하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주변이 바다이니, 물을 쉽게 구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이 사용하는 물은 ‘담수’, 즉 염분이 없는 물이다. 염분이 기본값인 바닷물은 절대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바닷물을 쉽게 구할 수 있을 지언정, ‘담수’를 구할 수 없다면 그 곳에서는 사람이 절대로 살 수 없다. 물론 바닷물을 담수화 시키면 사용할 수도 있지만, 아직 그런 기술이 상용화 되어있지 않을뿐더러, 있는 기술마저도 적용하는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인간이 담수를 구하는 방법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강(+개천, 저수지 등)’, 하늘에서 내리는 ‘비’ 밖에 없다. 그래서 인류의 터전은 언제나 강변 주변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일본을 떠나 모든 나라가 동일하다.


일본은 그냥 섬나라가 아닌, 화산 섬나라다. 일반적인 ‘산’보단 ‘화산’의 비중이 월등이 높다. 그래서 더더욱 물을 구하는데 진심이었다. 얼마나 진심이었냐면, 고대 일본은 수로, 제방, 토목 공사 기술을 가지고 있는 한반도 도래인이 하타씨를 중용했을까. 


각설하고! 그만큼 일본에게 ‘물’은 중요했다. 


이 책 『물의 도시 도쿄』 은 일본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물’과 명실공히 일본의 수도 ‘도쿄’를 엮었다. 정확히는 도쿄라는 공간에서, 그 공간을 흐르는 강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게 도쿄와 강변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역사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난 역사책이다. 




물의 도시’의 상징, 도쿄 스미다강



스미다강은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과거에는 일본 전통극인 ‘노’와 ‘가부키’, ‘닌교조루리’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와세다-게이오 조정 경기, 스미다강 불꽃놀이 등 도쿄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스미다강변 주변에 센소지를 시작으로 스모의 중심지인 료고쿠 국기관, 에도도쿄박물관, 도쿄 스카이트리 등이 즐비해 있다. 이로인해 도쿄 시민 뿐만 아니라 해외관광객까지도 스미다강을 찾는 이가 해마다 늘어났다. 지금은 명실상부 도쿄 핫플레이스 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스미다강이 도쿄 중심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심지에서 벗어난 스미다강이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우메와카키가 이어져 왔다는 점이다. 그 무대인 모쿠보지 사원은 큰 의미가 있어 쓰루오카 로스이의 <동도 스미다강 양안 알람>에도 묘사되어 있다. 센소지 사원에서 약간 북동쪽에 있는 마쓰치산도 중요한 곳으로, 작은 언덕이 성지로 여겨진다. 595년에 용이 나타나 이곳이 신성한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센소지 사원은 7세기 전반에 스미다강에서 낚시하던 형제의 그물에 관음상이 걸려, 강에서 건져 올린 그 관음상을 모신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p 026



스미다강은 에도가 도시로서 발전해 가는데 꼭 필요한 오랜 역사의 뿌리가 되는 문화적 정체성을 낳는 장소, 즉 에도에서 정신문화의 원류라는 의미를 지녔다. 에도보다 기원이 훨씬 오래되며, 사람들의 의식 구조와 연관이 있는 종교 시설이 많고, 에도가 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주변부의 성격을 띠게 된 덕택에 자연의 풍요로움이 보전되었다. 이로 인해 스미다강은 일본인이 선호하는 독특한 개방감 넘치는 곳이 되었고, 신앙과 유희의 요소가 맞물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p 029



그렇다. 도쿄 중심부에서 벗어난 스미다강은 아주 오래전, 에도 시민들의 ‘정신적 중심지’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에도가 권력의 축으로 성장하기 전에는 에도의 중심부랄게 없었다. 그러다 도쿠가와 가문이 에도를 발전시키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에도의 중심부가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스미다강을 사랑한 거주민들은 끝까지 스미다강을 향한 애정을 지켰다. 그리하여 발전한 에도/도쿄 중심부에 있는 니혼바시강은 그저 물류, 경제와 관련된 ‘실체적’인 문화가 발달한 반면, 스미다강은 에도/도쿄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정신적’인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도쿄의 역사는, 17세기 무렵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에도가 역사의 전면으로 나온 시기가 도쿠가와가 에도 발전을 꾀한 17세기 부터이지 어찌보면 맞는말이긴 하다.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도쿠가와가 에도로 들어가기 전에도, 에도는 사람이 사는 땅이었다. 7세기에 창건된 센소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9세기에는 스미다강을 건너는 사람이 늘어나 선박을 증편했다는 태정관부 기록도 있다. 심지어 7세기 이전에는 거슬러가면, 스미다강을 포함한 도쿄 일대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자리잡은 터전이기도 하다. 에도는 도쿠가와가 개발하기 이전부터, 고대부터 시작되는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인 것이다.



에도라는 도시에서는 권력의 상징(에도성)과 큰 강(스미다강)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이 선착장에 다다르면 막번 체체하의 도시였음에도 일상의 여러 속박에서 벗어나 물가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축제와 행사를 즐기고, 세속적인 놀이를 경험할 수도 있었다. 스미다강 중상류 유역의 에코인이나 센소지를 비롯한 사원에 참배하러 간다는 구실도 있었다. 이처럼 에도는 스미다강 건너 보쿠토 지역 또는 스미다강을 거슬러 올라 더 깊숙이 들어가는 원심력이 작용하는 도시였던 것이다. p 042



도쿄 스카이트리가 스미다 강변 동쪽에 지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전망이다. 스카이트리에서 내려다보는 도쿄 전망은 이 백 년전 구와가타 게이사이가 그린 에도 조감도와 놀랍도록 일치한다. 구와가타 게이사이가 그린 에도 조감도는 스미다강 동쪽 고지대에서 서쪽 에도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형태로 그렸다. 이는 에도 조감도의 원형이 되어, 후대 화가들이 계승하여 동일 각도의 에도 조감도가 계속해서 그려졌다. 즉 도쿄 스카이트리에서 내려다보는 도쿄 전망은, 이 백 년전 에도 사람들이 보던 에도와 같다. 게이사이가 그린 에도 조감도부터 후대 화가들이 계승하여 그린 조감도, 그리고 현재 도쿄 스카이트리에서 내려다보는 전망. 그야말로 같은 공간에 이 백 년 차이를 둔 에도와 도쿄가 공존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나라 현립 미술관이 소장한 <아사쿠사 요시와라 그림 두루마리>는 스미다강의 역할과 의미를 상징하는 매우 흥미로운 회화 사료다. (중략…) ‘물의 도시’의 다양한 상징, 스미다강변의 지리적 특성, 그리고 ‘깊숙함’을 품은 에도 특유의 도시 공간이 여기 모두 표현되어 있다. 정치 권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도시 창건 전설과 신화가 저변에 있는 스미다강 상류, 이 주변이ㅡ 센소지 사원과 마쓰치산, 나아가 ‘주변의 나쁜 곳’이라고도 불리는 신요시와라가 에도 도시 공간 안쪽에 자리해 사람들을 매료하는 독특한 구조를 이 두루마리는 보여준다. p 054



에도도쿄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 스미다강. 늘 반짝이는 스미다강, 그 이변에는 무거운 그림자도 있다. 에도도쿄 시민들은 이미 잊어버린 그림자. 하지만 우리는 꼭 기억해야할 그림자. 바로 ‘관동대학살’이다. 스미다강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관동대학살’이라는 단어는 너무 뜬금없는 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살짝 이야기해보자면.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 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관동 지역에 속한 에도는 지진으로 집이 무너졌다. 하필 지진이 일어난 시간이 점심시간이라 불을 사용한 집이 많았다.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밥 짓던 아궁이 불이 무너진 자재들에 옮겨붙으며 대형 화재가 일어났다. 에도에 있는 집은 대게 나무집이었기 때문에, 에도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믿기지 못할 재난에 에도인은 분노했다. 그 분노를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했다. 바로 조선인 학살이다. 한국인이라면 절대 잊어선 안될 ‘관동대학살’이 시작이다. 그렇게 학살된 조선인 시체는 스미다강에 버려졌다. 당시 스미다강물이 빨갛게 변했다고 할 정도니, 얼마나 많은 조선인의 피가 스미다강에 흘러들어갔는지는 말해 무엇할까. 



슬프지만 이 책 『물의 도시 도쿄』에는 이런 내용은 없다. 대신 관동대지진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수질 오염된 스미다강, 고도 성장기에 요정가가 즐비해 있던 스미다강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저자는 스미다강 역사를 이야기했지만, 그 역사는 일본인 저자에게 선택된 역사였다. 이 사실이 이토록 씁쓸한 이유는 내가 조선의 후예이기에 그런걸까. 아니면 저자가 한국과 교류가 깊은 일본인이기에, 혹시나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서 그런걸까. 



이런 씁쓸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 『물의 도시 도쿄』은 역사책으로, 인문학책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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