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 - 조선왕조실록 기묘집 & 야사록
몽돌바당 지음 / 지식과감성#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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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人妖), 그것은 도리에서 벗어난 요사스럽고 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조선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분장을 한다거나, 여성이 남성의 분장을 하는 사람들을 인요라고 불렀다. 이러한 단어는 조선의 대표적인 역사서로 손 꼽히는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몽달바당님은 실록에 있는 기사를 토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한 편의 소설을 만들었다. 책의 제목이자 반 이상의 분량을 차지하는 인요, 그 외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기묘한 기사들을 여러개 발췌하여 작성한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난 시간날 때마다 조선왕조실록 기사를 틈틈히 보면서, 이런 내용이 기록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야사 같은 기사가 나오면 이따금씩 당시의 상황이 너무나 궁금했다. 무엇보다 사람의 흥미를 끄는 것은 정사보단 야사가 아닌가! 헌데 야사를 주제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소설이 나왔다니, 나의 구미를 당기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걸까. 아니면 작가님의 문체와 내가 안맞는 것일까. 읽으면서 책과 싸움을 한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보통 싸움을 하게 되는 책이라면 읽다가 덮어버리기 마련인데, 이 책은 주제가 주제인지라 덮어버릴 수 조차 없었다. 작가님의 문체가 나랑 안 맞다고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 스토리로 보았을 때는 매우 흥미로운 것도 사실이었기에! 거기다가 작가님 나름대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연설명도 나쁘지 않았다. 작가님의 부연설명은 우리나라 매체에서는 큰 주제로 다뤄지지 않았던, 조선의 중간관리들 혹은 민초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봉익·김상옥·이세근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이봉익(李鳳翼)을 사간으로, 김상옥(金相玉)을 교리로, 이세근(李世瑾)을 병조참의로 삼았다. 이세근은 사람됨이 음험(陰險)하고 간사(奸邪)한데, 얼굴을 단장하기 좋아하여 날마다 여러 차례 낯을 씻고 목욕하고, 분을 바르고, 눈썹을 뽑았으며, 의복과 음식이 모두 보통 사람과 다르니, 당시에 그를 인요(人妖)라고 불렀다. 또 성품이 탐오하여 일찍이 접위관이 되었을 때 왜인(倭人)이 침을 뱉으며 비루하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다.

다만 붙좇는 데 교묘하여 때에 따라 얼굴을 바꿈으로써 승진하여 비옥(緋玉)에 이르렀으나, 조정의 관원들이 함께 반열(班列)에 서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숙종실록 63권, 숙종 45년 6월 4일 을사 1번째 기사 1719년 청 강희 58년>


이 책의 메인이 되는 이야기 인요.

21세기 현재를 살고 있는 트랜스젠더 이수혁이 주인공이다.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이라니, 꽤나 파격적이다) 그는 예기치못한 사고로 덕수궁 연못에 빠졌다. 눈을 떠보니, 왠걸 ! 조선 숙종 재위 시절 노론의 일원이었던 정현 이세근의 몸이 아닌가. 흔히 말하는 현재의 주인공이 과거로 날라가는 타임워프 이야기였다. 타임워프를 소재로 한 소설은 워낙 많기 때문에 작가의 필력에 따라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에 성공이 좌우된다. 다행히도 인요의 경우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꽤나 흥미로웠다.

현대를 살던 트랜스젠더 이수혁이 조선의 문신, 인요라고 불리던 이세근으로 깨어났다. 자기가 조선시대로 왔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기도 했지만 다행히 그는 사극을 아주 많이 본 인물이었다. '사극에서 봤었던, 사극에서 나왔던, 사극에서 들었던' 모든 기억을 총 동원하여 이세근으로써 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수염이 있는 본인의 얼굴은 적응할 수가 없었는 지 눈 뜨자마자 바로 수염을 잘라내었다. 하기사 현재에서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던 그에게 수염이란 있으면 안되는 것이기도 하다. 해서 조선에서는 수염을 자르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감히 잘라낸 이수혁, 아니 이세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세근이라는 인물이 기방에서 인요들과 노는 것을 즐겼다는 것이다. 아 물론 소설에서다. 만약을 위해서지만 혹시라도 그의 후손들이 이 책을 본다면 어디까지나 이 이야기는 픽션이니 그것을 꼭 감안해주었으면 좋겠달까? 하하하.

혼자서만 조선으로 온 줄 알았던 이수혁. 하지만 아니었다. 과거 군대에 갔을 때 자신이 괴롭힌 후임, 현재는 자신을 좋아한다며 스토킹하던 인물도 조선으로 타임워프한 것이었다. 그것도 왕세자,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의 몸으로. 현재에서는 이수혁이 우위를 점했었다면, 조선에서는 왕세자의 신분으로 나타난 그가 우위를 점한 것이다. 아 물론 이들의 이야기는 썩 .. 간혹 눈쌀이 찌푸려지는 장면도 있기에 이 부분은 독자들이 감수해야할 부분인 듯 하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현재로 돌아온 이수혁, 그가 조선에서 있었던 오랜 시간은 현재에서는 불과 몇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수혁은 다시 본래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스토리 전개과정 혹은 마무리에 대해서는 약간 갸우뚱 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 부분까지 감수할 만큼 흥미로운 주제는 확실하다.


-이보가 졸하였다.

보는 왕자다. 성질이 패망하여 술만 마시면서 행패를 무렸으며 남의 재산을 빼앗았다. 비록 임해군이나 정원군의 행패보다는 덜했다 하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것이 해마다 10여 명에 이르렀으므로 도성의 백성들이 몹시 두려워 호환(虎患)을 피하듯이 하였다. …중간 생략…

<선조실록 209권, 선조 40년 3월 18일 신사 3번째기사 1607년 명 만력 35년>


책에 실린 여러 단편 이야기 중 하나인 살인귀.

악명 높기로 유명했던 선조의 아들 순화군의 이야기다. 이 부분의 경우 실록에서 순화군 · 임해군 · 정원군에 대한 기사를 너무나도 많이 보았던 지라, 다른 이야기보다도 더욱 주의 깊게 읽어 보았다. 순화군의 이야기는 워낙 기록에 남아있는 것이 많이 있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흥미진진한 전개까지는 못 미친 것 같다. 대신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는 이점이 있어서 그런지 최대한 사실에 입각하여 소설을 쓰신 것 같았다. 앞서 수록된 소설들이 픽션소설 같다면, 살인귀 이야기는 이른바 팩션소설 같달까? 해서 역시나 나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들 순화군에 대하여 아버지였던 선조가 어떤식으로 대처했는 지 등 이런 부분까지 고려하여 스토리를 전개하였다면 더 멋진 팩션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은 후 막연하게 느낀 사실은 이 책은 작가님이 처음 집필한 작품이 아닐까? 라는 것 이다. 읽으면서 색다른 주제 ; 파격적인 주제를 선정해서 좋았고,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흥미로운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약간은 어설픈, 마음만 앞서는 듯한 스토리 전개도 분명히 있었기에. 주인공들의 일부 대사에서는 인터넷소설에서 볼 법한 문구가 나오기도 해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개인의 취향이니 독자에 따라서는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작가님께서 조금만 더 노력을 하신다면 나같이 편향적인 시선을 가진 일부의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집필할 수 있을 것 같다. 해서, 작가님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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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진
이완우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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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 이백년간 평화에 젖어있던 조선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왜놈이라고 부르며 비하하던 일본이 조선에 쳐들어온 것이다. 그 유명한 임진왜란이다. 이때 조선왕조실록과 어진을 보관하던 세곳의 사고(춘추관, 충주사고, 상주사고) 가 잿더미가 되었다. 그 안에 있던 실록과 어진 역시 잿더미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조선왕조실록과 조선 왕들의 어진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그 이유인 즉 이러하다.

임진왜란 때 불타서 사라진 세 곳의 사고 말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고가 있었으니 전주사고 이다. 전주사고가 튼튼하거나 방비가 잘 되어있어서 실록과 어진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실록와 어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조선의 역사를 지키고자 했던 민초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책의 제목은 왜 하필 몽진 일까? 몽진 이란 '먼지를 뒤집어쓰다; 급박한 상황에서 먼지를 쓰고 떠난다' 라는 의미이다. 임진왜란 당시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길을 나선 선조를 두고 '왕이 몽진하였다' 라고 한다. 해서 나에게는 부정적인 의미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단어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는 조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이 책의 주인공 유생 안씨와 손씨를 비롯한 여러 민초들은 실록과 어진을 들쳐매고 왜적의 눈을 피해가며, 온갖 위협과 고난을 넘기며 피난길에 올랐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을 뿐더러 민초를 지켜야할 나랏님조차 도망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 민초들은 자기가 살고있는 조선을 위하여 천여권이 넘는 국가의 서적과 어진을 지키기 위하여 사재를 털어가며 피난길에 올랐다. 이런 것이 작가님이 말하려 한 진짜 몽진이 아닐까?

 

"나랏일? 나라가 있기는 하더냐? 온 나라가 왜적에게 짓밟혀 죽고 약탈을 당해도 나라가 한 일이 무엇이란 말이냐?

차라리 내 힘으로 나를 지키는 게 더 낫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느니라" - P 081

 

나이든 유생 안과 손은 실록을 들쳐매고 피난길에 올랐다가 산적을 만난다. 안과 손은 자기들이 나랏일을 하고 있으니 무사히 보내달라고 하자 산적이 한 말이다. 왜적에게 짓밟혀 죽고 약탈을 당해도 나라가 한일이 무엇인가. 뼈를 때리다 못해 부러뜨리는 말이다. 안과 손도 그 의미를 너무나 잘 알았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나라를 위해, 실록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산적은 이런 늙은 유생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꾼다. 심지어 그들이 실록을 무사히 옮길 수 있도록 호위무사를 자청한다.

 

"저희들도 비록 산적질을 하며 살고 있지만, 나랏일을 한다는 마음에 잠시 사람처럼 사는 것 같아 신명이 났었습니다" - P 144

 

산적도 역시나 조선의 백성이었다. 전쟁이라는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내몰았을 뿐이었다. 좋은 왕이 다스리는 땅에서 살았다면 농사를 지으면서 사소한 것 하나에도 행복을 느낄 그런 민초들이었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저 왕을 잘못만난 죄 하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살기 위하여 산적이 될 수 밖에 없었으니까..

 

"우리 스님들도 나랏일에 보탬이 되어야지요. 용굴암까지는 우리 스님들이 옮길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 P 151

 

실록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피난길에 도움을 준 사람들은 산적 뿐만이 아니었다. 스님들도 실록을 옮기는 데 힘을 보탰다. 전주사고에 있던 실록과 어진을 영은산(정읍 내장산)까지 옮기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구의 눈에 띄어도 안되었고 마음을 나쁘게 먹은 사람들 눈에 띄어도 안되었다. 여러 민초들의 힘이 모여졌기 때문에 비로소 실록과 어진을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록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들은 왜구가 아니었다. 같은 조선 사람이었다. 실록에 부끄러운 내용이 기록된 사람들, 왜적에 투항한 벼슬아치.. 그들이야말로 실록 보관에 제일 위험이 되는 사람이었다. 나쁜놈들은 자기가 하는 짓이 나쁜짓이라는 것을 제일 잘 알고 있고, 그것에 기록에 남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 지를 잘 알고 있다. 해서 사고를 떠난 실록을 탈취하기 위해 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기사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왕도 있는데, 그런 왕 밑의 신하들이라고 배운 것이 뭐가 더 있었겠는가.

 


이 책은 작가님이 말했 듯 '역사소설' 이다. 기록된 역사에 상상력을 살을 덧붙여 작성한 소설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완전 픽션인가? 라고 하기에는 사실과 맞닿은 부분이 너무 많다. 임진왜란 당시 실록을 옮긴 과정을 기록한 책 수직상체일기1)에 수록되어 있는 실제 사실을 그대로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1) 수직상체일기: 실록을 보관했던 나이 든 유생 안의의 친필 일기. '전주사고내장산 용굴아산해주강화안주묘향산'으로 옮겨간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안의와 손홍록은 사재를 털어 30여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370여 일간 왜적을 피해 실록와 어진을 지켰다)

 

왜구에 맞서 싸운 이순신 장군, 권율 장군만 조선을 지킨 위인이 아니다. 실록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안의와 손홍록 역시 조선을 지킨 위인이다. 뿐만 아니라 안의와 손홍록과 함께 실록을 지켰던 두 명의 참봉과 수복 한돌(한춘), 무사 김홍무 역시 조선을 지킨 위인이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사와 고려사를 공백으로 남겨두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선은 이들의 업적을 끝내 정사인 실록에 기록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선의 역사를 지킨 위인들의 이름은 잊혀졌다.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이들 덕분에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빛나는 조선왕조실록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음을..




"나랏일? 나라가 있기는 하더냐? 온 나라가 왜적에게 짓밟혀 죽고 약탈을 당해도 나라가 한 일이 무엇이란 말이냐?

차라리 내 힘으로 나를 지키는 게 더 낫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느니라"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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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 청 황실이 빚어낸 영광과 치욕의 증언자 걸작 논픽션 6
신슈밍 지음, 쭤위안보 엮음, 주수련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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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구입한 책,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말 그대로 마지막까지 자금성에 있었던 16명의 환관(태감)들이 구술한 회고를 묶은 내용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종이나 순종부부, 의친왕 등을 모셨던 내관이 작성한 '대한제국 황실비사' 라고 할 수있다. 즉 청 황실에서 일어난 수 많은 이야깃거리가 담겨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황실비사'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미를 당기게 하는 소재다.


황실비사라는 것만으로도 구미가 당기는 데, 저 먼 왕조의 이야기도 아니고 지금에서 제일 가까운 왕조인 청나라의 이야기라니 이것은 읽어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나 중국 드라마로 청나라가 익숙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


나는 생각보다 중국 드라마를 자주 봤다. 심지어 어려서 제일 처음 본 외국 드라마가 중국드라마 '황제의 딸' 이었다. 당시에는 어렸기에 tv에서 방영해준 중국 드라마만 보다가 철이 들 무렵부터는 P2P에서 다운받아가며 여러 중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중국사를 수박 겉핥기 정도나마 알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중국드라마의 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튼! 그런 중국 드라마에서 꼭 빠지지 않는 배경이 청나라 강희제/옹정제/건륭제 때의 이야기다. 이 3대의 황제 때가 청나라의 최고 전성기 였기 때문에. 아 물론 건륭제 후반부 즈음에 이미 삐그덕 거리기 시작한 것이 가경제, 도광제를 지나 훅훅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함풍제 때 이르러 그 유명한 서태후가 나온다. 함풍제 당시에는 서태후는 태후가 아닌 그저 귀비였고, 함풍제 사후 그녀의 아들이 황제가 되면서 태후 자리에 오르며 그 유명한 서태후 시대가 개막된다.  

 

내가 생각하는 서태후의 이미지는 '청나라를 무너뜨린 요녀' 라거나 '냉정하고 잔혹한 성정을 지닌 여자', '권력을 놓지 못하여 아들도 죽인 여자'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헌데, 그녀의 측근이었던 태감들은 이런 서태후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도 너무 긍정으로 이야기를 해서 놀랍기 그지없었다. 물론 자신이 과거에 모시던 상전이라지만, 서태후가 죽고 난 뒤에도 쭉 '저 사람은 내 주인' 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좀 의아했다. 



내가 서태후를 처음 만난 때는 광서 28년, 태후가 68세 되던 해다. … 두 눈썹은 정기가 흘러넘치고 눈동자는 별처럼 빛났다. 아무도 감히 그 눈빛을 마주 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조정에서 군기대신들을 대할 때면 더 없이 온화하고 자상하면서도 그 표정과 자태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위엄이 서려있었다.… 서태후는 공적이 크고 과실이 적은 반면, 광서제는 공적이 적고 과실이 많다고 평가한 것은 확실히 정론이라 할 수 있다. P 40


이 책에 나온 대부분의 태감들, 서태후를 모셨던 태감들은 저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문제는 저렇게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면서도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너무 세세하게 구술하고 있어서, 대체 왜... 어떤 면에서 저렇게 충성 충성 할 수 있나 의아할 뿐이다. 심지어 서태후가 기분이 안좋을 때 태감들은 그녀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가장 잔인했던 일은 바로 서태후가 어느 나이 든 태감에게 

그의 대소변을 강제로 먹였던 일이다.

궁안 태감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 노인은 이 일로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서태후 자신은 젖을 잘 내는 두 부녀를 선별해 매일 같이 온 몸을 깨끗히 씻게 했다.

이들이 몸에 꼭 붙는 진홍색 상의를 입고 유두만 드러낸 채 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서태후는 침상에 누운 채로 젖을 먹었다.

자신은 사람의 젖을 먹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대소변을 먹이는 것

이것이 바로 황실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P 419


이러한 일을 당하고 있음에도 서태후를 높이 우러러 본 태감들이다. 이게 정말 사실인걸 까 싶다가도 지금껏 봐온 청나라 시대의 드라마를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꽤 많은 태감과 궁녀들이 자기의 상전이 어떠한 나쁜 짓을 일삼든 상관않고 무조건 충성을 받쳤으니 말이다. 이런면을 보면 중국 드라마도 꽤 수준 높은 고증을 한 느낌이랄까?


의화단 사건으로 인해 서태후가 시안으로 피난을 가야했던 시기에 사건이 터진다. 당시에 서태후는 자신의 손으로 황제로 만든 조카 광서제를 포함하여 여러 궁인들과 함께 시안으로 피난을 가야 했는데 그 와중에 눈에 가시였던 후궁 진비를 죽음으로 내몬다. 겉으로는 진비가 관직을 매매하여 죽였다고는 하나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 처사가 매우 잔혹한 것만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진비 궁의 수령태감 30여명은 신형사에서 장형으로 죽었다. 


물론 이 책은 서태후의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태후와 동치제의 살벌한 모자관계, 황후와는 앙숙이면서도 향락을 일 삶다가 화류병에 걸려 일찍 죽은 동치제, 권력을 놓을 수 없어서 자신의 조카를 황제로 삼은 서태.ㅎ..........앗 그냥 이 책에 있는 황실 내용은 죄다 서태후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가 없다. 아! 책의 내용이 환관들이 구술한 기록이니 만큼 환관들 자신의 이야기도 꽤 있었다. 그들이 어째서 환관이 되었는지, 환관으로써 무엇을 해야만 했는지, 그런 이야기들... 그리고 끝은 언제나 본인들은 좋은 상전을 모시는 복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


하지만 이래저래 확실한 건 이 책은 청나라에 대한 얕은 배경지식이라도 없다면 읽기에는 조금 버거울 지도 모르겠다. 

내가 서태후를 처음 만난 때는 광서 28년, 태후가 68세 되던 해다. … 두 눈썹은 정기가 흘러넘치고 눈동자는 별처럼 빛났다. 아무도 감히 그 눈빛을 마주 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조정에서 군기대신들을 대할 때면 더 없이 온화하고 자상하면서도 그 표정과 자태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위엄이 서려있었다.… 서태후는 공적이 크고 과실이 적은 반면, 광서제는 공적이 적고 과실이 많다고 평가한 것은 확실히 정론이라 할 수 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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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훔친 위험한 冊들 - 조선시대 책에 목숨을 건 13가지 이야기
이민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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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나라 조선


조선에서는 성리학에 어긋나는 사상을 담고 있다는 사유를 들어 책과 책의 저자를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이 책은 그러한 조선의 사회상을 더 심도 있게 해석하려고 한 듯 하다. 즉 저자는 금서가 되어버린 책의 내용을 이야기 하는게 아닌, 그 책이 금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당시의 사회가 어땠었는지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중반이 되면 사회적으로 앎의 욕구기 높아지면서 그에 맞춰서 책을 읽고자, 혹은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계속된다. 하지만 당시의 기득권 층은 그 요구를 끝까지 묵살했다. 당시 사회에서 무언가를 안다는 것,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은 바로 권력이기 때문에. 


이 책에는 당시 백성들에게 앎을 허락하지 않았던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도 곳곳에 담겨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울 내의 풍부한 서적을 보유한 개인 소유의 도서관을 여럿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보는 것만도 완전히 불가능하다.

그 주인은 책을 빌려주지도 않고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손님에게 절대로 책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로서는 빌려주고 싶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왜 그 책을 그렇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그러한 조선인의 관습을 설명하기 힘들다.

-선교사 호머 B 헐버트



만일 만 권의 책을 저쟁해놓고도 빌려주지도 않고 읽지도 않고 햇볕을 쏘이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면

빌려주지 않는 것은 인(仁)하지 못함이요, 읽지 않는 것은 지혜롭지 못함이요,

햇빛을 쏘이지 않는 것은 부지런하지 못함이다.

사군자가 글을 읽자면 남에게 책을 빌려서도 읽는 법인데

책을 꽁꽁 묶어놓기만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덕무


수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위의 두 문구이다.


이 책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고려시대에 제작되었다. 즉 고도의 기술인 인쇄술이 서양의 인쇄술보다 최소 2백년이 앞섰던 것이다. (개성에서 발견된 금속활자 '복' - 국립중앙박물관)

하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이런 고도의 기술을 권력의 도구로만 사용했다. 조선으로 넘어와서도 역시나 책은 기득권층의 소유물이었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던 시대였으며 그 권력을 일개 백성들에게 나눠줄 수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반면 서양의 금속활자를 제작한 구텐베르크는 성경을 제작하여 널리널리 보급하였다. 서양의 인쇄술은 이때를 기점으로 기하학적으로 발전하였고 백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수 만권의 책들이 발간되었다.

많은 일반 민중이 읽었고 그렇게 그들은 많은 지식을 습득하였다. 그리고 서양은 엄청난 발전과 더불어 빠르게 근대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조선에서는 기득권층이 책을 꽁꽁 숨기고 심지어는 죽어서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기현상까지 일어났다. 양반들끼리도 이럴진데 일반 백성들이 책을 보는 건 택도 없는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책을 구했더라도 책이 전부 한자로 되어있다면 ? 정말 택도 없는 일이다.


앎의 권리가 없었던 백성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모른 체로 살아왔고 비합리적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국가에 위험이 있었을 때 마다 제일 먼저 희생을 당했다. 지금 껏 아는 것이 없었고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던 그저 하라는 대로만 해왔던 힘 없는 백성이었기에..


지금은 클릭 한 번으로 수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물론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져서 진위여부 판단이 필요한 경우도 많지만.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안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된다는 건 지금도 유효한 전제이다. 우리의 힘 없는 조상들은 못했던 기득권 세력에 대한 감시가 지금은 가능하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으로 하여금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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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100배 즐기기 - 유후인.벳푸.기타큐슈.나가사키 19'~20' 개정판 100배 즐기기
RHK 여행연구소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올 봄에 부모님을 모시고 후쿠오카 여행을 계획해뒀어요. 부모님과 가는 여행이라 이것 저것 신경쓸 부분이 정말 많이 있는데, 이 책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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