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 청 황실이 빚어낸 영광과 치욕의 증언자 걸작 논픽션 6
신슈밍 지음, 쭤위안보 엮음, 주수련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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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구입한 책,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말 그대로 마지막까지 자금성에 있었던 16명의 환관(태감)들이 구술한 회고를 묶은 내용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종이나 순종부부, 의친왕 등을 모셨던 내관이 작성한 '대한제국 황실비사' 라고 할 수있다. 즉 청 황실에서 일어난 수 많은 이야깃거리가 담겨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황실비사'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미를 당기게 하는 소재다.


황실비사라는 것만으로도 구미가 당기는 데, 저 먼 왕조의 이야기도 아니고 지금에서 제일 가까운 왕조인 청나라의 이야기라니 이것은 읽어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나 중국 드라마로 청나라가 익숙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


나는 생각보다 중국 드라마를 자주 봤다. 심지어 어려서 제일 처음 본 외국 드라마가 중국드라마 '황제의 딸' 이었다. 당시에는 어렸기에 tv에서 방영해준 중국 드라마만 보다가 철이 들 무렵부터는 P2P에서 다운받아가며 여러 중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중국사를 수박 겉핥기 정도나마 알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중국드라마의 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튼! 그런 중국 드라마에서 꼭 빠지지 않는 배경이 청나라 강희제/옹정제/건륭제 때의 이야기다. 이 3대의 황제 때가 청나라의 최고 전성기 였기 때문에. 아 물론 건륭제 후반부 즈음에 이미 삐그덕 거리기 시작한 것이 가경제, 도광제를 지나 훅훅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함풍제 때 이르러 그 유명한 서태후가 나온다. 함풍제 당시에는 서태후는 태후가 아닌 그저 귀비였고, 함풍제 사후 그녀의 아들이 황제가 되면서 태후 자리에 오르며 그 유명한 서태후 시대가 개막된다.  

 

내가 생각하는 서태후의 이미지는 '청나라를 무너뜨린 요녀' 라거나 '냉정하고 잔혹한 성정을 지닌 여자', '권력을 놓지 못하여 아들도 죽인 여자'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헌데, 그녀의 측근이었던 태감들은 이런 서태후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도 너무 긍정으로 이야기를 해서 놀랍기 그지없었다. 물론 자신이 과거에 모시던 상전이라지만, 서태후가 죽고 난 뒤에도 쭉 '저 사람은 내 주인' 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좀 의아했다. 



내가 서태후를 처음 만난 때는 광서 28년, 태후가 68세 되던 해다. … 두 눈썹은 정기가 흘러넘치고 눈동자는 별처럼 빛났다. 아무도 감히 그 눈빛을 마주 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조정에서 군기대신들을 대할 때면 더 없이 온화하고 자상하면서도 그 표정과 자태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위엄이 서려있었다.… 서태후는 공적이 크고 과실이 적은 반면, 광서제는 공적이 적고 과실이 많다고 평가한 것은 확실히 정론이라 할 수 있다. P 40


이 책에 나온 대부분의 태감들, 서태후를 모셨던 태감들은 저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문제는 저렇게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면서도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너무 세세하게 구술하고 있어서, 대체 왜... 어떤 면에서 저렇게 충성 충성 할 수 있나 의아할 뿐이다. 심지어 서태후가 기분이 안좋을 때 태감들은 그녀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가장 잔인했던 일은 바로 서태후가 어느 나이 든 태감에게 

그의 대소변을 강제로 먹였던 일이다.

궁안 태감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 노인은 이 일로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서태후 자신은 젖을 잘 내는 두 부녀를 선별해 매일 같이 온 몸을 깨끗히 씻게 했다.

이들이 몸에 꼭 붙는 진홍색 상의를 입고 유두만 드러낸 채 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서태후는 침상에 누운 채로 젖을 먹었다.

자신은 사람의 젖을 먹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대소변을 먹이는 것

이것이 바로 황실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P 419


이러한 일을 당하고 있음에도 서태후를 높이 우러러 본 태감들이다. 이게 정말 사실인걸 까 싶다가도 지금껏 봐온 청나라 시대의 드라마를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꽤 많은 태감과 궁녀들이 자기의 상전이 어떠한 나쁜 짓을 일삼든 상관않고 무조건 충성을 받쳤으니 말이다. 이런면을 보면 중국 드라마도 꽤 수준 높은 고증을 한 느낌이랄까?


의화단 사건으로 인해 서태후가 시안으로 피난을 가야했던 시기에 사건이 터진다. 당시에 서태후는 자신의 손으로 황제로 만든 조카 광서제를 포함하여 여러 궁인들과 함께 시안으로 피난을 가야 했는데 그 와중에 눈에 가시였던 후궁 진비를 죽음으로 내몬다. 겉으로는 진비가 관직을 매매하여 죽였다고는 하나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 처사가 매우 잔혹한 것만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진비 궁의 수령태감 30여명은 신형사에서 장형으로 죽었다. 


물론 이 책은 서태후의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태후와 동치제의 살벌한 모자관계, 황후와는 앙숙이면서도 향락을 일 삶다가 화류병에 걸려 일찍 죽은 동치제, 권력을 놓을 수 없어서 자신의 조카를 황제로 삼은 서태.ㅎ..........앗 그냥 이 책에 있는 황실 내용은 죄다 서태후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가 없다. 아! 책의 내용이 환관들이 구술한 기록이니 만큼 환관들 자신의 이야기도 꽤 있었다. 그들이 어째서 환관이 되었는지, 환관으로써 무엇을 해야만 했는지, 그런 이야기들... 그리고 끝은 언제나 본인들은 좋은 상전을 모시는 복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


하지만 이래저래 확실한 건 이 책은 청나라에 대한 얕은 배경지식이라도 없다면 읽기에는 조금 버거울 지도 모르겠다. 

내가 서태후를 처음 만난 때는 광서 28년, 태후가 68세 되던 해다. … 두 눈썹은 정기가 흘러넘치고 눈동자는 별처럼 빛났다. 아무도 감히 그 눈빛을 마주 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조정에서 군기대신들을 대할 때면 더 없이 온화하고 자상하면서도 그 표정과 자태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위엄이 서려있었다.… 서태후는 공적이 크고 과실이 적은 반면, 광서제는 공적이 적고 과실이 많다고 평가한 것은 확실히 정론이라 할 수 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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