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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6월
평점 :
뭐랄까, 내가 주로 읽는 책 장르는 역사·문화가 80%다. 나머지 20%가 여행서·에세이·소설. 그나마도 소설의 경우 역사소설을 비롯하여 미스테리나 추리, 환상문학 등을 주로 읽는 지라 이른바 문학소설이라고 하는 류는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 아 물론! 그렇다고 문학소설을 한번도 안 읽어 봤다고 하기에는, 한창 공부를 했어야 할 중·고등학교 때는 꽤 읽어 보긴 했다. 다만 기억이 안날 뿐. 음, 머리통이 커지고 나서는 문학소설과 완전 담을 쌓았기 때문에, 처음 읽는 거라고 해야 하는게 맞을 지도.
그런 내가, 출판계 인싸★ 작가정신 박대리님(ㅋㅋㅋ) 영업에 홀려 문학소설, 그것도 농촌을 바탕으로 하는 「놀로 가자고요」 를 구입하였다. 내 스스로 문학소설을 구입하다니! 호기롭게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일단 작가님 이름을 보니 완전 초면! 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또 완전 초면은 아니었더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예전에 역사소설(팩션) 「왕자 이우」를 구입한 적이 있는데, 그 소설을 쓴 작가님이 었다. 물론 이 책은 지금도 친정집 책장에 고이 꽂혀있다. 뭐랄까, 역사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막연하게 역사서나 혹은 진짜 관련 장르의 소설만 쓸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분의 작품들을 보아하니 그런 건 전혀 아니었나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이 책을 세 번 정독했다. 처음 이 책을 다 읽고 순간적으로 느낀건 “뭐지? 이렇게 읽으면 안되는 건가? 왜 남는게 없지?” 였다.
너무 오랫동안 역사서나 관련 책을 읽으며 익숙해진 읽는 방식이, 이런 소설을 읽을 때에는 완전 불필요한, 아니 아예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되었던 거다.
두 번째 정독. “아 농촌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남아낸 거구나”. 그리고 다시 세 번째 정독. “이 책은 농촌 이야기지만, 그 안는 ‘지금’이 남겨 있었네?”
선거철의 시끄러움은 도시만의 자랑이 아니었다. 오히려 농촌 더 시끄러울 수도 있었다. 색깔도 다양한 선거운동 차량이 … 중략 … 줄줄이 이어지는데, 집들이 대게 도로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고 늙은이들 귀가 대체로 어두우니 스피커 음량이 무지막스레 높았다. - P 162
요새 가장 만만한 타작거리가 이태백이란다. 스카이를 나온 젊은 놈이 왜 시골에서 어영부영하고 있는가. 모자라고 부실하고 능력 없고 그러니 도시에 못 살고 기어이 내려와 농촌 백수로 빌빌대는 거지 ……. 형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암튼 그러니 이태백들이 다 수도권에 있는 거다. 촌구석에는 백수 짓도 못한다. 좀 있어보이려고 해도, 말질에 된똥 쌀 판이니 배겨날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 P 190
내가 벌써 몇 년 독잰가! 두환이 경력은 넘었고 승만이 경력에 도전 중이구먼. 누가 이놈의 이장질을 하려고 해야 말이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흐으, 실은 선거서 당선이 되어버렸네. … 중략 … 민주주의로 뽑아놓은 시장 군수 것들 다 감옥 가 있는 거 보면, 민주주의란 것도 빛깔 좋은 호박댕이여. 그래도 민주주의밖에 방법이 없다니께 따르기는 하는디 - P 199 ~ 200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도 솟값이 안 오른다니?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떠들던 어떤 박사 말대로, 그 정도 죽어서도 솟값이 안 오를 만큼 이 땅에 소가 많은 것일까. 그렇게 한국 소가 많다면 미국 소는 왜 또 수입하는 걸까? - P235
도시에서 바라보는 농촌은 뭔가 여유롭고, 한적해 보인다. 큰 사건 없이 조용하게, 푸르른 산과 나무를 벗 삼아 살고 있는 그런 곳이다. 물론 그 속에서 농사 짓는 어려움, 하루 종일 뙤양 볕 아래 땀 흘리고 허리 한번 못 피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만 말이다. 적어도 도시에서 바라보는 ‘농촌’이라고 불리우는 그 곳에 대한 이미지는 딱 저렇게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조용할 것 만 같은 농촌에서, 실은 도시에서 보이는 그런 문제들이 속속들이 나타난다는 점이 신기하다면 정말 신기했다. 뉴스에서 쉽게 볼 법한, 늘상 우리 옆에 있는 그런 사회 문제들이 농촌소설이라는 방패막이 안에 들어와 제 각각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창 시절 문학시간에 배우던 아니, 그냥 머리속으로 외우기만 했던 소설 속 현실 풍자라는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을 읽는 내 제일 거슬렸던 사회 문제 (....라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소설 전반에 나오는 아이와 아이 부모의 태도였다.
어떤 노인도 소리 질렀다. "먼저 사람이 돼야지, 사람이! 아무리 장기 잘 두면 뭐해. 사람이 안 돼먹었는데!"
무서웠다. 울면서 뛰쳐나갔다. 아빠가 노인들에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나를 뒈지게 야단쳤다. - P 37
엄마도 분해서 소리쳤다. "다시는 거기 가지 마! 아니, 내가 못가게 할 거야! 그깟 놈의 장기 끊어. 그딴 거로 애를 왜 데리고 다녀서 애를 욕먹게 해!" - P 39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 푹 빠져 있던 아들 녀석은 손님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녀석의 머리통을 툭 건드리며, 인사드려야지, 했다. 녀석은 아이씨, 할 뿐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좋게 말하자면 숫기가 없고 나쁘게 말하자면 버르장머리가 없다. - P 251
초등학생이 되자 당연하게도 힘이 세졌다. 녀석이 인정사정없이 날리는 주먹이나 발길질에 얼굴이나 사타구니 같은 데를 맞으면 무척 아팠다. 아내는 아이 버릇 나빠지게 왜 맞아주느냐고 힐난하곤 했다. "애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거 아냐. 아빠 말고 누가 맞아주겠어" - P 277
읽는 내내 ‘뭐지?’ 했다. 버릇이 없어도 너무 없는 아이와 그 부분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부모. 요새 학교에서 공부,공부,공부만 외치기 때문에 인성교육을 안한다는 건 워낙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는데, 가정교육은? 아이의 그런 태도보다, 그 태도에 대해서 오히려 가만히 두거나 고치려 하지 않는 부모의 태도에 놀랐다. 심지어 아이의 태도에 맞장구 치는 느낌이 들어서 황당하기도 했다. 요즘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무개념 부모를 그리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이 책 후반부에 실려있는 노태훈 문학평론가의 작품해설을 읽고 나서 조금 당황했다.
'아이'라는 인물형은 특히 김종광이 사랑해 마지않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이 인물들에게서 그는 농촌의 '정서' 같은 것을 발견하는 듯 하다. 답답하고 고집스럽다가도 또 자유롭고 분방하게 행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지닌, 그래서 늘 양가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농촌의 풍경과 닮아 있다. 김종광의 '아이'는 늘 '노인'과의 관계속에서 성격을 형성하고 성장을 경험하는데 그것이 단순하게 교훈적으로 귀결되지는 않는 다는 점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겠다. - P 328
문학과는 친하지 않는 나여서 그런걸까. 아니면 아직 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을 잘 몰라서 그런걸까. 아니면 단순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시각차이일까.
큽 ㅠㅠㅠㅠ........다시금 문학이 어려워졌다. 역시 문학은 어렵..다...ㅠㅠ 뭐, 평론가들이 말하는 책에 숨어있는 메세지(?)를 읽어내기에는 실패했지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에게 가까운 농촌, 할머니댁이 계속 오버랩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책은 진짜 ‘농촌소설’이구나. 싶었다.
자식 많은 늙은이는 꿈에도 상상 못 했던 주차장 건설 공사를 벌여야 했다. 마당이 넓다고 소문난 집도 마당을 더 넓혀야 했다. 주차장 만들고 마당 넓히는 김에 아예 집을 새로 지어버리는 집이 속출했다. - P81
내 친가는 강원도 춘천, 외가는 전라도 영광이다. 아무래도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친가는 밭농사, 외가는 논농사가 주였다. 이 소설 배경인 농촌은 아무래도 외가쪽과 비슷하다. 외가쪽을 빗대어 말하자면 농번기 때 할매,할배는 언제나 바쁘다. 우리 엄마, 아빠를 비롯한 자식들은 나이 드신 부모님이 농사를 짓다 몸이라도 상하실 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여러 번 보았다. 우리집은 시골에선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만, 삼촌들은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시간되는 한에서는 자주 영광에 내려가 일을 도우는 모습도 종종 보았다(사진으로^^..ㅋㅋ). 그리고 어느 순간 할매집이 바꼈다. 분명 옛날 기와집이었는데.....현대식으로 바뀌었다. 화장실도 2개가 되었고, 심지어 침대까지 생겼다(이 침대는 외가집가면 언제나 내 차지였..). 마당도 차를 가져온 자식들이 주차를 할 수 있도록 넓어 졌다. 심지어 외가집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도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이제 농촌도 옛날의 농촌이 아니라 현대식으로 재탄생한 농촌이랄까? 이런 농촌의 변화가, 내가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보았던 할매집을 포함한 그 동네의 변화가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서 정말 놀라웠다.
막연히 문학소설은 어렵다, 읽어도 무슨말인지 모르겠다, 그런 느낌이 늘었었는데.. 정작 읽어보니 그렇게 막 담을 쌓을 정도 까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제 일반 문학소설도 조금씩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