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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여왕과 공주 ㅣ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Cha Tea 홍차 교실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8월
평점 :
지금까지 영국사 관련 책은 꽤 읽었지만, 크게 감흥이 없었다. 내가 읽은 책들이 대게 영국의 남성 위주 정치, 역사, 문화에 관련된 책이었기 때문인 영향도 크다. 그러다보니 관심 자체가 떨어지고, 관심이 떨어지니 이해도가 떨어지는 악순환! 영국 왕실은 비슷한 이름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관심을 갖고 봐야만 헷갈리지 않는다. 헌데 관심이 없으니, 찰스 1세인지 찰스 2세인지, 메리 1세인지 메리 2세인지 알게 뭐람?
그런데!
그런 나에게!!
영국사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영국 왕실에 관심을 갖게 해준 세계사책이 나왔다. 바로 오늘 읽은 세계사책 『영국의 여왕과 공주』 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영국의 ‘여왕’과 ‘공주’에 초점을 맞춘 세계사책이다. 여기에 차 문화(tea)를 한 스푼 더했다. 갑자기 왜 차 문화? 인고 하면, 저자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저자 이름은 홍차교실. 저자는 홍차(tea)를 좋아하고, 너무 좋아하다못해 관련 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 생각해보자. 홍차를 좋아하는 저자가 홍차에 대해 책을 쓴다. 홍차하면 떠오르는 나라? 당연히 영국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인도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감안하자. 거기 더해 실질적으로 차 문화를 유행시킨 장본인은 영국 궁정이다. 하나의 아이템을 유행시킬 수 있는 사람들은 권위가 있는 사람이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 궁정에서 차(tea)를 유행시킬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왕비(또는 여왕, 공주)다.
그렇게 이 세계사책 『영국의 여왕과 공주』가 나온 것이다.
책의 시작은 영국 왕실 가계도다. 솔직히 여기는 스킵. 여기도 제임스 저기도 제임스, 여기도 찰스 저기도 찰스, 메리가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가계도만 보면 솔직히 어렵고 헷갈리는게 영국 왕실이다. 그래서 난 영국 왕실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어느정도 영향이 큰 인물들만 기억하기호 했기 때문에다. 예컨데 유럽의 할머니 빅토리아 여왕, 부인킬러(이혼의상징) 헨리8세 블러디 메리(메리 1세) 뭐 이런 굵직한 인물들만 알고있어도 반은 먹고 들어가니까.
근데 여기서 반전. 이 세계사책 『영국의 여왕과 공주』에는 영국 정치사에서 굵직한 행보를 보였던 인물들은 없다. 대신 차 문화(tea)에서 만큼은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이다.
1662년 11월 25일, 윈저 궁전에서 열린 새 왕비 브라간사의 캐서린의 생일 축하연에서 궁정 시인 에드먼드 윌러는 왕비가 영국에 가져온 두 가지 선물을 상찬했다. 그 선물은 차와 차 생산지를 잇는 향료였다. p 010
1662년 5월, 캐서린은 영국 포츠머스에 상륙했다. 포르투갈에서부터 폭풍우를 뚫고 온 긴 배 여행에 지친 캐서린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멀미를 가라앉히기 위해 차를 요청했다. 그러나 준비된 것은 한 잔의 에일이었다. 당시 영국 궁정에는 차를 마시는 습관이 없었던 것이다. p 013
캐서린은 지참금으로 은 30만 스털링과 배 3척에 가득 실은 차와 설탕 그리고 향신료를 영국에 가져왔다. 또 인도의 봄베이, 북아프리카 탕헤르의 양도권도 큰 선물이었다. 봄베이는 왕비가 결혼한 후 영국 동인도회사가 연간 10파운드에 임대하면서 차 무역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1664년 인도네시아 반탐에서 귀항한 영국 동인도회사는 은으로 만든 상자에 담은 시나몬 오일과 양질의 녹차를 왕실에 헌상했다. 찰스 2세는 그 일부를 캐서린에게 주었다. 이후 차는 수입품 목록에 반드시 실리게 되었다고 한다. p 015
제 8대 브라간사 공작 주앙의 차녀이자 독실한 가톨릭신자 캐서린. 캐서린의 아버지는 30여년 뒤 포르투갈 국왕 주왕 4세로 즉위한다. 주왕 4세는 즉위와 동시에 스페인에 독립을 선언하며, 포르투갈-스페인 전쟁이 발발했다. 주앙 4세가 선택한 길은 영국과 결혼동맹. 주앙 4세는 자신의 딸인 캐서린을 영국에 시집보내기로 한다. 하지만 때마침 영국에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며, 가톨릭 신자인 캐서린의 결혼이 무산될 기로에 섰다. 다행히 영국에서 캐서린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기로 하며, 캐서린은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캐서린이 영국 궁정에 도착했던 그 때, 영국 궁정에는 차(tea)가 없었다. 그저 한잔의 에일을 마실 뿐이었다. 그런 곳에서 고국에서 차를 마시며 자란 캐서린에게 차가 없는 삶은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궁정에서 자국에서 가져온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차를 혼자만 마시지 않았다. 영국 궁정에서 차 모임을 자주 열며, 차 문화를 선도하며 유행시켰다.
그런 캐서린을 영국사람들은 ‘영국 최초의 차를 마시는 여왕’이라 부르며 칭송하였다.
캐서린의 삶을 잠시 들여다보면, 영국 귀족과 국민들은 캐서린의 신앙과 수차례 유산을 이유로 이혼을 요구했다. 하지만 찰스 2세는 늘 왕비를 존중했고 옹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왕비를 늘 존중한 찰스 2세에게는 13명의 정부가 있었다. 심지어 왕의 정부가 왕비 캐서린 침실 여관이 되었다. 대대로 왕의 정부가 왕비의 침실 여관이 되는게 관례였기에. 캐서린은 이를 감내했다. 왕이 왕비로써 그녀를 지켜주었기 때문에. 찰스 2세 사후 영국 명예혁명등 궁정이 불안정해지자, 왕비는 고향인 포르투갈로 귀국하여 여생을 보냈다.
동양의 차를 마실 때 사용된 작은 찻종과 받침으로 이루어진 구성은 ‘티 볼’이라는 애칭으로 알려져 있다. 브라간사의 캐서린은 영국으로 시집올 때 차와 함께 차를 즐길 다기도 함께 가져 왔다. 블루&화이트 색상의 아름다운 동양품 다기는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주변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좋아했던 캐서린 왕비는 친해진 귀족들에게 포르투갈에서 주문한 다기를 선물하기도 했다고 한다. p 017, 블루&화이트 티볼
1683년 7월 앤은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국왕 프레더릭 3세의 차남 조지와 결혼했다. 다소 미덥지 못한 인물이었지만 심성이 착했다. 앤은 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정원 가꾸기와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여섯 번의 유산과 여섯 번의 사산을 경험한다. 1689년, 고대하던 아들 글로스터 공작 윌리엄이 탄생했다. 하지만 윌리엄은 선천성 수두증이 원인이 되어 열한 살에 성홍열로 목숨을 잃는다. p 050
여왕이 된 앤은 켄싱턴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즉위 기념을 겸해 궁전의 정원 안에는 오렌지를 재배하기 위한 ‘오랑주리’가 지어졌다. 여름에는 이곳에서 차 모임을 열었다. 여왕이 된 자신을 막을 자는 없었다. 윌리엄 3세가 끝내지 못한 스페인 계승전쟁에도 관여했다. 같은 시기에 대륙에서 프랑스와의 전쟁도 발발한다. ‘앤 여왕 전쟁’이라고 불린 이 전쟁은 장기전에 접어들었다. 기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양국의 통합안이 진행되어 1707년 5월 양국의 ‘연합법’이 성립했다. 스튜어트 왕조 창설 이래 100년 남짓 동군 연합을 결성한 양국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되었으며, 앤 여왕은 최초의 국왕이 되었다. p 055
1685년 카톨릭 신자인 아버지가 제임스 2세로 즉위했다. 앤과 언니 메리(+메리 남편 윌리엄 3세)는 신교도였다. 영국 국교를 못마땅해했던, 카톨릭 신자이자 왕이었던 아버지는 앤과 언니 메리에게 카톨릭 개종 및 이혼을 강요했다. 영국 의회는 메리의 남편 윌리엄 3세와 함께 ‘신교도 국민의 권리 회복’이라는 반란을 시작하였고, 제임스 2세는 결국 프랑스로 망명했다.
차기 왕은 왕위 계승1위인 언니 메리가 되었어야 하지만, 남편 윌리엄 3세를 지극히 사랑했던 메리는 남편과 공동 통치를 시작. 왕위 계승 2위였던 앤을 뒤로 한채. 앤은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언니가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1702년 메리가 죽은 뒤 앤이 영국 왕으로 즉위했다.
왕이 된 앤이지만, 그녀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왕이 되기 전에는 수도 없이 자녀를 잃었고, 왕이 된 후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엔 전쟁을 끝냈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했다. 그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그레이튼 브리튼 왕국’이 시작된다.
앤 여왕 시대에 보급된 것이 은으로 만든 찻주전자이다. 앤은 서양 배를 모티브로 한 로코코 양시그이 찻주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이 우미한 찻주전자는 ‘앤 여왕 양식’이라고 불리며 상류층의 인기를 끌었다. 단 음식을 무척 좋아했던 앤의 식탁에는 다과가 빠지지 않았다. 머랭과 같은 설탕 과자, 향신료로 풍미를 낸 과일 설탕 절임이 대표적이었다. 앤이 가장 좋아한 것은 ‘서양 배 시나몬 콩포트’였다. p 057, 앤 여왕 양식
1761년 8월 17일, 고국을 떠난 샤를로테는 세 번의 폭풍우를 뚫고 9월 7일 영국에 상륙했다. 다음 날인 8일 대면한 두 사람은 6시간 후,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조지 3세는 식을 올린 후 아내에게 ‘정치에 간섭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원래 겸손하고 조신한 성격이었던 샤를로테는 왕의 말에 순종했다. 익숙치 않은 영어 때문에 고생하면서도 궁정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그녀를 조지 3세도 사랑스럽게 여긴다. p 094
음악을 사랑한 왕비는 바흐와 아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를 왕실 음악 교사로 초청했다. 1764년 5월에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버킹엄 하우스에 초청했다. 여덟 살이었던 모차르트는 샤를로테가 부르는 아리아에 즉석에서 반주를 만들어 붙였다. 모차르트는 1년간 머물면서 왕비에게 ‘런던 소나타’를 헌상했으며, 당시 유행하던 티 가든에서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p 099
1773년 북미에서는 보스턴 티 파티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13개 식민지가 영국에 반발했다. 영국은 유럽 내 주요 동맹국을 잃게 된다. 이런 상황은 샤를로테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딸들의 결혼 상대를 찾기 힘들어진 것이다. 왕가의 공주는 왕가로 시집가는 것이 통례였다. 왕족이 아닌 상대와 결혼하면 신분이 하락한다. 1783년 9월, 장기화된 미국 독립전쟁이 파리조약에 의해 종결되었다. 조지 3세는 광대한 식민지를 잃은 왕이라는 불명예를 안게된다. p 100
1818년, 정식 결혼을 통해 적자를 얻기 위해 3남, 4남, 7남이 잇따라 결혼했다. 3남, 4남 때는 국가의 경비 삭감을 이유로 합동결혼식을 거행했다. 식장은 샤를로테가 지내고 있는 큐 궁전이었다.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한 이후 샤를로테의 건강이 악화된다. 어머니의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자 섭정 왕세자 조지는 아이처럼 이성을 잃었다. 1818년 11월 17일, 샤를로테는 큐 궁전의 침실 팔걸이 의자에 앉아 섭정 왕세자의 손을 잡고 74년간의 인생을 마감한다. p 104
조지3세는 역대 왕들과 달리 정부를 두지 않고 샤를로테를 존중했다. 시어머니 아우구스타의 괴롭힘을 막아주기 위해, 버킹엄 하우스를 사저로 분리하였다. 버킹엄 하우스는 왕비를 향한 왕의 사랑을 나타내듯 ‘퀸즈 하우스’라고 부른다. 궁정파티보단 가족과 생활을 우선했다. 부부가 얼마나 사이가 좋았냐면, 둘 사이의 자녀가 9남 6녀다. 샤를로테는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유명한 어린 바흐와 모짜르트를 불러 연주회를 열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후 불행이 시작된다. 조지 3세에게 폭력성이 나타나며 정신 장애가 생긴다. 이후 건강을 회복하긴 했으나, 그의 생활은 예전만치 못했다. 뿐만 아니라 조지3세 형제들 사건사고로 영국 왕실 지지율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왕비 샤를로테는 어떻게든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궁전 부지에 ‘퀸 샤를로테 코티지’를 지어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나며, 조금이나마 회복되었던 조지 3세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 건강이 악화된다. 설상가상으로 아들 왕세자 조지도 악행을 일삼기 시작했다. 차남, 삼남 모두 사건사고에 휘말렸다. 심지어 막내딸이 세상을 떠나며 조지 3세는 정신을 놓고 만다. 조지 3세는 의사소통마저 불가능해지며, 윈저성에 유폐된다. 왕세자 조지가 섭정을 시작했다.
정말 샤를로테 삶은 눈물없이는 볼 수 없다. 영국판 인간극장이 바로 이런건가 싶다. 이 책에 나온 다른 여성들도 저마다 사연이 있었지만, 샤를로테를 이길 사람이 있을까 싶다. 남편을 잘 만나서 행복할 일만 남았는데, 남편 건강 이슈, 남편 형제 이슈, 자식 이슈 바람잘 날 없는 시간이 계속된다. 그런 그녀가 마음 둘 곳이라고는 오직 왕세자 조지의 딸, 손녀였다. 하지만 장성한 손녀마저도 결혼 후 출산 과정에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정말 안타까운 삶 그 자체인 샤를로테. 하지만 차 문화에 있어서 만큼은, 차를 마시며 행복했을 그녀의 족적이 뚜렷하다.
1765년 5월, 샤를로테는 웨지우드 공방에서 개발한 흰색 도기인 크림웨어를 주문했다. 이 소박한 그릇은 큐 궁전과 퀸 샤를로테 코티지 그리고 프로그모어 하우스 등 왕비의 사적인 식탁에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샤를로테는 이 크림 웨어에 ‘퀸즈 에어’라는 특별한 명칭을 붙였다. 1788년 샤를로테는 국왕과 함께 우스터에서 열린 음악제에 참석했다. 그리고 우스터 공방에 들러 티 세트와 디너 세트를 주문한다. 호화로운 궁정에 어울리는 그릇과 함께 중국 자기의 연꽃 모양이 디자인된 호박한 청화 자기 ‘블루 릴리’도 구입했다. 이 식기는 후에 프로그모어 하우스의 식탁을 장식한다. 그 후에 이 문양은 왕비에 대한 경의를 담아 ‘로열 릴리’로 불렸다. p 106, 왕비와 도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