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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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현대사에는 여러국가가 등장한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소련이다. 소련은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1922년에 세워진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준말이다. 러시아 영토를 비롯하여 북유럽, 중앙아시아 내부까지 광활한 영토를 자랑했던 인류사 최초 공산주의 연방국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 유럽을 장악한 히틀러 조차 막아냈던 나라가 소련이었다. 이렇게 보면 소련이라는 나라가 우리 근현대사와 무슨 연관이 있나 싶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을 상기해보자. 



1945년 해방 이후 우리가 살고 있는 남한은 미군이 통치했다. 북한은 어땠을까? 바로 소련이 통치했다. 무엇보다 소련은 냉전 시절 공산주의 종주국이기도 했다. 지금에야 공산주의 종주국을 중국이라 생각하지만, 중국이 치고 올라오기 전까지만해도 공산주의 종주국은 거대한 영토를 가진 소련이었다. 그런 소련이 1991년에 붕괴되었다. 12월 25일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 사임과 함께.



미국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소련 붕괴를 세계사적 흐름에 따른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가르쳤다. ‘제국’이라는 정의가 사라진 세계에서, ‘제국’을 표방한 소련은 붕괴될 수 밖에 없었다고. ‘제국’에 반발한 연방국가들의 민족주의적 독립 열망도 거기에 더했다. 이런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고르바초프라는 위대한 인물이 소련에 민주주의 라는 대의를 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고 미국 역사가들을 비롯하여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말했다. 



그렇게 소련 붕괴는 당연한 역사적 흐름이며, 대의를 위한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위대한 희생이라는 인식이 뇌리에 박혔다. 많은 학생들이 교과 과정에서 이러한 내용을 배웠다. 정말일까? 소련은 역사적인 흐름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붕괴된 것이며, 고르바초프는 소련에 민주주의 씨앗을 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위대한 영웅인걸까? 이 세계사책 『소련 붕괴의 순간』 저자는 그런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인정받는 고르바초프의 공인 전기를 쓴 미국 작가 윌리엄 타우브먼은 “고르바초프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타우브먼은 고르바초프가 러시아를 변화시키려고 했으며,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지만 새로운 국가, 사회, 경제를 건설하는 데는 당연히 실패한 유례없는 “비극적 영웅”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p 041



미국과 서방에서 가르친 고르바초프와 실제 책 속에 비친 고르바초프는 극과 극을 달린다. 개인적으론 책 속에 보여지는 고르바로프가 사실에 가까운 모습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고르바초프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이 만들어난 환영이다. 오롯이 소련 붕괴를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눈으로 만들어낸 환영인 것이다. 고르바쵸프의 헛발질이 소련에 암울한 미래를 가져다주든 말든 미국을 포함한 서방은 관심없었다. 심지어 고르바초프가 소련에 민주주의를 일으키고자 미국의 도움을 원했음에도, 미국은 그저 관망했다. 미국 입장에선 ‘이념’에 따라 공산주의는 사라져야했으며, 따라서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결과론적으로 미국은 소련을 해체한 고르바초프를 위대한 영웅이라 일컫고,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저자는 이 책 『소련 붕괴의 시간』을 쓰기에 앞서 무려 30여년간 자료를 모았다. 출처 미국, 러시아 문서고 등 정부기관에서 확인한 각종 보고서를 포함해서 과거 KGB 및 MIC 요원을 비롯하여 사회 각계각층 사람들 인터뷰를 망라했다. 



신레닌주의적 웅변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집권하고 첫 2년 동안 어떤 개혁 전략을 취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 놀랍게도 안드로포프가 소련의 거시 경제 안정성에 관해 제기했던 시급한 문제는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식량 수입을 줄이고, 무역수지 군형을 회복하고, 그림자 경제를 강력히 단속하고, 노동력을 규율할 필요성 말이다. 고르파초프의 작성문은 소련 경제를 괴롭히는 경제적, 재정적 문제점에 대한 진단은 담지 않았다. p 044



예측에 따르면 5년 내로 소련 경제는 재편되어 국내 소비자 요구에 부응하고 해외로 수출할 만한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할 것이다. 과거에, 소련의 현대화 시도는 서방의 회사를 끌어들여 신규공장을 지었던 1930년대나 1960년대에 최상의 성과를 낳았다. 신규 기업에는 새로 훈련받은 기술자와 노동자가 필요했는데, 그들은 싫든 좋든 외국의 관행과 표준을 따랐다. 이는 경쟁과 여타 시장 추진 요인이 부재한 상황에서, 노후한 공정과 화석화된 작업 관행을 극복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1986년 고르바초프의 조치는 기존 국영기업의 장비 교체에 돈을 투자했다. 대규모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정책이었다. 오래된 공장의 경영자와 노동자는 보수적으로 행동하며 혁신에 저항했다. 값비싼 서구 장비는 대부분 구공장과 시설에서는 절대 사용되지 않았다. p 047



고르바초프는 레닌을 영웅시하며, 소련을 구할 혁명가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눈 앞에 보이는 소련의 문제점들을 급진적인 방법으로 개혁하고자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르바초프가 끌고가야 했던 소련은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위기에 직면한, 깊숙한 곳까지 뿌리박힌 문제점들을 개혁을 하지않으면 자멸할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는 점이다. 누가봐도 시급하게 개혁을 진행해야 했다. 소련의 불행은 그 개혁을 진행할 사람이 고르바초프였다는 점이다. 그는 그야말로 탁상머리 행정가의 표본이었다.



진짜 어둠은 겪어보지 못했으나, 글로써 어둠을 배웠으며, 글로 배운 어둠을 급진적으로 개혁하고자 한 이상주의자 그게 바로 고르바초프였다. 제일 중요한 사실은, 그의 이상에는 ‘현실(또는 현장)’이 없었다. 그의 이상은 책상위, 책 속에 있었다.



고르바초프가 선호한 정책, 인텔리겐치아를 달래고 공화국의 지배 엘리트에게 책임을 이양하는 정책은 더 나은 개혁이 아니라 혼란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는 발트 지역과 남캅카스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소련의 핵심 슬라브 공화국들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리주의를 가능케하고 정당화했다. (…) 1988년 후반, 고르바초프의 부관들 일부는 세금과 재정을 중앙이 통제하는 단일국가, 최소한 강력한 대통령을 둔 연방을 헌법상으로 긍정할 것을 제안했다. 그 대신, 고르바초프는 눈에 뻔히 보이는 유고슬라비아의 나쁜 사례에도 불구하고 ‘더 강한 공화국들’이라는 치명적 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그는 인민대표대회와 최고소비에트같이 대의제 기구지만 다루기 힘들고 통치 능력이 없는 기관의 권한을 강화했다. (…) 당 독재를 대체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시스템은 해방과 자유화를 의미했지만, 견제와 균형을 제공하지 않고 특히 러시아연방에서 악성 포퓰리즘과 민족 분리주의로 가는 관문도 열었다. 유사한 참사가 경제에도 일어났다. p 389



물론 그가 소련을 이끌고 나가는 동안, 무능함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는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그 기회들을 스스로 날려버렸다. 그렇게 무능한 이상주의자가 이끌던 소련은 끝내 회생이 불가능했다. 그의 무능함은 소련에 잘못된 개혁방안, 연방국가들의 민족주의적 독립열망, 포퓰리즘, 발트 3국의 독립투쟁, 막대한 부채, 권위주의, 사회보장제도 파괴, 대규모 탈산업화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련은 붕괴했다. 



연방은 해체되었고, 연방의 중심이었던 러시아는 살아남아야 했다. 온갖 오물을 유산으로 떠안은 러시아가 살아남는 방법은, 놀랍게도 소련 시절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는 길이었다. 그렇기 소련 시절 유산을 물려받은 러시아는 혼란기를 지났다. 현재 러시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소련의 잔재를 밟고 선 러시아의 현재는 어떠한가. 뭐, 남의 나라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제 우리나라로 시선을 돌려보자. 이 세계사책 『소련 붕괴의 순간』을 읽다보면, 묘하게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나온다. 분명 내가 살던 나라도 아니고, 내 조상들이 살던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책 전문가, 관련분야 정치가들은 전부 배제한 채 측근 엘리트, 검사들만 기용하던 대통령. 현실에 눈 돌린채, 자기만의 이상을 펼치려던 대통령. 줄곧 잘못된 정책을 펼치며 자신의 무능함을 자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보이던 대통령. 그 결과, 대한민국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곳이 파괴되었다. 그다마 다행인 점은 대한민국은 소련과 달리 잘못된 정책에 반대하고, 정당한 항의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파괴가 되었어도, 어찌저찌 삐걱대며 돌아는 가고 있다. 문제는 이 상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가!



언제쯤 대한민국에 진짜 “봄”이 올까.

우리 딸 만큼은 진짜 “봄 날”을 살게 하고 싶은, 간절한 엄마의 소망을 하늘이 들어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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