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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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를 쓴 저자는 유퀴즈에 출연했었던, 종양내과 의사다. 그를 찾는 환자들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삶이 얼마 남지 않는 말기암 환자들이다. 이 의사가 말기암 환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완치가 아닌, 환자들의 기대여명을 조금이나마 늘려주는 것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늘상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만나고, 환자들의 기대여명을 늘려주기 위한 치료를 하고, 늘상 자신의 환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간에 만났던 환자들과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에세이, 이 책은 분명 에세이다. 하지만 흔히들 힐링 에세이라고 말하는 ‘다 잘될거야!’, ‘걱정마!’ 라는 어줍잖은 위로를 담은 그런 에세이가 아니다. 오히려 읽다보면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거나, 갑작스레 슬픔이 몰려와 눈물이 나오는 내용도 있었다(회사에서 읽다가 눈물이 훅 올라와서 큰일날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제일 깊이 생각했던 점은 ‘죽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태어난다. 일종의 숙제라면 숙제이고,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의 숙제를 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인생의 숙제를 풀든 풀지 않든, 어떻게 풀든 결국 죽는 순간 그 결과는 자신이 안아드는 것일테다. 기대여명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특별한 보너스일지도 모른다. 보통은 자기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 채로 살다가 죽기 때문이다. p 063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날을 받아두지 않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친다한들 우리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를 감사히 여기며, 무엇을 하든 허투루 보내지 않아야 하는데, 난 내 삶을 진심을 다해 살고 있는 걸까? 싶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고,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은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정말 난 내 삶을 후회없이 살고 있는게 맞는 걸까? 이 챕터를 읽고서,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정답이 나오지 않았다. 삶이란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나?



택시 모는 제 동료 중에서는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도 있어요. 아침만 해도 반갑다고 인사했는데 저녁때 장례식장에서 만나니 어찌나 허무하던지. 그렇게 갑자기 가지 않고 죽을 준비까지 끝내 놨으니 저는 얼마나 다행이냐 싶더라고요. 행복한거죠. 안그래요 선생님? p 094


폐암 4기 환자의 보호자였다가, 나중에는 흉선암 환자가 되어 항암치료를 받았던 환자. 기적인지, 원래 그럴 운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암치료 후 완치되어 일상을 살며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환자. 이 사람의 남긴 “죽을 준비까지 끝내놨으니” 라는 말을 자꾸 되뇌게 되었다. 죽을 준비란 대체 무엇일까. 1차원적으로 본다면 자산, 보험 등 나를 둘러싼 행정적인 것들을 처리하는 것이 있을 테지만, 왠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분이 말한 죽을 준비는, 내가 내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간,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내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말하는게 아닐까 싶어졌다. 아니, 왠지 꼭 그런 느낌이었다. 


여기서 다시 떠올랐다. 외국에서는 죽기 전 6개월의 시간은 치료를 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는 그 말이.



그 어머니는 그날 미처 신발을 태우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며칠 뒤에 결국 새 신발을 새로 샀다고 했다. 아이가 살아 있을 때에는 비싸서 사주지 못했던 브랜드 신발이었다. 그녀는 낡은 슬리퍼를 끌어안은 채 새 신을 따로 태우며 한참을 울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죽은 아이의 신을 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사기도 한다는 것을. 그들은 그렇게 가슴에 아이를 묻었을 것이다. p 124


회사에서 이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눈물이 차올랐던 부분이다. 가슴아픈 죽음이 어디 한둘이겠냐마는, 그 중에서도 채 꽃피우지 못한 어린 아이의 죽음은 정말 담담하게 지나치기엔 너무 어렵다. 이렇게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이들도 그렇고, 정말 갑작스럽게 사건 사고로 죽어간 아이들도 그렇다. 2014년이 있었던 비극적인 세월호 사건. 어른, 아이 할 것없이 정말 많은 인원에 물속으로 가라앉았던 그 때도 그랬다. 유독 아이들의 죽음에 더 아파했었다. 특히 어른들이 곧 구해줄거라는, 가만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으며 기다리던 그 모습을 보며 더더욱 그랬다. 



나와 만난 젊은 환자들이 암을 극복한 뒤에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 친구도 있고, 눈을 돌려 해외에 있는 기업에 취직한 친구도 있다. 운 좋게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는 경우도 더러 있고 일찌감치 자영업을 모색하는 친구들도 있다. 대개는 부모의 지원이 가능한 경우였다. 그러나 가장 많은 경우 여전히 백수이거나 혹은 취준생으로 지내고 있다. 그들 가까이에서 지켜본 현실은 훨씬 비정했다. p 128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돌아온, 완치 판정을 받은 이들에겐 언제나 꽃길만 펼쳐져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더 슬픈 사실은 꽃길조차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완치 판정을 받는다면, 그들에겐 진짜 꽃길이 펼쳐진다. 끝날뻔한 생을 다시 얻었으니, 그야말로 제 2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니, 공기 좋은 곳에 살며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본다. 오로지 내 건강 하나 챙겨가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저런식의 행복한 제 2의 인생은 남일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다시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한다. 분명히 죽음에서 살아돌아왔는데, 다시 살길을 걱정해야한다는 아이러니. 얼마나 슬픈일인지.



하지만 이렇게 슬픈 현실도 현실이다. 당장 인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내 앞에, 스펙이 짱짱한데 암 완치경험이 있는 취업준비생이 있다면?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그 사람을 채용하라 말할 자신이 없다. 완치되었다고는 하지만 혹시나, 회사에서 근무중에 암이 다시 발병한다면? 심지어 그 사람이 회사의 고된 업무로 암이 발병한 것이라고 한다면? 우와. 정말 생각만해도 눈 앞이 핑 돈다. 비정한 현실이지만, 결국 현실은 현실이다. 더 슬픈건 이런 현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 씁쓸하다.



지나간 10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환자가 된 그 교수님이 아직은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던, 여든 초반에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참 멋진 사람으로 기억했을 텐데. 10년의 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생각해보면 마음이 어지러웠다. 혹여 가족들도 그를 힘들게 봉양했던 노인으로 기억하게 되면 어쩌나. 내가 항암치료를 너무 열심히 해서 팔십 평생 쌓아온 그의 멋진 인생을 망쳐놓은 것이 아닌가. 돌아보면 그를 치료해온 그 기간 동안 몇 번의 위기가 있었는데 그때 돌아가더라면 환자나 가족들 모두가 행복할 수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p 254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 분명 누군가에겐 유효한 말이지만, 또 누군가에겐 유효하지 않은 말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죽음에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돌아오자마자 다시 살 길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환자가 되어 10년간 부질없이 생을 연명한 교수님도 그럴 것이다.



과거에야 평균 수명이 60세에 불과해서, 만 60세 만 되어도 오래 살았있음에 감사하며 환갑잔치를 열며 기뻐했었다. 하지만 지금 평균수명은 80세를 훌쩍 넘어서, 오래 사는게 감사함이 아니게되고, 기쁨이 아니게 되었다. 본디 암이라는 것은 오래 살면 살 수록, 어쩔수 없이, 누군가는 걸릴 수 밖에 없는 병이다. 장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질병인 것이다. 내가 아무리 건강한 식습관에,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한들, 내 몸속에 있는 세포들 중 어딘가에선 분열 중에 암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뿐만인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의식주 해결이 기본이다. 이 의식주 해결을 위해선 경제적 자본이 필요하다. 만약 나에게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면, 나를 돌봐야 하는 누군가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지우게 된다. 결국 경제적 자본이 없다면,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이라도,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채 부질없이 생을 연명하는, 가족들에게 부담을 지우며 ‘기대여명’을 최대한 늘리는 치료가 정말 올바른 답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삶을 산다는건, 다들 당연하게 ‘살아간다’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죽어가는’ 것이다. 모두 죽음을 앞에 두고, 하루 하루를 지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삶을 ‘죽어간다’라고 하지 않고, ‘살아간다’라고 말한다.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모르기에,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인해, 정작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 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일까? 삶은 언제나 찬란하고, 죽음은 언제나 슬픈 일일까? 누구든 한번쯤은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봐야할 시간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 이 해답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니, 곰곰히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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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7-07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피로 2021-07-08 06:5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07-08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피로 2021-07-08 06:5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