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미녀들 1
스티븐 킹.오언 킹 지음, 이은선 외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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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모두가 잠든 시간, 혼자 깨어 편안하게 책을 읽습니다.. 내가 잠들기까지 얼마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입니다.. 간혹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고 잠든 아내를 건너보고 쩍벌하고 잠든 강아지를 쳐다보곤 혼자 웃곤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수면의 세상속으로 들어간 표정들이거덩요, 가르릉거리며 코를 고는 어린 아이와 모로 누워 간혹 편안하지만 힘들어보이는 표정으로 잠든 아내에게 살며시 다가가 쪽하니 사랑을 남기지만, 아이는 잠결에 포옹을 원하고 아내는 잠결에 으르렁거립니다.. 간혹 건드리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마저 듭디다.. 여하튼 인간은 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입니다.. 자야되죠, 저 역시 잠을 사랑하고 잠을 원하는 중년의 피곤덩어리 뚱땡이 아저씨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지 않은 이상 잠이 들면 깨어납니다.. 영원히 잠들지는 않죠, 그것을 알기에 우린 편안하고 행복한 잠자리를 만듭니다.. 삶에 찌들고 하루에 시달리는 막바지에 잠을 위한 조금의 시간을 할애하여 나를 위한 재미난 스티븐 킹의 작품 한 단락 정도의 읽을 시간을 가진다면 남들보다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더라도 그 행복감이 배가 될지도 모를 일이죠,


    2. 누군가가 잠든 시간에 잠들지 못해 깨어있으면 참 시간이 더디갑니다.. 함께 숨을 섞고 눈을 마주치며 지낸 시간은 쉽게 흘러가버리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모든 이가 잠든 시간에 가지는 여유로운 시간의 더딤이 어느순간 서서히 지리함과 공포감과 두려움으로 변질되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언젠가는 깨어날 줄 아는 잠의 세상속에서 수면의 미로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체 끊임없이 잠의 감옥에 갇혀버린 누군가가 생긴다면 말이죠, 그리고 그것이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과 같다면 말이죠, 끊임없이 함께하며 숨과 몸과 마음과 내가 가진 모든 신체적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사랑하던 가족들이 나만 남겨둔 체 잠속으로 빠져든다면 어떨까요, 그게 여성에게만 국한되어서 발현된 현상이라면 어떨까요, 남성성이 가진 불완전함을 보완해주고 끊임없이 남성적 부족함을 메꿔주던 이 세상의 여성들이 모두 잠들어버리는 시간이 다가온다면 우린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까요, 지금 당장 조금씩 누군가가 잠의 세상속으로 빠져들어가기 시작하고 남성들은 평생을 맞춰오던 균형감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불안한 세상이 드러날까요, 반대로 여성이 남고 남성이 모두 잠들어버린다는 가정을 해봅시다.. 남자이자 꼰대인 저로서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세상처럼 느껴지는건 왜일까요, 여성만이 남겨진 세상이 그렇게 불안하고 두렵고 공포스럽게 느껴지진 않죠, 하지만 모든 여성이 어느순간 잠들어버리고 세상에 남자만이 남겨지기 시작한다는 설정만으로는 우린 두렵고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이런 성향의 서사를 가장 잘 이끌어내는 작가하면 누가 떠오르십니까, 스티븐 킹의 신작 "잠자는 미녀들"입니다.. 이번에는 인물적 입체감을 자신의 아들인 오언 킹과의 공저로 더욱 두드러진 묘사와 심리적 매력까지 얻어냅니다.. 줄거리 함 보실까요.


    3. 미국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의 한 소도시에서는 딱히 변함없는 하루가 시작할 듯 합니다.. 도시의 변두리의 여성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교도소조차 변함없는 하루를 시작하고 있죠, 도시의 보안관 라일라 노크로스는 남편 클린턴 노크로스와 함께 수영장이 딸린 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클린트는 정신과 의사로 여성 교도소의 정신과 업무를 보고 있죠, 물론 부인인 라일라은 둘링의 치안을 담당하는 보안관이구요, 나름대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곳에도 서쪽에서부터 시작된 원인불명의 오로라병의 불안감이 서서히 잠식해나가기 시작합니다.. 이 원인불명의 기현상은 여성에게만 전염되는 것으로 잠이 들면 몸에서 거미줄과 같은 하얀 실과 같은 것이 온몸을 감싸고 고치처럼 전신을 뒤덮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이죠, 만약 이 하연 실과 같은 물질을 제거하고 여성을 깨우려들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곤 하는 모냥입니다.. 여기까지는 일단 뉴스에서 조금씩 보여지는 정보에 따른 이야기입니다.. 아직까지 둘링에서는 이런 심각성이 드러나기 전이죠, 여전히 교도소는 새로운 아침을 시작하고 여성들은 온갖 상황속에서 자신의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비라는 미지의 여성이 등장하죠, 작품의 서두에서부터 뭔가 환상적인 나방과의 협연을 펼치더니 동물과 대화도 가능한 모냥입니다.. 그런 그녀가 산속 마약상의 트레일러로 다가갑니다.. 빌어먹을 범죄자인 마약상과 함께 살아가는 약에 찌든 한 여성은 현실과 꿈속에서 헤매지만 트레일러안으로 들어온 이비가 저지른 엄청난 폭력과 살인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비는 쓰레기 같은 마약상들을 맨손으로 머리를 으깨버리죠, 그렇게 둘링의 비극은 막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근데 이 이비라는 미지의 여성은 누구일까요,,,,,,


    4. 지구상의 생명체의 대부분은 성이 구별되어 있습니다.. 수컷과 암컷으로 구분되어 이들은 종족을 이어나가며 자연속에서 그들만의 진화를 만들어나갑니다.. 그리고 유독 독특한 생명체가 있죠, 제가 허구헌 날 떠드는 인간이라는 종입니다.. 이 종은 생각이란걸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표현할 수 있죠, 이들은 소통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연이 부여한 성별을 서로를 위한 균형으로 맞춰나갑니다.. 하지만 남성성과 여성성의 뚜렷한 차이는 언제나 서로간의 문제를 일으키곤 하죠, 털끝만큼의 잘난 것도 없는 지랄맞은 남성성을 이용하여 여성들은 제대로된 균형잡힌 대접을 받질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똑같이 생각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또한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세상없이 불완전하고 부족한 남성의 퍼포먼스를 보조해주고 협력하고 가르치고 알려주고 심지어 이끌어주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여성분들이 화가 나겠습니까, 안나겠습니까, 심지어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과 불균형의 형평성들이 얼마나 많은 아픔과 고통과 생채기를 남겨놓고 살아가고 있는 지 웬만한 남성들도 압니다.. 알고 말구요, 그러나 부족하기만 한 우리 남성들은 그런 여성분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서질 않죠, 일종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고 가부장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사회적 권리를 유지하려고 온갖 비열한 행동마저 유치하게 떠들곤 합니다..  저 역시 가부장적이고 꼰대근성의 중년의 배나온 아저씨임에도 세상은 그렇게 느껴집니다.. 심지어는 운전중에 심한 말도 하죠, 차도 막히는데 뭐할려고 나와서 이렇게 위험하고 깝깝하게 운전하는 지, 그냥 집에서 시간나시면 잠이나 주무시지.......


    5. 그렇습니다.. 원하는대로 되었네요, 세상의 모든 여성분들이 물레의 침에 찔려 잠에 빠져버리는 동화속의 오로라처럼 한순간에 허연 누에실처럼 온몸을 감싼체 고치처럼 세상 모르게 잠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킹 부자는 대단히 매력적이고 섬세한 심리적 묘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갑니다.. 동일한 성의 역학적 관계임에도 우린 남성이 잠들어 버리는 것보다 여성이 잠들어버리는 것에 대한 불안한 공포가 더 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남성이라서 그럴까요, 여하튼 이러한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된 서사는 천천히 그리고 아주 자세한 상황적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1권의 이야기는 수면병이 발현한 둘링이라는 소도시에서 벌어진 하루의 시간동안 소설속에 얽힌 인물들의 모든 상황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점차 다가오는 공포의 순간을 맞이하는 인간의 모든 심리적 묘사가 두드러지게 그려지죠, 이들 인간들의 근원적인 본성의 불안심리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킹쌤만큼 뛰어난 작가가 없다는 점은 수십년동안 인지한 부분입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의 아들 오언 킹도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관여가 되었는 지는 모르지만 전반적인 문체나 감성의 느낌은 스티븐 킹의 감성에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각각의 인물들에 부여한 이미지와 그 설정적 관계와 영역의 개연성등에 아마도 아들의 능력이 협업되었지 않을까하는 비전문적인 감상을 해봅니다..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킹의 장대하고 야심만만한 디스토피아소설이 초반의 이야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은 서사와 줄거리와 대중적 속도감을 즐기길 원하는 일반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지리하게 느껴지기 십상입니다.. 하루동안 수많은 일들이 각각의 인물들의 상황속에서 벌어지는 이 상황적 스토리가 과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요, 그렇게 다양한 인물적 서사는 후반으로 넘어가면 그 역학과 주변의 영역에서 빛을 발하리라 믿어의심치는 않지만 속도감과 가독성에서 주춤하는 부분에 되어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6. 우스개소리이긴 하지만 문득 읽다보니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이 작품의 설정은 단순한 남성과 여성의 구분법으로 여성의 수면병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럼 퀴어라 불리우는 성소수자들의 입장과 그들의 상황은 어떻게 될까라는 애매한 상상말이죠, 남성의 신체에 여성의 마음을 가진 분들의 경우에는 잠들지 않겠죠, 여성이지만 남성의 모든 것을 보유한 분들은 잠들어버리나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고 소설은 자연의 섭리와 기준과 상황적 흐름을 소설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합니다.. 이비라는 미지의 존재가 보여주는 남성의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의도와 함께 말이죠, 가독성과 속도감에 대한 불만을 조금 드러내긴했지만 이 작품은 무척 섬세하고 꼼꼼한 인물들의 다양한 면모를 그려내는 뛰어난 장르적 캐릭터 감성스릴러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기존의 킹의 스타일을 즐기시는 분들이시라면 환호할만한 '돌아온 킹'정도의 행복을 만끽하시리라 믿습니다.. 특히나 가지각색의 인물들을 설정하고 그들의 모든 것을 낱낱이 그려낸 1권과 함께 이어질 2권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즐거울 것이 틀림없다는 점도 믿습니다.. 악화될대로 악화되고 가라앉을대로 가라앉은 남성들의 근원적인 폭력성과 참을성이 이젠 폭발하고 누군가는 이에 대처하는 합리적 방안을 마련할때니까요, 아마도 이어지는 2권에서의 속도감은 천천히 완행의 계단을 차츰 밟아처 척척 올라간 롤러코스터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강렬함을 이끌어내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으로 첫권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순간 남성들은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무엇보다 무시하던 세상의 여자들에게서 떨어져나와 홀로 남겨졌으니까요, 아시다시피 남자들은 외로움을 견디질 못합니다.. 되돌리든, 같이 무너지든.... 그 끝을 봐야죠, 2권에서 다시.....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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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6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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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혼란입니다.. 조금 과하게 말하면 전쟁과도 같은 상황처럼 불안과 공포가 엄습한 시간을  걱정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저처럼 아무생각없는 사람마저 지금의 이 상황이 두려울진데 예민하고 날카로운 많은 국민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주변에 누군가가 전혀 일면식도 없는 타인으로 인해 나에게 어떠한 신체적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다분한 전염병을 발병시킨다면, 엄청난 불안감이죠, 특히나 연세 많으신 면역성이 떨어지신 어르신들이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우리 사회의 혼란이 빨리 진정되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도 또다시 이러한 불안한 상황이 생기질 않길 바라죠, 제 경험으로도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하는 심각한 전염성 바이러스의 공포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두렵다고 조심하던 사스와 메르스를 넘어서는 엄청난 파괴력을 보이는 슈퍼 바이러스이기도 하거니와 현재 이런 바이러스를 충격적으로 전파하는 분들의 면면들이 국민들에게는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죠, 이제는 단순한 감염경로와 그 과정으로 바이러스 확진자와 주변인을 확인하고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전국적으로 퍼져버린 현실에서 국민적 대응과 도움이 필요해져버린 시점이죠, 이럴때 사실 우리는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에게 이러한 두려움과 고통과 공포를 선사하는 대상에 대한 탓을 누군가에게로 돌리기 마련이죠, 국가를 탓하고 그 수반의 잘못으로 돌리고 누군가는 종교의 문제로 여기고 그 와중에서도 이단이라는 또다른 사회적 거부감을 들춰내기도 합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그들의 비밀스러운 행동이 없었다면, 그들이 제대로된 대처로 상황을 잘 따라주었다면, 또 그들이 지금이라도 국가적 위기감에 자신보다 종교보다 인간이라는 근원적인 공감을 가지고 이 어려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2. 자주하는 말로 이 시국에,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대중들은 상황에 동조하고 그 영향력내에서 행동하기 마련이죠,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혼란의 시국을 이용하고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는 악한 이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악하다고 밖에 말을 못하겠어요, 전국에서 종교와 관련된 모임으로 대중적 두려움과 공포가 극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마트에서는 기본적인 생필품을 생존을 위해 사들이고 준비하는 일반 서민의 삶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나라를 탓하고 대통령을 탓하고 정권을 탓하고 그리고 자신은 문제없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모인 사람들도 전혀 문제없다고 소리치고 선동하는 행위를 볼때 정녕 그러한가, 저 분들은 그들의 믿음속에서 현실적 두려움을 극복하실 수 있구나, 근데 혹여라도 자신도 모르게 감염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염 전파가 되었다면, 누구를 탓할 것인가, 자신은 절대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가정을 확신할 수 있는가, 그 확신 자체가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를 무너트리는 악한 감정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혼란의 시기에는 그렇죠, 모두 누군가를 탓하고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를 지켜내기 급급합니다.. 그리고 혼란은 인간이 뭉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죠, 그게 악하든 선하든 상관없습니다.. 보통은 이런 혼란을 이용하는 무리들이 악하기 마련이죠, 사회적 혼란을 자신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무리들, 그게 권력을 쥔 기득권자들이든, 사회적 범죄자들이든 상관없이 이런 사회적 혼란과 대중의 공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엿같은 족속들은 언젠가는 그 죗값을 받기 마련입니다.. 마이클 코넬리의 "블랙박스"는 그런 사회적 혼란속에서 살해당한 한 여기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에 해래 보슈의 몇번째 작품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나이가 찰만큼 찬 보슈는 미제사건 처리반에서 일종의 계약직으로 형사를 하고 있습니다..


    3. 1992년 L.A는 혼란이 극에 달한 시기였습니다.. 흑인인 로드니 킹에 대한 과격한 경찰들의 집단 폭행이 심각한 사회적 동요를 일으키죠, 그 당시 해리는 경찰국 강력범죄 소속으로 L.A 폭동이 발생한 시점에 수많은 범죄현장을 담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확인한 현장에서 한 여성의 죽음을 만나죠, 폭동으로 인해 주방위군의 군인들이 상주하던 시내의 한 골목에서 발견된 여성은 외국 기자인 듯, LA경찰서 출입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변을 담당하는 군인들에 의해 발견된 여성의 이름은 안네케 예스페르센이라는 이름으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살해된 정황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또다른 사건이 발생하고 이 현장은 다른 담당 형사에게 넘겨질 상황이죠, 해리는 현장에서 발견한 탄피 하나와 잠시 주어진 시간동안 현장의 증거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지만 역부족입니다.. 그렇게 사건은 미제로 남아버리고 20년이 흐르죠, 해리의 기억속에 안타깝게 죽음을 당한 한 외신기자의 기억은 오랫동안 그의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LA폭동 20주년을 기념하며 그 당시 미해결사건을 해결하고자하는 경찰국의 의지에 따라 '백설공주 살인사건'이라 명명한 안네케의 사건을 해리가 다시 끄집어내게 됩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사건의 내막과 어떠한 단서도 쉽게 찾아낼 수 없죠, 그 당시 단 하나의 탄피의 증거만으로 유일한 단서를 찾아낸 해리는 사건 발생 후 7년이 지난 시점에 살인이 발생한 사건의 탄피와 동일한 증거로 그 살인사건의 범죄자를 찾아가면서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됩니다.. 유일한 단서 하나에서 시작된 20년 전 사건의 진실과 그 정의를 이번에도 보슈는 찾아낼 수 있을까요,


    4. 92년 LA폭동은 흑인들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발생한 것이죠, 원인이 굳이 떠들지 않아도 미국내 인종차별의 근원적 문제이기도 한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들의 일방적 편견과 과격한 진압방식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이 혼란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우리 한인들이었습니다.. 미국내에서 자영업이 주인 한인 이민가족들에게 며칠간 불어닥친 공포와 피해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죠, 전쟁과도 같은 현실이 발생하고 주방위군이라는 미군들이 시내를 관할하게 되죠, 코넬리 작가는 LA를 배경으로한 작품을 집필하죠, 기자로서 자신이 이름을 내건 지역도 LA이고 자신의 첫 소설을 선보인 배경도 LA입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살아가는 코넬리 작가에게 있어서 92년의 폭동은 잊지 못한 기억의 아픔이기도 하겠죠,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속, 무엇보다 자신의 대변인과 같은 해리 보슈에게서 그 당시의 기억을 소환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그 당시의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이죠, 20년이 지나 사람들의 기억과 그 현장의 부조리한 범죄적 모순들이 잊혀질때쯤 코넬리는 과거를 들춰냅니다.. 모든 이들은 해결방법이 보이지않는 그 사건을 들춰낼 필요가 있냐라고 물을때 해리는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 한 여성의 마지막과 그 죽음으로 평생을 괴로워하며 진실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을 떠올리죠, 그게 자국민이 아닌 먼나라 북유럽의 누군가라도 상관없습니다.. 해리에게는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그 가치에 대한 가장 진실한 소망일테니까요,


    5. 아시다시피 해리 보슈를 만나보신 분들이시라면 그가 주변의 어떠한 상황에서 거침이 없다는 사실은 아실겝니다.. 절대 타협하지 않죠, 그는 20년을 이어오는 시리즈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줬습니다.. 단순한 정의와 사회적 명성을 위해 사건을 해결하고 진실을 찾는가라는 물음에서 부터 자신의 개인적 성향과 집착과 범죄에 대한 자신의 집요한 욕망에 대한 부분까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슈는 이제 60세가 넘은 할아버지 형사입니다.. 언제 짤려도 할 말이 없는 계약직 직원입니다.. 그렇다고 쉽게 짜르지도 못하는 LA경찰국의 윗대가리들에게 보슈는 눈에 가시처럼 거북스러운 존재이기도 하죠, 소설은 그런 보슈의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세월의 흐름에 대한 인물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덧입히는 작가의 능력을 대단히 뛰어납니다.. 늘 말씀드리는 코넬리월드의 세계속에서 해리는 살아 숨쉬는 하나의 인간으로 남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세월과 함께 같이 나이를 먹고 자신의 자리에서 진실을 찾아 집요하게 정의를 실현하는 보슈는 어느순간 자신의 가족인 매들린과 함께 수십년을 지켜온 자신의 언덕 테라스에서 범죄의 세상에서 은퇴를 한 후 LA의 야경을 바라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를 들으며 맥주를 마시는 시기가 올겝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이 작품의 국내 출시는 2019년이지만 미국에서는 소설속 내용과 동시대인 2012년이잖아요, 아직 국내 독자들에게 해리를 만날 기회은 많이 남았습니다..


    6. 솔직히 마이클 코넬리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해리 보슈 시리즈는 굳이 이런저런 평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요, 저에게 있어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우선순위로 마이클 코넬리라 툭 내뱉을 정도로 저에게는 일종의 주관적인 최애작가이니 그동안 시덥잖게 떠들어댄 독후감속에 꿀발린 아첨을 엄청 해댔습니다.. 그만큼 모든 시리즈가 기복없이 나름의 즐거움과 감흥을 줍디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간과하기 쉬운 범죄적 진실을 놓치지 않고 사회적 무관심속에서 그리고 기득권과 권력자들의 사회적 문제인식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그 의도가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한 외국 여성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굳이 20년이 지난 시점에 파헤칠 이유가 없죠, 사회의 굴레와 시스템속에서 잘 흘러가는 톱니를 덜커덕거리게 중간에 멈춰세울 이유가 없다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과거로부터 이어온 기득권들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기생하고 살아가는 한심한 꼰대들과 족속들의 방식들이죠, 그리고 우린 이런것들을 관행이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말합니다.. 보슈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가정에서 제대로된 교육과 부모의 영향력속에서 자라온 사람도 아니거니와 어린시절 죽음의 사선속에서 홀로 땅굴속에서 고독속에서 살아남은 존재이죠, 누구와도 타협하지않고 홀로 외떨어진 사람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좋은것만 찾고 좋은것이 진실이라고 최면을 걸고 우린 그렇게 편안하게 살아가려고 나쁜 것중의 진실을 외면하고 거부하고 살아가지만 이렇게나마 해리같은 인물을 만나면서 그동안 외면하고 거부하고 무관심하던 세상의 나쁜 진실을 조금이나마 공감하는 것에 난 충분히 만족스럽게 생각한다는거지요, 코넬리는 그런 이야기를 그만의 작품속에 투영하는 작가입니다.. 물론 그 배경이 미국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공감하고 즐기고 있습니다.. 번역 작품들이 조금 힘을 내주면 좋겠는데 출판사가 여의치 않아보여서 안타깝기도 하군요, 기다려봅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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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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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거 지인의 말처럼 굳이 알려고 들지말고 궁금해하지도 말고 알아서도 안되는 그런 세계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또다른 이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우리나라의 한해동안 실종되는 인구수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사실 제가 좋아라하는 이런 장르의 소설을 봐서 그런지 몰라도 참 놀랍기도 하더이다.. 한해동안 평균 8만명이상의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소재불명으로 이어진다고 합디다.. 연령과 성별과 상관없이 그렇다고 하더군요, 많은 부분이 대체적으로 소재불명으로 가출이나 미신고처리된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과거에는 더 심했을테죠, 다른 가족들에게서는 이러한 아픔이 없어야될테지만 저의 친지들중에서도 과거 실종되어 돌아오지 못하신 어른들도 계십니다.. 어디에서든 살아계실거라고 믿고 기다리다 돌아가실 연세가 되셨다면, 그리고 수십년동안 어떠한 기별도 없었다면, 음력 구구제에 제사를 지내기도 합니다.. 저의 집안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선가 살아만 계시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편안하시길 바라지만 누군가는 가족과 생이별을 고한 체 사회와 우리들의 세상속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하니까요, 특히나 어린 아동이나 여성의 가출과 함께 이어지는 실종사건들은 참으로 안타깝고 아픈 현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세상은 더욱더 인간의 삶의 질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선진국으로 나아가지만 지금 이순간 여전히 수십년전과 다름없이 아픔과 고통과 괴로움과 무엇보다 사회적 범죄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속에서 발자국이 사라져버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몸서리치도록 아프고 두렵기 그지없습니다.. 이들은 아픈 죽음으로나마도 기억되질 못할지도 모르니까요


    2. 인간의 삶이란게 참 우습죠, 채 백년을 살아가지 못하는 미비한 존재인데 또한 자신의 의지로 뭔가를 깨우치고 즐기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이런저런 시간을 공제하고 나면 평생 채 15년이 되지도 않을진데 우린 왜 이렇게 아둥바둥거리고 탐욕을 부리고 집착을 하고 분노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고통받고 살아가야하는 걸까요, 누군가가 한 스님에게 묻습디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한스럽고 후회되고 화가 난다구요, 자신의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체 50평생을 살아오다보니 가만히 뒤돌아 온 길을 돌이켜보니 너무 화가나고 슬퍼서 우울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님께서 그러시더군요, 그럼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마, 그리고 과거에 그렇게 살아온 것도 나이고, 앞으로 다르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도 난데, 후회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한다고 과거가 없어지나, 그렇게 과거에 화낼거 앞으로 즐겁게 사는 생각에 힘을 보태라고 말이죠, 그동안 살아온 세상과 삶이 앞으로도 쉽게 바뀌진 않을겝니다.. 허나 이제는 나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조금은 주변을 놓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온갖 인간군상들의 세상속에서 굳이 나의 과거의 삶과 미래의 삶을 후회하며 살 필요는 없으니까요, 인간은 살기위해 모든 것을 걸지만 결국 죽기위해 달려가는 길 아니겠습니까, 집착하고 욕심을 부려본들 인생의 끝자락이 당장 내일이 될 지 우떨지는 모르는 인생인데 말이죠, 이 소설속의 '래생'의 삶과 그의 시선속에 보여지는 세상을 만나면서 소설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조금 해봤습니다.. 이 소설은 김언수의 "설계자들"이라는 작품입니다.. 내용은 암살자의 세상과 그들의 비열하고 무정한 죽음의 영역을 다루고 있죠, 실제로 존재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있다고 칩시다..


    3. 래생은 산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한 노인을 죽이기 위해 기다립니다.. 하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기질 않습니다.. 그러던중 노인이 래생을 찾아옵니다.. 산속을 헤치고 래생을 찾아온 노인은 자신의 거처에서 하루를 보내길 권하죠, 래생은 노인을 따라 거처로 갑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노인과 술자리를 하며 노인과 삶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렇게 깨어난 아침 래생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노인을 암살합니다.. 래생은 고아입니다.. 수녀원에 버려진 래생을 도서관장인 너구리 영감이 데려와 암살자로 키우죠, 너구리영감은 수십년동안 누군가의 요구에 따라 암살을 진행하며 계획을 짜는 설계자로 살아왔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대부분의 밝음에 가려진 어둠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추악함을 감추고 살아갑니다.. 너구리 영감이나 이들 설계자들이 행하는 범죄들도 그러한 것들이죠, 세상의 역사와 권력자와 기득권들이 원하는 그들만의 철옹성을 위해 설계자들은 어둠속에서 그들의 목적을 대신해줍니다.. 너구리 영감이 그 중심이었지만 세상이 변하면서 그의 제자인 한자같은 해외 유학파 설계자들이 조금씩 그 자리를 차지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래생은 여전히 너구리 영감과 함께 하죠, 설계자들과 암살자들에게 친구나 우정이라는 개념은 무의미합니다.. 누군가로 인해 언젠가는 누구를 죽이든 누구에게 죽든 이들의 삶이란 무의미한 것이죠, 그렇게 래생의 삶과 주변도 급변하는 이들의 추악한 세상속에서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한명씩 자신의 주변인들이 죽어가며 래생과 너구리영감의 삶도 위태로워집니다....


    4. 사실 이 작품이 먼저 나왔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뜨거운 피'를 앞서 읽었더랬죠, 무척이나 비정하면서도 느와르적 감성과 인간의 내면적 심리의 페이소스가 가득찬 작품이었던지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장르소설이나 대중소설이 머리속에 오래 남는다는 것은 그만큼 독자들의 감성을 끊임없이 자극한 매력적인 작품이었다는 증거이겠지요, 그리고 이번에 펼쳐든 "설계자들"은 또다른 설정과 구성이긴 하지만 김언수 작가 특유의 감성적 느와르의 문장력이 그대로 이어지는 듯 합니다.. 물론 '설계자들'의 감성이 '뜨거운 피'에 이어졌겠지만 이 감성적 자극성은 국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흔한 느낌이 아닙니다.. 심지어 국외의 소설들속에서도 쉽게 느껴보지 못하는 아주 저릿한 감성적 공감이 있습니다.. 일반 대중이 공감하기에는 조금은 별세계와 같은 삶의 어둠속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일반인이 겪어보질 못하는 이 세상의 추악한 이면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인간이라는 그 자체가 주는 동질감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문득 또 기생충이 떠오르긴 하지만 이 작품이 쓰여진 2010년도의 시점에서 어느누구의 작품보다 사랑받을 수 있는 뛰어난 국내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미스릴러권에 내놓더라도 절대 주눅이 들지 않을 그런 작품입죠, 아직 국내 소설의 해외적 역량이나 홍보가 부족하긴 하지만 김언수의 이야기와 인간의 내면을 그린 그의 문장력은 탁월합니다.. 영어권의 번역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만 소개된다면 찬사를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만큼 김언수 작가가 드러내는 인물들의 입체감이 좋았다는 것이죠, 또한 서사와 흐름의 매력도 아주 뛰어나구요,


    5. 또 사실 이전에 읽은 '뜨거운 피'와 "설계자들"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합니다.. 솔직히 그런 느낌을 끊임없이 받았습니다.. 설정과 소재만 다를 뿐이지 주인공과 주변인들의 이야기나 흐름과 감성적 느와르가 주는 독자적 감응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어쩔수 없이 두 작품이 비교가 되니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죠, 각각의 작품이 주는 매력은 엄청납니다만 두 작품을 경험한 독자로서는 다른 두 작품을 하나의 매력으로 묶을 수 밖에 없습디다.. 단지 이 작품에서 보았던 약간의 어설픔과 약간의 내용적 구성의 헐거움과 인물 위주로 이어지는 독백과도 같은 감성적 느와르의 문장력은 다소 어색한 면이 있으나 이러한 부분은 '뜨거운 피'에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음을 느꼈구요, 하지만 '뜨거운 피'는 "설계자들"이후 한참이 지나 출간되었으니 뒤늦은 이 독후감은 전혀 앞뒤가 안맞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비정한 액션과 상황적 반전과 내용적 매력은 아주아주 좋습니다.. 수많은 주변인들의 이야기속에서 펼쳐내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단순한 공감, 아무 의미없은 인생의 회색공간속에 놓인 인물이 자신을 둘러싼 주변에서 살아감과 죽어감에 대한 그만의 입체적 감성을 드러내는 표현과 심리와 묘사는 대단히 좋습니다.. 뭐 비교가 될 지는 모르지만 한국판 데니스 르헤인의 감성도 느껴집니다.. 그만의 스타일리쉬한 우리의 감성적 비정함은 아마 세계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 같은데 이런 작품 누가 좀 눈여겨 봐줘요, 멀리서보면 이 작품의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오히려 전형적인 이야기죠, 장르의 틀속에서 흔한 스토리로 이어집니다.. 암살자로 살아온 누군가가 자신의 조직을 위협하는 누군가를 외롭고 힘겹게 대결하는 스토리, 흔하죠, 근데 우린 왜 이런 김언수의 소설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6. 국내에서도 많은 작가님이 꾸준히 집필을 해오시고 국내 장르문학의 부흥을 위해 노력을 하시고 계시긴하지만 역부족이죠, 실제로 우린 책을 잘 사지도 잘 읽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구입을 한다면 허접하게 치부하는 대중소설보다는 인문서나 자계서 위주로 구입을 해야 그나마 나 스스로에게도 개인적 품격을 높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있어보이죠, 허나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나 미디어에서 생산되는 온갖 장르물에 흠뻑 빠집니다.. 책으로 읽기엔 좀체 손이 가지 않는 이야기들이 활자를 통해 느껴지는 여과적 멀티적 사고가 아닌 직관과 있는 그대로 투영되는 화면속의 이야기에 중독되는 것이죠, 왜 일까요, 그토록 기생충의 반전과 시그널의 스릴러와 부산행의 자극스러움이 책으로는, 책을 통해서는 느끼길 꺼려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정서적 거부반응은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온갖 베스트셀러와 온갖 도서 홍보와 온갖 책과 관련된 사회적 구성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반복되는 인문서와 자기계발서등을 통해 긍정적 인간의 효율적 세상의 밝음을 드러내곤 합니다.. 그렇죠, 좋은 내용이고 동의와 공감과 수긍이 절로 이루어지는 좋은 서적들이 많습니다.. 누가 뭐래요, 어떤 도서든 읽으면 좋죠, 근데 읽지도 않을 고전문학, 인문문학, 아니 읽어도 다 읽지못할, 아니 다 읽어도 재미없어할, 그러나 남이 보기에 좀 있어보이고 가치스러워보이는 도서들을 사고자하는 이율배반적인 우리네 모습, 뭐 아닐겝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요, 아님 제 주변의 몇몇분만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주 가까이에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 책이 즐겁고 재미지고 자극적이면 정서에 문제가 되고 굳이 들춰낼 필요가 없는 범죄적 세상의 불쾌감을 가중할 이유는 없죠, 그럼 왜 우린 그토록 자극적이고 피튀기는 드라마를 그것도 15세라 버젓이 제시하고도 어린 아이들에게 여과없이 보여지는 그런 장르적 영화나 드라마에 중독되어 있는 것일까요, 고마해, 요까지,


    7. 김언수의 "설계자들"은 아주 매력적이고 즐겁고 재미지고 흥분되는 느와르스릴러소설입니다.. 15세의 자극적인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지 못한 감수성과 뛰어난 문장력이 살아 숨쉬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좋은 소설입니다.. 기생충을 그토록 싫어하고 거부하던 꼴통 꼰대들도 세계가 인정하면 그때서야 친분을 끄집어내려고 하는 족속들, 우리나라의 민낯중 하나일겝니다.. 저질스럽고 불쾌하고 전형적이고 흔한 대중적 키치적 세계관속에서 사회의 부조리와 딜레마를 끄집어내는게 누군가에게는 그동안 저속한 설정처럼 치부되어온 세상이 아닐까, 김언수의 "설계자들"은 그런 세상을 다룹니다.. 허나 김언수가 보여주고자하는 세상은 저속하고 비열하고 무정한 삶일지언정 인간이라는 근원적인 본질은 잊지않죠, 언듯 보여지는 TV화면속의 잘난 전문가들의 뒷배경 책장속에서도 원서와 좋은 인문서들과 함께 멋진 김언수 작가의 작품 한권 정도는 내보여지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제발 쫌,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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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사랑법 스토리콜렉터 81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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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어른들은 자기들의 생각과 판단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걸까요, 왜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요, 조금은 철없어 보이고 조금은 미숙하고 조금은 모르는게 많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부모님들의 생각은 과연 옳은건가요, 저 역시 부모이고 어른이고 또 누군가의 자식입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려주고 그들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줄 여유가 없는 기성세대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기위해 수많은 군더더기와 시덥잖은 곁다리적 말들을 가져다 붙입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마지막의 요점은 어이없게도 제일 처음 던져놓은 이야기의 시작점과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부모들은 그들이 바라보는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시작과 함께 다 알아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어른들과 부모들은 아이들을 인식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철없는 생각과 판단을 가진 존재로 치부하고 가르치려고 들고 알려주려고 합니다.. 그들이 알고 배우고 익히고 경험한 모든 삶의 지혜와 학습들을 말이죠, 그리고 이 모든 학습속에는 어쩔 수 없이 터득한 관행과 관습과 거짓된 진실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그들의 삶에 녹아난 세상의 생활속에 자연스럽게 하나의 진실로 세뇌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아이지만 또 어린 아이들의 부모이기에 이러한 어설픈 철없음과 맹목적 과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온갖 혼란과 복잡다단한 삶의 울타리속 풀숲을 제낄때마다 튀어나오는 벌레와 곤충을 발로 밟고 없애면서 눈에 보이는 이 풀밭은 깨끗하고 무해한 공간이라고 자평하는 것이죠, 그러나 쉽게 이 풀밭에 자유롭게 몸을 뉘이고 맨몸으로 뒹굴지는 않죠, 자평한 무해한 공간에서 벌레에게 물리길 원치는 않을테니까요, 그렇게 나의 눈에 띄지 않은 벌레들의 역습은 없을거라고 확신하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2. 솔직히 세상에는 지랄맞은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온갖 악한 인간들이며, 자식들의 아이들과 가족을 내팽개치거나 학대를 저지르는 정신나간 어른들이며 이 시대의 올바른 세상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국민을 대변하고 사회를 이끄는 정치인들이나 정말 정말 지랄맞은 족속들이 흔하디 흔합니다.. 좀 과한가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시대를 살아내는 저같은 한낱 월급쟁이 민초들의 삶과 울타리속에선 맨발로조차 풀밭을 쉽게 거닐질 못하니까요, 그럴러면 버물리나 물파스 정도는 구비해야지만 최소한 양말이라도 벗고 풀밭을 거닐 수 있을겝니다.. 애초부터 적응되지 못한 자연의 풀밭속의 삶에 대한 거부반응이겠죠, 인간의 사회라는게 그런 것 같습니다.. 온갖 해로운 족속들로 가득찬 위험한 삶이 공존하는 곳이죠, 누구나 벗어나고 싶지만 어느누구도 헤어나오질 못하는 생명의 미로와 같은 공간의 세상입죠, 그렇기에 우린 조금이라도 어리고 연악하고 목소리가 작고 힘이 없는 이웃과 아이들과 철없어보이는 어설픈 누군 가의 말 한마디조차 귀 기울여 들어본다면 조금은 나은 세상의 풀밭에서 최소한 반바지만이라도 입고 앉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 사회의 범죄적 불안과 공포에 대한 대단히 대중적인 문장과 자연스러움으로 집필된 영미스릴러 한권을 읽었습니다.. 흔한 범죄스릴러소설이고 더 흔한 FBI수사관과 프로파일링 범죄심리학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입니다.. 마이크 오머의 조이 벤틀리 시리즈의 첫 작품 "살인자의 사랑법"입니다.. 원제는 '어 킬러스 마인드'라꼬  뭐 살인자의 심리, 정신, 마음 뭐 이런거 아니게씀꽈,,, 원제와는 좀 안어울리죠, 뜬금없이 사랑법이라니...


    3. 제목은 소설의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연쇄살인자와 관련된 이야기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여기에서 사랑법이라는 개념은 살인마가 여성을 살해해서 방부처리해서 시신을 폐기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내용이라고 보셔도 무방하겠습니다.. 하지만 제목만으로 판단컨데, 아 이 부분은 뒤에 말합시다.. 여하튼 이 소설은 한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기 전 벌어지는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이 남성은 여성을 살해한 뒤 방부처리를 하여 시신을 호숫가로 옮겨놓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점의 버지니아에서는 조이 벤틀리라는 한 여성의 삶이 다루어지죠, 이 여성은 버지니아주의 FBI에 근무하는 범죄심리학자입니다.. 그녀는 과거 자신에게 발생했던 사건으로 인해 나름의 트라우마로 인해 잠 못드는 밤을 보내는 여성이자 프로파일러입죠, 그리고 또다른 한명의 FBI수사관이 이곳을 발령받아 옵니다.. 테이텀 그레이는 발령과 함께 시카고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에 대한 자문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덥잖은 범죄심리학자를 만난 테이텀은 자신이 본 조이 밴틀리를 자문에 참여시키죠, 이렇게 이 파트너는 일련의 연쇄살인과 관련된 진실찾기를 해 나갑니다.. 이것과 함께 트라우마로 이어지는 조이 밴틀리의 과거의 이야기가 등장하죠, 어린시절 조이가 살던 소도시에서 발생한 여성 성폭력 연쇄살인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조이가 경험한 이야기가 동시에 이어집니다.. 현재의 조이 밴틀리의 모습을 어느정도 유추해볼 수 있는 과거의 이야기입죠, 그렇게 현재와 과거와 연결되며 시카고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에 대한 단서를 찾던 중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는데......


    4. 뭐랄까요, 이 작품은 대단히 잘 읽히는 대중스릴러소설입니다.. 문장이 주는 흡입력이 대단합니다.. 자연스럽고 일반적이고 유머러스한 대화와 인물들의 파트너십적 대중적 공감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뭔가 독자가 원하는 서사와 집중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꼬 전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이고 전형적이고 대중적인 캐릭터와 사건의 상황적 정황이나 흐름들이 주는 호기심도 나쁘지 않았구요, 중간중간 이어지는 주인공의 과거의 이야기에 대한 또다른 매력과 이와 함께 인물과 함께 엮여지는 입체적 이미지도 매우 훈륭했습니다.. 조금은 의도적이고 억지스러운 두명의 캐릭터간의 조합이 보여주는 캐미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상황을 이어가는 방법들이 자연스러워서 가독성 하나는 아주 뛰어나다는 칭찬을 할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실질적 주인공이자 서사의 중심에 있는 인물인 조이 밴틀리라는 여성의 시선속에서 범죄라는 상황이 주는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이 독자들에게 또다른 공감적 측면을 부여하는 부분도 칭찬해야겠습니다.. 과거의 조이와 현재의 조이를 연결하며 연쇄살인과 범죄의 세상속에 놓인 여성들의 삶이 겪는 두려움을 그녀로 인해 자연스럽게 투영하고 또한 이를 목적으로 정신나간 범죄를 저지르고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의 심리를 프로파일링하는 전문적인 목적과 개인적 목적을 교차시켜가며 독자들의 흥분을 일으키는 방법론은 이 작품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해야겠습니다.. 특히나 후반부에 들어서서 이어지는 살인자의 행위나 상황적인 반전이 주는 공포스러움은 대단했습니다.. 연쇄살인마, 사이코패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살인의 행위를 확장시켜 나가며 범죄를 일으킬때 독자로서 받아들이는 충격은 제법 묵직했습니다.. 전 그랬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단순한 이유로 범죄가 확장되어버리는 상황을 의도한 작가의 서사에 깜짝 놀랬구요, 무엇보다 마지막 한줄의 이어질 작품의 이야기에 대한 충격적 반전은 흔한 밑밥이 아니라 낚시줄에 대왕 오징어 한마리로 고래만한 참치하나 던져줄 것 같아서 기대가 큽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아쉬운 점이 제법 눈에 띕니다.. 일단 앞서 말씀드리려다 만 제목과 관련한 부분입죠, "살인자의 사랑법"이라니요, 사랑법이라함은 일종의 로맨스가 느껴지죠, 내용속에 분명 제목과 연관된 연쇄살인마의 정신질환적 집착적 살인이 벌어지긴 하지만 애초의 제목에서 연상된 의도와는 다르죠, 그럴려면 살인자의 앞에 연쇄라라고 덧붙여야함이 온당하나 원제가에서 시리얼이라는 단어가 없었기에 본 제목이 되었겠지만 또 그럴러면 오히려 원제를 그대로 사용하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원제를 그대로 차용하기가 쉽진 않죠, 참 고민이 많으실 부분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 제목이 주는 미스디렉션은 개인적으로는 미스테이크라꼬 아쉬움을 하나 남기면서 또다른 아쉬움은 문장들이 주는 자연스러운 연결로 인해 몰입감과 이야기의 흡입력은 대단히 뛰어남에도 사실 범죄적 상황이나 흐름이 주는 즐거움은 조금 빈약합니다.. 잘근잘근 씹어주는 서스펜스나 긴박감은 느껴지지 않죠, 물론 생각의 차이에 따라 이러한 즐거움을 가지신 분들도 없진 않으실테지만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방법론의 연쇄살인마를 대하는 흔한 범죄 프로파일링소설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스토리에서 저로서는 하나의 상황이 등장함과 동시에 아니 얘네, 하고 어설프게 답을 내려버렸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저의 판단이 충격적인 반전과 결말로 이어져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제법 아쉽습니다.. 하기사 이러한 제 추측은 저한테만 국한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전 사실 '나이브스 아웃'이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하나의 장면이 도출되자마자 의견을 제시했다가 그 의견이 결말의 진실과 동일하기에 큰 재미를 못 느낀 일인이기도 하니까요, 보지도 않고 제시한 추리로 오히려 스포일러를 남발하는 나쁜놈이 되어버린 찝찝한 기억이....


    6. 자,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아주 매력적인 영미스릴러 대중소설입니다.. 뛰어난 스토리텔링과 뛰어난 대중적 문장의 흐름이 주는 가독성과 흡입력은 아주 즐거움을 안겨주는 재미라고 봐야합니다.. 저 역시 숨도 쉬지않고 끝까지 읽었습니다.. 읽는동안 다른 생각 안하고 행복하게 즐겼으니까요, 만족스러운 스릴러소설인데다가 마지막이 주는 충격적 결말의 이어짐에 대한 기대감이 워낙 강렬한지라 다음 작품이 어서 등장하여 독자들에게 선보여지기를 바라기도 하지요, 그리고 이 작품은 과거의 여느 남성 위주의 파트너적 관계를 탈피해서 전적으로 여성의 시선과 시점을 중심으로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과 주변의 범죄적 세상에 대한 정의로운 영향력을 선보이는 여성적 장점이 가득한 작품임을 명심합시다.. 물론 매력적인 테이텀 그레이라는 인물이 조이 밴틀리의 모든 것을 거들고 조화를 이루는 즐거움이 큰 작품임에도 조이라는 한 범죄심리학자의 개인적 삶와 그녀의 디테일한 심리와 전문적 프로파일링이 이 작품 시리즈의 중심이라는 점이 가장 큰 중심이죠, 또한 작가가 보여주는 살인마에 대한 무정하고 객관적이고 사이코패스적 무감정적 이해에 따른 상황의 연결과 그들의 심리를 그려낸 표현력은 뒤이어 벌어진 대결에서 더욱 찰지고 끈끈하게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매우 큽니다.. 올해는 좋은 영미스릴러소설들이 많이 출간되어서 연초부터 즐거운 독서가 이어지는 것 같아서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게다가 참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기도 해요, 이 작품이 보여주는 기성세대들의 아집과 그들의 이기적 잣대와 이들의 관행적 판단들이 얼마나 큰 문제를 야기시키는가에 대해, 제 스스로도 나름 반성을 해봅니다.. 지나가는 말로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 봉준호감독이 왜 미국에서 상 받은게 그렇게 대단해, 우리나라에서 더 좋은 상 받으면 되지....." 이걸 단순히 니가 틀렸어, 미국에서 주는 상이 최고야라고 한다면,,,, 아이들 말에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진실을 그대로 투과하는 순수함, 그죠, 아님 말고..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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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왕
니클라스 나트 오크 다그 지음, 송섬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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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빠, 중국인들이 박쥐를 먹어서 이번 전염병이 생긴거래, 우한이라는 중국의 도시에서 생겨서 전세계로 퍼트리고 있대, 중국사람들 옆에 가면 안된대, 그 사람들 야만인들이래, 막 아무거나 잡아서 먹고 못먹는게 없대, 이 이야기는 어린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흔히 접하는 너튜버같은 동영상 사이트에서 퍼트리고 있는 가짜 뉴스에 의한 대단히 심각한 문제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시선을 아주 정확하게 알려주는 이야기입죠, 그래서 전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러니까 너네는 중국인을 만나면 바이러스가 옮는다고 생각하는거네,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어서 현재 유럽에서 동양인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는 혐오적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유럽의 서양인의 몰지각한 일부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아주 비열하고 저질스러운 인종차별에 대해서 자세하게 예를 들어서 말해주었습니다.. 한 서양인이 마트에 온 한국인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고함을 치며 저사람 바이러스 걸렸다고 마트에서 쫓아내라고 했답니다.. 심지어 그 한국인은 태어나서 중국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친구임에도 말이죠, 아이들은 조금 전 자신들이 한 말은 잊고 아빠의 예시에 흥분하고 분노합니다.. 이해를 못하는 것이죠, 왜, 아무 상관없는 우리나라 사람을 그렇게 차별하고 나쁘게 말하냐는 것입니다.. 전염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몇몇의 같잖은 서양인들에게 중국인, 한국인 상관없이 동양인은 모두 야만스럽고 저질스럽고 거지같은 비루한 사람들로 비춰지고 그들로 인해 온갖 문제가 발생한다고 여긴다고, 그리고 조금 전 너네가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중국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한번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물론 아직 아이들이라 두개의 시선을 하나로 잇는건 조금 어려움이 있어서 아빠로서 간만에( 좋은 이야기 좀 해줬습니다..


    2. 중국인 출입 금지니 우한교민이 자기네 동네로 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니 하는 것에 대해 이해는 합니다.. 그리고 일종의 혐오적 시선도 상황에 따라 어느정도 수긍을 할 수 있으나 그러한 방식이 고착화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죠, 익히 우리는 일본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에게 혐한의 이유로 혐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겪어오고 있습니다.. 혐오는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감정적 발산임에 그것을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조장하고 이용하고 하나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사회적 시선은 대단히 저급한 의도를 가진 것이죠, 지금의 일본이 그러하고 과거의 유럽이 그러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전의 18세기 후반의 유럽은 어떠한 곳이었던가요, 그때의 우리나라의 조선후기와 비교했을때 일반 서민의 삶이라는 것이 어떻게 달랐을 것 같습니까, 중세의 유럽은 야만의 극에 달한 인간이 인간다움을 가지지 못한 세상이었습니다.. 물론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으로 전제주의와 귀족주의적 계급의 차별에 대한 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와 새로운 세상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계급이 사회를 누르던 18세기의 끝자락은 이들 서민의 삶은 똥덩어리 두엄만 가득한 세상의 밑자락에 놓여있었죠, 살인과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횡행하고 심지어 사형이라는 제도를 공개적으로 행하면서 편안한 죽음을 이끌어냈다고 자화자찬하던 야만스러운 단두대 길로틴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들 , 그런 유럽의 세상에 비해서 우린 어떠했습니까, 비루하고 힘든 서민의 삶이긴 진배없지만 우리의 역사속에서 야만을 들먹일 정도의 인간 횡포의 세상이었는 지 말이죠, 그런 그들이 야만을 떠들고 그런 그들이 차별을 원하고 그런 그들이 거부감을 표하면 안되는거 아닙니까, 귀족과 전제적 왕권에 억압받고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을 당하며 여성의 삶과 세상의 진실이 종교와 권력에 의해 묵살당하고 모든 것이 살해되는 야만스러운 세상에 놓였던 이들이 편견을 가지고 계급적, 인종적 우위를 논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 이말이지요, 암요


    3. 그럴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걱정스럽고 두려운건 저 역시 마찬가지니까요, 그렇다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와 판단까지 무너지면 안되잖아요, 그러치 않나요, 오늘 제가 좀 흥분했습니다.. 좋은 작품 읽고 그들 역시 과거에 이렇게 비루하고 힘겹고 야만스러운 시대를 겪어냈는데 말이죠, 18세기 말경인 1793년의 스웨덴은 어떠했는 지 이번에 제법 상세하게 느껴보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부합된 팩션적 추리스릴러소설인 "늑대의 왕"입니다.. 원제는 그냥 '1793년'이라는군요, 역사적으로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과도기적 세상의 양극단을 보여주는 사회적 혼란속에서 벌어진 한 살인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쟁 상의용사인 미켈 카르델은 방범관으로서 하루하루 술에 의지해 비루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오물과 악취로 가득찬 파트부렌 호수의 시체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바라본 시체는 팔과 다리가 모두 잘려진 상태에 혀와 눈까지 훼손된 것을 확인한 후 치안본부에 신고를 하게 되죠, 그리고 치안총감 놀란은 자신의 친구인 세실 빙에에게 본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사실 놀란은 작년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3세가 암살된 후 극도로 혼란스럽고 불안한 정국속에서 귀족들의 부패가 극심한 상황에서 스톡홀름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의 정의로움이 귀족의 눈에는 좋게 비치지 않을 터, 자신이 내쳐지기 전 본 사건을 해결하기 원하죠, 그렇게 치안총감의 요구를 받아들인 세실 빙에는 과거의 뛰어난 두뇌와 법관으로서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폐결핵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신이 죽기 전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지 본인조차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빙에는 시체를 발견한 카르델과 함께 극악한 살인을 저지른 살인마를 찾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수사는 벽에 부딪히고 시체에게서 발견된 약간의 천조각만 단서가 될 뿐이었죠, 죽음이 머지않은 빙에로서는 쉽지않은 진실찾기인 상황에서 단서를 찾아나선 카르델은 시체를 운반한 가마와 관련된 단서를 찾게 되지만 그에게마저 죽음의 그늘이 씌워지는데....


    4. 이 작품은 '1793년'이라는 한해를 통틀어 시간적 배경으로 등장시킵니다.. 시작은 가을입니다.. 그리고 소설은 이어 여름과 봄으로 거슬러가죠, 그리고 마지막 겨울을 중심으로 하나의 사건과 관련된 그 시대의 스웨덴을 대단히 적나라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추리미스터리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역사적 고증과 그 의도가 정확하게 그려지는 작품입니다.. 스웨덴의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하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중심으로 그 시대의 사회상을 아주 자세하게 들춰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전체를 통틀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전쟁속에서 버려지고 사회속에서 버려지고 제도속에서 버려진 대중과 민중의 삶의 비루함과 야만스러운 사회적 불합리와 혼란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다루고 있죠, 소설속의 이야기는 대단히 거북스럽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시대적 야만성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보여줍니다.. 대단히 생생하게 묘사되고 감정적 동요을 일으키죠, 이러한 묘사와 리얼한 현장감은 아주 강렬한 이미지로 되돌아옵니다.. 그와 동시에 발생하는 사건의 추이와 인물들의 심리적 측면 역시 사회적 혼란과 심리적 두려움을 혼합하여 아주 어둡고 축축한 느낌의 시대적 현실감을 안겨주죠, 앞서 말한 시간적 배경의 흐름 역시 각 계절별 발생한 사건의 내막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이어짐을 독자들은 대단히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각각의 계절의 이야기는 하나로 뭉쳐지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각각의 영역에서 머물지만 이 모든 이야기속의 복선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이러한 챕터별 구성의 묘미는 대단히 흥미로운 발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5. 여느 작품들과 다르게 주인공이자 하나의 중심적 인물이 사건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시대와 우연성이 사건을 만들고 이로 인해 발생한 개연적 연결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모아지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고 즐겁기까지 합니다.. 단지 시작점인 가을에서의 살인사건에 있어서 시대적 전제를 드러내기 위해 이런저런 상황을 설명하고 이어질 챕터의 복선적 구성으로 연결하기 위한 발판을 만들려고 노력한 작가의 의도로 인해 조금 지리하게 느껴질 우려가 있지만 이어지는 챕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주는 암시로 인해 독자들은 미스터리가 어느정도 해결되면서 또다른 궁금증을 이끌어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진 3부의 봄의 이야기는 또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소설의 전반적인 흐름과는 무관한 느낌이 다분하죠, 그렇기 때문에 독자로서 그 상황에 더욱 몰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봄의 이야기는 한 여성의 삶을 따라가는 스토리로서 독자로서 그리고 공감자로서 가장 흥미로운 챕터의 즐거움을 가집니다.. 하지만 겨울이라는 한해의 마무리를 접한 시점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들과 이야기의 흐름과 사건의 결말과 마무리의 이야기들은 조금 많이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이면과 그 시대의 야만적 세상을 그려낸 작가의 의도에 충분히 감응하고 즐기긴했지만 추리스릴러독자로서 어느정도의 미스터리적 즐거움 역시 가지길 원했지만 아쉬움을 느꼈습니다..아무래도 그동안 인물이 중심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적 의도에 적응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 작품은 상황이 주는 해결적 의도가 지배적으로 드러납니다.. 물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중심이 되는 빙에라는 인물과 카르델이라는 인물의 호흡과 이들의 심리적 입체감도 뛰어나긴 하지만 굳이 미스터리적 측면에서 큰 역할론이 대두되는 것은 아니었지 않나 싶어서 느끼는 아쉬움이 아닐까합니다..


    6. 중세의 유럽의 역사가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야만스럽고 계급의 갈등과 부패와 권력의 폭력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그 시대의 유럽의 현실을 그려내는 대단히 매력적인 역사추리소설입니다.. 게다가 그 자극적 폭력성과 함께 범죄적 양상으로 단서를 찾아나가는 방식 역시 나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작가가 의도한 한 시대의 혼란소러운 역사적 진실과 그 현장감을 독자로서 대단히 입체적 이미지로 떠올리게 만든 작가의 문장력과 그 표현력에 찬사를 보내 마땅하지 싶습니다.. 조금은 아쉬운 미스터리적 흐름이긴 하지만 작가가 그려낸 시대상의 현실감이 이를 상쇄하기엔 충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욱더 두드러지죠, 앞서 말씀드린 역사소설속에서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감정적 동요까지 이끌어내는 현실감은 아주 뛰어납니다.. 이 작품의 설정과 인물의 배치는 어느정도 탐정소설류의 구성에서 벗어나질 않습니다.. 축축하고 습기 가득한 북유럽판 자극적 홈즈와 왓슨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해도 될 듯 싶기도 하구요, 작가는 이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 그 시대의 사회적 현실의 현장감을 이끌어내려고 매우 많은 고증과 역사적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작가가 연이어 집필했다는 '1794년"이라는 작품에 대한 기대감도 충족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 같구요, 우리보다 더 야만스러운 시대를 살아낸 그들의 역사에 니나 내나 다를거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하면서, 그렇기에 인간은 서로 인정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살아야되는거얌, 무시하고 거부하고 배척하고 외면하지말고, 어이 이 자식들아....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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