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6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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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혼란입니다.. 조금 과하게 말하면 전쟁과도 같은 상황처럼 불안과 공포가 엄습한 시간을  걱정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저처럼 아무생각없는 사람마저 지금의 이 상황이 두려울진데 예민하고 날카로운 많은 국민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주변에 누군가가 전혀 일면식도 없는 타인으로 인해 나에게 어떠한 신체적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다분한 전염병을 발병시킨다면, 엄청난 불안감이죠, 특히나 연세 많으신 면역성이 떨어지신 어르신들이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우리 사회의 혼란이 빨리 진정되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도 또다시 이러한 불안한 상황이 생기질 않길 바라죠, 제 경험으로도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하는 심각한 전염성 바이러스의 공포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두렵다고 조심하던 사스와 메르스를 넘어서는 엄청난 파괴력을 보이는 슈퍼 바이러스이기도 하거니와 현재 이런 바이러스를 충격적으로 전파하는 분들의 면면들이 국민들에게는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죠, 이제는 단순한 감염경로와 그 과정으로 바이러스 확진자와 주변인을 확인하고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전국적으로 퍼져버린 현실에서 국민적 대응과 도움이 필요해져버린 시점이죠, 이럴때 사실 우리는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에게 이러한 두려움과 고통과 공포를 선사하는 대상에 대한 탓을 누군가에게로 돌리기 마련이죠, 국가를 탓하고 그 수반의 잘못으로 돌리고 누군가는 종교의 문제로 여기고 그 와중에서도 이단이라는 또다른 사회적 거부감을 들춰내기도 합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그들의 비밀스러운 행동이 없었다면, 그들이 제대로된 대처로 상황을 잘 따라주었다면, 또 그들이 지금이라도 국가적 위기감에 자신보다 종교보다 인간이라는 근원적인 공감을 가지고 이 어려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2. 자주하는 말로 이 시국에,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대중들은 상황에 동조하고 그 영향력내에서 행동하기 마련이죠,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혼란의 시국을 이용하고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는 악한 이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악하다고 밖에 말을 못하겠어요, 전국에서 종교와 관련된 모임으로 대중적 두려움과 공포가 극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마트에서는 기본적인 생필품을 생존을 위해 사들이고 준비하는 일반 서민의 삶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나라를 탓하고 대통령을 탓하고 정권을 탓하고 그리고 자신은 문제없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모인 사람들도 전혀 문제없다고 소리치고 선동하는 행위를 볼때 정녕 그러한가, 저 분들은 그들의 믿음속에서 현실적 두려움을 극복하실 수 있구나, 근데 혹여라도 자신도 모르게 감염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염 전파가 되었다면, 누구를 탓할 것인가, 자신은 절대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가정을 확신할 수 있는가, 그 확신 자체가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를 무너트리는 악한 감정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혼란의 시기에는 그렇죠, 모두 누군가를 탓하고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를 지켜내기 급급합니다.. 그리고 혼란은 인간이 뭉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죠, 그게 악하든 선하든 상관없습니다.. 보통은 이런 혼란을 이용하는 무리들이 악하기 마련이죠, 사회적 혼란을 자신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무리들, 그게 권력을 쥔 기득권자들이든, 사회적 범죄자들이든 상관없이 이런 사회적 혼란과 대중의 공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엿같은 족속들은 언젠가는 그 죗값을 받기 마련입니다.. 마이클 코넬리의 "블랙박스"는 그런 사회적 혼란속에서 살해당한 한 여기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에 해래 보슈의 몇번째 작품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나이가 찰만큼 찬 보슈는 미제사건 처리반에서 일종의 계약직으로 형사를 하고 있습니다..


    3. 1992년 L.A는 혼란이 극에 달한 시기였습니다.. 흑인인 로드니 킹에 대한 과격한 경찰들의 집단 폭행이 심각한 사회적 동요를 일으키죠, 그 당시 해리는 경찰국 강력범죄 소속으로 L.A 폭동이 발생한 시점에 수많은 범죄현장을 담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확인한 현장에서 한 여성의 죽음을 만나죠, 폭동으로 인해 주방위군의 군인들이 상주하던 시내의 한 골목에서 발견된 여성은 외국 기자인 듯, LA경찰서 출입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변을 담당하는 군인들에 의해 발견된 여성의 이름은 안네케 예스페르센이라는 이름으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살해된 정황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또다른 사건이 발생하고 이 현장은 다른 담당 형사에게 넘겨질 상황이죠, 해리는 현장에서 발견한 탄피 하나와 잠시 주어진 시간동안 현장의 증거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지만 역부족입니다.. 그렇게 사건은 미제로 남아버리고 20년이 흐르죠, 해리의 기억속에 안타깝게 죽음을 당한 한 외신기자의 기억은 오랫동안 그의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LA폭동 20주년을 기념하며 그 당시 미해결사건을 해결하고자하는 경찰국의 의지에 따라 '백설공주 살인사건'이라 명명한 안네케의 사건을 해리가 다시 끄집어내게 됩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사건의 내막과 어떠한 단서도 쉽게 찾아낼 수 없죠, 그 당시 단 하나의 탄피의 증거만으로 유일한 단서를 찾아낸 해리는 사건 발생 후 7년이 지난 시점에 살인이 발생한 사건의 탄피와 동일한 증거로 그 살인사건의 범죄자를 찾아가면서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됩니다.. 유일한 단서 하나에서 시작된 20년 전 사건의 진실과 그 정의를 이번에도 보슈는 찾아낼 수 있을까요,


    4. 92년 LA폭동은 흑인들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발생한 것이죠, 원인이 굳이 떠들지 않아도 미국내 인종차별의 근원적 문제이기도 한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들의 일방적 편견과 과격한 진압방식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이 혼란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우리 한인들이었습니다.. 미국내에서 자영업이 주인 한인 이민가족들에게 며칠간 불어닥친 공포와 피해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죠, 전쟁과도 같은 현실이 발생하고 주방위군이라는 미군들이 시내를 관할하게 되죠, 코넬리 작가는 LA를 배경으로한 작품을 집필하죠, 기자로서 자신이 이름을 내건 지역도 LA이고 자신의 첫 소설을 선보인 배경도 LA입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살아가는 코넬리 작가에게 있어서 92년의 폭동은 잊지 못한 기억의 아픔이기도 하겠죠,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속, 무엇보다 자신의 대변인과 같은 해리 보슈에게서 그 당시의 기억을 소환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그 당시의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이죠, 20년이 지나 사람들의 기억과 그 현장의 부조리한 범죄적 모순들이 잊혀질때쯤 코넬리는 과거를 들춰냅니다.. 모든 이들은 해결방법이 보이지않는 그 사건을 들춰낼 필요가 있냐라고 물을때 해리는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 한 여성의 마지막과 그 죽음으로 평생을 괴로워하며 진실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을 떠올리죠, 그게 자국민이 아닌 먼나라 북유럽의 누군가라도 상관없습니다.. 해리에게는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그 가치에 대한 가장 진실한 소망일테니까요,


    5. 아시다시피 해리 보슈를 만나보신 분들이시라면 그가 주변의 어떠한 상황에서 거침이 없다는 사실은 아실겝니다.. 절대 타협하지 않죠, 그는 20년을 이어오는 시리즈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줬습니다.. 단순한 정의와 사회적 명성을 위해 사건을 해결하고 진실을 찾는가라는 물음에서 부터 자신의 개인적 성향과 집착과 범죄에 대한 자신의 집요한 욕망에 대한 부분까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슈는 이제 60세가 넘은 할아버지 형사입니다.. 언제 짤려도 할 말이 없는 계약직 직원입니다.. 그렇다고 쉽게 짜르지도 못하는 LA경찰국의 윗대가리들에게 보슈는 눈에 가시처럼 거북스러운 존재이기도 하죠, 소설은 그런 보슈의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세월의 흐름에 대한 인물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덧입히는 작가의 능력을 대단히 뛰어납니다.. 늘 말씀드리는 코넬리월드의 세계속에서 해리는 살아 숨쉬는 하나의 인간으로 남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세월과 함께 같이 나이를 먹고 자신의 자리에서 진실을 찾아 집요하게 정의를 실현하는 보슈는 어느순간 자신의 가족인 매들린과 함께 수십년을 지켜온 자신의 언덕 테라스에서 범죄의 세상에서 은퇴를 한 후 LA의 야경을 바라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를 들으며 맥주를 마시는 시기가 올겝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이 작품의 국내 출시는 2019년이지만 미국에서는 소설속 내용과 동시대인 2012년이잖아요, 아직 국내 독자들에게 해리를 만날 기회은 많이 남았습니다..


    6. 솔직히 마이클 코넬리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해리 보슈 시리즈는 굳이 이런저런 평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요, 저에게 있어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우선순위로 마이클 코넬리라 툭 내뱉을 정도로 저에게는 일종의 주관적인 최애작가이니 그동안 시덥잖게 떠들어댄 독후감속에 꿀발린 아첨을 엄청 해댔습니다.. 그만큼 모든 시리즈가 기복없이 나름의 즐거움과 감흥을 줍디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간과하기 쉬운 범죄적 진실을 놓치지 않고 사회적 무관심속에서 그리고 기득권과 권력자들의 사회적 문제인식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그 의도가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한 외국 여성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굳이 20년이 지난 시점에 파헤칠 이유가 없죠, 사회의 굴레와 시스템속에서 잘 흘러가는 톱니를 덜커덕거리게 중간에 멈춰세울 이유가 없다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과거로부터 이어온 기득권들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기생하고 살아가는 한심한 꼰대들과 족속들의 방식들이죠, 그리고 우린 이런것들을 관행이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말합니다.. 보슈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가정에서 제대로된 교육과 부모의 영향력속에서 자라온 사람도 아니거니와 어린시절 죽음의 사선속에서 홀로 땅굴속에서 고독속에서 살아남은 존재이죠, 누구와도 타협하지않고 홀로 외떨어진 사람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좋은것만 찾고 좋은것이 진실이라고 최면을 걸고 우린 그렇게 편안하게 살아가려고 나쁜 것중의 진실을 외면하고 거부하고 살아가지만 이렇게나마 해리같은 인물을 만나면서 그동안 외면하고 거부하고 무관심하던 세상의 나쁜 진실을 조금이나마 공감하는 것에 난 충분히 만족스럽게 생각한다는거지요, 코넬리는 그런 이야기를 그만의 작품속에 투영하는 작가입니다.. 물론 그 배경이 미국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공감하고 즐기고 있습니다.. 번역 작품들이 조금 힘을 내주면 좋겠는데 출판사가 여의치 않아보여서 안타깝기도 하군요, 기다려봅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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