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선택
데이비드 모렐 지음, 김이숙 옮김 / 큰나무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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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설의 내용과는 무관한 이야기긴 합니다만 세월호 이야기 좀 합시다.. 뭐냐고, 또 세월호냐고, 언제까지 세월호를 들먹거리며 살꺼냐고, 벌써 5년도 더 지난 일인데, 이런 말을 무쟈게 듣습니다.. 이제는 좀 잊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할 때가 된 것 아니냐고, 언제까지 죽은 아이 옷고름 부여잡고 눈물짓고 있을거냐고,, 심지어 저의 주변 사람들도 그럽니다.. 솔직히 그들에 대해서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아이가, 자신의 친척이, 자신의 주변사람이 당한 아픔이 아니니까요, 저 역시도 마찬가집니다.. 저의 아이가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게 아니죠, 어쩔 수 없는 사고라고 한다손치더라도 이제는 살아남은 아이들, 또다른 이 시대의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힘겹지만 그들은 떠나보내고 마음을 다잡아야한다고 그럽니다.. 근데 이건 아니잖아요, 어떻게 내 아이가, 우리의 자식이 그렇게 제대로 꽃 한번 피워보지 못하고 이제 조금씩 세상을 알려고 기를 쓰는 나이에 두려움에 떨면서 물이 차올라 숨이 막혀 공포속에서 울며불며 자신의 삶을 내려놓게 되었던 그 순간을 잊고 살아갈 수 있습니까, 내 아이라면, 내 자식이라면, 내 손주라면, 과연 그럴 수 있습니까,,,, 왜 더 많은 아이들이 살아날 수 있었는데 우린 그렇게 못했는 지, 그렇게 살아나고 여전히 세상의 빛을 보고 살 수 있었을 아이들의 미래를 우리가, 이 시대의 어른들이 외면하고 숨기고 가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물이 차오르는 순간까지도 살고자했던 그들은 이미 끝이라고 단정해버리고 말았는 지, 밝혀내야되는거 아닙니까, 5년이 아니라 10년이 넘어 기억이 가물거리더라도 아프고 고통스러운 역사라고 외면하고 고개를 돌리면 안되는거 아닙니까, 내 아이가 아니고 우리가 아니라면 그렇게 함부로 말해고 그냥 내비두라고 떠들어도 되는겁니까,


    2. 세상 어느 부모가 즐겁게 웃으머 떠난 여행길에서 차디찬 몸으로 그것도 수십명은 그 형체도 제대로 만나보지 못하고 떠나보내야했는 지, 그 심정을 공감하고 감당할 수 있을까요, 부모의 품속에서 죽은 아이를 보며 절규하고 평생 고통속에서 그 순간을 잊지못해 삶이 지옥으로 변해버린 부모들도 허다합니다.. 내 일이 아니죠, 내 주변 일이 아니죠, 그러니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진실을 원하는 이상 그 일은 나의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요, 누군가에게는 닥칠 수 있는 이 나라의 잘못된 행정과 잘못된 정치세력과 잘못된 기득권의 갑질로 인해 희망밖에 없어야할 어린 아이들이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세상에서 버려진 사실을 우린 잊어선 안됩니다.. 시간이 얼마가 흐르건 중요하지 않죠, 기억하고 되새기고 그 진실과 답을 끝까지 찾아내고 그 잘못을 바로잡아야 또다른 내 아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부모는 가족을 지켜야합니다.. 외부의 온갖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부모라면 아이를 그리고 자신의 가족을 끝까지 지켜내야하는 것이 인간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이치이고 진리입죠, 이번에 읽은 오래된 스릴러작품을 보면서 검찰의 세월호 사건을 재수사한다는 이야기에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길래 그냥 화가나서 끄적거려봤습니다.. 소설은 위의 이야기와 다른 액션스릴러이지만 아이에 대한 부모의 입장은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데이비드 모렐의 70년대 소설 "위험한 선택"입니다.. 데이비드 모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람보 1편의 원작자라는 것이죠, 대단한 작품이고 이 작픔은 그 작품을 집필한 후 두번째로 집필한 작품입니다.. 내용은 성경에서의 '욥'의 고난처럼 세상에서 버림받고 시련을 당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시작부터 고난은 시작됩니다..


    3. 로이벤 본은 소설가입니다.. 그는 일상의 아침을 맞죠, 그리고 우유를 고양이의 그릇에 부어주고 아이들은 아침을 먹을 준비를 합니다.. 근데 고양이가 우유를 마신 후 몸이 뻣뻣해진 체 쓰러집니다.. 부부는 자신의 딸이 고양이를 보기전에 지하실로 치웁니다.. 밖에서 뭘 잘못 먹었거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런 것이라고 예상하고 넘기죠, 그리고 가족이 식탁에 앉아 유아인 아들의 분유를 탄 부인은 아이의 젖병을 들어 먹입니다..그순간 본은 고양이의 죽음을 떠올리며 그가 알던 한 테러리스트의 말을 기억해냅니다..  그리고 아들이 먹던 젖병을 쳐내지만 아들은 숨을 헐떡이며 이내 죽어버리죠, 그리고 테러리스트인 케니가 자신과 가족을 죽이려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과거 본은 케니와 그 테러조직을 조사하고 그들을 세상에 드러냄으로 그들의 타켓이 되어버린 것이죠, 경찰이 사건 직후 본의 집을 방문하여 사건을 확인하지만 본의 이야기에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내 본의 집으로 테러조직이 들이닥치고 이들은 본의 가족을 끝까지 제거하여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것임을 본은 깨닫습니다.. 경찰도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하죠, 오히려 경찰의 보호를 받는 와중에도 그들은 총기를 난사하며 본의 집으로 공격을 해옵니다.. 그리고 본은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살아남은 가족과 떠납니다.. 그들에게 생존은 끝없은 삶의 시련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본은 부인 클레어와 사라와 함께 생존의 길을 나섭니다.. 하지만,


    4. 이 작품은 시작부터 끝까지 생존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두려움에 가득찬 한 가족의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군더더기를 완전 배제하고 시작부터 가족에게 닥친 재앙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누구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의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드러납니다.. 한 가족이 어떻게 파멸로 순식간에 떨어져버리는 지, 작가는 거칠고 과감하게 진행합니다.. 아이가 죽죠, 독이 든 우유를 먹고 가장 중요한 가족의 아이가 죽음을 달리합니다.. 어떤 이유던 그러한 상황에서는 누구도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없을겝니다.. 하지만 작가는 로이벤 본이라는 인물을 통해 단순한 협박이나 위협적 경고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죽음의 테러를 당하는 것을 그립니다..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이고 설정이고 주제이긴 합니다만 그 중심에 놓인 가족에 대한 절절한 생존적 부성애는 이 작품이 지향하고자한 액션스릴러의 의도를 명확하게 합니다.. 전작인 람보의 이야기와 큰 틀에서는 다를 바가 없을 뿐이죠, 단지 람보만큼의 액션적 재능을 가진 이가 아닌 소설가라는 직업속에서 어쩔 수 없이 터득한 생존의 방법으로 죽음의 절벽에서 떠밀리지 않으려고하는 일반인의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속의 이야기는 보다 대중적 두려움을 독자로서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은 하나의 서사속에서 다른 방향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한 가족의 생존적 방법과 그 이야기에 몰두하고 어떻게 죽음의 테러속에서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 생존해나가는가를 보여주는 의도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의 생존적 욕구가 얼마나 대단한 지를 보여주고자한 의도 말이죠, 세상 무엇보다 쉬운 죽음을 보여주는 인간이지만 또 끝까지 생존하고자하는 끈질김도 다르지 않다는 것,


    5. 단순한 이야기죠, 소설은 시작전 원제와도 상관있는 성경의 이야기의 내용을 차용했음을 밝힙니다. 전 크리스천이 아니기에 그 내용을 잠시 알아봤는데 성경속의 '욥'이라는 인물의 고난을 소설의 본이라는 주인공에 빗대어 시련을 이끌어낸 듯 싶습니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떠한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과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는 아마도 이후의 데이비드 모렐이라는 작가의 전반적인 스릴러의 성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아직까지 많은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데이비드 모렐 작가는 대단히 유명한 영미스릴러작가입니다.. 그 영향력도 대단하죠, 스릴러라는 장르에 있어서 모렐의 파워는 아주 크다고 하더군요,뭐 그러려니 합시다.. 우리나라에서는 뭐 SOSO하니까요, 그런 그의 작품의 경향은 상황속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의 감성과 묘사적 방법이 아주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주인공에게 닥친 상황들을 그의 시점에서 심리적 혼란돠 두려움과 공포적 배경을 자연스럽게 엮어 독자들을 몰입하게 하는 것이죠, 대화적 구조보다는 벌어지는 상황과 흐름속에서 이어지는 입체적 묘사에 주안을 두는 문장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세대와는 조금 맞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영미스릴러의 거장이지만 동양적 사고와는 조금 차별적 스토리이기 때문에 장르적 즐거움과 집중은 뛰어나지만 크게 머리속에 담아두고 고민하고 오래갈 인식이 남는 작품들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이 작품 '위험한 선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 남자의 생존적 본능과 그 과정을 담은 것 이외에 이 작품속에서 다른 감상을 받은 것은 없으니까요,


    6. 근데 그걸 뭐라하면 안되겠죠, 애초에 작가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서 보여주고자한 것이니까요, 이 작품은 한 가정의 생존의 사투를 그려내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살아남아야하는 지를 보여주고자한 것이죠, 극악한 상황과 주변의 시련과 고난을 배경속에 던져두고 이들이 힘겹게 이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작가는 단도직입적이고 거칠지만 세밀하게 그려낸 것입니다.. 작가는 인물적 처절함을 묘사하는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스릴러작가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40년도 더 된 작품입죠, 그럼에도 작품은 개인적으로 아주 집중하면서 읽었습니다.. 국내 출시한 시점도 20년이 지난 작품입죠, 하지만 국내에 데이비드 모렐의 작품은 몇편이 없습니다.. 워낙 영미적 감성과 액션스릴러의 장르적 편향성이 높은 작가인지는 몰라고 국내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한 작가이지만 과거 영미 스릴러소설의 단순함과 거친 액션의 감성과 미국적 사고의 틀속에서 벌어지는 폭력적 생존의 방법등에 조금 익숙하진 독자라면 충분히 즐기실 수 있을 작품이라꼬 전 생각합니다.. 단지 역시 오래된 작품인지라 번역이 아쉽긴 합니다.. 대화체의 구성이 상당히 어색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상황의 묘사나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변역은 나름 깔끔했습니다.. 물론 중고서적으로 구입을 하셔야겠지만 얼마되지 않은 데이비드 모렐 작가의 작품임을 감안하면 희소성이 제법 있어 보입니다.. 뭐 게다가 읽는 재미도 나쁘지 않으니 기회되시면 함 챙겨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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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이고 예술적인 로또당첨조작 살인사건 1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이혜영 옮김 / 산다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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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눈먼 돈, 일확천금, 공짜 돈, 그중의 일부가 나에게 올 수 있을까요, 무엇인가에 대한 댓가로 돈을 받고 우린 살아갑니다.. 이 돈이라는 화폐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의 기준입죠,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돈으로 안되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돈만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질 수도 있습니다.. 돈이 곧 사회요, 돈이 곧 세상이요, 돈이 곧 진리입죠,, 아니라구요, 네 아닙니다.. 그렇진 않다는걸 우린 배웠습니다.. 돈으로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다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현실은 돈이면 다 됩니다.. 그게 우리의 삶이죠, 세상에 수많은 눈먼 돈과 범죄 세탁과 세금 포탈과 국가 예산보다 많은 사채 자금들이 우리 일반 대중과는 별개의 세상에서 흥청망청 사라지는 돈들이 왜 내 눈에는 절대로 띄지 않을까요, 하기사 그 돈들이 내 눈에 띄는 날이면 전 눈 깜짝할 새 사라지겠죠, 솔직히 강남의 집값들이 천정부지로 뛰고 갓 30평도 되지 않은 집 한채 가격이 수십억을 호가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딴 세상 이야기 같더군요, 평당 1억, 10억 이런게 있는 그대로의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있는 자는 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죠, 자수성가는 홍보죠, 기회주의자와 가진자와 있는 자들이 만들어낸 세상속에서 그들의 기득권은 어제나 자본으로 점철된 천민자본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영역을 지켜내기 위해 이들은 돈으로 세상을 사고 그 세상에서 기득권을 유지한 체 자신들을 위협하는 모든 개, 돼지같은 대중을 몰아가고 현혹시키고 선동하고 바보로 만들어 버립니다.. 돈으로 범죄자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언론은 돈으로 움직이죠, 기레기들이라 불리우는 족속들의 목줄을 그들에게 먹이로 던져주는 광고주와 재벌들의 돈주머니에 좌지우지되는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고 지랄 맞습니다.. 응, 갑자기,, 이야기와 왜 일로 흘렀지


    2. 지랄맞은 의식의 흐름으로 의식이 흐려졌습니다.. 여하튼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에 돈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돈 몇푼 벌려고 하루죙일 갑질하는 인간들 앞에서 딸랑거리며 살아가는게 우리 유리지갑 월급쟁이들의 삶입니다.. 그렇게 갑질 인간들 하루 씀씀이도 안되는 돈을 한달에 받아서 기저귀사고 분유사고 계절마다 커가는 아이들 츄리닝 사느라 허리가 휘고 뭘 좀 배우고 싶어서 학원 원하는 아이들 학원비 보태려고 잠 잘 시간 줄여 대리 뜁니다.. 뭐 극단적인 스토리 진행의 드라마같지만 우린 그렇게 삽니다.. 돈이 없어서, 그런 우리같이 비루한 인생살이에 눈먼 돈 한번 떨어지는게 얼마나 기적같은 일이겠습니까, 그러니 천원짜리 로또 하나에 한주동안 같잖은 기대감으로 즐겁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 로또 마저 날 저버리고 누군가가 조작을 해버렸다면 참, 기가 막힐 일입니다... 우리나라 로또는 로또 축에도 못 끼는 미국의 복권 당첨은 수천억을 당첨금으로 내놓곤 합니다.. 그만큼 로또에 기댄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또 희망의 땅, 미국이라는 나라랍니다.. 데이비드 발다치가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내세워 멋진 스릴러소설을 선보였습니다.. 출간되지는 좀 된 작품입니다.. 국내 제목이 워낙 길어서 '과예로당 살인사건'이라 칭합시다.. 원제는 "The Winner"입니다.. 원제가 오히려 더 와닿습니다.. 저게 뭐냐고 제목이, 그러니 작가도 묻히고 작품도 묻히고, 안타깝구마는, 아주 재미진 작품인데 말이야,


    3. 조지아주의 작은 시골마을 비루한 환경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루앤 타일러는 이제 갓 스물의 여성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리사가 있죠, 딸아이의 친부인 남자는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삶을 축내며 살아가는 동네 양아치입니다.. 하지만 루앤은 아이를 키우고 어떻게해서든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버텨내려고 노력합니다.. 루저인 남자친구와 그의 트레일러에서 리사을 키우면 살아가는 루앤에게는 미래의 삶과 자신의 아이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죠, 그런 그녀에게 어느날 한 남자의 제안을 듣습니다.. 그녀에게 자신의 일에 2주일간 도움을 주면 지금 식당에서의 일보다 많은 비용을 지급하겠다는 제안이었죠, 자신의 이름을 잭슨이라 밝힌 남성은 사기꾼처럼 보입니다.. 루앤을 끌어들이기위해 임시로 사무실을 개설하고 그녀의 방문을 기다리죠, 그리고 루앤은 잭슨을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얼토당토않은 제안을 받습니다.. 연합 로또의 당첨을 그녀에게 시켜주겠다는 것이죠, 말같잖은 소리에 루앤을 오히려 그를 의심하게 되지만 그 즉시 잭슨은 실제 발표되는 로또의 번호를 맞추어버립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목격한 루앤은 잭슨이라는 인물이 보여준 사기에 의심을 가지게 되지만 비록 허상일지라도 그가 제안한 새로운 인생에 대한 기대감 역시 생길 수밖에 없죠, 일확천금, 그것도 아무런 제약없이 1억달러에 달하는 복권에 당첨시켜주겠다는 제안은 그녀를 혼란에 빠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잭슨이 약속한 며칠의 시간동안 그가 어떤 사람인 지 알아보는 루앤에게 잭슨이 제안한 시간의 끝이 다가오고 힘겹게 트레일러로 돌아온 루앤은 그곳에서 엄청한 상황과 직면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범죄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루앤은 지금의 현실보다 더 지옥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밑져야 본전, 잭슨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제안을 수락합니다.. 하지만 잭슨은 지금 벌어진 루앤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체 그녀에게 로또 당첨과 관련한 사항을 지시하고 그대로 따르길 요구합니다.. 루앤은 잭슨의 요구에 따라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고향을 떠나 뉴욕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잭슨이 말한 로또의 당첨과 함께 그녀는 기적을 만나게되죠, 하지만 언제나 악마의 유혹과 눈먼 돈은 그 자체만으로도 댓가가 따르기 마련, 결국 루앤에게는.....


    4. 데이비드 발다치는 대단한 대중스릴러작가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영화같은 줄거리와 이미지의 구성적 전개들은 무척이나 즐겁고 신나게 이어집니다.. 긴박감 넘치는 상황과 함께 인물들이 주는 매력 또한 넘칩니다.. 속도감과 함께 소재나 설정이 주는 집중도가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스릴러의 진행에 독자로서 무척 재미진 즐거움으로 책장에 침을 묻혀나가기 바쁩니다.. 특히 전반부와 중반부 그리고 후반부를 거치면서 이어지는 상황적 반전의 매력은 흔하고 전형적인 스릴러의 서사를 조금 더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죠, 무엇보다 여주인공인 루앤 타일러라는 여성의 이미지를 대단히 힘있게 그려내고 여느 심리 스릴러나 대중 소설속에서 캐릭터의 부수적 역할과 심리적 불안들이 만연한 설정속에서 자신의 의도와 의지와 힘으로 인해 사건과 상황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은 아주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루앤의 시선과 입장에 반한 현실적이면서도 대단히 정의로운 인간성을 보여주려고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앤이 가지게 된 부와 범죄의 영역은 아주 중요한 가치관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보여주는 것 역시 작가는 놓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돈이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소설 전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아쉬움도 남깁니다.. 근데 이 아쉬움이 대중으로서, 독자로서 이상한 만족감을 준다는 것이죠, 그러면 안되고 그렇게 되어서는 뭔가 사회 정의에 대한 불편함이 존재함에도 인간이 가진 이기적인 욕심과 그 의도의 결과물에 대해서 독자로서 대중으로서 어색한 만족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5. 언제나 인간의 욕망의 중심은 돈입죠, 범죄도 돈때문에 생깁니다.. 물론 이기적인 과욕과 감정의 극단성이 주는 치정과 인간의 이면이 크겠지만 그 중심에 돈이 있다는 것은 항상 사회적 문제의 중심이 되는 것이죠, 눈먼 돈과 일확천금과 일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는 인간의 욕심은 시대를 막론하고 있습니다.. 있는 놈들이 더하죠, 없는 놈들은 조금의 돈도 나누고 아끼고 도와가며 살지만 있는 놈들은 돈이 돈을 벌어준다는 시스템의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돈에 욕심을 냅니다.. 나누기보다는 모아서 더 많은 돈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또 말이 샜습니다.. 이 작품속의 인물들은 잭슨이라는 정체를 제대로 알 수 없는 범죄자와 루앤이라는 입체적인 여성의 대적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수적 인물들이 등장하죠, 전반부의 상황을 넘어 중반부의 새로운 환경속에서 루앤의 이야기가 펼쳐지죠, 그리고 루앤의 주변의 인물들과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루앤이라는 여성의 이미지에 두드러진 상황적 몰입으로 인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변 인물의 영역들이 협소하거나 역할론이 줄어들어버리고 오히려 작품의 흐름에 방해를 주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매트 리스라는 인물이 그렇죠, 일면에서는 그동안 스릴러소설등에서 대다수의 인물적 역할에서 남성이 주는 해결적 구도에 제가 적응되어버려 루앤이라는 여성의 주체적 흐름의 역할론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여하튼 이러저라한 이유로 이러한 주변 인물들의 부수적 역할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6. 사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흠잡을데가 없는 멋진 단행본 스릴러소설입니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않고 작가는 루앤과 잭슨의 활약과 대치적 대결에서도 캐릭터까리의 흥미진진함을 이끌어나갑니다.. 개인적으로는 스릴러소설로서 이정도의 마무리와 즐거움이라면 충분히 즐거울거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물론 흥미로운 대중스릴러소설의 가벼움과 즐거움을 가득하되 남는 것은 거의 없는 아쉬움은 있지만 읽는 동안 집중하고 만족하고 재미를 만끽한 것으로도 이 작품의 주는 즐거움을 최고라고 봐야겠죠, 하지만 이 작품의 원제인 "The Winner"와는 다른 기상망측하고 어지러운 국내 제목과 표지 이미지는 읽기도 전에 작품에 대한 편견을 주고 베스트셀러로서의 진입을 막아버리는 역할을 해버렸다는 생각을 합니다.. 출간된 지 제법 된 작품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기회가 있으시고, 영미스릴러소설을 즐기시고, 데이비드 발다치를 살앙하시고, 가볍지만 읽는 동안 세상 무엇보다 재미짐을 느껴보실 분들이시라면 읽어보시면 좋으실 듯 싶습니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긴장감과 즐거움을 보여주는 스릴러소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작품의 재미는 충분한 역할을 합니다.. 아무리 흔한 헐리우드 대중영화같다손 치더라도 말이죠, 내 수중에 돈이 들어온다는 상상이 나쁠리가 있겠습니까, 쓰다남은 뽀시래기 잔돈이라도 혹시나 내 계좌로 안들어올라나..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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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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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을 속이기만큼 쉽고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요, 심지어는 나 자신도 속여버릴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특히나 이런 거짓말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많죠, 사기꾼들은 거짓말로 사람을 현혹합니다.. 일반인들도 자신을 보호하거나 어떠한 이유때문에 거짓말을 합니다.. 아무런 이득이 없는 거짓말은 없습니다.. 누군가는 분명 하나의 거짓말로 인해 누군가는 이득을 보기 마련입니다.. 거짓말을 그렇습니다.. 이득이 없는 거짓말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살까요, 저만해도 참 착실하고 정직하고 시키면 불만이 있어도 겉으로 드러내지않고 묵묵하게 일을 하는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겉과 속은 다를때가 많죠, 그리고 내 속을 그 누군가가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되물었을때 난 무슨 그런 말씀을, 절대 아닙니다..라고 하곤 하죠, 그렇게 하는 이유야 다양하죠, 나를 위해서도 그를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좋은 관계의 영향력을 주기 위한 거짓말을 수도 없이 자행합니다.. 거짓말은 항상 옳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득을 주니까요, 하지만 이 거짓말이 이득은 있으되 무해하지 않아야될진데 어느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져놓던 거짓말이 유해하게 되어버리면 어떻게할까요, 과연 그때 그 거짓말을 멈출 수 있을까요, 전 사실 제가 잘생긴것을 압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겸손한 자세로 평범하다고 아니 돼지얼굴에 성난 표정의 몬난 아저씨라고 매력은 당신이 더 많다라고 말하곤 하죠, 무해합니다.. 남들에게 있어서 최소한의 겸손과 배려를 했으니까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나의 이런 무해한 거짓말이 상처가 될 수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그 사람에게는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진실을 이야기해야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 잘난 나를 못났다고 하는 것은 유해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가 보는 나는 못난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진실이라면 또 우찌되는겁니까, 헉, 머지....


    2. 거짓말을 하려면 나 스스로 그 거짓말에 대한 합리적 방향성을 일단 모색해야됩니다.. 그 거짓말이 생명력을 얻는 방법이죠, 그럴려면 내가 하는 거짓말이나 행동이 항상 옳다는 자기 합리화가 필요합니다.. 아님 거짓말로 인해 나조차 유해함을 받게 될 지도 모를테니 말입니다.. 여하튼 타고난 거짓말장이는 이야기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모든 허구적 상상을 만들어 스토리로 엮어 독자들을 현혹시키는 작가들은 타고난 사기꾼으로 그 능력을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분들이죠, 그런 점에서 길리언 플린 작가는 유독 눈에 띕니다.. 몇 작품만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작가로서 인정 받은 작가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작가가 발표한 국내 출시된 작품들을 읽어보았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스토리텔링과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는 방법론은 아주 대담하면서도 강렬했습니다.. 모든 작품의 중심은 여성의 시선과 시점과 심리적 내면을 통한 진실의 왜곡된 거짓의 삶을 보여주죠, 그녀가 보여주는 주인의 입체적 이미지는 항상 일그러진 이중성의 자아를 드러내는 듯 헀습니다.. 혹시 이 잘난 아저씨가 뭔 이야길 하나 싶으시면 '몸을 긋는 소녀'나 '나를 찾아줘', '다크 플레이스'같은 작품을 필히 읽어보시길 바라며 이런 장편의 강렬함속에서도 그녀가 새롭게 선보인 단편인 "나는 언제나 옳다"는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매력저인 단편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듯 합니다.. 소설은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3. 소설속에 등장하는 '나'는 어린시절 일반적인 삶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은 결손가정의 아이로 나옵니다.. 엄마는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동냥을 해서 하루하루 살아가죠, 게으러고 그때그때의 생계만 유지하고 살아갑니다.. 나는 그런 엄마의 삶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재능을 발휘하고 살죠, 필요할만큼의 동냥과 사람의 눈치를 빠르게 캐치하고 돈을 뜯어낼 가능성을 높이는 재능을 알아가면서 세상의 인간의 생각과 내면을 어느정도 읽고 파악할 수 있는 재능을 깨우친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 유사성행위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손목 터널 증후군같은 직업병으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남다른 재능의 평판을 뒤로한 체 눈치껏 파악 가능한 점을 보게 되죠, 그러던 어느날 '나'에게 한 여성이 찾아옵니다.. 제법 고급스럽고 부티가 나는 여성은 자신을 수전이라 부르며 자신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가족간의 일을 털어놓죠, 그녀에게는 두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재혼한 남편이 데리고 온 의붓아들 마일즈는 그녀에게 있어 골치거리입니다.. 그런 마일즈의 행동이 새로 이사온 카터후드 메이너가의 오래된 저택에서 더욱 과격하고 거칠고 이상하게 변질되어 감을 두려워하고 있죠,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항상 이런 사람은 존제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이럴때 돈을 좀 뜯어내야죠, '나'는 저택의 불안한 기운과 약한 영향을 제거하기 위해 퇴마사처럼 저택을 정화하기 위한 비용을 청구하고 몇차레에 걸쳐 저택을 방문하여 같잖은 굿거리를 하게 되죠, 그리고 그곳에서 골칫거리고 변해가는 마일즈를 만나게 됩니다.. 또한 저택의 기구한 내막에 대해서도 '나'는 알게 되죠, 과거 카터후드 저택에서는 공포스러운 일이 벌어졌던 모냥입니다.. 그 이야기속의 인물들과 현재 수전의 가족의 생활이 너무 닮은 것이죠, 과거 카터후드의 큰아들이 가족을 몰살한 사건이 현재의 수전의 가족에게도 벌어질 지 모를 일입니다.. 눈치껏 돈만 챙기려던 '나'로서는 감당하기 싶지 않죠, 하지만 이제 쉽게 벗어나지도 못하게 된 지금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는.......


    4. 중편의 분량에 조금 못미치는 단편소설입니다.. 시작과 동시에 한달음에 마지막까지 도달하는 상당히 재미진 작품입죠, 한 여성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기묘하면서도 공포스러운 한 저택의 내막을 둘러싼 작품입니다.. 스릴러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죠, 그리고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입체적 이미지 또한 작품의 집중에 도움을 줍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여성으로서 그녀가 바라보는 인간의 내면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스토리적 반전보다는 작품속의 감성적 반전과 함께 인물들의 입체감이 아주 뛰어난 작품입죠, 게다가 고전 공포소설의 한 범주인 고딕풍의 공포적 감성이 물씬 풍기는 스토리 역시 작가의 의도와 잘 맞물려 스릴러소설로서의 이 작품의 매력을 한껏 부풀려줍디다.. 아시다시피 길리언 플린이라는 작가는 심리의 고농도 농밀한 끈적거림을 표현해내는데 아주 뛰어난 작가라는 점이 이 단편소설의 감성과 결말의 반전과 함께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초중반의 상황들이 주는 대중적 스토리는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 아주 뛰어난 개방적 마무리와 함께 이 작품의 의도를 제대로 그려내며 끝을 냅니다.. 만족스러운 마무리입죠, 솔직히 스릴러와 서스펜스가 가득한 작품을 단편으로 엮기는 쉽지 않습니다.. 인물과 상황들이 주는 호흡이 길게 이어지면서 그 상황의 표현이 그려져야만 장르의 즐거움을 느낄 가능성이 크죠, 하지만 길리언 플린은 자신의 재능적 문장과 감성적 서스펜스의 능력을 단편에 고스란히 쏟아놓은 것 같아서 짧지만 그 충격적 감성은 아주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릴러의 고급짐을 다시한번 느껴봤습니다..


    5. 작가는 그동안 작가의 작품속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내면과 이중성과 고통을 어둡게 그려내는 이야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언제나 가족은 옳습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가족이 문제가 됩니다.. 항상 옳아야되는 가족간의 이중적 심리가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 지 작가는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으로 대중에게 다가왔죠, 이 작품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의지해야될 존재들이 가족들이 각자의 이기적 욕망과 탐욕으로 인해 진실을 감추고 서로를 속이곤 하죠, 그리고 누군가는 그 이유로 상처를 받고 삶의 고통을 당하곤 합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가족이라는 존재적 가치는 언제나 옳습니다.. 그렇게 보여지기를 바라고 그렇게 대다수의 사람들은 판단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족의 내면속에 숨겨진 위선과 거짓말의 세상은 추악하고 공포스러울 정도로 서로에 대한 악의가 가득한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도 우린 알죠, 항상 우린 이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미디어를 통해 현실적으로 접하고 있으니까요, 작가는 이러한 현대적 가족의 부재와 소통의 딜레마를 작품속에 리얼하게 담아내는 재능이 뛰어난 작가입니다.. 이 작품도 이러한 작가적 의도와 고딕소설의 공포적 결합을 잘 적용하여 매우 매력적인 작품으로 그려냅니다.. 그것도 단편으로 말입니다.. 짧은 작품속에 작가는 하고자하는 이야기의 모든 것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간의 추악한 내면과 그 이면의 진실을 일반적이지 않은 가족의 관계와 결손가정의 트라우마를 가진 한 여성의 관계를 통해 미스터리한 방법으로 그려내며 마지막 진실의 끝자락을 개방적으로 마무리하며 거짓된 진실과 진실된 거짓의 경계의 모호함으로 결국 제목처럼 스스로의 진실에 대한 합리화의 방식으로 누군가는 언제나 옳다라는 사실은 드러내죠, 멋집니다..  


    6. 독후감을 적다가 임시저장이 되지않아 중간부분이 모두 날아가는 관계로 정리가 안되는 듯 하지만 여하튼 이 작품은 단편스릴러소설로서 보여줄 수 있는 아주 많은 즐거움을 가진 작품이라꼬 전 평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거짓과 진실에 대한 설정이죠, 이 작품은 가족과 소외된 인간의 두려움에 대한 자기위선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선과 악이라는 개념의 모호함과 애매한 사회적 관계의 대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모든 가치관의 중심은 '나'라는 인물의 자기중심적이고 자기합리화속에서 그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리언 플린은 작품속에서 언제나 여성적 시선의 관점적 혼란을 아주 리얼하게 그려내는 작가입니다.. 심리적 불안을 정말 잘 묘사하시는 작가님이시죠, 제가 아는 한 작가의 작품들 속에서 내면의 이중성과 거짓된 위선의 합리화가 설정되지 않은 작품은 없습니다.. 우리 현대사회의 인간의 내면과 닮아 있습니다.. 우린 언제나 자신의 삶과 내면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옳다고 단정하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과 슬픔과 아픔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인생의 어둠만이 남겨질테니까요, 작가는 이런 우리의 단면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곤 합니다.. 옳든 그르든,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그 자체로 나에게는 언제나 옳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렇게 여기는것이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편한 방법일테니까요, 작가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인간의 악한 내면과 거짓된 위선의 세상은 오히려 이 세상의 희망과 포용적 따스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반동의 방법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성장하고 어른이 되고 자라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죠, 작품의 원제(The Grown Up)처럼 말입니다.. 이 말은 제가 영어를 이해했다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제가 교과서적 영어는 좀 됩니다.. 맨투맨기초와 성문기본 정도는 밑줄 그어가면서 공부한 전력이 이꺼덩요,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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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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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싫은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심지어는 분노하고 증오하고 사라져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항상 있죠, 그들은 나를,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이 개인적 감정은 내가 정당하고 진실하고 정의롭다는 전제가 꼭 필요합니다.. 타인에 대한 감정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니까요, 나에게만 해가 되고 고통스러운 존재가 아닌 사회악인 존재가 나에게 해를 가할때 그 존재에 대한 부당성을 표출하기에 분노나 증오의 감정이 용납될겝니다.. 지금도 유행하곤 있지만 한 예로 일본의 유명 만화중에 '데스노트'라는 작품이 기억납니다.. 누군가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데스토트에 이름을 기입하면 그는 어떠한 방법이든 현실속에서 죽음을 당하는 내용입죠, 정당하진 않습니다만 인간이라면 한번쯤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누군가가 상처를 주는 악한 존재에 대한 거부감으로 부정적 상상을 해보게 되는 것이죠, 물론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일이길 바랍니다만, 만약 그런 개인적 복수나 대처가 현실적 폭력이나 사회적 불법성을 전제로 일어난다면, 아니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회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질 수 있다면, 난, 우린 그들의 존재를 머리속에서, 삶속에서 지워버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만약 그 당사자가 나라면 나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던 이가 사라진 것에 대한 편안함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참고로 전 그가 누구나에게 악한 존재로 해가 가하는 인간이라면 그럴 수 있을것 같긴 합니다.. 조금은 정의롭지 못하더라도 정당하고 정의롭고 진실된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있다면,


    2. 공감되는 내용입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인간관계를 맺고 삶을 영위하는 우리에게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명제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하나같이 다릅니다.. 모든 사람이 나 같을수는 없죠, 심지어 가족간에도 다릅니다.. 다투고 싸우고 애증으로 똘똘 뭉쳐서 심지어 증오하고 아픔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타인은 오죽하겠습니까, 하지만 대다수의 인간은 자신에 대한 주변인에 대한 감성적 반항에 국한되지만 이 사회속의 어떤 이들, 특히 갑질과 기득권과 권력욕에서 자신의 욕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인간들은 끊임없이 타인에 대한 가해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들은 대체적으로 사회의 중심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가진 이들입죠, 어떤 방식이든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득권의 영역속에서 개인적인 탐욕과 사적 욕구는 포용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멀리 볼 것도 없어요, 한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박모여성은 일반인조차 오랫동안 입원하지 못하는 간단한 수술로 수감된 구치소를 벗어나 병실에서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세상은 항상 위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입죠, 좀 염세적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러합니다.. 이러한 사회속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자신의 일을 하고자하는 한 여성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렇게 정당하질 않습니다.. 여성이기에 더욱 그렇죠, 이 작품도 그러한 여성의 관점속에서 세상이 주는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 여성의 권리를 말하고 논하고 싶진 않습니다.. 남성이라고 기득권의 중심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통념과 중심에서 내쳐지고 외면되고 가해를 입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데, 그게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고마하고 이쯤에서 넘기고 소설은 영국의 스릴러 소설입니다.. "29초"라는 제목으로 출시된 대단히 매력적인 공감으로 그려진 스릴러소설입니다.. 재미집니다..


    3. 두아이의 엄마인 세라는 대학의 시간강사입니다.. 자신의 미래와 능력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지금의 강사자리에서 승진을 기다리고 있지만 쉽진 않습니다.. 그 이유로 자신의 상사인 러브록 교수가 끊임없이 치근덕대고 먹이사슬의 끝으로서 그녀를 이용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여성들과 달리 아직 자신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그런 세라에 대한 위협으로 러브록은 그녀의 미래를 목줄을 꽉 쥐고 그녀를 자신의 노리개로 만들려고 하죠, 그리고 이러한 그의 행태는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지만 그가 가진 재능과 사회적 위치와 기득권의 영역에서 이러한 그의 불법적 행위 전체가 묻혀져버리고 있죠, 그는 갈수록 악랄해지고 대놓고 세라에게 성희롱과 성상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녀의 미래는 바닥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거부하고 반항하고 대처해야함에도 러브록이라는 인간이 가진 권력은 그녀를 나락으로 밀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죠, 그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한 모든 권력을 그는 쥐고 그녀를 옥죕니다.. 그게 현실이죠, 두려움과 공포는 어쩔 수 없이 권력에 수긍하게 만들 수 밖에 없지만 끝까지 세라는 자신을 지켜보려 합니다.. 그러던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러브록에게서 최악의 상황을 전달받은 세라는 운전중에 살인사건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그 사건으로 인해 세라는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를 감시하던 누군가가 어느날 그녀를 납치합니다.......


    4. 상당히 재미지고 매력적인 공감가는 현실적 스토리의 무게감이 가득한 즐거운 스릴러소설입니다.. 특히 세라라는 여성을 통해 보여지는 모든 시점과 심리적 표현은 남녀를 불문하고 현실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만연해있는 남성위주의 권력적 구조의 형태를 과감없이 그려내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이나 여성의 사회적 관점에 역점을 둔다 만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모습들이죠, 우린 모든 것이 남성 위주의 삶속에서 소외되는 여성의 삶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가족과 우리의 주변과 우리의 모습을 보면 됩니다.. 굳이 합리화하지 않아도 우리가 여성을 바라보는 모든 시선의 중심에서 어떤 편견과 차별과 선입관이 없는 지 말이죠, 차를 운전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늦은 시간 거리를 걷거나 옷을 입거나 티비를 보거나 뉴스를 보거나 영화를 보면서도 우리가 판단하는 여성의 모습과 그 모든 것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거부감이 없는 지 말이죠, 저 또한 남성의 그것도 시대의 꼰대가 되어가는 중년의 아저씨로서 고민해볼 필요가 느껴집니다.. 만약 그 꼰대적 기득권의 중심속에서 벗어난 남성으로서의 삶이라 하더라도 소설속의 세라같은 여성이 당하는 부당하고 부정한 사회적 불편과 차별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무관심으로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삶으로 치부하고 합리화하고 살아가고 있진 않은 지 고민해봅니다.. 만약 나의 딸이, 나의 부인이, 나의 엄마가 나를 키우면서 그러한 아픔과 고통과 차별과 편견속에서 힘겹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죠, 이 작품은 단순한 스릴러소설로서의 한 인간에 대한 감정적 복수와 그 이야기를 대중적 공감으로 그려내긴 했지만 중심은 여성적 시선으로 바라본 사회적 차별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전반적으로 독자에게 보여지죠,


    5. 이러한 사회적 차별은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없습니다.. 남성 역시 차별과 소외를 당하고 살아갑니다.. 기득권이라는, 권력이라는, 갑이라는 사회적 존재의 가치가 주는 틈바구니속에서 우리 인간, 그중에서도 그들속에서 어쩔 수 없이 예속되어 살아가는 일반적인 삶의 세상속에서는 누구나 당하는 일이죠,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은 인간에게 있어서도 통용되는 자연의 법칙이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약자로서의 내 살코기는 고통속에서 저며질대로 저며져 강자의 저장고의 바닥에서 차곡차곡 쌓여서 그 부유함을 채워주는 역할까지 하니 일반적인 자연의 법칙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죠, 인간에게 있어서 생존법칙은 먹이사슬의 순환구조와는 맞지 않습니다.. 인간은 느끼고 생각하고 다룹니다.. 희열을 가지고 즐거움을 가지고 욕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존재입니다.. 단순한 생존의 법칙속에서 인간이 존재하진 않습니다.. 그렇기에 먹이사슬이라는 구조속에서 누군가는 고통과 아픔과 괴로움을 당하며 저며지는 것이죠, 단순한 죽음이 아닌 끝없는 고통이 주는 아픔속에서 버려지는 것이라고 하면 좀 과격하고 느무 염세적일까요, 그래서 인간은 복수를 꿈꾸고 반항을 하고 선동을 하고 군중을 독려하죠, 불의와 부당함을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혼자로서는 힘듭니다.. 그렇기에 약한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보듬습니다.. 상처받고 고통받고 저며진 체 아파하는 동료를 찾아 그들과 함께 합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인간의 삶은 살만한 것이죠, 이 작품은 그러한 인간사회의 한 단면을 매우 재미지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말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삭제하고 싶은 이름이 하나쯤은 있다'..라고 말이죠, 그게 내가, 우리가 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6. 한 여성의 이야기로서 이 작품이 주는 감흥은 대중적이지만 무척이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사회적 권력으로서의 남성에게서 당하는 수많은 부당성에 대해서 여성의 대처와 그 영향에 대한 고통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냅니다.. 누구나에게 당사자가 아닌 이상 답답함이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소설은 그 대중적 답답함이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더 혼란스러운 정체적 고통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나가 아닌 이상 나의 고통과 감내하는 아픔을 이해하기 쉽진 않으니까요, 그런 소설속의 주인공에게는 그녀의 삶과 아픔을 이해하고 공유하고 포용하고 함께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라에게 있어서는 그녀의 가족 - 아버지 - 가 있고 그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주는 친구가 있죠, 그리고 그녀의 아픔을 경험한 그 누군가가 있습니다.. 나에게 닥친 사회적 차별을 지금 이순간에도 당하고 경험한 그 누군가는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세상은 강자와 권력과 기득권의 편으로 끊임없이 이어져가진 않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하지만 빠르게 변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약자가, 여성이, 사회적 소외자가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삶과 세상의 부당함을 알리면서 말입니다.. 이 작품은 흔한 대중소설이죠, 전형적인 스릴러소설입니다.. 심지어는 누구나 아는 사회적 문제나 현상을 다룬 작품입니다.. 오히려 조금은 극단적이고 과한 감정선으로 몰아가는 느낌도 있는 작품입죠, 큰 진중함이나 무게감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사회적 딜레마를 묵직하게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허나 개인적으로 세라라는 인물의 이야기와 후반부의 결말에 있어 그녀와 그녀의 삶속의 정의로움이 선택한 방법은 가장 매력적인 즐거움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한 29초의 찰나 사이 세라의 삶이 뒤바뀌어버렸지만 그 29초가 새로운 세라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친 것인 지는 한번정도 읽어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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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즌 아티스트
조너선 무어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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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젠 돋보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이가 되어버린 중년의 배불뚝 꼰대 아저씨, 심지어는 모니터 화면창마저 흐릿해져버려 돋보기를 쓰고 타자를 쳐야될 정도로 나이가 들어버린 인생의 덧없음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서러운 아저씨, 그런 나에게도 사랑이 필요할 지 모를 일입니다.. 가정을 가지고 아이가 성장하고 버젓이 아내가 있는 아저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꿈꿉니다.. 실재하지 않을 사랑입죠, 무한정 그런 내로남불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보거나 읽거나 경험하게 되면 한번씩 떠오르는 상상속의 사랑입죠, 나에게 저런 경험이 생긴다면, 나에게 누군가가 갑자기 가슴속에 들어온다면, 단지 그것은 나이 쳐먹고 주책이라고, 불륜스럽고, 저질스러운 행우지라고 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굳이 합리화할 필요도 없이 현재의 삶과 인생과 헛헛한 중년의 슬럼프를 겪는 아저씨의 같잖은 욕망덩어리로서의 변입죠, 이제 나에게도 저런 사랑이 가능할까, 한순간에 휘몰아치듯 누군가가 순식간에 나의 모든 것을 잠식하면서 사랑의 나락으로 끌어내는 것이 가능할까, 많은 것이 메말라버린, 삶의 현실에 찌들어버린 매력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나라는 존재에 있어서 그러한 사랑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불가능하다는 단정과 함께 상상은 피식, 생각을 접습니다.. 나도 모르게 자괴감이.....


    2. 사실 사랑은 어려워요, 남녀간의 사랑은 쉽지 않죠, 결혼을 하고말고와 상관없이 사랑은 끊임없이 난관에 봉착합니다.. 사랑이 사랑이어야함에도 늘 사랑은 사랑 그 자체의 감정만이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죠, 언제나 그대로인 사랑은 인간이라는 우리의 감성속에서 퇴색되곤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배려와 양보와 포용과 심지어 포기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것 역시 사랑의 일부라 할 수 있습니다만 언제나 사랑의 근원적 욕망은 갈구함을 전제로 하죠,, 끊임없이 상대를 원하고 집착하고 바라보는 것이 사랑의 목적입니다.. 인간이기에 식어버린 그 감정의 도화선을 다시 되살려 불씨를 불어보려 하지만 동일한 존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불태우기에는 제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불씨가 존재하고 그 불씨의 따스함을 끊임없이 배려와 양보와 포용과 이해와 수긍으로 꺼뜨리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사랑은 돌아오는거야, 그게 나만의 상상속의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안돌아오면 자신을 돌아봐봐봐, 라고 헛소리 좀 그만하겠습니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조너선 무어라는 아직은 크게 알려지지 않은 미국 스릴러작가의 고급스러운 스릴러소설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을씨년스러운 축축한 겨울날씨를 배경으로 하드보일드한 느낌마저 감도는 멋진 스릴러소설 "포이즌 아티스트"입니다.. 게다가 심리적 불안과 혼란이 가득한 감성적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그런 작품입죠,


    3. 소설속의 주인공 케일럽은 독성학을 전공한 화학자입니다.. 그런 그에게는 브리짓이라는 연인이 있죠, 그런 그녀와 케일럽은 다툽니다.. 심각한 싸움으로 그의 이마는 찢어지고 브리짓을 그를 떠나버리죠, 그리고 케일럽은 우울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집을 벗어나 호텔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케일럽은 생각치도 못한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블랙 실크 드레스를 걸친 그녀, 짙은 향수와 잊지 못한 고혹스러운 자태를 가진 그녀를 바라본 케일럽은 금새 사라진 그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늦은 시간 호텔 근처의 바에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죠, 그리고 프랑스산 압생트로 베르트 드 쥬를 마시는 그녀에게 빠져버립니다.. 다시금 진득한 내음과 손길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여인을 생각하며 케일럽은 브리짓과의 헤어짐으로 인한 혼란속에서도 그녀를 잊지 못해 다시 그녀는 만났던 곳으로 다음날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케일럽은 살인사건과 관련된 탐문을 받게 됩니다.. 케넌이라는 형사에게서 자신이 전날 있었던 곳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한 남자에 대한 탐문을 받지만 케일럽은 자신과 함께 있었던 묘령의 여인에 대해서는 함구를 하죠, 그리고 자신의 친구인 법의학자 헨리의 요청으로 살인사건과 관련된 독성에 대한 도움을 주게 됩니다.. 그 사건이 바로 그에게 탐문을 했던 형사들이 말하던 사건임을 케일럽은 인식을 하게 되죠, 며칠동안 브리짓을 잃은 고통과 자신에게 우연히 나타난 한 여인의 감정속에서 허우적대던 케일럽은 운명처럼 묘령의 여인을 찾기로 하죠, 자신의 스케치로 그녀를 그려서 자신이 만난 그 주변의 바에 돌립니다.. 계속되는 연쇄살인과 함께 그에게 그녀가 전화를 걸어옵니다.. 자신을 에멀린이라 칭한 그녀는 그를 만나려하죠, 그리고 그녀를 만나며 그동안 그의 주변에서 발생했던 혼란과 의문의 살인은 더욱더 미궁으로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에멀린, 그녀는 누구일까요,,,


    4. 소설은 끝없이 축축함과 을씨년스러움을 배경으로 독자들에게조차 혼란스러운 사건의 궁금증과 의구심을 이끌어냅니다.. 우연히 만난 한 여성의 정체와 그 의도속에서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과 연관성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고급집니다.. 아마도 주변의 소재로 설정한 그림과 압생트라는 술에서 비롯한 끈적한 남녀의 관계적 혼란들이 매력적인 고전 하드보일드한 미스터리소설의 한 형태로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케일럽이라는 인물의 시점과 심리를 중심으로 현재의 사랑하는 여인과 우연히 자신에게 찾아든 팜므퐈탈의 한 여성의 격정적 사랑에 혼란스러워하는 지적인 남자의 심리적 불안과 함께 살인사건의 영역을 다루는 것이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문체와 스토리로 이어지는 것이죠, 소설은 대체적으로 밤의 어두운 시선속에서 지역적 배경으로 외부의 내음을 만끽하게 합니다.. 안개와 끊임없이 내리는 겨울비가 그려내는 감성적 분위기는 이 작품이 주는 혼미한 일상과 감정적 혼란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죠, 그리고 에멀린이라는 여성의 이미지는 고전 소설속에서 현혹하는 퇴폐적 여성의 중독성을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그녀가 모는 고전 클랙식 자동차와 도시의 오래된 고택에서의 한 유명화가의 작품과 같은 소재나 압생트와 같은 몽환적 중독에 이르게하는 알콜등은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하는 암울하고 비현실적인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그려내는데 한몫을 단단히 합니다..


    5. 작품은 한 남성의 시선을 통해 그가 겪는 상황으로 이어지기때문에 집중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잘 읽히죠, 그에게 닥친 혼란스러운 상황속에서 스릴러소설이 주는 매력을 만끽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서사적 느낌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조금 혼란스럽기도 해요, 이 소설의 중점이 되는 연쇄살인사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큰 줄기를 차지하고 흐름을 이어가지만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남녀의 격정적 사랑의 감정입니다.. 아주 중요한 설정이자 개연성의 중심이긴 하지만 이 에멀린이라는 여성적 정체성과 존재의 의도에 집중하다보니 이 작품의 독자적 호기심과 의심에 집중하게되는 연쇄살인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비롯한 주인공 케일럽에게 숨겨진 과거의 스토리는 그 생명성을 크게 부여받질 못하는 것이죠, 그렇다보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경찰이나 친구인 법의학자 헨리의 영역은 자연적으로 좁혀질 수 밖에 없습니다.. 후반부의 전반적인 흐름의 반전이 밝혀지고 본질적인 상황적 진실이 등장하게 되지만 흐름에 따른 전반적이 눈치는 이미 독자들도 짐작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고집스럽게 그 상황적 혼란을 끝까지 이어가려는 작가의 인물적 감정선과 의도에 따라 독자는 조금 더 나은 상황적 이해만 만나게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 이야기의 마무리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애초 시작점에서 보여주었던 모든 부분들이 후반부에 그 진실의 끝을 찾아나가지만 마무리에 이르러서는 헛헛하고 미적지근하게 처리되어버리는 것이죠, 아무래도 주인공의 인물적 집중도에 너무 작가님께서 집착하신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그 인물이 주는 입체감으로 인해 초중반에 드러난 감성적 서스펜스가 돋보였긴 하지만 너무 끝까지 인물에 부여된 혼란적 심리와 난삽한 상황적 해결만 남겼던 것 같습니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대단히 고급지고 지적이고 매력적인 심리스릴러소설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배경이나 주변의 상황들, 인물의 심리적 혼란으로 치닫는 문체가 보여주는 감성적 공감과 동조적 의도는 아주 뛰어납니다.. 특히나 두명의 여성에게서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심리적 두려움과 혼란적 감성은 무척이나 매력적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우연히 자신에게 격정적 사랑으로 끌어들이는 여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성에게 벌어지는 주변의 이야기와 밝혀지지 않은 과거의 추악한 진실의 아픔을 드러내는 연결적 요소들은 이 작품이 주는 즐거움중 하나이죠, 대다수의 여성적 시선의 혼란스러운 상황적 심리 스릴러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는 요즘 이렇게 전형적이고 고전스러운 남성적 심리 스릴러의 분위기가 몽환적이 작품은 충분히 즐거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하드보일드한 감성적 문체와 팜프파탈의 매력들이 끊임없이 넘쳐나는 대화체와 문장의 감성은 흔한 대중스릴러소설이 주는 흔한 감성적 공감보다는 조금 더 우아하고 엘레강스하고 고저스한 퀄리티가 느껴진다고나할까요, 맨날 맨투맨 기초 영문법만 들고 댕기다가 마스터하고 간만에 토플 완성 영문법 1권 정도 들고 다느는 듯한 뿌듯함은 있습니다.. 읽기에 큰 무리가 없고 읽음에 있어서 막히는 부분도 그렇게 크지 않은 잘 읽히고 가독성은 뛰어난 작품이니만큼 기회가 되시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듯 싶은 수작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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