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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관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1/2012/07/23/12/nanjappans_2529589779.jpg)
중학교 2학년때를 떠올려봅니다.. 저의 경우에는 이나이때에 사춘기를 겪은 듯 싶어요.. 마침 처음으로 동네 친구에게 마음을 주기도 했던 것 같구요.. 생각해보니 엄청나게 오래전이군요.. 아, 가물가물합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장점중의 하나가 몇십년동안 잊혀져있는 그런 과거의 기억들이 기분좋은 느낌으로 머리속 깊은 곳에서 삐져나오는 즐거움이 있다는거지요.. 다만 그게 명확하지가 않은게 좀 흠이긴 하지만.. 그친구의 모습은 거의 생각나지 않는군요, 하지만 이름과 집과 형제들도 생각나고 그녀와 했던 이야기들도 생각이 납니다.. 학교도 여중, 남중이라 등.하교를 같이 했었죠..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우리들은 참 부끄러워했었던 것 같아요.. 같이 다니지만 옆에 붙어가지는 않았던 것 같구요.. 오고 가는동안 거의 말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띄엄띄엄 던지고 받던 말들중에서 그친구가 했던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이겁니다.. "난 표현을 잘 못해. 학교에서도 늘 혼자라는 느낌이야, 너한테도 마찬가지고...." 그때 제가 어떻게 답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전혀 떠오르질 않아요.. 제 성격상 아마도 니가 먼저 친구들에게 다가가서 친하게 지내봐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지 않았을까 싶은데... 중요한건 "너한테도 마찬가지"라는 말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다는거죠... 아니 알았지만 그걸 표현할 방법을 저 역시 몰랐던 것 같아요... 그녀가 내마음속에 있었지만 그걸 알려줄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그녀만큼 저 역시 표현을 잘 못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그렇게 어느순간 조금씩 멀어져버린 그녀는 중3때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그 후로는 단 한번도 만나질 못했지만 이렇게 지금 떠오르네요..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미치오 슈스케라는 작가는 참 느낌이 쌉사름합니다.. 독자들이 감성을 잘 건드리는 작가중 한분이심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입니다.. 이 작품 "물의 관"도 그런 독자들의 과거나 추억의 일부를 끄집어내어주는 그런 감성적 집게가 아주 잘 만들어진 것 같네요.. 내용은 이쓰오라는 중학생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화자입니다.. 그리고 아쓰코라는 또래의 여자아이가 있죠.. 이야기의 중심은 이 아이들의 모습이지만 그 속에 또다른 중심인물이 바로 이쓰오의 할머니입니다.. 이렇게 세사람의 이야기가 전체의 축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이쓰오의 집에서 운영하는 가와네야라는 유황온천이 있는 지역의 여관입니다.. 이쓰오가 바라본 그 시절의 모습을 다루고 있죠.. 이쓰오가 바라본 할머니와 아쓰코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먼저 아쓰코는 이쓰오가 그동안 몰랐던 학교내 이지메를 당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때 전학을 오면서 계속 또래의 여자아이들에게 이지메를 당하고 있죠.. 초등학교 졸업때 타임캡슐에 아쓰코는 그런 행위를 하는 아이들에 대해서 20년후에 끄집어내어볼때 모두가 볼 수 있게 다 적어놓습니다.. 이쓰오는 20년후의 자신의 모습에 대해 평범하게 적었죠.. 그리고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야기는 진행이 됩니다..
아쓰코의 삶은 어둠이고 암흑입니다.. 살아갈 이유가 없어보이죠.. 이쓰오는 문화제때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파트너로 아쓰코와 함께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아쓰코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죠..이쓰오는 이제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는 동생이 조금 부끄럽습니다.. 할머니는 여관의 경영을 엄마에게 넘겨주고 이쓰오와 닷짱만을 돌봅니다.. 이들의 동네의 너머에는 댐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고향이 이 댐의 수몰지역입니다.. 할머니는 예전에 아주 부자인 집에서 사회를 배우고자 가출하여 여관에서 일을 배우다가 이쓰오의 할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는 그냥저냥 이들의 생활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아쓰코는 이쓰오에게 부탁을 합니다.. 자신이 타임캡슐에 묻어놓은 내용을 바꾸고 싶다는거지요.. 이쓰오는 그제서야 아쓰코의 아픔을 알게됩니다.. 바꾸고자 하는 내용은 아쓰코에게 이지메의 모습으로 기억된 자신의 과거를 수정하고 싶은거죠.. 20년후에 아이들이 그들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하기를 원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세월동안 아쓰코는 이지메를 당하는 아이로 남아있는게 싫었던 겁니다.. 그렇게 자신의 과거를 바꾸고 싶은 아쓰코는 이쓰오에게 약간의 거짓을 포함하여 캡슐을 파내어 내용을 바꾸자고 요구하고 이쓰오는 들어줍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아쓰코의 아픔을 잊기 위해 자실을 택한 마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끝이나면 아쓰코는 자살을 택할 것입니다..
소설의 내용은 이쓰오가 이끌어나가는 이야기를 아쓰코가 댐에서 자살한 시점을 중심으로 앞과 뒤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왜 아쓰코가 자살을 하게 되었는지를 과거에서 하나하나 그들의 시간속에서 되묻고 있는거지요.. 나의 삶, 너의 삶, 우리의 삶에서 과연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지, 아님 잊지못하고 집착하고 얽매이고 스스로를 속인 거짓이 진실이 되어버린 현실이 어떤것인지 보여줍니다... 이쓰오가 바라본 그들의 모습들입니다.. 할머니의 모습과 아쓰코의 모습과 무엇보다 이쓰오 자신의 모습들인거죠.. 우리네 인생의 그시절에 겪었을법한 삶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납니다.. 굳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따지고 볼 필요는 없지싶네요.. 이쓰오는 다름아닌 저의 모습과 진배없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참 아름답고 이쁜 아이입니다.. 저의 아들이 이쓰오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읽는내내 하게 되더군요... 왜, 이쓰오가 저같았거덩요..
이 작품은 미스터리소설이 아닙니다.. 말그대로 성장소설이죠.. 미치오 슈스케가 보여주는 공감적 성장소설입니다.. 많은 성장소설들이 독자들의 감성과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합니다만 슈스케만의 쌉사름하고 그시절의 아픔을 짭쪼름하게 만들어주는 작가들도 드물지 않을까 싶긴합니다.. (뭐 전 슈스케 작품 몇 편 안읽어서 잘모를지도, 또 성장소설류도 그렇게 많이 안읽어서 주제넘은 소리일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쓰오라는 아이의 감정선과 시점에 눈높이를 맞춰 읽어보니 후반부에 만들어내는 이쓰오의 해결방법이 무척이나 즐겁고 깜찍스러워서 기분이 좋더군요.. 안타까움도 함께 있긴했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는거니까요.. 저도 딱 그시절에 아버지에게 대들었던 것 같아요.. 아빠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다고 그래!!!!~~라고 악을 쓰면서 대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후로 한참동안 아버지랑 마주보지 못하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태우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한동안 황망하게 바라보던 기억이 나요..
개인적으로는 재미지게 봤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속에 시간적 구성의 차이로 인해 만들어진 반전의 묘미도 상당히 좋더군요... 이쓰오의 방법론적 마무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변상황의 묘사방식이나 심리등의 자연스러운 이쓰오의 시점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의 재미 역시 편안한 독서를 만들어주더군요.. 하지만 역시 미치오 슈스케하면 미스터리공포감성소설을 떠올리는 저로서는 초큼 밋밋했습니다.. 다음에는 슈스케표의 강렬한 자극적 미스터리소설로 찾아와주세요.. 땡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