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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신경숙만큼은 봐주든 말든 난 신경숙이 별로다
09 0813 신경숙 <외딴방> 1999(2판) 문학동네 ***
<리진>에 데이고 나서 신경숙은 읽지 않겠다고 ‘절독’선언한 이후, 아내의 강추로 읽게 되었다. 읽다 보니 예전에 읽은 것 같기도 했는데 그때도 첫 부분만 읽었던지 중반을 넘어가자 전혀 읽었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학 때, 임규찬 선생의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신경숙만큼은 봐주자”
책 뒤에 붙은 백낙청 선생의 평론에서도 거론되지만, <박해현씨가 지적한 신경숙의 “교묘한 무공해성”>(452쪽)으로 정의될 수 있는 그녀의 현실결핍증을 신경숙만큼은 봐주자고 했던 것이다. 쉽게 말해 이런 것이다. <외딴방>엔 당시의 역사적 사건이 수도 없이 묘사된다. YH사건, 12•12, 5• 17, 광주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등. 그런데 그것은 그냥 소스일 뿐이지 요리가 되지 않는다. 백낙청 선생의 지적대로 전라도 출신의 그녀가 충분히 겪었을 전라도인으로서의 고충이 전혀 그려지지 않은 것도 이상할 따름이다. 의도적으로 열외시켰든지, 그녀 주변엔 천사들만 살았든지.
“세상의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감싸안아줄 여유가 창비에게는 없는 것 갈았다.”는 작가의 창비 기고문이 아니더라도
……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때 연탄불은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중략) 내가 문학을 하려고 했던 건 문학이 뭔가를 변화시켜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어. 그냥 좋았어.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 금지된 것들을 꿈꿀 수가 있었지.(206쪽)
이런 대목에서 신경숙의 생각은 충분히 감지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신경숙을, 임규찬 선생은, 신경숙만큼은 봐주자고 했었다. 하지만 나에게 봐줄거냐 말거냐고 묻는다면 어차피 신경숙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라는 말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그냥 작가로서, 그가 무엇을 쓰든, 이런 대목은 나쁘지 않다
시골에선 자연이 상처였지만 도시에선 사람이 상처였다는 게 내가 만난 도시의 첫인상이다.(107쪽)
……서울의 봄은, 뜬금없이 피었던 엄동설한의 개나리는, 신군부의 장갑차에 짓밟힌다. 장갑차는 봄을 짓밟는 데 쓰라고 만든 차일까. 프라하의 봄을 밀어버렸던 것도 소련의 장갑차였으니, 아니었나, 그땐 탱크였었나.(253쪽)
앞문장을 따라 반짇고리 속을 빠져나오다가 멈추고서 마음의 심층 속으로 더 깊이 숨어버리는 색실이나 깨진 단추들도 있다. 자라가 제 목을 제 몸 속 깊이 숨겨버리듯. 끝끝내 숨어버리는 것들 을 억지로 끌어낼 순 없었다. 그러나 내가 애착하는 것들은 끝끝내 숨어버리는 것들이다. 쉽게 끌려나오지 않고 숨어버리는 것들의 진실이 언젠가는 삶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심미안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든 문학은 그 진실의 고귀함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412쪽)
열여섯에 구로공단 여공이 되어 저녁엔 산업체 학교를 다니다, 반성문을 읽고난 선생님이 소설 한번 써보라고 했던 말이 인생을 바꿔버린 신경숙은 서울예전 문창과를 나와 등단을 하고, 방송 음악 프로그램 구성작가를 하다가, 약사인 동생에게 1년만 스폰서가 되어달라고 해서 오로지 소설만 쓰는 일에 몰두, 인기작가가 되고 문학인과 결혼한다. 그녀만큼 성공한 여성소설가가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인기와 부 명예를 거머쥔 신경숙-그녀의 외딴방이 소설가로서의 그녀에겐 축복의 성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