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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평점 :
과거의 전태일에겐 악수를, 현재의 전태일에겐 멱살을!
12_0829_의자놀이_공지영_휴머니스트_*****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라지만,
2012년 이곳의 역사는 우리에겐 비극으로 저들에겐 희극으로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며칠 전 불변의 헤어스타일과 미소로 전태일 동상을 찾아간 박정희의 딸을 보아도 이 명제의 유효성은 입증된다. 과거의 전태일에겐 악수를 내밀지만, 현재의 전태일에겐 멱살을 잡아당기지 않던가? 그가 바로 <의자놀이>의 주인공 쌍용자동차 노동자였으니, 이 희비극이 절묘하게 한 공간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포스트 모던한 시츄에이션이라니!
2009년 쌍용자동차 2,646명의 정리해고 발표와 뒤이은 77일간의 파업, 그리고 광주를 연상시켰던 살인진압 뒤, 22명의 쌍용자동차 사람들의 생이 마감되었다. 목을 매고, 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우고, 퇴근한 남편이 옷을 갈아입는 사이 아내는 베란다에서 투신하고, 그 다음 해 두 아이를 남긴 채 그 남편이 떠나고, 대부분은 유서도 없이, 무언가에 떠밀린듯 홀린듯 미친듯 그렇게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이 곳을 등졌다.
공지영은 카톨릭 피정을 갔다가 ‘악의 특징’이라는 정의를 배웠는데 그저 ‘나쁘고, 못되고, 잔인하고’같은 것들을 생각했는데 뜻밖의 단어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혼돈, 지연, 분열.
이것은 전두환과 이명박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으로 상징되는 지난날 권력의 악행이 전자일 것이며, 친환경적으로 4대강을 파괴하고 서민을 위한다며 대기업을 보위하는 정신분열적 권력의 악행이 후자일 것이다. 그 혼돈과 지연과 분열의 바이러스에 쌍용자동차 사람들은 속무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멈추게 해야 한다, 이 죽음을. 그래서 의자놀이부터 멈추게 해야 한다. 하여 누군가는 써야 하고 누군가는 읽어야 하고 누군가는 트윗을, 페북을 해야 하고 기부도 해야 하고 결국엔 투표도 해야 한다. 혁명도 돌을 던지는 대신 표를 던져서 할 수 있는 세상이니 바뀐 세상의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도 진보일 것이다. 의자놀이를 위해선 회계감사도 멋대로 하고, 노조와의 약속은 개한테나 줘버리고, 재판도 개판으로 하고, 경찰도 법 위에서 테이저건을 난사하는 아수라장… 우리는 인내의 마지노선에 와 있는 듯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