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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죽음 1
진중권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과연 죽은 뒤가 더 두려울까
09 0113 진중권 <춤추는 죽음>1,2 세종서적 1997 *****
처음 죽음을 생각하게 된 곳은 목욕탕이었다. 탕 한에 덩그렇게 홀로 있으니 혹 이곳이 생물시간에 배운 엄마의 양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양수는 생명의 물이거늘 왜 죽음이 생각났는지 알 수 없다. 출렁이는 물결에서 묻어나는 두려움 한 조각. 죽음은 공포지만 생애 딱 한 번만 찾아온다. 다행일 것이다. 한 번 이상 죽게 된다면 그것도 엽기적일 테다.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고, 그것을 그림에 어떻게 표현했으며, 그 생각과 그림들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를 따라가보는 진선생의 이번 미학 코스는 아리에스의 도움을 받아 가는 여정이지만 진선생만이 단독 구성할 수 있는 특별한 코스다.
누구나 죽게 되는 ‘우리의 죽음’은 심판의 두려움을 미끼로 중세 가톨릭의 장사 밑천이 되었다가, 점차 ‘우리는 모두 죽는다’라는 먼 얘기보다 ‘나도 죽는다’라는 가까운 사실에 관심을 가져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개인주의화된 죽음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쳐 점점 ‘공포’스러워지면서 죽음은 승리자가 된다. 그후 낭만주의 시대에서 죽음은 아름다움과 타협하여 사랑하는 당신, ‘너의 죽음’으로 몰입되면서 나의 죽음이 살짝 잊혀지는 속임수를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죽음은 다시 사나와져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현대의 아포칼립스가 되었다.
요한계시록의 네 기사가 아니더라도 죽음을, 전지구적으로 몰고 올 수 있을 정도로 인류는 강해졌고 무서워졌다. 이미 민간인에게 원자폭탄을 써봤으며, 각종 생화학 무기와 첨단 무기가 국력을 상징하고 있고, 바로 지금도 가자지구에선 전쟁이 아닌 학살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다. 아니, 가자지구까지 가지 않더라도 바로 용산의 한 건물 위에선 야만스런 국가에 의한 살인이 철거민을 죽음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당신이 그 건물 위에서 기중기로 들어올려진 컨테이너에서 내리는 경찰 특공대를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이 지긋지긋한 삶이 더 공포스러운지, 죽은 뒤가 더 공포스러울지 누군들 쉽게 대답할 수 있을까?
인간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마르크스의 말에서 진선생은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유물론적 전략”을 끄집어낸다. “죽음의 공포는 자기가 사회와 맺었던 관계”가 “궁극적으로 단절”되는 데서 오는 것이므로 “인간과 인간 간의 연대, 세대와 세대 간의 연대”로 “앞서 살았던 사람들이 내게 물려주고 갔듯이 나 역시 언젠가 후세에게 이 세계를 넘겨주고 가야” 할 이유를 각자 찾아 대답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공자의 제자 계로가 죽음이 무엇이냐고 묻자, “삶도 아직 모르거늘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라고 한 공자의 말이, 어려운 질문을 피하기 위한 수사만은 아닐 것이다. 나의 삶에 대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대답을 하기 위해 살아간다면, 죽음이 춤을 추든 노래를 부르든 고함을 치든 미소를 짓든, 가던 길 위에 서 있게 될 것이다. (1.26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