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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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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선 물감 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그릴 수 있기를…

09 0215 고흐/신성림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예담 2005(개정) * * * *

저주받은 천재라면 너무 통속적인 호칭일까. 그의 편지를 읽는 내내 그가 너무 안타까웠다. 경제적 어려움 없이 물감을 사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생의 목적이었던 고흐.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했던 그는 동생 테오에게 “네가 보내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고까지 말했지만 결국 계속되는 발작 끝에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자살하기 한 달 전쯤 파리에서 테오와 돈 문제로 다투었다고 하니 동생의 품에 안겨 죽으며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은 결국 그의 짧은 생을 끝까지 따라다닌 돈과 발작에 그가 지치고 질려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형이 죽고 6개월 뒤 동생도 죽어 오베르의 형의 묘지 옆에 묻혔다고 하니 이 형제의 우정은 절절하기만 하다.

애가 있는 창녀와 같이 살기도 하고, 친구 고갱에겐 면도칼을 들이대고 고갱이 도망가자 귀를 잘라 잘 보관하라며 어느 창녀에게 주는 등 그의 천재성을 더욱 부각시켰던 그의 광기와 기행은 그림에 대한 고흐의 열정과 집착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요소일 뿐이었다. 그의 평생 유일하게 팔린 유화 작품 <붉은 포도밭>. 879점 중 1. 천재이기 전에 영혼이 따뜻한 화가였으며 광인이라기 보다는 그림에 미친 화가였던 고흐. 그의 눈물겨운 생에 마음이 저미어온다. 하늘나라에선 물감 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그릴 수 있기를…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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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유의 기호 - 승효상이 만난 20세기 불멸의 건축들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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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삽으로 지을 것이냐, 사유로 지을 것이냐

09 0124 승효상 <건축, 사유의 기호> 돌베개 2004 *****

천박성과 야만성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남한 정권에서 건설은 재개발로 대표되는 천민 자본주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노가다 십장 수준의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는 대운하라는 국가 개조, 아니 국가 망조 프로젝트로 말미암아 한국의 자연 가치와 미래 가치가 주판알 위에서 유린당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건축이 사유의 기호라니? 삽 한 자루에도 생각이 들어갈 수 있다고?

건축이 공학이나 예술학이 아닌 인문학의 분야에 가깝다는 저자의 생각은 충격적이었다. 건축은 기술, 조금 더 봐준다면 예술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둘 다 아니란다. “건축의 문제는 삶 자체의 문제에서 그 이해방식을 찾아야” 하며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기에 특별한 테크놀로지로 만들어진 건축이나 보기에 아름다운 건축은 건축의 일부분일 뿐이며 삶의 문제와 동떨어진 건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가 권위적 봉건적 방식으로 지어진다면 그것이 무슨 건축이겠는가? 학교는 학교답게 음악당은 음악당답게 지어지려면 필요한 것은 기술이나 예술이 아닌 인문학일 것이다. 건축에서 정말 중요한 건 한 자루의 삽이 아니라 한 조각의 사유일 것이다.

5년 전쯤 유럽을 여행했던 때가 생각난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감탄했던 것은 어떻게 그 예전에 지었던 건축물과 도로를 유지하면서도 현재와 잘 어울리게 도시를 가꿀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아니 건물 하나를 부수더라도 생각을 가지고 하느냐 아무 생각 없이 하느냐가 “경축 재개발 확정” 현수막을 거는 우리와의 차이였던 것이다.

건축, ‘Architecture’는 으뜸학문(arch : 으뜸, 크다 + tect : 학문)이란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정관사를 붙인 ‘The Architect’는 하나님이란 뜻을 가지고 있기까지 하다.(매트릭스에서도 시스템을 만든 자를 그렇게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이냐. 위대한 건축이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자본이란 노가다판의 시녀로 불려지다니! 한낱 천박하고도 야만스런 정권의 얼굴마담으로 전락하다니!

오로지 머리에 삽 한 자루밖에 없는 대통령이 존재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불행한 사람으로서 이런 건축가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저자가 소개한 16가지의 건축물 중 내가 가 본 것은 단 두 곳-퐁피두 센터와 라 그랑 아르세뿐이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곳까지 사유의 여행을 떠나야지, 가방에 이 다행스런 가이드북을 챙겨놓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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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죽음 1
진중권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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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죽은 뒤가 더 두려울까

09 0113 진중권 <춤추는 죽음>1,2 세종서적 1997 *****

처음 죽음을 생각하게 된 곳은 목욕탕이었다. 탕 한에 덩그렇게 홀로 있으니 혹 이곳이 생물시간에 배운 엄마의 양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양수는 생명의 물이거늘 왜 죽음이 생각났는지 알 수 없다. 출렁이는 물결에서 묻어나는 두려움 한 조각. 죽음은 공포지만 생애 딱 한 번만 찾아온다. 다행일 것이다. 한 번 이상 죽게 된다면 그것도 엽기적일 테다.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고, 그것을 그림에 어떻게 표현했으며, 그 생각과 그림들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를 따라가보는 진선생의 이번 미학 코스는 아리에스의 도움을 받아 가는 여정이지만 진선생만이 단독 구성할 수 있는 특별한 코스다.

누구나 죽게 되는 ‘우리의 죽음’은 심판의 두려움을 미끼로 중세 가톨릭의 장사 밑천이 되었다가, 점차 ‘우리는 모두 죽는다’라는 먼 얘기보다 ‘나도 죽는다’라는 가까운 사실에 관심을 가져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개인주의화된 죽음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쳐 점점 ‘공포’스러워지면서 죽음은 승리자가 된다. 그후 낭만주의 시대에서 죽음은 아름다움과 타협하여 사랑하는 당신, ‘너의 죽음’으로 몰입되면서 나의 죽음이 살짝 잊혀지는 속임수를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죽음은 다시 사나와져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현대의 아포칼립스가 되었다.

요한계시록의 네 기사가 아니더라도 죽음을, 전지구적으로 몰고 올 수 있을 정도로 인류는 강해졌고 무서워졌다. 이미 민간인에게 원자폭탄을 써봤으며, 각종 생화학 무기와 첨단 무기가 국력을 상징하고 있고, 바로 지금도 가자지구에선 전쟁이 아닌 학살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다. 아니, 가자지구까지 가지 않더라도 바로 용산의 한 건물 위에선 야만스런 국가에 의한 살인이 철거민을 죽음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당신이 그 건물 위에서 기중기로 들어올려진 컨테이너에서 내리는 경찰 특공대를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이 지긋지긋한 삶이 더 공포스러운지, 죽은 뒤가 더 공포스러울지 누군들 쉽게 대답할 수 있을까?

인간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마르크스의 말에서 진선생은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유물론적 전략”을 끄집어낸다. “죽음의 공포는 자기가 사회와 맺었던 관계”가 “궁극적으로 단절”되는 데서 오는 것이므로 “인간과 인간 간의 연대, 세대와 세대 간의 연대”로 “앞서 살았던 사람들이 내게 물려주고 갔듯이 나 역시 언젠가 후세에게 이 세계를 넘겨주고 가야” 할 이유를 각자 찾아 대답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공자의 제자 계로가 죽음이 무엇이냐고 묻자, “삶도 아직 모르거늘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라고 한 공자의 말이, 어려운 질문을 피하기 위한 수사만은 아닐 것이다. 나의 삶에 대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대답을 하기 위해 살아간다면, 죽음이 춤을 추든 노래를 부르든 고함을 치든 미소를 짓든, 가던 길 위에 서 있게 될 것이다. (1.26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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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 CJK - 죽은자를 위한 미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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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1215 진중권 <레퀴엠> 휴머니스트 2003  * * * * *

“원정팀 500명, 홈팀 4명입니다. 결과는 좋지만, 만족할 수 없습니다. 격차를 더 벌려야 합니다.”

어떤 스포츠 중계인지 머리를 굴릴 필요는 없다. 이스라엘 최고 인기 코미디쇼 ‘에레츠 네헤데레트(훌륭한 나라)’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망자수를 스포츠 중계 형식으로 방송한 것이라 한다. 2009년 1월 12일 현재, 태양에서 3번째 떨어진 지구란 행성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박살내고 있다. 폭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희생자가 850명이 넘었다는 보도를 어제 들었다. 민간인 백 여 명을 한 곳에 몰아놓고 폭격을 했다는 보도도 있다. 학교로 치면 전교 ‘짱’과 절친인 ‘투고’가 ‘따’ 한 놈을 밟고 짓이기고 있는 형국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왜 내 책상 금 넘어 왔어?”

진선생의 말처럼 “전쟁은 아름답다”고 한 파시스트 미학도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소박한 파괴력에 해당될 뿐이고, 현대의 전쟁은 “전쟁은 숭고하다”면서 ‘충격과 공포’의 카드로 인간을 압도하고 있다. 우주보다 귀한 인간의 생명이 언제부터 한낱 미디어의 조롱 대상으로 추락할 정도로 타락했던가? 대체 원한이 얼마나 깊고 모질기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땅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저리도 극악한 짓을 서슴지 않는가? 신이 무섭지도 않은가? 신이 우스운가?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희는 저희가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부시는 자신의 전쟁을 “신의 사명”이라 불렀다 하고(66쪽) 어떤 이는 원폭의 섬광을 “신의 윙크”라 했다고 한다.(86쪽) ‘신’을 팔아 먹는 죄값은 어떤 벌로 다스려져야 할까? 그래서 하늘의 벌은 천벌(天罰)이며 동시에 벼락 맞을 천벌(天伐)이다. 이제 퇴임하는 부시는 빈라덴의 땅굴로라도 찾아 들어가 같이 숨어야 할 것이다.

전쟁과 죽음의 레퀴엠은 죽은 자와 산 자를 같이 위로해준다. 죽은 자를 죽게 하는 일에 산 자 역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러운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 당신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가 동참했거늘,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고 발뺌할 수 있을까? 동시대를 살면서 저 먼 팔레스타인의 땅에 내가, 당신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오 주여, 그들을 죽인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땅 속에서 울부짖는 그들의 피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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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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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한 친절 기초 가이드북

081226 조이한,진중권 <조이한 진중권의 천천히 그림 읽기> 웅진지식하우스 1999 * * * *

 진선생 때문에 산 책인데 주로 화자는 조이한씨였다. 그림에 문외한인 나 정도 수준의 독자가 읽기에 수월하도록 쓰여진 책이다. 개론서라 하기에도 멋쩍고 입문서라 부르기에도 부담스럽고 그저 그림에 대해 아주 쉽게 소개하는 친절 기초 가이드북이라고 하면 작가에게 너무 실례가 될까. 난 쉬워서 좋았고,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하나라도 알 수 있어서 뿌듯했다.

 클래식 음악도 그렇지만 ‘그림’의 영역도 일반인이 친해지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단점 겸 선입관이 있다. 일반인의 게으름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전문가의 방치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일반인에게도 전문가에게도 일종의 면죄부를 선사한다. 일반인은 쉽고 편하게 ‘그림’을 접함으로써 귀차니즘에서 벗어나게 되고, 전문가는 친절하고 정확하게 ‘그림’에 대해 소개함으로써 수수방관죄에서 풀려나게 된다.

 제 1장 : 미술 양식의 변화는 발전이라기보다는 기존 스타일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와 “그러고 싶지 않아서” 바꾸려는 의지의 발현으로 보아야 한단다.
 제 2장 : 암호 해독에 버금가는 도상학의 여러 해석 중 절대적으로 옳은 해석을 찾기보다는 근거를 갖춘 여러 해석을 창조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제 3장 : 다빈치와 고흐를 통해 화가의 무의식이 어떻게 작품에 반영되고 해석될 수 있는지 소개한다.
 제 4장 : 화가의 주문자에 의해,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사회적 관계에 의해 움직여지는 작품에 대해 소개한다.
 제 5장 : 흔치 않은 여성 화가에 대해 소개하며 본저의 주저자가 여자인 조이한씨임을 드러낸다.(나의 편협한 생각일지 몰라도)
 제 6장 : 가장 재미없는 챕터로 그림을 기호와 상징으로 해석하는 예를 보여준다.
 제 7장 : 가장 아쉬운 챕터로 기존의 해석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현대 미술 읽기는 “재미있는 놀이, 게임”으로 “현대 미술에 접근하는 더 많은 통로”를 주체적으로 찾는 것은 수용자의 몫임을 강조한다.

 그림 문외한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쉽고 편하다. 클래식이 가요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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