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왼손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서정록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나 더 피를 원하는가

09 0527 어슐러 K. 르귄 / 서정록 <어둠의 왼손> 시공사 2002 *****

요즘은 책을 읽고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가 못된다. 뱀파이어 정권과 그에 기생하는 검찰과 경찰, 조중동의 이빨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목을 물었기 때문이다. 비록 난 아직도 그가 대통령직에 있었을 때의 정책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부문-한미 FTA, 이라크 파병 등-이 많지만, 그리고 그것에 대해 심한 말도 많이 했었지만, 그가 이렇게 떠나도록 등을 떠민, 단 한번도 기득권을 양보한 적이 없는 주류 뱀파이어 세력에 환멸을 느낀다.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 역겹다. 토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난 이 훌륭한 소설을 이야기할 정신이 없지만 ‘SF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면 1순위는 르귄’이라는 평이 허언이 아닐 정도로 <어둠의 왼손>은 전율을 느낄만큼 잘 짜여진 소설이다. 분석하기에 따라서는 여러 갈래로 그 의미를 짚어보기에도 좋다.

굳이 페미니즘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성性과 인간, 즉 성性이 인간의 실체에 미치는 영향이란 측면-남녀 구별이 없는 게센인은 케머 상태에서만 성性을 택해 관계를 가진다! 이럴 수가!-도 논의해 볼 수 있고, 새로운 문명과 문명이 충돌-헌팅턴의 그 문명의 충돌 말고-할 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온갖 모략과 술수에 대해서도 떠들어 볼 수 있고, 지구 이외 문명의 실존 가능성과 상상에 관한 이야기, 달이 26일로 1년에 14달이 있다는 게센 역법과 시간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하지만 난 지금, 다른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하고 있는 듯이 들린다. 하늘을 나는 물체를 타고 온 엔보이-사절-를 게센인들은 믿지 않는다.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스트라벤이란 게센인은 새로운 세계를 대변하는 엔보이가 거짓이 아니며 이 새 문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이 속한 세계뿐만이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해 그것이 옳은 일임을 자신의 목숨과 바꿈으로써 증명하고야 만다.

김수영은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고 노래했다. 인간은 피를 보지 않고는 자유도, 새로운 세계도 가질 수 없는 걸까? 노 대통령이 기여한 민주주의의 한 부문도, 결국 피를 보고 나서야 또 다른 세계를 인정했던 게센인들처럼 그의 피를 원했던 것일까? 자유도, 민주주의도, 새로운 세계도, 새로운 가치관도 피를 먹고 자랄 수밖에 없다면 인간의 운명은 너무나 비극적이지 않은가?

빛은 어둠의 왼손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둘은 하나, 삶과 죽음은
케머 연인처럼
함께 누워 있다
마주 잡은 두 손처럼
목적과 과정처럼

내일 시청 앞에서 노 대통령 노제가 있다.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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