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 부키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다리를 걷어찬 선진국 걷어차기

09 0502 장하준 / 형성백 <사다리 걷어차기> 부키 2004 *****

아주 잘된 책이다. 주장은 호랑이 같고 논거는 여우 같다. ‘뮈르달 상’이 어떤 권위를 가진 상인지 알지 못하지만 1년간 출간된 경제학 서적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 수여하는 상이며 본저(원제 “Kicking away the ladder”)가 이 상을 받았다고 한다. 읽어보니 받을 만 했다.

“사다리 걷어차기”란 제목도 흥미로운데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다른 이들이 그 뒤를 이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을 빼앗아 버리는 행위로 매우 잘 알려진 교활한 방법”(24쪽/리스트)이란 뜻이다. 바로 현재 소위 선진국이라는 깡패들이 그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의 서문만 잠깐 인용해도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책(policy)의 측면에서 “선진국들은 자신이 경제발전을 도모하던 시기에는 보호 관세와 정부 보조금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켜 놓고 지금에 와서는 후진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채택하고, 보조금을 철폐하라고 강요한다.”(8쪽)
2MB의 쇠고기 협상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황당한 것은 2MB 역시 자유무역을 주창한다는 것인데 대체 목 위에 달린 신체 부위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유무역이 살 길이라는데 제 정신인지 모르겠다.

제도(governance)의 측면에서 “현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현 개발도상국들과 유사한 발전 단계에 있을 때 갖추지 않고 있던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이들에게 이중 잣대를 효과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불필요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이들을 궁지로 몰고 있다.”(245쪽) 다시 말해 “과거 자신들은 여성, 빈민, 저학력자, 유색 인종에 대해서는 투표권조차 주지 않았으면서 지금은 후진국들에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면 경제 발전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8쪽)

저자는 이 두 가지 측면을 자세한 자료 조사와 연구로 실증한다. 증거를 들이대니 어떤 변명도 위선에 불과해진다. 이 책의 탁월한 부문이라 하겠다.

하지만 결론은 다소 실망스러운데 저자는 선진국들의 이 치사한 ‘사다리 걷어차기’가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하면서 “개발도상국들이 그들의 발전 단계 및 그 밖의 제반 여건들에 더욱 알맞은 정책과 제도를 채택할 수만 있다면 (…)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며 그것이 “선진국에게도 유익할 것”이라며 위아더 월드 식으로 결어를 정리한다. 왜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해졌나 생각해보니 계급적 관점이 결여된 결어가 아닐까 여겨졌다. 마치 형이 아우를 잘 돌보아주듯 선진국 형들이 개도국 아우들을 너무 치사하게 들볶지 말라는 질책 수준에서 머물고 있지 않나 싶어 아쉬웠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의 글이 흔치 않다는 점에서 일독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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