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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유의 기호 - 승효상이 만난 20세기 불멸의 건축들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04년 8월
평점 :
건축-삽으로 지을 것이냐, 사유로 지을 것이냐
09 0124 승효상 <건축, 사유의 기호> 돌베개 2004 *****
천박성과 야만성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남한 정권에서 건설은 재개발로 대표되는 천민 자본주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노가다 십장 수준의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는 대운하라는 국가 개조, 아니 국가 망조 프로젝트로 말미암아 한국의 자연 가치와 미래 가치가 주판알 위에서 유린당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건축이 사유의 기호라니? 삽 한 자루에도 생각이 들어갈 수 있다고?
건축이 공학이나 예술학이 아닌 인문학의 분야에 가깝다는 저자의 생각은 충격적이었다. 건축은 기술, 조금 더 봐준다면 예술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둘 다 아니란다. “건축의 문제는 삶 자체의 문제에서 그 이해방식을 찾아야” 하며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기에 특별한 테크놀로지로 만들어진 건축이나 보기에 아름다운 건축은 건축의 일부분일 뿐이며 삶의 문제와 동떨어진 건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가 권위적 봉건적 방식으로 지어진다면 그것이 무슨 건축이겠는가? 학교는 학교답게 음악당은 음악당답게 지어지려면 필요한 것은 기술이나 예술이 아닌 인문학일 것이다. 건축에서 정말 중요한 건 한 자루의 삽이 아니라 한 조각의 사유일 것이다.
5년 전쯤 유럽을 여행했던 때가 생각난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감탄했던 것은 어떻게 그 예전에 지었던 건축물과 도로를 유지하면서도 현재와 잘 어울리게 도시를 가꿀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아니 건물 하나를 부수더라도 생각을 가지고 하느냐 아무 생각 없이 하느냐가 “경축 재개발 확정” 현수막을 거는 우리와의 차이였던 것이다.
건축, ‘Architecture’는 으뜸학문(arch : 으뜸, 크다 + tect : 학문)이란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정관사를 붙인 ‘The Architect’는 하나님이란 뜻을 가지고 있기까지 하다.(매트릭스에서도 시스템을 만든 자를 그렇게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이냐. 위대한 건축이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자본이란 노가다판의 시녀로 불려지다니! 한낱 천박하고도 야만스런 정권의 얼굴마담으로 전락하다니!
오로지 머리에 삽 한 자루밖에 없는 대통령이 존재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불행한 사람으로서 이런 건축가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저자가 소개한 16가지의 건축물 중 내가 가 본 것은 단 두 곳-퐁피두 센터와 라 그랑 아르세뿐이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곳까지 사유의 여행을 떠나야지, 가방에 이 다행스런 가이드북을 챙겨놓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