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맨
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지음, 양혜진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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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기억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우리의 아들과 남편들 말이에요.

아니면 그냥... 사라지는 걸까요?

 

......

나는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에 대해 말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고 생각해.

우리는 우리가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에게 사랑받았다는 것을 기억할 거고. 그거면 충분할 거야.

알지? 세계가 너를 기억하지 않아도 너는 중요한 사람이야.

우리는 우리가 사랑했던 그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어.

모두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 <엔드 오브 맨> 중 457쪽

 

 

 

 

치사율 90%

오직 남성만을 공격하는 바이러스

 

여성을 숙주로 하고 오직 남성에게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발생한다.

처음 그 증상을 발견한 의사가 위험을 경고했지만, 멍부 등을 포함한 사람들을 그것을 믿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영국 글래스고의 한 병원에서 발견된 후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고, 남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간다. 면연력을 가진 얼마간의 남자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남성만을 공격하는, 치사율 90%의 바이러스가 만연한 세상에서, 그런 남성들을 아버지로, 남편으로, 자식으로 둔 여러 여성들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역병,

우리 역시 지금 역병의 시대를 살고 있어서인지 많은 부분에 공감할 수 있었고, 집중할 수 있었다.

역병으로 아버지를 잃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잃는 여성들.

그녀들은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름의 방법으로 이 바이러스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죽음 앞에 한없이 무력한 사람들의 모습에 안타까움과 착잡함이 밀려왔다.

 

그러던 중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백신이 발견되지만, 백신을 개발한 여성은 공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당당하게 자신의 노력과 공이니 그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의 다양한 모습들이 보여진다.

남성들로부터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하고, 남성들이 사라진 자리를 여성들이 하나둘 차지하기도 한다.

중국은 여러 개의 자치국으로 분열되고, 어떤 나라에서는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급제가 실시되기도 한다.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증된 정자 등을 이용해 임신할 여성들을 선별하는 방안도 나온다.

 

그리고...

남자가 부족한 세상이지만, 남은 사람들은 점점 일상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

생각만 해도 무섭고 끔찍하다.

세상에는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인데, 남자만 죽어가는 바이러스라니...

 

여전한 코로나에, 최근에는 원숭이두창까지...

무서운 바이러스는 어쩌면 계속해서 생겨나고 사라지고, 어쩌면 오랫동안 유지되고 할 것이다.

동기들과 이야기하는 도중에 원숭이두창 이야기가 나와서, 얼마전에 남자들만 죽게 하는 바이러스가 소재인 소설을 읽었다고 하니 다들 웃었다. 어쩌면 말도 안된다는 반응일지도 모른다. 남자만 죽게 하는 바이러스라니... 그런게 있단 말이야... 이런 느낌이겠지.

그런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사실 이거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누군가의 아버지, 남편, 아들이 남자라는 이유로 그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 남은 여성들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는 거였다.

어쩌면 자신으로 인해 자신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이 죽게 된 것은 아닌지 죄책감까지 안고 말이다.

 

여전한 코로나의 시대에 이 소설을 읽게 되어서, 소설 속 상황이나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더 공감할 수 있었던 듯 하다.

작가가 코로나19 발생 전에 이 소설을 썼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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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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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1993년에 쓴 이 소설은 2024년의 미래를 다루고 있다. 그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암울하고 끔찍하고 잔혹하고 황폐해진 무서운 세상이었다.

작가가 그린 어둡고 불행하고 잔혹한 미래의 모습이 2022년 현재의 모습과는 달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와 다른 것을 경원시하는 혐오의 모습은 닮아있는 듯 해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

 

소설 속 사람들은 직장에 가거나 외출을 하는 것조차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 장벽 밖은 위험하므로 아이들도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빈부격차는 상당히 심하고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는 무척 떨어진 상태이다. 기름값이 너무 비싸 자동차는 그저 집에 두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사람들은 장벽을 치고 장벽 안에서 살아가지만, 장벽 밖에서는 온갖 흉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장벽 밖의 무뢰배들은 시시때때로 장벽 안으로 침입해 물건을 훔치거나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주인공 로런은 친모가 임신한 상태로 과용한 약물 때문에 남들과는 다른 '초공감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겪는 신체적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똑같이 느낀다.

 

목사인 아버지의 교육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 워낙 영특하기 때문인지 로런은 보통의 또래 아이들과는 다르게 현재의 처지나 상황에 그저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부정적 모습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에 대비하려고 한다.

 

그러나 서로 돕고 살던 마을 공동체는 점점 무너졌고, 파이로 족들의 습격으로 마을이 불바다가 되고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죽어가던 날, 로런 역시 가족을 잃었다.

로런은 그 일을 계기로 장벽 밖으로 나가 자신이 원래 계획했던 북쪽을 향해 나아간다.

로런의 옆에는 로런과 마찬가지로 가족을 잃은 이웃 '자라'와 '해리'도 함께였다.

그렇게 북쪽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 이들은 장벽 안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참혹한 현실과 위험을 늘상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옆에 하나둘 여정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건 누구도 대비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무슨 일이 터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일이 얼마나 심각할지, 언제 일어날지는 알 길이 없었쬬.

하지만 모든 게 나빠져만 갔어요.

기후, 경제, 범죄, 마약, 그런 것들 말이에요.

우리만 장벽 안쪽에서 느긋하게, 깨끗하고 든든하고 풍족하게 살 자격이 있다고는 믿을 수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바깥세상에서 굶주리고 목마른 채 집도 없이 지저분하게 사는데 말이에요.

 

-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중 328쪽

 

로런의 여정은 끊임없이 목숨을 걸거야 하는 전쟁같은 나날이었다.

하루하루 제대로 편안히 쉬지도 못하면서 주위를 경계하고 상황을 파악하고 길을 나서야 한다.

누군가 다가오면 의심부터 해야 하고,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로런은 그 현실을 인정하면서 좀 더 나은 세계를 꿈꾼다.

로런은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나이가 한참 어린 로런이었지만, 로런이 삶과 배움을 대하는 태도는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로런이 살던 세상에서 나라면... 로런처럼 행동하고 나아갈 수 있을까도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제목처럼 누군가는 아무것도 없거나 혹은 황폐해진 세상의 한 곳에서 씨 뿌리는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내딛을 것이다. 그리고 그 뿌려진 씨들 중 분명 어떤 것들은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되지 않을까.

 

 

이 나라는 살아남을지도 몰라요.

변화한 채로, 하지만 여전히 스스로인 채로.

 

- 582쪽 

 

※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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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는 숙녀 두 사람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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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나 원한, 감정 싸움 같은 동기는 있지만 범행을 계획한 주범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고 볼 수 있었지.

어떤 부류냐면 재산을 잃고, 가족을 잃고, 삶의 의미를 잃고서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지켜 보고 싶어 범죄를 부추기는 악당이었어. 악녀였지.

 

돈이 갖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명예가 탐난다, 자유롭고 싶다.

보통 사람들이 당연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은 많아.

그러다 욕심이 한계에 다다르면, 윤리관이 모호해지기 쉽지.

그런 사람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악의를 증폭시켜서 자신이 손은 더럽히지 않은 채 남을 죽이는 거야.

 

쾌락도 오락도 아니야. 그만한 열정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어.

이렇게 말하면 그렇지만 심심풀이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 세상에는 말이야, 어떤 의학 지식이나 수사 경험을 총동원해도 이해할 수 없는 악이라는 게 존재해.

 

- <비웃는 숙녀 두 사람> 중 58쪽

 

 

 

 

고급 호텔에서 열린 동창회에서 독이 섞인 음료를 마시고 17명이 사망하고, 3명만이 살아남는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사망한 17명 중에는 '히사카 고이치'라는 국회의원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는 당시 갑질 사건과 불륜 의혹 때문에 평판이 땅으로 곤두박질친 상태였다.

죽은 히사카의 손에서 숫자 1이 적힌 종잇조각이 발견되었고, 경찰은 숫자 1과 히사카의 관련성에 대하여 조사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한편, cctv를 확인하니 연회장에 원래 배치된 직원이 아닌 누군지 알 수 없는 불상의 여성이 트레이에 음료를 실어와 손님들에게 나누어 준 것을 알 수 있었다.

불상의 여성의 얼굴을 3D화 해서 경찰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한 결과, 그 여성은 과거 한노시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에서 실행범으로 지목되었으나 의료교도소에서 탈출한 '우도 사유리'로 판명되었다.

 

그 뒤에도 우도 사유리로 추정되는 인물은,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대형 버스 충돌 사고, 중학교에서 발생한 방화 및 살인 사건, 피트니스 센터에서 발생한 폭발 사건 등에서 모습을 드러내었고 사라져 버렸다.

 

이 모든 사건은 우도 사유리의 짓일까?

그리고 그녀가 이런 대형 살인 사건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

<비웃는 숙녀>로 시작해서 <다시 비웃는 숙녀>와 《비웃는 숙녀 두 사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는 말 그대로 '비웃는 숙녀'인 가모우 미치루가 등장한다.

사실 <비웃는 숙녀>를 읽을 때만 해도 가모우 미치루라는 여성이 범죄자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그녀에게 당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에 따른 피해를 입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큰 동정의 마음은 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분명 <다시 비웃는 숙녀>에서는 그녀의 행동에 약간의 소름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번 《비웃는 숙녀 두 사람》에서는 가모우 미치루는 정말 악녀라는 사실에 이견이 없어졌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정말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을 현혹하고, 아무렇지 않게 관련성이 없는 사람들까지 희생시킨다.

 

아, 그런데... 나카야마 시치리 월드에서 가모우 미치루는 정말 매력적인 악녀다. 한마디로 <비웃는 숙녀> 시리즈는 너무 재미있다.

거기다 가모우 미치루만으로도 충분한데 이번에는 우도 사유리까지 가세해 말 그대로 대단한 악녀 콤비가 탄생했다.

 

누가 더 악녀일까?

나는 가모우 미치루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직접 실행하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 더 잔인하고 무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도 사유리 역시 무척이나 만만치않은 상대가 맞다.

책의 띠지에 보면 "물어뜯어 주마"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그 장면은 정말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참, 이번 소설에는 내가 최애하는 캐릭터 '마코시바 레이지 변호사'가 등장해 여전히 신랄하고 차가운, 그러나 한치도 틀린 내용은 없는 말을 쏟아내며 그를 찾아온 경시청 형사에게 팩트 폭격을 날린다. 아, 너무 반가웠습니다.^^

 

다음에는 가모우 미치루의 어떤 모습을 만나게 될지, 그녀가 얼마만큼 더 잔인하고 차가운 악녀의 매력을 뿜어낼지 기대된다. 아, 사실 가모우 미치루가 하는 일이라는 게 상대방을 죽게 하거나 나락으로 빠뜨리는 일이라서 기대하면 안 되는데... 하하하.

 

※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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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A 살인사건
이누즈카 리히토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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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아홉 살 소녀를 살해하고 안구를 적출하는 잔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일명 '고쿠분지 여아 살해사건'이라 불린 그 사건의 범인은 중학생으로 밝혀져 더욱 대중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가해자 소년은 소년법에 의해 실명이 공개되지 않았고 '소년A'라 불리었다.

그리고 현재, '고쿠분지 여아 살해사건의 실제 영상'이라는 동영상이 다크웹에서 판매되고 있는 걸 확인한 경찰은 동영상을 유출하고 판매한 사람이 누구인지 조사하기 시작한다.

경시청 감찰계 계장인 '시라이시 히데키'는 위 동영상이 경찰 내부에서 유출되었을 가능성을 조사하기로 하고,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관계자들을 만나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한편, 카드회사에서 연체금 변제를 독촉하는 업무를 하고 있는 '미타 에리코'는 그녀 때문에 카드가 정지되어 급식비를 내지 못한 딸이 자살했다라고 욕설을 퍼붓는 악성 민원인의 말이 신경쓰여 그의 뒤를 미행했고, 그가 부적절한 방법으로 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미성년자 성매매를 하는 현장을 목격한 후 영상을 찍어 자경단 사이트에 올린다.

그녀의 게시글로 인해 악성 민원인의 실명과 얼굴이 공개되고 결국 경찰 조사까지 받게되자, 에리코는 묘한 짜릿함을 느끼고 자경단 사이트에 더 깊이 빠져든다.

그리고 자경단 사이트에서는 다음 타깃으로 소년A를 지목하고 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려고 한다.

 

 

(P. 254)

소년A는 분명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이 사회 한구석에서 숨죽인 채 살아가고 있을 줄 알았다.

어쩌면 그건 이쪽의 염원이었을지도모른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짊어지고 살고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P. 381)

20년 전, 이토 미쓰키가 살해당했을 때 정의는 실현되지 못했어. 신은 거기에 없었지.

아무리 범인이 열네 살 소년이었다고는 하나, 그렇게 잔인한 짓을 저지른 인간이 소년법 때문에 벌다운 벌도 받지 않다니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어.

만약 인간이 만든 법이 악을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다면 인간 스스로 법을 초월해 악을 심판하는 수밖에.

소년A는 순진무구한 소녀를 장난치듯 죽여놓고 어처구니없게도 그 죄를 면했어.

 

 

 

-

무고한 생명을 잔인하게 유린한 범인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소년이라는 이유로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

아직 제대로 피지 못한 아홉 살의 소녀는 자신의 생을 마감했지만, 소녀의 생을 꺼뜨린 범인은 겨우 몇년간 소년원에 있다가 이름과 얼굴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소설 속 에리코의 말처럼, 나 역시 소년A가 있는 듯 없는 듯 세상 한구석에서 조금은 안쓰럽게 살고 있기를 바랐다.

그가 감히 행복을 꿈꾼다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

좋은 의도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자경단에 의해 폭로되는 이들은 사회에서 매장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고, 어쩌면 가끔은 그들이 행한 악행보다 더한 사회적 처벌을 받는 것 같기도 하다.

엄연히 우리 사회에는 법이 존재하는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복수가 옳고 정당하다는 말은 하기 어렵겠다.

더구나 자경단 사람들 중에는 결국은 자신의 일이 아닌 일들을 부추기고 키워 더 큰 짜릿함과 흥미를 원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자경단의 행동을 잘했다고 하긴 어렵지만, 잘못을 저지르고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서 떵떵거리고 살면서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는 이들을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도 사실이다.

 

 

위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가벼운 법적 처벌만은 받고 어엿한 사회의 일원(거기다 사회에서 선망받는 직업)이 되어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건, 참으로 서글프고 속상한 일이다.

 

 

-

그래서였을까.

소설 속에서 반전을 제공하게 되는 인물의 행동이 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도 안타깝고 잔인한 반전에 속상해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소년법에 대한 생각은 나 역시도 무엇이 옳은지는 사실 모르겠다.

하지만 점점 잔인하고 도를 넘어가는 소년범들이 존재하기에, 또 아무런 잘못도 없이 그런 소년범들에게 잔인하게 희생되는 피해자가 존재하기에, 뭔가 지금보다는 더 적절한 제도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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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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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 키친은 말 그대로 책들의 부엌이에요.

음식처럼 마음의 허전한 구석을 채워주는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 지었어요.

지난날의 저처럼 번아웃이 온 줄도 모르고 마음을 돌아보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구요.

맛있는 이야기가 솔솔 퍼져 나가서 사람들이 마음의 허기를 느끼고 마음을 채워주는 이야기를 만나게 됐으면 했어요.

그리고 누군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 <책들의 부엌> 중 225쪽

 

 

 

 

 

소양리 북스 키친...

책과 공간, 그리고 사람이 주는 조용하고 따스한 위로가 가득한 그곳...

소설 속의 장소이지만, 실제로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

 

우연히 소양리에 왔다가, 정말 우연히도 부동산 손님들의 대화를 듣다가, 유진은 관심이 생겨 그 장소를 보게 되고 한눈에 반해 계약을 하고 그렇게 소양리에 북카페 겸 북스테이가 있는 '소양리 북스 키친'을 열게 된다.

스타트업 회사에서 열심히 달리기만 했던 유진, 전공인 건축을 살리지 못하고 공무원 시험마저 번번이 떨어졌던 시우, 작사가를 꿈꾸지만 쉽지 않은 형준이 소양리 북스 키친의 오픈 스탭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과 대중이 사랑하는 모습의 괴리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다인, 바쁜 일상에서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온전히 들여다볼 시간마저 갖지 못했던 나윤, 남들보다 더 열심히 달려왔지만 갑자기 인생에 급제동이 걸려버린 소희, 불안정한 가정 환경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진짜를 잃어버린 마리와 그녀를 계속 지키고 싶은 지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여러 상황들로 죽음을 자주 생각하는 수혁 등 소양리 북스 키친을 찾는 이들은 모두 마음의 허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번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소양리 북스 키친을 찾은 여러 손님들은 이 곳에서 마음을 위로하고 다시 앞으로 나갈 힘을 얻는다.

 

소설을 읽는동안 참 마음이 따뜻해졌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나에게 조곤조곤 따스하고 공감어린 위로를 건네는 듯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위로받고 힘을 얻었듯이, 나 역시도 좋은 기운을 얻어 마음을 쉬어갈 수 있었다.

마치 내 주변에 하나쯤은 있을 듯한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은 나와 내 주변을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요즘은 이런 따스한 문장이 가득한 소설이 좋다.

범죄와 미스터리로 가득찬 내 책장과 마음 안에 따스한 마음이 전해지는 힐링 소설도 한권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요즘이다.

참, 소양리 북스 키친에서 추천해 주는 도서 목록들도 다 체크해 뒀다.

내 주변에 유진이나 시우, 형준이 있는 소양리 북스 키친은 없지만, 그 마음을 느끼고 싶어 언젠가는 한권씩 독파해 볼 생각이다. 하하하.

 

소희의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처럼 '최적 경로'라는 단어가 밀려들었다.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 경주도 아니고 마라톤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게 아닐까.

삶이란 결국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찾아내서 자신에게 최적인 길을 설정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 <책들의 부엌> 중 121쪽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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