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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인 삶
이서희 지음 / 그책 / 2013년 11월
평점 :
왜 이렇게까지 평이 안좋은지 의아한 책.
내 안목이 없는건가? 나는 너무 좋았는데!!!!!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다가 누군가 읽고 있는 책이 무어냐고 물었는데 ‘매혹적인 삶’이라고 답했다. ‘관능’이라는 단어가 어색해서 그랬을 것이다. 끌린다는 의미의 단어였던 것 같기는 한데..라고 생각하며 고작 꺼낸 것이 매혹이라니.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한국 사회는 ‘관능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나 여성이라면, 관능에 대해 말할 때 불온한 시각에서 벗어나기가 더더욱 어렵기는 여전한 것 같다. 언젠가 지금의 남자친구의 매력에 대해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때, 가장 친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그 애 중 한명이 “넌 왜 이렇게 남자를 좋아해?”라고 말한 것은 꽤나 충격적이었는데, 1.내가 유부녀가 아니라는 점. 특히나 그 당시는 솔로였다는 점 2.그렇게 자주 만나지도 못한 친구였다는 점.(그래서 자주 말하지도 않았다는 점) 3.내가 여자라는 점 에서 호감 있는 남자에 대해 그 정도 떠들 권리는 있지 않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을 열망했다.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기에 그 사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가에 대해 수없이 설명하고 싶었다. 이제야 느끼지만, 어쩌면 그 행동 자체가 조금 어린 행동이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져 그 행복감이 무엇인지 기어코 설명하겠다는 우월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나의 관심이 비판받아 마땅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이렇게나 좋아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며 아름다운 일이지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그 친구의 예상과는 달리(아마도 그 친구는 내가 사랑을 하느라 다른 많은 것들을 놓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오히려 내가 그동안 인생을 헛살았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의 말대로 남자를 너무 좋아한 것이 아니라, 너무 덜 좋아했던 것 같았다는 것이다. 언젠가 좋아하는 사람을 친구가 사귀게 되었을 때 ‘내가 고백했더라면 나를 선택했을 텐데’ 라고 생각한 찌질함, 오랜 기간을 멀리서 바라보던 청승맞음, 거절당할 것 같으면 마음을 표현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던 오랜 시간들이 아쉽고 한탄스러운 거다. 그런 점에서 일찍부터 사랑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던 작가의 경험들은 멋지다. 사실은 나 또한 보수적인 부분이 많기는 해서, 작가의 글을 읽으며 한순간 인상이 찡그려지는 순간들도 있었으나 뭐 어떤가.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 추억들을 쌓았는데. 그리고 그 기억을 담보로 삶을 살아갈 텐데.
작가에게서 배운 점은 그런 사랑으로의 적극적 개입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몰입하여 사랑할 줄 아는 그 열성이다. 작가는 「사랑을 주기로 선택한 이후, 상대가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돌려주는가 아닌가는 내 사랑을 결정짓지 않는다. 내가 집중하는 것은 내 안의 에너지가 생성되고 상승하고 그러다 남김없이 사라지는 광경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 당신이 나타나서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라고 말한다. 내가 사랑하기로 선택했기에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는 점. 기대하고 실망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연애의 역사에서 거듭 실패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러니 저 작가가 어떻게 멋져보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또 작가의 멋짐은 그녀의 말에서 드러나는데, 챙겨줄 여유가 없어 미안해하는 남자에게 그녀는 “행복하다고 말해줘. 내가 너를 사랑해서, 내가 너를 사랑하기로 선택해서 기쁘다고 말해줘.”라고 말한 것이 그렇다. 비꼬거나 물고 늘어지지 않고 아쉬운 마음을 사랑의 언어로 되받으려는 이 작가의 언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하여 이 작가의 말을 흉내내 보기로 한다.
「나중에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이렇게 그 사람을 바라봐주렴.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못 견디도록 예쁜 부분들이, 너무 특별해서 남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눈에 들어올 거야. 그걸 놓치지 말고 그 사람에게 너만의 언어와 몸짓으로 표현해줘.」라는 그녀의 말처럼 이번 주말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고 아주 작은 것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테다.
마지막으로 아래의 말처럼, 존재와 순간의 소중함에 매료될 테다.
「어릴 땐 그 모든 것이 결국엔 사라진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꼈고, 이후에는 아득한 상실감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덧, 사라짐이 선물하는 존재와 순간의 소중함에 매료되었다.」
아득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현재는 아직 어려서 그런 모양이라고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앞으로 다가올 어른의 시기에는 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아 모든 순간을 빛나도록 사랑하고 사랑할테다. 아니, 그런 것이 나이듦이라면 내일부터 당장 나이를 들 테다.
*좋았던 구절들을 남겨둔다.
#퇴폐는 거리감에서 나온다. 만약 적정한 거리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곳에서 한 발 더 물러선 자리에서 느긋하게 몸을 기대고 남김없이 바라보되 결코 맞닿지 않을 것을 명징하게 인식하는 상태.
#나는 오래도록 그를 잃지 않을 방법을 생각했다. 독처럼 단단해지기. 사랑이나 미움, 기다림이나 외로움, 허무함 따위의 사소한 감정에 침투당하지 않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기. 모든 가능성에 미리 절망하기.
#그 청년의 시선이 잠시 내게 머물 때,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반대편 승강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어느 청년이 나를 위해 달려왔던 것처럼. 데자뷰를 온몸으로 구현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인연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관계가 있다. 나는 서로 존재가 연루되었음을 느끼는 사람들을 아주 가끔 만난다. 헤어날 수 없음에 허탈해하다 항복하듯 나를 내던지고 만다. 우리는 그렇게 공범처럼 서로를 인식한다. 너의 존재는 나에게 위로인 동시에 절망, 그 사이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매혹이다.
#사랑을 주기로 선택한 이후, 상대가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돌려주는가 아닌가는 내 사랑을 결정짓지 않는다. 내가 집중하는 것은 내 안의 에너지가 생성되고 상승하고 그러다 남김없이 사라지는 광경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 당신이 나타나서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지금 파리의 저녁은 맑고 쾌청하고 로스엔젤레스의 오전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뉴욕의 오후는 구름이 끼었지만 맑고 따뜻하며 서울의 늦은 밤에는 바람이 분다.
#이름을 짓고, 아름다움에 서사를 부여한다. 그러면 나도 상대도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떠오른다. 발견이 발명이 되는 순간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이처럼 무한하고도 신비로운 행위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를 찾기 보다는 곁에 있는 사람 혹은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의 놀랄 만큼 멋진 부분을 발견하는 것이 더 황홀할 수 있다.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내 얄팍한 시선이, 아무것도 꿈꾸지 않는 오만이, 무력한 청춘이.
#애초에 무너지기 위해 태어난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래도 나는 그렇게 무너지는 순간순간, 미치도록 아름다웠던 나의 엄마 제나씨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왜 우리의 삶은 이따금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히듯 모든 것을 달리하는가. 저 멀리 사라지는 풍선을 바라보듯 망연해지는 것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닥에 몸을 낮게 깔고 흐느끼는 것 이외에,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사는 것 말고 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굳건히 믿어 왔던 삶이 그 본질에서부터 변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믿어 왔던 행복이, 단단히 우리를 지탱하고 있다고 믿었던 삶이, 얼마나 나약하고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말이다.
#삶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순간은 바로 상상 밖이라고 믿었던 불행과 마주할 때이다. 그리고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와 내 바깥을 주시한다.
#우리의 행복은 가끔 당신의 불행에 숨어서 슬며시 기대고 있는 치사함을 품고 있다. 저 사람들처럼 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인 내 인생이 그래도 행복한 거라고 믿는다면, 만약 그 정도가 우리가 생에서 얻을 수 있는 위로와 행복이라면, 그 얼마나 비루하고 허약한 행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