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잡학사전 - 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술에 대한 모든 것
클레어 버더 지음, 정미나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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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좋아하지만 알고 먹기보다는 ‘먹으면서 알자’주의다. 그래도 먹은 시간과 횟수가 있으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금방 책을 읽을 줄 알았는데.....

내가 술에 대해 이렇게나 몰랐나 새삼 먹은 세월이 아까워질 정도.
와인, 사케, 맥주 등 다양한 주종에 대한 제조과정과 어울리는 음식, 가벼운 역사 얘기 등 애주가라면 흥미로울 내용들로 가득했다. 다만 너무나 똑같은 형식이 여러 주종을 두고 반복되는 구조라서 뒷부분을 읽을 땐 급격히 흥미가 떨어진다는 아쉬움이 있다.

술을 사랑한다면 읽어보기를 추천.
이야기 위주가 아니라 정보 위주의 책이라서
가볍게 읽기보다는 공부하듯이 읽어야 더 재밌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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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23~30)

5월의 책들을 정리하고 보니 열다섯 번의 밤과 낮이 5월의 처음과 끝을 마무리해주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쩐지 밤으로 시작해 낮으로 끝났다는 사실에 한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5월에 나를 끈덕지게 괴롭혔던 것은 인간 본성의 나약함에 대한 생각들이었는데 그런 생각을 시작하게 만든 건 우리의 어린 아이들이었다. 해가 지날 때마다 집단생활을 이상향으로 그리면서도 그에 포섭되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이건 조금 무서운 현상이라고 여겨지는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사회성을 더 가지는 쪽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후퇴하는 쪽으로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어느 누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는가, 라는 생각 또한 든다. 그간 부모의 보살핌과 친구들과의 놀이 문화를 통해 인간의 사회성을 길러주다가 근 몇 년 사이에 맞벌이 부모가 급격히 늘어나고 놀 대상 또한 스마트폰이 친구를 대체해주면서 억지로 사회성을 만들어주지 않게 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결국엔 자연으로의 회귀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 아니라 철저하게 고립되고 분리된 동물에 가깝지 않을까 라고 혼자 아무 생각 대잔치를 해보았다.

책 목록은 다음과 같다.
23. 열다섯 번의 밤
24. 읽기의 말들
25. 고양이 낸시
26. 실연의 박물관
27.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28. 관능적인 삶
29. WHEN 시간의 심리학
30. 열다섯 번의 낮

추천할만한 책들을 기록해둔다.

#열다섯 번의 밤 그리고 낮(23,30)
나는 책을 읽고도 작가의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데 특히 한국 작가들의 이름은 내 지인들의 이름과 짬뽕되어 어떤 때는 두 작가의 작품을 반대로 쌍을 지어 기억하기도 하고 혹은 열심히 읽어 놓고도 그런 작가가 있었냐며 화들짝 놀란다. 많지 않은 나이인데 금붕어 기억력인 것이다. 그런 내가 신유진 작가의 책(열다섯 번의 밤, 열다섯 번의 낮)을 읽으며 그 이름을 기억하려고 그녀의 이름만 몇 번을 읊조렸다. 같은 쓸쓸함을 느끼며 자라왔으리라고 확신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낭만론적 관점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쓸쓸함을 느끼며 비슷한 상황에서 고독감을 느끼고 끊임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존재이니까. 그러나 가끔 내가 갖고 있는 그런 나락의 문장들을 슬그머니 꺼내었을 때 내게 “그런 생각도 해?”라고 묻는 지인들이 있는 것을 보면 신유진 작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건 아주 억지스러운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문장들이 좋다.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한줄기 꽃을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한 동안 작가의 책들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구구절절한 설명은 하지 않고 읽어보라고 넌지시 말했다. 아마 친구들은 그 감정선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텍스트는 경험에 기반해 해석되니까. 같은 경험을 공유한 친구들은 나만큼 이 작가를 좋아할 것이다.

#읽기의 말들 (24)
읽기와 관련된 책은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와 이동진의 책을 읽은 후로 읽지 않았었다. 그 책이 나와 너무나 맞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라서 그랬는지 혹은 나와 너무나 다른 소리라서 그랬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독서모임의 책이라서 억지로, 억지로 힘들게 읽었던 기억만 또렷하다. 그리하여 책읽기에 대한 책은 읽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현명한 생각이었다고 믿는다. 책읽기의 방법은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니까.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내 편견을 조금 깨주었는데 작가가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나 잘 느껴져서 최소한 이 사람의 꼰대소리라면 들을만 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 목사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책이었다. 그는 낭만적인 사람이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사람이었고, 내세를 믿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이 삶의 철학적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짧게 쓰여진 글들 하나하나가 그저 책의 분량을 위해 채운 것이 아니라 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삶에 대해 고민한 사람으로써 자신이 고민한 것들을 독자에게도 전해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채워진 것 같았다. 이북으로 공짜로 읽었는데 책을 곧 구입할 예정이다.

#고양이 낸시(25)
만화책이다. 얼마만에 만화책을 읽는지 모르겠다. 쥐와 고양이의 이야기가 우리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 좋았다. 우리의 삶 또한 이 책의 낸시를 감싸고 있는 쥐들의 모습처럼 서로에게 소중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관능적인 삶 (28)
사랑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지만 그러한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이 읽는다면 좋을 책이다. 좀 더 일찍 이 책을 읽지 못한 것이 아쉽다. 작가가 살아왔듯 삶이란 무릇 관능적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감성적이고 육체적인 것은 하찮은 것이고 이성적인 것은 더 가치 있는 것이라는 오랜 오해를 부숴야 인간은 지금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내게 가장 좋았던 구절은, 너무나 뻔한 내용이지만 아래의 구절이었다.
“사랑을 주기로 선택한 이후, 상대가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돌려주는가 아닌가는 내 사랑을 결정짓지 않는다. 내가 집중하는 것은 내 안의 에너지가 생성되고 상승하고 그러나 남김없이 사라지는 광경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 당신이 나타나서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6월에는 어떤 작가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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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begins 2019-07-21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밤으로 시작해 낮으로 나왔습니다.
같이 밀려오는 것들도 많고 천천히 읽다보니 한 편 이상 읽기 어려울 때가 많더라고요 ^^ 피드 반갑게 읽고 갑니다

봄밤 2019-07-21 22:50   좋아요 1 | URL
천천히 읽으면 읽을수록 느껴지는게 많은 책인 것 같아요. 작년에 읽은 책인데 작년에 읽은 책을 통틀어서 저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책이었네요. 오랜 밤과 낮, 좋게 기억하시기를..! :)
 
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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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소설책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듣고 ‘표백’을 이북으로 잠시 읽다가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흥미를 잃어 덮어 버렸다. 그런데 이 사람이 에세이도 썼다고 하여 궁금한 마음에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웬걸, 꽤나 좋았다. 에세이의 뒷내용이 궁금해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소설도 아니고 뒷내용이 궁금할 리가 있나.

나 같은 경우 에세이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 사람의 일상이나 생각을 훑는 기분으로 읽는다. 특히나 여행 에세이에 대한 기대치는 정말 낮은 편이다. 멋지고 아름다운 건물에 대한 감탄을 듣고 있자면 감탄을 듣는 시간이 아깝다. 그럴 바에야 직접 찾아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분명 이 책에 임하는 나의 자세는 다른 여행에세이를 대할 때와 변함이 없었는데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저런 깊은 생각에 빠져 고개를 들고 생각에 빠져 먼 곳을 응시하기가 일쑤였다. 잠깐 물만 묻히려 냇가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수심이 1m가 넘는 강이었던 거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가가 그런 깊은 사유를 하며 이 책을 썼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쓴 것이 티가 난다. 다만 장강명이라는 사람은 평소에 이런 생각하기를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큰 맘을 먹고 쓰지 않아도 평소의 사유했던 방식들이 습관처럼 글로 쏟아져 나온 것이 아닐까.

그의 아내로 추정(?)되는 HJ는 꽤 매력 있는 여자라고 판단이 되는데, 일단 같은 여자 입장에서 이런 마인드를 가지거나 유사한 발언을 하는 여자를 본 일이 거의 없다. 물론 그러한 성향을 지닌 것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작가의 성향과는 꽤 조화가 잘 되는 아내를 만났다고 판단된다. 책 안에서 둘의 케미가 좋다. 함께 여행을 가서 싸우고 화해하기까지 울적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온다. 단순한 긍정주의자가 아니라 끝없는 비관주의자인데도 불구하고 우울하지 않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장강명 또한 꽤 매력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케어하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비축할 줄 아는 남자는 현명하다. 누군가의 눈에는 상식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일 테지만 그는 아마 자기 인생의 철학이 확고하게 있어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을 본받고 싶다.

물론 좋은 것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비판하는 내용 중에는 그리 정당하다고 볼 수 없는 내용도 있었는데 자신의 관점이 옳다는 것을 너무 확신하는 것 같아 인상이 찌푸려진 부분도 있었다. 대개 사람들은 특정한 사실을 비판할 때 비판 자체에 빠져 역으로 비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주 적은 구절들이 그러했고 대부분의 내용들은 납득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좋았던 구절들을 남겨둔다.

p.29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뭔지 정확히 모를 것이다. 그냥 막연히 명절에는 가족이 다 모여야 한다고 하니까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p.30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에 대해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 내 가족관은 기타노 다케시보다 훨씬 건강하다. 나는 내 가족을 아무도 내다 버리고 싶지 않다. 다만 그들을 서로 만나게 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이 서로를 대형 폐기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해.

p.40
자식이 위험에 빠지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그런데 모험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모험을 권하는 부모도 없다.(선량한 부모들이 자식에게 모험을 허락하는 순간은, 자식에게 닥칠 최악의 위험도 자신들이 수습할 수 있을 때이다. 그래서 부자 부모 아래서 자란 젊은이가 더 많은 모험을 누리게 되고, 더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인생에는 부잣집에서 태어났건 아니건 간에, 그리고 부모가 뭐라 하건 간에,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벌여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p.52
“사고 나는 거야 사고 나는 거지. 뭐 어쩔 건데? 고사라도 지낼 거야? 사고가 나면 그냥 죽는 거야. 그것보다 자칫 잘못하면 여덟 시간이나 굶게 되니까 그걸 대비해야 돼. - 나 배에서 굶어 죽는 거 아닐까.”

p.83
‘쾌락 또는 행복의 총합 이론’에서 HJ의 부재는 내가 죽어야할 이유가 될까? - 이 점수에 따르면 나는 HJ없이도 사는 게 합리적이다. ~~~

p.122
선글라스를 쓴 채로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신이 다시 멍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는지, 왜 자전거를 타고, 왜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며 러닝하이를 느끼려 하는지. 사람들은 멍해지려고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피로하게 만든다.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대신 괴로움에 빠뜨린다. 이것이 선악과의 정체다.

p.156
그러나 신세계를 찾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직업을 바꾸고, 분기마다 새 취미에 열정적으로 도전하며, 어딘지 모를 이상향을 찾아 쉴 새 없이 떠돌아다니는 삶이 바람직한 걸까? 그걸 낭만이라고 포장하는 건 시시한 사기 아닐까. 그것은 기실 그 사람의 세계가 그만큼 황량하고 별 볼 일 없음을 폭로할 따름이지 않은가. 어느 정도 날씨가 괜찮고 마실 물과 식량이 있는 평평한 땅을 찾으면 방랑을 멈추는 게 정상이다. 거기에 건물을 짓고 사람을 불러 모아야 한다.

p.188
허구와, 허구가 만들어 내는 구속을 받아들일 대 의미 있는 삶이 시작된다. 그것이 내가 이해하는 ‘2더하기 2는 4’다. 이 수식은 넘어설 수 없는 한계지만, 동시에 많은 가치를 가능하게 하는 출발선이기도 하다. 공리없이는 수학도 없다. 때로는 멍해지는 것이 좋지만, 언제까지나 선셋 세일링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의 삶은 바다가 아닌 뭍 위에 있다.

p.197
나는 이 여행이 인생에 대한 비유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의 중반을 넘기고서야 어떻게 하면 시간을 의미 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다시 한번 처음부터 시작하면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생각하면서.

p.202
“토요일 아침에 소파에 편히 앉아서 컴퓨터로 <라디오 스타>보면서 자기가 사 온 샌드위치 먹으면서 모닝커피를 마셨다, 이런 게 적혀 있어. 그게 그렇게 행복했던 거야. 그런데 보라카이에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했어.”

p.237
나는 허구에 대해서 생각했다. 때로는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때로는 삶의 의미라는 구실을 내세워 다가오는 허구들. 나는 그 허구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쉴 새 없이 허구를 만들어내고 그 허구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다. 심지어 나는 그 일로 돈을 벌려 하고 있다. 허구는 익사에 대한 공포와 수면 위로 탈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며, 바닷물이자 산소통 그 자체다. 어떤 허구에는 다른 허구로 맞서고, 어떤 허구에는 타협하며, 어떤 허구는 이용하고, 어떤 허구에는 의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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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의 낮
신유진 지음 / 1984Books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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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인 열다섯 번의 밤이 너무 마음에 들어 낮까지 구입했다. 두 권의 책을 사는 것만으로 15일의 낮과 밤을 구입한 것 같아 저렴하게 샀다는 기분마저 든다.

나는 어렸을 적에 내 스스로가 ‘늘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마인드로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피해의식이 강한 모지리’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때의 감정들이 어렴풋이 생각나 지금의 현실이 즐거워지고 말았다. 행복은 불행이 아주 가까이에 있어 그것이 닿을락 말락 할 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게 인생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그 모지리(?) 시절에는 세상의 모든 행복한 기운들을 저주했다. 그 많은 행복 속에서 유독 내 불행은 부풀은 복어처럼 실제보다 돋보였고 신은 왜 수많은 불평등과 불행을 눈감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러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아래의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내가 읽은 구절이 진짜 책에 쓰여진 것이 맞는지 어안이 벙벙 한 채로 여러 번을 반복하여 읽었다. 그만큼 그 구절이 아름다웠다. 신이 그 구절을 읽는다면 기어코 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표지를 보며 작가의 이름을 신유진, 신유진, 하고 읊어보았다.

p.142
‘나는 전철이 지나가는 철로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텐트를 바라보며 이곳의 운명이 궁금해졌다. 언젠가 에펠탑의 마법처럼, 이 황량한 역에도 환상의 불꽃이 켜지는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온다면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질 때, 저기 한 무더기의 빈곤은 모두 어디에 감추어야 하나.’

이 책을 읽으며 허무와 좌절, 괴로움과 죄의식, 그 안에서의 인간 존재의 한계를 느낀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이 모양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한계로 인해 느껴지는 안쓰러움과 연민, 그리고 인간(특히 나 자신)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데 그게 이 책이 아름다운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인간 존재의 대단함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 우리의 나약함, 우리의 찌질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발버둥을 치는 편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 지는 꽤 되었다. 철이 든 것인지 덜 든 것인지는 모르겠다.

후작인 ‘열다섯 번의 밤’보다는 덜 좋았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좋았다. 좋았던 구절들을 남겨둔다.

p.21
소리 없이 짜기만 한 그 ‘서른 병’은 얼마나 나의 밤을 괴롭혔던가? 이불을 뒤집어써도 귀를 막아도 숨을 참아도 들렸던 내 부모의 절망과 서로에 대한 원망, 삶에 대한 배신감, 분노, 외로움, 그 복잡하고도 쉬운 감정들은 개미가 되어 내 몸을 타고 올라와 귓속으로 다이빙을 했다.

p.144
어쨌든 목숨은 건졌지 않느냐고 어느 낙천적인 신이 떠든다면 나는 그를 증오할 것이다. 그 무정한 양반은 나침반 하나 쥐여 주지 않고 이 복잡한 세상에 인간을 던져 버렸다. 그보다 훨씬 하찮은 인간도 지도를, 나침반을, 네비게이션을 만들어 내는데 그는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p.148
쓰레기통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라고. 버려진 것은 다 똑같다고. 돈이 있는 쪽도 없는 쪽도, 뚜껑을 열고 보면 다 쓰레기라고.

p.164
그날 돈이 없어서 힘들다고 말했던 M의 모습은 오래 상처로 남았다. 모르겠다. 분명 그가 잘못한 것도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우리가 돈이 없다는 사실이 아픈 상처가 되었다.

p.189
솔직히 말하자면 그와 내가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그의 억센 동유럽 억양 탓인지, 사계절을 입었던 찢어진 가죽점퍼 탓인지, 빛이 들어오지 않는 쪽방 탓인지 모르겠으나 그가 자신과 나를 ‘같은 외국인’이라고 묶는 것이 싫었다. 그와 내가 같은 부류인 것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p.206
꽃게탕 앞에서 머리를 맞대고 서로 살을 발라 먹여 주던 그때를 그리워하다가도, 침이 묻은 숟가락을 냄비에 넣고 휘젓는 것이 못마땅하다. 넘실넘실 소주잔을 채워주던 손길에 울컥하다가도, 적당히 마시고 깔끔하게 헤어지는 와인이 편하다. 정이 그리우면서도 정이 불편하고, 취중진담은 애잔하면서도 부담이다. 그러니까 나는 꽃게탕과 치즈, 소주와 와인 사이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정서적 난민이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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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인 삶
이서희 지음 / 그책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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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까지 평이 안좋은지 의아한 책.
내 안목이 없는건가? 나는 너무 좋았는데!!!!!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다가 누군가 읽고 있는 책이 무어냐고 물었는데 ‘매혹적인 삶’이라고 답했다. ‘관능’이라는 단어가 어색해서 그랬을 것이다. 끌린다는 의미의 단어였던 것 같기는 한데..라고 생각하며 고작 꺼낸 것이 매혹이라니.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한국 사회는 ‘관능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나 여성이라면, 관능에 대해 말할 때 불온한 시각에서 벗어나기가 더더욱 어렵기는 여전한 것 같다. 언젠가 지금의 남자친구의 매력에 대해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때, 가장 친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그 애 중 한명이 “넌 왜 이렇게 남자를 좋아해?”라고 말한 것은 꽤나 충격적이었는데, 1.내가 유부녀가 아니라는 점. 특히나 그 당시는 솔로였다는 점 2.그렇게 자주 만나지도 못한 친구였다는 점.(그래서 자주 말하지도 않았다는 점) 3.내가 여자라는 점 에서 호감 있는 남자에 대해 그 정도 떠들 권리는 있지 않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을 열망했다.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기에 그 사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가에 대해 수없이 설명하고 싶었다. 이제야 느끼지만, 어쩌면 그 행동 자체가 조금 어린 행동이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져 그 행복감이 무엇인지 기어코 설명하겠다는 우월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나의 관심이 비판받아 마땅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이렇게나 좋아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며 아름다운 일이지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그 친구의 예상과는 달리(아마도 그 친구는 내가 사랑을 하느라 다른 많은 것들을 놓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오히려 내가 그동안 인생을 헛살았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의 말대로 남자를 너무 좋아한 것이 아니라, 너무 덜 좋아했던 것 같았다는 것이다. 언젠가 좋아하는 사람을 친구가 사귀게 되었을 때 ‘내가 고백했더라면 나를 선택했을 텐데’ 라고 생각한 찌질함, 오랜 기간을 멀리서 바라보던 청승맞음, 거절당할 것 같으면 마음을 표현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던 오랜 시간들이 아쉽고 한탄스러운 거다. 그런 점에서 일찍부터 사랑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던 작가의 경험들은 멋지다. 사실은 나 또한 보수적인 부분이 많기는 해서, 작가의 글을 읽으며 한순간 인상이 찡그려지는 순간들도 있었으나 뭐 어떤가.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 추억들을 쌓았는데. 그리고 그 기억을 담보로 삶을 살아갈 텐데.

작가에게서 배운 점은 그런 사랑으로의 적극적 개입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몰입하여 사랑할 줄 아는 그 열성이다. 작가는 「사랑을 주기로 선택한 이후, 상대가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돌려주는가 아닌가는 내 사랑을 결정짓지 않는다. 내가 집중하는 것은 내 안의 에너지가 생성되고 상승하고 그러다 남김없이 사라지는 광경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 당신이 나타나서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라고 말한다. 내가 사랑하기로 선택했기에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는 점. 기대하고 실망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연애의 역사에서 거듭 실패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러니 저 작가가 어떻게 멋져보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또 작가의 멋짐은 그녀의 말에서 드러나는데, 챙겨줄 여유가 없어 미안해하는 남자에게 그녀는 “행복하다고 말해줘. 내가 너를 사랑해서, 내가 너를 사랑하기로 선택해서 기쁘다고 말해줘.”라고 말한 것이 그렇다. 비꼬거나 물고 늘어지지 않고 아쉬운 마음을 사랑의 언어로 되받으려는 이 작가의 언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하여 이 작가의 말을 흉내내 보기로 한다.
「나중에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이렇게 그 사람을 바라봐주렴.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못 견디도록 예쁜 부분들이, 너무 특별해서 남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눈에 들어올 거야. 그걸 놓치지 말고 그 사람에게 너만의 언어와 몸짓으로 표현해줘.」라는 그녀의 말처럼 이번 주말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고 아주 작은 것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테다.

마지막으로 아래의 말처럼, 존재와 순간의 소중함에 매료될 테다.
「어릴 땐 그 모든 것이 결국엔 사라진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꼈고, 이후에는 아득한 상실감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덧, 사라짐이 선물하는 존재와 순간의 소중함에 매료되었다.」
아득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현재는 아직 어려서 그런 모양이라고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앞으로 다가올 어른의 시기에는 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아 모든 순간을 빛나도록 사랑하고 사랑할테다. 아니, 그런 것이 나이듦이라면 내일부터 당장 나이를 들 테다.

*좋았던 구절들을 남겨둔다.

#퇴폐는 거리감에서 나온다. 만약 적정한 거리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곳에서 한 발 더 물러선 자리에서 느긋하게 몸을 기대고 남김없이 바라보되 결코 맞닿지 않을 것을 명징하게 인식하는 상태.

#나는 오래도록 그를 잃지 않을 방법을 생각했다. 독처럼 단단해지기. 사랑이나 미움, 기다림이나 외로움, 허무함 따위의 사소한 감정에 침투당하지 않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기. 모든 가능성에 미리 절망하기.

#그 청년의 시선이 잠시 내게 머물 때,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반대편 승강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어느 청년이 나를 위해 달려왔던 것처럼. 데자뷰를 온몸으로 구현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인연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관계가 있다. 나는 서로 존재가 연루되었음을 느끼는 사람들을 아주 가끔 만난다. 헤어날 수 없음에 허탈해하다 항복하듯 나를 내던지고 만다. 우리는 그렇게 공범처럼 서로를 인식한다. 너의 존재는 나에게 위로인 동시에 절망, 그 사이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매혹이다.

#사랑을 주기로 선택한 이후, 상대가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돌려주는가 아닌가는 내 사랑을 결정짓지 않는다. 내가 집중하는 것은 내 안의 에너지가 생성되고 상승하고 그러다 남김없이 사라지는 광경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 당신이 나타나서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지금 파리의 저녁은 맑고 쾌청하고 로스엔젤레스의 오전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뉴욕의 오후는 구름이 끼었지만 맑고 따뜻하며 서울의 늦은 밤에는 바람이 분다.

#이름을 짓고, 아름다움에 서사를 부여한다. 그러면 나도 상대도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떠오른다. 발견이 발명이 되는 순간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이처럼 무한하고도 신비로운 행위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를 찾기 보다는 곁에 있는 사람 혹은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의 놀랄 만큼 멋진 부분을 발견하는 것이 더 황홀할 수 있다.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내 얄팍한 시선이, 아무것도 꿈꾸지 않는 오만이, 무력한 청춘이.

#애초에 무너지기 위해 태어난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래도 나는 그렇게 무너지는 순간순간, 미치도록 아름다웠던 나의 엄마 제나씨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왜 우리의 삶은 이따금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히듯 모든 것을 달리하는가. 저 멀리 사라지는 풍선을 바라보듯 망연해지는 것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닥에 몸을 낮게 깔고 흐느끼는 것 이외에,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사는 것 말고 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굳건히 믿어 왔던 삶이 그 본질에서부터 변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믿어 왔던 행복이, 단단히 우리를 지탱하고 있다고 믿었던 삶이, 얼마나 나약하고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말이다.

#삶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순간은 바로 상상 밖이라고 믿었던 불행과 마주할 때이다. 그리고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와 내 바깥을 주시한다.

#우리의 행복은 가끔 당신의 불행에 숨어서 슬며시 기대고 있는 치사함을 품고 있다. 저 사람들처럼 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인 내 인생이 그래도 행복한 거라고 믿는다면, 만약 그 정도가 우리가 생에서 얻을 수 있는 위로와 행복이라면, 그 얼마나 비루하고 허약한 행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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