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아니 몇 개월을 책을 덜 읽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지냈다. SF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글 하나를 완성했고, 투고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인데 어디에 내는 것이 적절할지는 여전히 고민중이다. 가벼운 글쓰기를 하는 작가들을 혐오한다. 그런데 글을 다 쓰고 나면 이상하게 내가 쓴 글이 세상에서 가장 유치한 글인 것만 같다. 작가들이 그토록 절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나는 다를 줄 알았는데, 다르지가 않다. 유일무이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천편일률적인 글, 천편일률적인 사람이다. 그 존재의 가벼움, 무가치와 무의미의 향연이 인간을 고독하게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일들이 있었고, 또 한 번 나 자신을 믿어줘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은 객관적인 일에 대해서도 늘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는 법이 없기 때문에, 안목이 없는 것은 그들이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내가 갖고 있던 진실을 나 스스로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웬만해선 진솔하게 내 마음을 여는 법이 없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사람들에게 진솔하게 대해보기로 했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작자들이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나를 시험하려 들었다. 나는 곧바로 마음을 열겠다고 다짐한 걸 후회했다. 그들은 정상과 비정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미소짓지만, 영원히 자기들의 영역이 정상이라고 오해하며 살 것이다. 우아하고 기품있는 태도. 여유로운 말투. 상대방을 배려하는 제스처. 나는 이제 그런 것엔 속지 않는다. 오히려 우스워지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상대의 불행 앞에 가련한 척 훌쩍이지 않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어른이 되었다고 믿는다.


세상은 여전히 엉망이고, 꽃의 아름다움도 여전하다. 기온이 제맘대로 오르락내리락거리면서 어떤 나무는 벚꽃잎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어느 나무들은 헐벗은 채 줄지어 서있다. 3월의 끝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2023이라는, 언뜻 미래 시대처럼 여겨지는 숫자도. 

chatGPT? 과거의 시점에 그런 AI를 상상이라도 한 적 있었나. 인간을 대체할 인간처럼 생긴 로봇들은 상상해봤어도, 컴퓨터 안에 있는 수많은 프로그램 중 하나가 직장들의 자리를 차지할 거라고 상상이라도 했던가. 인플루언서의 시대. 광고의 시대. 보이스피싱과 부수입의 시대! 주식, 집, 금리 인상. 사람들은 이슈가 생길 때마다 그게 이득인지 손해인지 따지느라 바쁘기만 하다. 조금만 웃자. 조금만 덜 불행하고 조금만 더 웃자! 조만간 직장에서 chatGPT를 이용한 행사를 해볼까 한다. 행사의 목적은, 조금 웃기 위해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항상 누굴 제일 좋아하냐고 묻는데 그때마다 너무 많은 작가들을 말하느라 힘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랄 게 없어서 적당히 좋아하는 작가들을 나열하다보니 복잡했다. 앞으로는 사강이라고 말하기로 했다. 나태하고, 도발적이고 뻔뻔한 태도가 마음에 든다. 최근에는 최승자 시인의 글을 읽고 있다. 마치 어렸을 적 머물렀던 터널을 다시 구경하는 기분이다. 최근 느끼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내가 행복이란 게 뭔지 알게 되면서 어떤 문장들을 영영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특별히 떠올리지 않아도 카니발처럼, 폭죽 터지듯 쏟아내리던 문장들이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글을 쓸 땐 아쉬운 점이지만, 인생이란 측면에선 다행스럽다. 


예전에는 스스로가 너무 부정적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좋게 생각해도 되는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나 스스로를 절벽으로 몰아붙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최승자 시인의 말대로 불확실한 희망을 버리고 순도 높은 희망을 가지려 했던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내 손에 들려 있었던 불행들을 거르고 걸러 그 안에 있는 작은 희망들을 모아 순도 100%의 희망을 제련한 것이다. 그 덕에 지금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하다. 앞으로의 날들도 희망과 기대뿐이다. 사람들이 미운 오리 새끼라고 말해도 신경쓰이지 않는다. 아파트 값이며 월세며 아이를 키우기 위한 비용이며 오염되는 지구며 대기 환경, 인구 절벽 등등. 사람들은 늘 그런 소리뿐이다. 나는 백조다. 우스워지길 두려워하지 않고, 불행으로 훌쩍거리는 오리들을 일순간 부리로 콕 찍어 날려버리는, 강인한 백조다.



p.135

생각해보면 우울증을 피할 수 있다고, 적어도 그 병에서 회복될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면 왜 글을 쓰겠는가? 모든 텍스트의 절대적인, 고유의 존재 이유는, 그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심지어 논문이든, 이처럼 늘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 프랑수아즈 사강, <마음의 푸른 상흔> 중


p.22 

말하자면 나는 애초에 내 인생을 눈치챘다. 그래서 사람들이 희망을 떠들어댈 때에도 나는 믿지 않았다.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 택했다. 그러나 애초에 나는 내가 백조라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미운 오리 새끼라고 손가락질할 때에도 나는 속으로 코웃음만 친다. 그리고 잡균 섞인 절망보다는 언제나 순도 높은 희망을 산다.

-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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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3-05-29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밤 님의 원픽은 사강이군요. 저는 최근에 사강을 접했는데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남들 시선에 끼워맞춰 사는 삶을 거부하는 사강의 인생론이 참 좋았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언급하신 백조랑도 닮은 듯 하네요. 건강하시고 적당히 파이팅 하며 사시길 바랄게요 ^^

봄밤 2023-05-30 14:23   좋아요 1 | URL
물감님의 리뷰 잘 읽고 있습니다. 자기복제한다는 작가 중 하나인 것 같다지만, 그래도 전 아직 질리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연이어서 줄줄이 읽고 싶을만큼 문장이나 특유의 나른한 분위기가 좋더라고요. 물감님도 적당한 파이팅으로 꾸준히 즐겁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