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의 낮
신유진 지음 / 1984Books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후작인 열다섯 번의 밤이 너무 마음에 들어 낮까지 구입했다. 두 권의 책을 사는 것만으로 15일의 낮과 밤을 구입한 것 같아 저렴하게 샀다는 기분마저 든다.

나는 어렸을 적에 내 스스로가 ‘늘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마인드로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피해의식이 강한 모지리’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때의 감정들이 어렴풋이 생각나 지금의 현실이 즐거워지고 말았다. 행복은 불행이 아주 가까이에 있어 그것이 닿을락 말락 할 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게 인생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그 모지리(?) 시절에는 세상의 모든 행복한 기운들을 저주했다. 그 많은 행복 속에서 유독 내 불행은 부풀은 복어처럼 실제보다 돋보였고 신은 왜 수많은 불평등과 불행을 눈감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러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아래의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내가 읽은 구절이 진짜 책에 쓰여진 것이 맞는지 어안이 벙벙 한 채로 여러 번을 반복하여 읽었다. 그만큼 그 구절이 아름다웠다. 신이 그 구절을 읽는다면 기어코 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표지를 보며 작가의 이름을 신유진, 신유진, 하고 읊어보았다.

p.142
‘나는 전철이 지나가는 철로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텐트를 바라보며 이곳의 운명이 궁금해졌다. 언젠가 에펠탑의 마법처럼, 이 황량한 역에도 환상의 불꽃이 켜지는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온다면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질 때, 저기 한 무더기의 빈곤은 모두 어디에 감추어야 하나.’

이 책을 읽으며 허무와 좌절, 괴로움과 죄의식, 그 안에서의 인간 존재의 한계를 느낀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이 모양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한계로 인해 느껴지는 안쓰러움과 연민, 그리고 인간(특히 나 자신)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데 그게 이 책이 아름다운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인간 존재의 대단함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 우리의 나약함, 우리의 찌질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발버둥을 치는 편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 지는 꽤 되었다. 철이 든 것인지 덜 든 것인지는 모르겠다.

후작인 ‘열다섯 번의 밤’보다는 덜 좋았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좋았다. 좋았던 구절들을 남겨둔다.

p.21
소리 없이 짜기만 한 그 ‘서른 병’은 얼마나 나의 밤을 괴롭혔던가? 이불을 뒤집어써도 귀를 막아도 숨을 참아도 들렸던 내 부모의 절망과 서로에 대한 원망, 삶에 대한 배신감, 분노, 외로움, 그 복잡하고도 쉬운 감정들은 개미가 되어 내 몸을 타고 올라와 귓속으로 다이빙을 했다.

p.144
어쨌든 목숨은 건졌지 않느냐고 어느 낙천적인 신이 떠든다면 나는 그를 증오할 것이다. 그 무정한 양반은 나침반 하나 쥐여 주지 않고 이 복잡한 세상에 인간을 던져 버렸다. 그보다 훨씬 하찮은 인간도 지도를, 나침반을, 네비게이션을 만들어 내는데 그는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p.148
쓰레기통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라고. 버려진 것은 다 똑같다고. 돈이 있는 쪽도 없는 쪽도, 뚜껑을 열고 보면 다 쓰레기라고.

p.164
그날 돈이 없어서 힘들다고 말했던 M의 모습은 오래 상처로 남았다. 모르겠다. 분명 그가 잘못한 것도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우리가 돈이 없다는 사실이 아픈 상처가 되었다.

p.189
솔직히 말하자면 그와 내가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그의 억센 동유럽 억양 탓인지, 사계절을 입었던 찢어진 가죽점퍼 탓인지, 빛이 들어오지 않는 쪽방 탓인지 모르겠으나 그가 자신과 나를 ‘같은 외국인’이라고 묶는 것이 싫었다. 그와 내가 같은 부류인 것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p.206
꽃게탕 앞에서 머리를 맞대고 서로 살을 발라 먹여 주던 그때를 그리워하다가도, 침이 묻은 숟가락을 냄비에 넣고 휘젓는 것이 못마땅하다. 넘실넘실 소주잔을 채워주던 손길에 울컥하다가도, 적당히 마시고 깔끔하게 헤어지는 와인이 편하다. 정이 그리우면서도 정이 불편하고, 취중진담은 애잔하면서도 부담이다. 그러니까 나는 꽃게탕과 치즈, 소주와 와인 사이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정서적 난민이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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