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평을 쓰면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부을 것 같은 밤이다. 그래서 책 이야기는 안 하련다.
싸구려 와인을 꺼내 마시고 박정현과 헨리가 부른 Shallow를 들었더니 드레스덴에서 들었던 길거리 공연이 생각났다. 마치 '나홀로 집에'에 등장했던 그 두 도둑만큼이나 덩치 차이가 나던 두 남자가 들려주던 완벽한 하모니. 혼자서 서있기가 뭐해서 노래를 포기하고 숙소를 들어왔는데 창문 넘어 나를 따라오던 그 목소리들. Shallow를 들으면 절규하는 심정이 되어버린다. 더군다나 좀 뚱뚱하던 그 남자가 내지르듯 부르는 "I'm off the deep end watch as I dive in I'll never meet the ground"부분에서는 힘이 풀린 듯 침대에 누워 허우적거리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할아버지는 깁스를 안 했고 동생은 점심을 먹는다. 해결된 듯 보이지만 쉬이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다. 운이 좋아서, 회사가 선심을 써줘서, '어쩌다가' 해결된 문제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주변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그게 문제인지조차 인식하지못한 당사자들의 '자기 탓'이었다. 내가 건강하지 못해서, 내가 부족해서, 회사와 가족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침묵하는 사람들. 쉽게 내 무능력을 탓하고, 죄책감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근로자들.
- 사과집,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中
반년 전 엄마와 나는 아빠가 직장에서 죽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장례 지원과 산재 신청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걸 다행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아무도 직장에서 죽지 않아야 비로소 다행인 것이다.
- 사과집,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中
그날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엄청난 위로의 말보다는, '네 상황을 이해해'라는 공감이었다. 너의 부담감을 이해해, 벗어나고 싶지만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너의 상황을 이해해, 생각보다 힘들 수도, 또는 생각보다 슬프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해.
- 사과집,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中
생각보다 힘들 수도, 또는 생각보다 슬프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해.
나는 이 문장 하나를 위해 이 책을 읽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알고보니 작가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고, 난 책 제목에 속은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그 문장 하나만큼은 위로가 됐다.
"당신이 그처럼 열렬히 좋아하는 그 리본들은 모두가 인간이 만들어낸 노예의 상징이오. 당신은 자유가 리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소."
- 조지오웰, <동물 농장> 中
보통 프로씨발러들의 욕을 보면 '씨파'와 '씨바'사이 어딘가에서 발음의 경계가 살짝 흩어지듯 자연스럽게 굴러 나오는데 나의 그것은 아나운서가 저녁 뉴스 중에 씨발을 말했어도 이렇게는 못 하겠다 싶을 정도로 너무나 또박또박하고 굴곡 하나 없었다.
…
"야, 그 정도면 됐어. 사실 욕이란 게 연습한다고 늘겠냐. 술 마신다고 늘겠냐. 그냥 사는 게 씨발스러우면 돼. 그러면 저절로 잘돼."
- 김혼비, <아무튼, 술> 中
김혼비 책 재밌다. 참 웃긴다.
나도 비슷하게 느꼈던 일인데,
같은 이야기도 참 재밌게 잘 한다.
그다음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나를 흔들리게 하는 사람도, 불쾌함을 남기는 관계도, 매번 같은 주제만 반복하는 모임도 정리했다. 정리하고 나니 그때부턴 시간을 내어서라도 만나고 싶은, 무언가 배울 게 있고 본받을 게 있는 인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
- 장명숙,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中
요즘 들어 내게 가장 중요한 삶의 지향점이다. 나를 발전시켜주고 나를 사랑해주고 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사람들에게 집중하자.
엄마는 주말에 내려오라고 했다. 맛있는 것을 먹여주고 싶다고, 남자친구 손 잡고 내려오라고. 난 알겠다고 대답하고, 다음 주말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응축된 삶의 순간으로 남으리라고 확신하고 만다. 어머니가 사는 모습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나 또한 그곳에 함께 존재하면서 어색하고도 친밀하게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겠지.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난 다음주 주말의 기억을 떠올리고, 엄마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밥을 짓고 반찬을 요리하는 모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반면 최근에 내게서 떠나간 이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이 나를 떠났을 수도, 내가 그들을 떠났는지도 모르겠지만. 한 명은 자기의 기쁨에 도취되어 다른 사람의 슬픔을 볼 줄 모르는 이였고, 한 명은 자기뿐만 아니라 모두가 바쁘다는 사실을, 그래서 우리는 서로 노력해야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였다. 전자는 속 시원하게 떠나간 느낌이지만 후자는 어쩐지 상처로 남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장명숙님의 말대로 난 좀 더 배울 게 있고 본받을 게 있는 인연에 집중하고 싶다. 난 친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좀 우습고 가볍게 보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녀가 나를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우린 어느 순간 친하지 않게 되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