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치하기 짝이 없어 읽지 않으려고 했는데 읽고야 말았다. 밀리의 서재로 읽었는데,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잠든 것을 사랑하는 이가 목격함. 졸린 눈을 비벼가며 읽었더니 요즘 자주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잠든다. 심지어 책 때문인지 간만에 휘황찬란한 꿈들을 꾸고 있다.


어쩌다 작가가 한 인터뷰내용을 봤는데, 삼성을 다니다 그만두고 쓴 최초의 소설이 이 책이라고 한다. 단편조차 써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처음으로 쓴 소설이 이렇게나 완성도가 있다니 앞으로의 모습이 참 기대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소재에 기대 내용은 조금 유치하지 않은가 싶으면서도 인생이 뭐 그렇게 진지하지도 않지, 싶은 생각. 


내용이 좀 덜 유치해지고 세계관이 좀 더 자세히 잡힌다면 영화화했을 때 해리포터같은 대작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시리즈물로 만들자니 갈등이나 목표를 만들기 어려운 구조라서 어떻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까 궁금하긴 하네. (그래도 내가 제작자라면 어떻게든 만들어보고 싶을 듯 한데.)


읽으면서 모모 생각이 났다. 작가의 인터뷰 내용 중 쉽게 썼다는 것이 인상깊었다. 쉽게 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난 늘 쉽게 못 써서 어렵게 썼는데.(그리고 여기 북플에도 그런 사람들 좀 많아 보임.. 쉬운 말로 설명할 줄 알아야 잘 설명하는 건데 그것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거다보니... 말이 길어지고 장황해지고 재미가 없지. 꼭 내 리뷰같네)



2.


시간이 흐를수록 시민들의 생활은 어렵기만 했다. 식량과 물자 부족이 더욱 심각해졌다.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다. 이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은 더할 수 없이 커다란 괴로움을 겪고 있었으나, 반대로 부자들은 없는 게 없을 정도로 풍요로웠다. 페스트가 사람들의 생활을 불평등하게 만든 것이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中




2

내 기억 중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은 마당에서 쇠똥구리를 봤다는 것이다. 쇠똥구리는 이젠 거의 멸종되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어려서 쇠똥구리를 본 것이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이란 것을 오랫동안 전혀 몰랐다. 

-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中



딜런의 엄마 수 클리볼드는 일평생 딜런을 사랑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우울, 자살, 살인, 이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녀에게 물었던 것,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애를 어떻게 기른 거야?"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혹독하게 던지면서 살았다. 일생에 걸친 고뇌와 고통 끝에 나온 그녀의 목소리는 이것이었다.

"사랑만으론 부족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 같은 책 中



처음에 정혜윤 작가가 '아무튼, 메모'를 쓴 작가란 걸 알고 난 후 절망했다. 아, 내가 그 작가의 책을 산 거였다니. 진짜 재미없을 것 같은데. (난 재미가 없으면 중간에 그만 읽기 때문에 그 책이 후반부에 재밌어지면 그 책의 매력을 영영 모르게 된다....여전히 아무튼 메모의 뒷부분이 재밌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서 깨달았다. 난 성향 자체가 청개구리라, 남이 울라고 하면 못 울고 남이 울지 말라하면 울 것 같단 걸.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도 딱히 눈물난 적 없었는데(그 책은 자꾸 나보고 울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안 났다..) 이 작가가 덤덤하게 전하는 이야기에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보면서 이 사람 참 좋은 작가였구나, 새롭게 알았다. 


이 책을 읽으면 조금 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니.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가. 난 그 터무니없는 소리를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말할 때는, know의 의미가 아니라 try의 의미이다. 이해하려 노력하겠다는 의미다. 이 책은 사람들을 노력하도록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번 적어둔 '소년이 온다'의 구절처럼 개인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진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을 때 도망가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노력해볼 수 있도록.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면 종종 눈물이 날 것 같다.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선한 마음 하나로 이뤄내는 숭고한 마음에 대해 생각할 때면. 우리에게도 그런 힘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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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12-12 1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쉬운 글을 적극 지향하는 1인인데요, 북플에도 그런 사람들 많아보인단 말에 너무 공감합니다. 다들 너무 어렵게 글을 써서 어쩔땐 리뷰라기보다 또하나의 책을 쓴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그에 비하면 봄밤 님의 글은 어렵지 않아서 읽기 좋아요!

미미 2021-12-12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밤님 글 저도 좋아요! 마지막 말씀이 특히 와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