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물건을 살 때마다 프로메테우스의 기분을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최저가를 찾는 지옥의 형벌을 견디고 나면 또 다시 그보다 더 저렴한 최저가가 등장한다. 반복하는 회원가입과 쿠폰의 굴레를 견디고 힘들게 결제를 하려고 보면 배송비 15,000원. 프로메테우스는 불이라도 넘겨주는 꽤 그럴 듯한 일이라도 하고 형벌을 받는 것이지만, 슬프게도 내가 하려는 건 그냥 선반 하나 구입하려는 것 뿐이다.... 


1.

"사실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사실 나는…."

"…?"

"배추야."

- 김혼비, <아무튼, 술> 中'


처음으로 술집에서 술을 마셔본 날. 호기롭게 잔을 부딪치며 "내가 너보단 잘 마신다!"를 외치던 나는 약 한 시간 후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떠오른 첫번째 장면은 당시 짝사랑하던 친구의 이름을 대면서 "왜 OOO는 날 안 좋아하는 거야아."를 외치는 나였고, 두번째 장면은 무거운 나를 양쪽에서 부축하며 "와씨, 웃긴다"고 말하며 킬킬거리다가 "으핰 진짜 웃곀ㅋㅋ"하며 어이없어 하던 두 남사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세번째는, 이런 나를 부모님께 보여드리기 죄송했던 두 친구가 계단에 나란히 앉아 내가 술에서 조금이나마 깰 때까지 오들오들 떨며 기다리던 모습이었는데, 엄마의 말에 의하면 그 둘은 하필 현관문을 연 엄마와 눈이 마주쳤고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나를 엄마에게 버리듯이 던져두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그래서 나쁜놈들인줄 오해했다고 했다. 


모든 경험을 열거할 수 없지만 나도 술에 관련된 에피소드라면 넘치도록 많다. 다만 모든 기억들이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여서 입을 다물게 될 뿐... 어떤 즐거운 술자리는 그날 있었던 슬픈 일을 시작으로 일어나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즐겁게 시작했던 술자리가 슬프게 끝나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가장 슬픈 건, 시작도 즐겁고 술자리도 즐거웠는데 지나고나니 슬프게 남아있는 경우들이다.


2.

서울에서 우리가 함께 살 집을 구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5천만 원은 아버지가 평생 동안 모은 재산이었다. 우리는 그걸 너무나 잘 알았기에 절대로 기죽지 않겠다고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의 집값은 아버지의 유산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느새 아버지는 6평 남짓한 반지하방의 전세금만 남겨준 사람이 되어 있었다.

-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1' 이서수, <미조의 시대> 中 




우리를 위해 만들어져있지 않은 세상에서 잘 살아간다는 것

- 피터 카타파노, 로즈마리 갈런드-톰슨, <우리에 관하여> 中


떠올랐다.

삶의 가치관이 바뀌게 되었던 날짜를 의미하는 일련의 숫자들. 어느 순간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어버린 두 고양이 친구들. 어리석고 겁이 많던 과거의 시절. 유치하게 써내려간 글과 그에 대한 감상평. 영원히 읽지 않을 것 같은 아빠에게 받은 책 선물. 필요한 살림살이를 마련하라고 준 몇 백만원의 돈. 두 책이 그리 관련성이 없어보이는데도 이상하게 두 이야기가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3.

"회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 줄 알아? 공감과 협업이야."

- 송희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中


아마 마의 3년차였던 것 같다. 회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공감이나 협업 같은 게 아니란 걸 느낀 게. 공감이나 협업은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무능함은 무책임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무능한 이들과 공감 같은 것을 해보려다간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 그들은 무언가 잘 해볼 생각도 없고, 누군가 힘들다는 걸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데다가 모든 것이 뚝딱뚝딱 완성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차라리 개미와 소통을 하지....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왜 하필 개미였는지는 모르겠다.. 소통하기에 어려워보여서일까)


카페인지 블로그인지에서 연재를 하다가 인기가 많아지면서 책으로 발간된 것이라고 하는데, 부동산에 대한 고민이 많은 현실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얻을 것은 없는 책이었다. 휘리릭 다 읽어버렸는데 기록하려고 보니 기억에 남는 구절이 아무 것도 없었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느낌도 아쉽다. 귀여니소설 같은 느낌이 드는 가벼운 톤의 책이었는데, 만약 이 책을 읽고 깨닫는 바가 컸다면 이 책의 김 부장과 유사하게 살아왔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유추해본다.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이 아니어서 나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오셨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몇몇 구절들은 공감이 되기도 했다. 비싼 것은 무조건 사기라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이라거나 어떤 결과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려는 관성같은 것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이 책에서처럼 고작 귤에서 비롯되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사실 네가 부반장이 되었을 때 엄마가 떡을 돌리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는 작가가 반성해야하지 않을까..? 그건 누군가에겐 조금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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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05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직장인의 생활이 담겨 있는 페이퍼...!
페이퍼 당선 축하드려요

봄밤 2021-11-06 20:34   좋아요 1 | URL
감사하옵니다

초딩 2021-11-07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밤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