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의 탄생> 읽고10년전쯤 이었을 거다. 남자 미용사가 머리를 깎다가 김영삼대통령 묘자리 이야길 하면서 한 나라에 대통령이 자신의 집안에서 탄생했다는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냐고 하며 말을 꺼냈다. 그래서 무슨 말이냐 나라에 해악을 끼칠 바에야 차라리 무지랭이 농사꾼으로 사는 것보다 못하다고 설전을 버릴 일이 있다.<할배의 탄생> 작가 역시 가난한 이들이 세상에 해를 덜 끼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반가웠다. 다만 차이라면 현실 속에서 노숙자나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만날 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는 생각해 볼 문제였다. 예를들어 전철 더러운 옷에 씻지도 않아 냄새를 품기는 노숙자가 내 옆에 앉는다면 난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나, 묵묵히 목적지까지 가면서 혹 그가 말을 시키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답할 수 있을까, 십중팔구는 일어나 다른 칸으로 가거나, 좀 미안하면 다음 역에서 내려 다음 차를 기다릴 것이다. 글을 읽고 이해하고 안타까워하지만 생활속에서 만나 이웃을 대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이웃으로 마주하고 그들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다. 그들 이야기 속에서 당시 사회적인 이슈를 접점이 되는 부분을 신문기사나 문헌을 찾아 박스로 메모해 주었다. 나처럼 현대사에 어두운 독자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사회 문제가 한 개인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는 간접적이지만 효과적인 장치였다. 이 장치가 없었다면 두 노인의 이야기는 넋두리처럼 들렸을 것이다.태극기 집회가 등장하면서 <할배의 탄생>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신문기사와 작가의 칼럼을 읽고 페북으로 작가와 친구신청을 했다. 여러가지 면에 흥미로운 이력을 가지신 작가였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한 작가의 이력은 요양보호사와 생활관리사 일을 했고 그 일터에서 구술생애사라는 조금은 낯선 일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구술생애사가 기술한 글은 서사적이면서도 서정적이며 사실적이었다. 한 사람의 역사인 동시에 개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기록자가 묘사하지 않아도 화자의 어투나 어휘 속에서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서정성을 발견할 수 있다. 소설로서는 접하기 어려운 사실성 예를 들어, 엄마를 잃은 형제간의 애틋함 보다는 상실의 상처로 폭력성이나 자기 방어를 하다보니 가장 약한 동생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인다든지. 전쟁터에서 느끼는 공포와 그 이후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등이 생생하게 전달되어 그 어떤 소설보다도 흥미롭웠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글을 가난 밖에서 지켜보거나 조사를 통해 일정한 의도를 갖고 쓴다는 것은 어떤 부분에선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재구성 하지 않은 가난한 이들의 구술 기록은 가장 사실에 근접해 있다. 물론, 개인마다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할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사실에 근접한 이야기이다. 또한 성공한 이의 자서전 읽는 것보다 의미 있다. 왜냐 가난한 이들이 세상을 덜 해롭게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구술하는 동안 화자의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