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바퀴! - 제1회 바람단편집 높새바람 11
최정금 외 지음,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녹녹치 않은 어린이 단편 모음집을 만났다. 방정환, 마해송, 강소천, 현덕에 이르는 1920~30년대 어린이 단편집을 대하는 듯했다.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어린이 단편집은 쉽게 읽히게 꾸며졌다. 또 책에 반은 그림으로 채워 진데 반해, ‘달려라 바퀴’는 과감히 그림을 생략하고 고집스럽게 문학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1920~30년대 어린이 단편집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그렇다고 내용까지 그 시절을 담았다는 뜻은 아니다. 요즘 우리 생활에서 아이들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만 기존의 동화들에 비해 깊이 있고 폭 넓은 주제를 담았다. 예를 들어 임태희의 ‘개 죽음’에서는 시험 전날 밤 죽어가는 개의 신음 소리 때문에 갈등하는 학생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이 이야기는 상황 설정에서부터 만만치 않았는데, 독자를 긴장시키는 것은 아이가 시험을 위해 외우고 있는 내용이다.

“ 인권은 인간이 태어남과 동시에 지니게 되는 고유의 권리이다. 다른 말로 천부적 인권, 기본권이라고도 하며.....,”
 
요즘 동화에서 ‘개 죽음’처럼 삶의 자세를 묻는 주제를 등한시하고 아이들에게 밋밋한 이야기만 전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아마도 아이들은 쉽고 가벼운 책만 좋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이런 편견은 아이들 동의 없이 어른들의 선호도가 개입된 것이 아닐까 싶다. 시험 전날 밤, 개 신음소리 같은 건 신경 안도록 말이다.    

이 단편집의 주제가 모두 이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다. 역으로 심각해야 할 상황을 어린이의 시각을 통해 우습고 가볍게 이끌어가기도 한다. 유은정의 ‘기도하는 시간’이 그렇다. 병환으로 위급한 아버지와 가족친지를 위해 기도하는 전도사님. 그러나 선미는 오직 기도가 끝나고 먹을 아이크림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급기야 선미는 전도사님과는 다른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전도사님이 선영이 언니 기도를 까먹게 해 주세요. 할머니가 언니는 속에 바람이 들어 멋만 부린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족 중에서 하나님이 가장 신경 안 쓰셔도 되는 사람입니다. 선영이 언니는 얌쳅니다. 교회 밖에서는 욕도 엄청 잘 합니다.’

기도가 점점 더 길어지자,

‘선미는 왈칵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전도사님이 친척들 기도까지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선미에게 너무 멀리 계신 것 같았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면 오랜만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선미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실 수가 없었다.’

아이스크림은 녹고 기도는 길어지자, 선미의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하다. 그 현장을 얼마나 생동감 있게 그렸던지, 전도사님 기도 소리로 알 수 있는 선미 가족사는 눈물겨운데, 선미의 마음을 읽으면 자꾸 웃음이 난다. 장편 소설에선 그려내기 어려운 위트와 페러독스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어린이 단편에도 이런 게 가능하다니, 신기할 뿐이다.  

단편 동화집의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던건, 하신하의 ‘바람이 머무는 자리’에서였다. 엄마를 그리는 마음을 애잔하게 그린 작품으로, 요즘 동화처럼 직설적이지 않고 사물을 통해 아이의 심정을 그려낸 폼이 일품이었다.

“그놈의 능소화는 탐스러운데 모과는 시들해지더라구. 결국 모과나무가 말라 죽었어. 애써 봤자 소용없는 짓이지.”

 ‘할머니는 마늘을 까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능소화를 나쁘게 말하지만 내 생각에는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능소화는 태어날 때부터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모과나무가 죽으라고 일부러 힘들게 했을 리가 없다. 능소화는 모과나무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싶었을 텐데 자기를 업어 주고 키워 준 모과나무에게 미안해서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홀로된 어미에게 짐이 되는 것이 미안한 아이의 마음이 은유적이라 더욱 애달다. 또 어미에 대한 향수를 기차가 지나갈 때 일으키는 바람으로 느낀다는 설정이라든지, 아이가 바람을 느끼면 서있는 자리를 총총히 글로 그려내, 독자로 하여금 마을 풍경을 떠오르게 하는 품이 기존 동화에선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비로소 어린이에게도 문학적 감성을 심어 줄 작품들이 나왔단 생각이다.

‘달려라 바퀴’는 14명의 기성.신인 작가들이 모여서 만든 작품이다. 책을 펴낸이는 동인지 성격으로 흐를 위험을 경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까다로운 기준을 정하고 선별하여 단편 동화  집을 만들었다. 이를 시초로 제2회, 제3회 어린이 단편집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품 하나하나의 수준으로 보나, 펴낸이의 각오로 보나, 주목해야 할 어린이 단편 동화집이다. 앞으로 동화의 수준을 한층 향상 시킬 신선한 바람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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