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부부의 어처구니 있는 아파트살이
최순덕.최종덕 지음 / 당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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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가 무슨 뜻인지 아는 분이 있을런가? 어처구니는 위 맷돌을 돌리기 위해 윗돌에 고정시킨 손잡이를 말한다. 한번 생각해 보시라. 맷돌 돌리려는 데 막상 손잡이가 없다고 해보자, 아마 막막~ 할 것이다. 여기에서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유래  되었다.’

맞벌이를 하는 최씨 부부는 아파트에 항아리를 드려 놓았다. 항아리 안에 장을 담고 각종 효소를 만들어 먹는다. 그들의 취미 중 하나는 인근의 5일장을 다니며 (가끔 장거리 원정도 가지만) 잡곡과 열매, 채소를 구하는 것이다. 장에서 산 콩으로 아파트에서 웰빙하기 진수를 보이려하는데,

‘두부 만들기’는 초장부터 헤매다 결국 난공불락으로 끝나고 만다. 장 담그기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요. 그 어렵다는 효소며 식초, 젓갈까지 직접 담거 먹는 터라, '두부정도야'하고 생각하고 쉽게 덤빈 탓이다. 일단 폼도 나고, 무엇보다 두부의 제 맛은 맷돌에서 나는 것이라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거금을 드려 산 맷돌은 말처럼 어처구니가 없었다. 생각만 해도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누군가,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기’ 내공을 갈고 닦아 20년을 버텨 온 부부가 아니가. 당장 대장간으로 달려간다. 단돈 2천원으로 어처구니 단단히 붙여 놓고 콩을 갈기 시작했다. 비록, 두부 만들기는 생각보다 싶지 않아 두어 번으로 끝났지만, 이런 그들의 일상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가장 적은 비용으로 어처구니 있게 만드는 묘수을 말이다.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무엇일까? 이면체면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벌어서, 나름대로 알뜰한체하며 각종 세일 상품을 찾는 것. 대형마트에서 ‘하나 값에 두개’라는 문구에 현혹되어 물건을 사는 것. 그래서 많아진 량과 싸게 샀다는 생각으로 남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먹 거리에 대한 경시 풍토에서 비롯된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예전엔 참기름 한 방울, 마늘 한쪽도 아꼈다. 고춧가루 양념이 아까워 그릇에 묻은 양념에 밥을 비벼먹었다. 그래도 그때는 국산 마늘과 참기름, 태양초 고춧가루만 먹었다. 양념에 사용하는 비용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수준일 거다. 조금 비싸더라도 질 좋은 우리 농산물을 아껴먹는 것이 수입산 양념을 많이 넣은 음식을 먹는 거보다 몸에 좋을 것이다. 

‘세상을 갖을 수 없으면 신용카드를 갖으라’는 유혹적인 광고카피를 버젓이 방송하면서 대기업이 브랜드를 걸고 고리대금업을 하는 사회. 트랜드를 쫓느라 젊음과 정열을 받치고 있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두 눈 크게 뜨고 나의 소비행태를 점검해야 할 때 이다.

유행 따라 통신기기나 가전제품을 사드리고 놓고 있지는 않은지. 유행을 맞추지 않으면 퇴보되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니지, 유행을 쫓아 구색을 맞추는 것이 나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투자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실제로 트랜드에 마쳐 ‘나의 가치’를 높였을 때, 그것이 사회에서 인정되는 것을 경험하지는 않았는지. 나는 그것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란? 우리사회가 본질을 가치를 외면한 체, 겉치레 허상을 추종하고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씨 부부의 일상은 이런 허구적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의 삶’을 찾고자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먹 거리에 관해서는 재래시장에서 재료를 구해 직접 만들어 먹는 극성을 보이는 반면, 아이들 교육에는 느긋하다. 학원을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피아노 연주를 가르치기 위해 피아노를 드려 놓지만, 정작 악보를 모르는 아빠가 음감에 의지하여 건반을 두둘인다. 그러면 아이들도 따라 연주하게 되고 그렇게 감각으로 배워 스스로 들을만하고 음악을 즐길 수 있으면 그만 이라는 것이 그들의 교육관이다. 미술 역시 가족이 함께 놀이를 통해 만든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생활공간에 꾸며지고 쓰이길 원한다.

최씨 부부의 이런 자녀교육법에 비해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고 그에 따른 효과를 자식에게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돈을 버느라 즐기지 못하는 부모나, 기대에 부흥하고자 하는 자녀는 서로를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최씨 가족의 일상은 ‘보이지 않는 손’ 즉 자본주의 경제적 논리에 지배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보장된 미래라는 유혹적인 문구를 뿌리치고 오늘의 나를 사는데 충실 한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가 되기보다는 스스로 삶을 가꾸며 즐기는 모습을 보여 주어 배우며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집안일에 남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가족화목을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무턱대고 남편이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고 할 것이 아니라 먹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이 우선이다. 집 밖에서 얻기 어려운 것, 진수성찬은 아닐지라도 정성이 들어간 정갈한 음식을 가족이 같이 장만해 먹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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