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슨 선생님 구하기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6
앤드루 클레먼츠 지음, 김지윤 그림, 강유하 옮김 / 내인생의책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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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목 : 랄슨 선생님 구하기
저    자 : 앤드루 클레멘츠
출 판 사 : 내인생의 책


‘랄슨 선생님 구하기’는 ‘프린들 주세요’로 유명한 앤드루 클레멘츠의 글이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수년 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래서 인지 ‘프린들’에 이어 ‘랄슨 선생님 구하기’ 역시 학교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프린들 주세요.’가 언어의 생성이라는 소재로 사제간의 따뜻한 정을 다루었다며, ‘랄슨 선생님 구하기’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면서, 신문을 매개로 사제간의 정을 싹틔운다.

두 작품은 그 소재가 신선하고 교육적이다. 전개방식이 빠르고 긴장감을 주어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런데 이 두 권의 책을 다 읽은 나는 왠지 떨떠름하다. 좀더 과격한 표현을 쓰고 싶지만 나의 서평이 혼자 보는 것이 아니기에 좀 완곡한 표현을 쓰기로 했다. 언론은 진실을 담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명인간과도 같았던 전학 온 학생 카라 랜드리는 어느 날 칼럼을 써 교실 게시판에 붙인다.


        공정한 질문 하나

랄슨 선생님의 반에서는 올해도 가르침은 없었다. 학습은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가르침은 없었다. 교실에 선생님은 계셨지만, 선생님은 가르치지 않았다.
  ‘학부모님의 밤’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랄슨 선생님은 자신의 교수법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학생들은 자신에게서 배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학생들은 또한 서로에게  배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반의 선생님은 랄슨 선생님인가? 학생인가?

 그래서 여기 질문이 있다. 만약 학생들이 학생을 가르친다면 그들은 서로에게 선생님일 것이다. 그렇다면 랄슨 선생님은 왜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지급되는 봉급을 타 가는 걸까?
  칼튼 기념 도서관의 공식기록을 보면 랄슨 선생님은 지난해 39.324달러를 받아 갔다. 그 돈이 랄슨 선생님의 반 교실의 진짜 선생님에게 지급되어야 한다면, 학생들 각자는 매일 4,69달러를 받아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이 생각에 동의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분의 생각은 학교 측에 전하는 내 의사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뉴스 데스크에서 나온 이번 주 생각이다.    

                                       편집장, 카라 랜드리

언제나 떠들썩하던 교실이 싸늘해 졌다.
주인공 카라는 자신의 글로 인해 누군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극적인 독설을 거두어 드린다. 진실과 함께 자비를 담아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랄슨 선생님은 자신이 유죄임을 인정하고 아이들이 신문 만드는 일을 돕는다.

“기사는 한정된 지면만을 가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단어들이 제 힘을 발휘될 수 있도록 선택해야 한다.” 

“기자들이 선택하는 단어들은 긍정적, 부정적, 혹은 중립적으로 나눌 수 있다. 기사가 뭔가를 생산 했다 ! 그럴 때는 긍정적인 기사라고 한다. 뭔가를 찢어발겼다! 그걸 부정적인 풍자라고 한다. 만약 기자가 그냥 탐색만 할 때는 그 기사거리는 주위에서 구경만 할 때는 말이다. 그걸 우리는 중립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작가는 ‘프린들 주세요’에서 단어의 탄생과 소멸을 말했고  ‘랄슨 선생님 구기’에서는 단어들을 확장시켜 분류하고 올바른 쓰임에 대해 알려준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암묵적으로 억압받고 있다. 그러니 자신들의 생각을 펼쳐 보이는데 성공한 책 속 주인공과 친구들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 아이들도 그들처럼 자신들의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는 공식적인 창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가 떨떠름했던 까닭은 클레멘츠의 두 책을 다 읽었다는 데에 있다. 두 작품 모두 너무나 좋은 소재와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사건 전개방식이 너무 똑같아 실망스러웠다. 우리 아이들이 상기된 상태로 빠른 속도로 사건을 몰고 가다가 절정을 맞이하는 허리우드식 싸구려 감성에 빠져들까 우려스럽다. 이렇게 쓰게 되면 부정적 표현이다. 나의 주관적 의사에 따라 부정적 단어 선택을 여과 없이 진행한 샘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두 번 읽기를 싫어하고 뒤 이야기가 짐작되는 추리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다. 이런 내 취향에 따라 트집 잡기는 반칙이다. 아이들은 같은 만화를 열 번 이상 읽기도 하고 어른들 중엔 추리소설만 읽는다던지, 내용이 비슷비슷한 무협지만 읽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객관성을 갖지 못한 가혹한 지적이다. 좋은 마음을 가졌다 할 수 없다.

이 책은 언론이 지녀야 할 태도를 알려주고 있다. 권력으로부터 언론은 자유로워야 한다. 많은 사람이 보는 신문기사 글은 객관적 시각을 요구 한다. 언론은 진실을 말해야 하지만, 그것이 주위를 끌기 위한 독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언론은 좋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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