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당하게 살리라 - 한국사를 뒤흔든 여성들, 미네르바의 올빼미 13 미네르바의 올빼미 13
박정희 지음, 한희란 그림 / 푸른나무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봉건시대에는 삼종지도라 하여 결혼을 하기 전엔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햐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면 남편에게 순종 해야 하며, 남편이 죽은 뒤에는 자식의 뜻을 따르는 것이 여자의 도리였다. 여자들은 평생 동안 억압되어 자신의 생각을 펼 수 없었으며, 아버지와 남편, 자식에 대한 복종의무를 반드시 지켜야만 했던 것이다. 이렇듯 기나긴 역사를 살아오는 동안,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도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한 여인들이 있다.

평강공주는 귀족과 결혼해 편안한 인생을 사는 것이 주어진 운명이었다. 그런 그녀가 바보온달을 찾아간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 평강공주는 고주몽의 후예요, 평강왕의 자녀이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로 나랏일에 참여 할 수 없었다. 거기다 부모가 정해주는 정략적인 결혼을 해야만 했다. 평강공주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 갈 수 없다고 판단하자,  주저없이 공주라는 지위를 내던지고 바보 온달을 찾아가 훌륭한 장군으로 키워내 자신의 뜻을 펼쳐 보고 싶어 했다.

선덕 여왕은 아버지 진평왕이 왕위를 사촌동생들에게 물려주려 하자, 남자만 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하며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다. 당시로써는 여인의 이런 야심은 상대가 누구일지라도 받아드리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였다. 왕이 된 이후 여왕이라는 이유로 많은 어려움으로 겪지만 지혜로움과 덕으로 백성과 신하를 다스렸고 외교력과 군사력을 키우는 데도 그 어떤 왕에도 뒤지지 않는 능력을 발휘 하여 삼국을 통일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장 억압적인 삶은 살았던 조선중기에 태어난 것이 허난설헌의 첫번째 불행이었다. 차라리 평법한 여인으로 태어났더라면 이토록 깊은 한을 품지 않았을 것을. 명문가에 태어나 당시 연인들로써는 접하기 어려운 사서삼경을 배우고 시을 익혔으나, 사회적 관습에 벗어날 수 없었던 난설헌의 불행은 결혼과 함께 시작된다. 남편의 홀대, 연이은 세 아이의 죽음을 겪으면서 자신의 뜻을 펼 수 없었던 난설헌의 마음의 병은 더욱 깊어만 간다. 그런 깊은 한은 시를 통해 나타났고 그녀가 죽은 뒤  동생 허균에 의해 시가 중국에 전해져 이름을 알리게 된다.

최초의 여성 사업가 제주 여인 김만덕은 기녀출신에서 벗어나자, 결혼을 포기하고 객주을 운영한다.  사업이 나날이 번창할 쯤 제주에는 몇 년째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만덕은 쌀 500석을 관가로 보내 굶는 사람을 돕고자 나섰다. 당시로써는 누구도 하지 못한 큰 기부라 관가에서도 깜짝 놀랐다. 이 일은 임금께도 알려져 궁궐에 초대받고 나라의 알선으로 금강산 구경을 가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 후로도 많은 선비들이 그녀의 덕을 칭송하는 글을 보내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익보다 사회를 위해 모든 부를 내놓을 수 있는 인물로써 존경받는 사업가였다.

박점동은 1886년 11월, 10살 나이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의 학생이 된다.  총명해던 점동은 에스터라는 세례명을 받고 신앙심을 키우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당시 여성들은 남자 의사에게 몸을 보이는 것을 꺼려 몸이 아파도 의사를 찾지 않고 죽어가는 일이 많았다.  박에스터는 이런 조선의 여성들을 위해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유학길을 떠난다. 고된 유학생활 동안 남편이 죽는 가슴아픈 일까지 겪게 되지만, 마침내 의사자격증을 따서 조선으로 돌아 온다.  최초의 여의사였던 그녀는 업무 이외 시간에도 환자를 찾아다니며 진료했고 계몽사업을 버렸다. 에스터는 자신의 성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웃을 사랑한 인류애를 실천한 여성이었다.

오늘날까지 우리가 추앙하는 여인상은 누구인가? 훌륭한 아내이고 어머니인 신사임당을 으뜸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시대가 바뀌어 여성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남성보다 여성들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더 늘어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신사임당을 표본으로 삼으로는 것은 여성들에게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직도  남성우월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가사노동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비합리적인 태도 때문에  여성들은 직장을 갖고 서도 가사노동까지  고스란히 자신의 목으로 감내해야 하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 책에 실은 여인들은 불우한 시대 태어나 험난한 삶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변했고 이 문제를 현재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여성들에게 직업을 요구하는 사회로 변화 되었다며 집안에서도 당연히 가사분담이 이루어 져야 한다. 이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우리의 생각을 조금 바꿔야 한다고 본다.  가정에 대한 소중함 만큼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 주자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일을 하고 싶어 할 수도 있지만,  안정된 가정을 가꾸는  것을 원할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꼭 모든 여성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반대로 많은 남성들이 사회생활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결혼생활의 반은 남성이 직장생활을 하고 나머지 반은 아내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가정을 꾸리고 생활 할 때 누군가 좀 여유를 갖고 집안살림을 한다면 생활이 훨씬 윤택해 진다. 가사를 담당하는 것이 꼭 여자이거나 남자일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일을 즐겁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된다. 또 꼭 부부 중 누군가가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 모두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가사노동의 중요성과 분배의 효율성을 충분히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는 여성의 사회 참여도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좀더 실질적인 문제로 접근하여야 한다. 가사노동이 인간의 삶을 영위 하는데 가장 근원적인 일이며 그  경제적 가치 또한 높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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