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씨앗이 꾸는 꿈, 숲
이성아 지음, 이우만 그림 / 푸른나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도서제목 : 작은 씨앗이 꾸는 꿈, 숲 

저자 : 이성아 

출판사 : 푸른나무 

 

황무지에 풀씨하나 싹을 틔웁니다. 곳 수 많은 씨앗을 퍼뜨려 곳곳을 푸르름으로 장식합니다. 몇 년이 지나 다양한 풀들이 어우러져 덤불을 이루고 다년생식물도 여기저기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자 동백꽃을 찾아 동박새가 찾아오고 휘파람새가 덤불 속에 둥지를 틉니다. 풀을 먹고사는 토끼와 들쥐가 찾아와 집을 지으면 그들을 사냥하는 족제비와 뱀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자라나는 숲에 어느 날 음지식물인 소나무 씨앗이 떨어져 자라나고 있습니다. 숲은 아직 많은 햇빛을 받을 수 있어 침엽수가 자라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몇 십 년이 지나자 숲은 소나무가 차지합니다. 소나무 아래 부분은 다른 식물들이 자라 날 수 없습니다. 키가 작은 식물들은 햇빛을 받을 수 없어 죽어갔습니다. 두텁게 쌓인 소나무 잎은 씨앗을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그러나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도 잎이 넓은 신갈나무가 아주 조금의 빛에 의지하여 서서히 자라나고 있습니다. 청솔모가 농사를 지어 놓은 도토리가 싹을 틔운 것입니다. 신갈나무는 적은 량의 빛을 받아도 크게 자랍니다. 오래지 않아 신갈나무는 소나무 잎을 뒤덮습니다. 커다란 잎에 가리어진 소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빛을 향해 가지를 뻗어 이상한 모양으로 비틀어집니다.  

 

숲은 이제 신갈나무 세상입니다. 드문드문 갈참나무나 떡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도 보입니다. 신갈나무 숲은 많은 생명들이 서로 어우러져 삽니다. 다람쥐, 청설모가 부지런히 나무를 타고 오르내립니다. 멧토끼가 찾아오고 계곡엔 수달이, 산중엔 곰이 삽니다. 너구리와 삵도 찾아오고 늑대, 여우도 나타납니다. 열매나 씨를 먹는 멧새, 줄기 속의 벌레를 잡아먹는 오색딱다구리, 팔색조, 꿩도 둥지를 틉니다. 숲은 이렇듯 많은 생명을 품고 키웁니다. 

 

그 뒤로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숲은 계속 변화 합니다. 서어나무와 까치박달나무도 신갈나무만큼 키가 자라고 몸도 튼실해졌습니다. 그들은 햇빛을 두고 끈임 없이 치열한 싸움을 벌입니다. 신갈나무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매년 자기 밑동부분의 불필요한 가지들을 죽여 가며 에너지 소모를 최대한 줄여 나갔습니다. 결국 나무 둥치 가운데 부분을 썩혔습니다. 그 과정에서 메탄가스라는 유독가스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자그마한 불씨에도 불이 잘 붙는 가스였습니다. 

 

어디선가 작은 불씨 하나 시작되자 신갈나무는 불 쏘시게가 되어 숲을 화염으로 뒤덮었습니다. 불길이 휩쓸고 간 숲은 처참합니다. 산불은 나무를 태우고 나뭇가지와 열매와 씨앗들도 함께 태워 버렸지만, 땅속까지 태우지는 못합니다. 땅속에서 이제나 저제나 햇빛 볼 날만을 기다리던 씨앗들이 뜨겁게 달구어지고 열을 받아 저절로 벌어져 싹을 밀어 올립니다. 숲이 나이를 먹어 가고 안정될수록 산불 또한 숲을 구성하는 한 식구 같은 것입니다.  

 

숲은 이제 더욱 다양한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합니다. 죽음은 다시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숲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인간의 역사가 그렇듯 숲의 흥망성쇠 역시 잠재해 있던 요인들이 자라나 커다란 사건을 매개로 전환점을 갖게 됩니다. 그런 역사의 기반이 되는 민초들을 삶을 그리듯 이 책에선 자연이 만들어가는 여러 가지 일상과 현상, 진화과정을 놓치지 않고 꼼꼼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식물들의 ‘자가 수분’에 대한 내용 이었습니다. 식물들은 튼튼한 종자를 번식하기 위해 끈임 없이 노력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가 수분’을 피합니다. 특별한 경우란, 주변 환경이 너무 좋지 않은 비상사태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꽃들은 다른 꽃의 수술에서 묻혀 온 꽃가루를 만났을 때만 반응을 보입니다. 자신의 꽃가루가 붙으면 씨방까지 옮겨 주는 꽃가루관을 막아 버립니다. 또 암술과 수술의 길이를 달리해서 서로 만나지 않도록 하기도 합니다. 개나리나 봉선화, 칡꽃 같은 것들은 아예 암술과 수술이 자라는 시기를 달리합니다. 

  

식물들은 튼튼한 종자를 만들어 멀리 멀리까지 퍼뜨리려 안간힘을 씁니다.  

이런 과정을 살펴보면 동물이 식물보다 고등생물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식물들이 생각하지 않고 의사표현도 하지 않고 묵묵히 한자리를 지킨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식물들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많은 생각들을 고안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소나무의 경우만 보더라도 신갈나무에 가리어져 빛이 부족해 고통 받고 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동물이 진화과정 속에서 다양한 종을 만들어 낸 것처럼, 식물도 자기들 방식대로 진화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그 속에서 다양한 종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강원도에서 큰불이 나 많은 재산 피해와 아름다운 문화유산인 낙산사가 불길에 휩쓸렸습니다. 그 순간 별 모양의 동그란 무늬가 박힌 아름다운 진흙토담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홍련암 바위틈에서 파도소리가 울부짖음이 안타깝게 들려 왔습니다. 이 책을 읽고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런 화재로 인해 다양한 식물 종을 번식시키고 숲을 풍요롭게 가꾸어 나가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화재의 상처가 더욱 푸르고 아름다운 성숙한 숲으로 자라날 것을 기대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책에 대해서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꼼꼼하고 충실하게 잘 짜여진 내용에 비해 편집 면에서 좀 부족했다고 봅니다. 그 중 하나는 요즘 아이들이 자연현장보다는 책 속에서 먼저 자연을 배우기 때문에 책 속에 그려진 식물의 개별적인 명칭을 표시해 주고 작품 속에 거론된 식물들은 모두 그림으로 담아 읽은 내용을 바로 확인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또 ‘목질부’와 같은 설명도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 표시해 주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내용정리를 위해 원문을 적당히 나누어 소제목을 넣는 것입니다. 3-4학년부터 읽어도 좋겠다. 싶은데 다루어진 내용이 광범위 하다보니 정리해서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몇 가지 소견을 말씀드린 것은 저의 욕심이고 그에 앞서 ‘숲’에 대한 새로운 배움을 기획하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