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
강상구 지음, 손문상 그림 / 레디앙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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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려고 모니터 앞에 앉았는데 머릿속이 멍하다. 책이 어려워서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런 것도 아니다. 너무 긴 시간을 두고 읽었더니 앞쪽 내용은 백지장처럼 하얗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식 자본주의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자본주의 속성은 뼛속까지 배어있고 어설픈 복지정책이 포장되어 있는 형국이다.
어설프나마 우리식 자본주의는 지난 10년 동안 복지정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그런데 새로운 정권과 함께 뉴 라이트의 물결은 어설픈 그마저 흔들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이야기하는데 복지정책을 왜 걸고 넘어지냐 하면, 자본주의 대안으로 복지정책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복지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따져보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Hi마르크스의 Bye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자본론이 현 시점에서 새롭게 조명 받고 논의 되어야하는 까닭을 찾아보고자 한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지식과 생각이 미천한 탓에, 깊이 있는 부분까지 논할 수는 없고 현실 속에서 느끼는 부분만 간략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복지정책이 최소 수혜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기엔 복지시설 운영자들의 근성이 너무나 자본주의에 물들어 있다. 어쩌면 실무자들의 자본주의적 근성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복지정책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관리에 허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기부금 관리가 그렇다. 기부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경우, 국가에서는 국가지원금만 관리하고 있고, 기업에서는 자신들이 지원하는 사업을 홍보하기 바쁘다. 따라서 복지시설에선 얼마든지 이중장부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또한 아동복지센터니 노인요양센터니 하는 곳을 민간인에게 맡기고 일정금액을 지원하여 운영하도록 되어 있는 시스템이 문제이다. 복지시설이 운영자 개인의 생계가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시설이라는 면목 하에 온갖 혜택은 다 받으면서 어려운 이웃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교묘하게 빼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복지정책이 이런 식으로 끌고 간다면 자본주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또한 수혜자들의 의식의 문제도 심각하다. 기초수급대상이 되기 위해 편법을 쓰는 것은 다반사고 아이들에게 조차 거짓을 꾸미게 하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다. 그 때문에 정말로 수급대상이 되어야하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 미덕으로 여기는 미국식 재벌들의 기부문화 역시 자본주의 문제점의 대안일 수 없다. 미국 재벌들의 기부문화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고 노동력을 착취해 배를 불린 다음 던져주는 개뼈다귀 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기업인들의 기부문화 역시 자본주의 문제점의 대안 일 수 없다.
이에 비해 마르크스의 이론은 구린 데 없이 깔끔하다. 노동자들을 정당하고 당당하게 설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받아야할 정당한 임금을 당당하게 받을 수 있게 되면 가난이 악순환 되는 일이 없을 것이고 국가는 저소득층을 위한 막대한 복지예산을 지불할 일도, 서민들이 구차하게 가난을 위장할 일도 줄어들 것이다. 기업인들은 선심 쓰듯 생색내며 기부하지 말고 노동자들에게서 걷어 들인 잉여가치를 노동자에게 지급하여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강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기업은 소비할 대상 필요하고 노동자는 일할 곳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을 착취해 쓸 돈이 없게 되고 기업은 생산한 물건을 팔 대상이 없게 된다. 그러면 경제공황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미래 사회를 생각하는 기업이라면 눈앞에 보이는 이득만을 따지지 말고 우리 사회와 국가가 원활하고 정의롭게 돌아갈 수 있도록 지도자로서 책임경영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기업과 노동자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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