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독서수업 하러 다니는 공부방 <완득이>가 있었다. 이 책이 뮤지컬로 나온다는 광고를 어디에선가 본 것 같아 무슨 책인가 궁금해 훑어보고 있는데 6학년 어린이가 자기는 너무 재미있어서 두 번 읽었다고 한다. 사실 난 아무리 재미있어도 책 읽어주기 할 때 빼고는 두 번 읽는 경우는 없다. 교과서도 아니고.....,

이렇게 읽기 시작한 <완득이>, 결국 그날 새벽 2시까지 잠도 못 자고 아작을 냈다. 책을 두 번 읽지 않는 것처럼 책을 단숨에 읽어치우는 일도 내게는 드문 일이다. 그런데 뒷이야기가 궁금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퇴근해 집에 와 저녁밥을 하는데도 완득이와 똥주 선생의 거친 말투가 자꾸 생각났다.

이런 경험은 중딩 때 구영탄과 독고탁이 나오는 만화이후로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완득이>가 바로 그 캐릭터다. 시대가 바뀌어 거친 욕을 해대는 선생이 나오고 이주노동자를 엄마로 설정했지만 우리 사회에 가장 빈곤한 가정환경에 자라는 소년이라는 것과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단순하면서도 무게 있는 캐릭터, 이런 터프가이가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디니, 잠깐 동안 6학년 00와 정신 연령이 같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공부 잘 하는 범생이 윤하가 여주인공인 것도 옛날 만화의 여주인공 캐릭터와 같다. 같으면 어떠랴 새벽잠을 설치게 할 정도로 즐거움을 주었으면 되지. 더욱이 이 책에선 금기시 되어있는 선생님에 대해 욕도 실컷 하고 선생님도 점잖은 척하지 않고 아이들 보다 더 저질처럼 나오지 않는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가장 먼저 비판하고 꼬투리를 잡는 것이 선생님의 이중성이다. 선생님들은 아무리 못 된 사람이라고 해도 학생들 앞에선 바른 길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사회적인 바람이다. 하지만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어떻게든 선생님의 잘못을 들추어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똥주선생은 저질처럼 말과 행동을 한다. 특별히 꼬투리를 잡으려고 트집을 잡을 필요도 없다. 그래서 오히려 선생다운 면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소설은 독자를 실망 시키지 않았다. 저질 똥주선생에겐 숨겨진 천사의 날개가 있었다. 이건 내 표현이 아니라 <완득이>를 같이 읽은 6학년 책 친구의 말이다.



“처음엔 나쁜 선생님인데 나중엔 천사가 되는 이야기에요”

나의 책 친구의 말처럼 처음엔 처음부터 똥주선생이 착한 사람은 아이었을지도 모른다. 완득이와 난장이 완득이 아버지, 필리핀 어머니, 그리고 외모는 완벽하지만 머리가 좀 모자란 민구 삼촌처럼 어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천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을지도 모른다.

중세 유럽 사람들은 가난을 창피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가난한 것은 부자들을 천사로 만들어주기 위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자들 역시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많은 돈을 기부했다고 한다.

“내가 가난한 것은 부자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다”

중세를 암흑기라고는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보다 당당하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부자들은 지옥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현대인에 비해 따뜻한 마음을 가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난 똥주선생처럼 날개를 달 자신이 없다. 혹시 나의 책친구가 내게 천사의 날개를 보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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