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돌의 도시 - 생각이 금지된 구역
마누엘 F. 라모스 지음, 변선희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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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미래뉴스>라는 어린이 도서를 보았다. <미래뉴스>에선 우리사회가 미래에 어떻게 변화 될지, 어린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있었다. 미래에는 종이 책이나 노트가 없어지고 전자기기가 그 역할을 대신 할 것이며, 모든 지식을 간편히 휴대할 수 있는 전자기가 영상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문자도 사라지고 지금처럼 지식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고 하였다. 전자기기에 저장되어 있는 지식을 지식은 필요에 따라 선택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적이 작업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라 하였고 예술, 예능, 스포츠가 따위가 각광을 받을 시대가 올 것이라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는 하나의 나라로 통합될 거라고도 하였다.
그런 맥락에서 <둥근 돌의 도시> 본다면 작가 설정한 49세기라는 배경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문자와 음악, 사랑이 금지된 세상, 가상 멀티미디어로 교육을 받고 버추얼 비전이 보여주는 세상만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에게 남은 책은 세계의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둥근 돌 속에 숨겨진 세권의 책. <전쟁의 기술>,<건강한 인생을 위한 에로틱한 요리법>, 노래집이 전부이다.
발전된 미래 세상에서 보물처럼 여기는 것이 오래전에 사라진 책이라니!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삶에 너부러져 있는 책들이 미래디지털 세상에선 고대 중국의 갑골문자처럼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과거 역사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충분히 근거 있는 말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고대 문자들에 대해 우리는 너무 신비롭게 생각하고 있거나, 우리는 지금 고대인들이 지닌 평범하지만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니가하는 의심이 든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전쟁의 기술>,<건강한 인생을 위한 에로틱한 요리법>, 노래집일까? 둥근 돌 속에 숨겨진 책이 불경이나 성경, 코란 같은 경전도 아니고 고전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리 소중하게 여기는 책도 아니고 특별한 가치를 진다고 보지도 않는, 흔하고 흔한 책 중에서 무작위로 고른 것 처럼 보인다.
왜? 저자는 이 책들을 둥근 돌 속에 숨겼을까? 저자는 아마도 20세기와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분쟁의 근원이 고대 문자를 숭상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미래에는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전쟁의 기술>,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요리책 <건강한 인생을 위한 에로틱한 요리법>, 그리고 사람을 감동 시키는 <노래집>만 남아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면 더 이상 분쟁이나 전쟁 같은 건 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코믹한 발상은 스토리 전개에서도 계속 된다. <둥근 돌의 도시>는 코믹하다 못해 황당한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래서 기존의 소설을 즐기던 독자는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을 때처럼 경망스럽게 느껴져 불쾌감마저 든다. 그러면서 스스로 ‘내가 현대 소설을 좇아가지 못할 정도로 사고 굳은 거야.’라고 자책 하게 된다.
더욱이 이 책에선 갑자기 등장인물이 저자를 불러 불만을 호소하기도 하고 저자는 변명을 늘어놓는가하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등장인물이 많고, 사건도 너무 복잡하게 엉켜있다. 인간의 내면을 천천히 들어내는 소설에 익숙한 세대로선 따라 가기가 너무 벅차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이 소설은 49세기 비주얼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읽어 음미하기 보다는 영상처럼 보는 것이 적합한 그런 책이란 결론을 내렸다.
기존의 소설에 익숙해 있던 내게 <둥근 돌의 도시>이 특별히 재미있거나 감동을 주지는 못 했다. 하지만 낯선 느낌 때문에 오히려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고 저자의 깊이 있는 사고와 의도가 담긴 작품이란 사실은 부인할 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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