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빠, 제발 잡히지 마 -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기록
이란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저자 이란주님은 현재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로 일하고 있고 15년과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전작으로『 말해요. 찬드라 』가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는 나의 관심 밖의 일이었다. 전철이나 거리에서 거무틱틱한 피부에 커다란 눈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이방인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 아빠, 제발 잡히지마 』에서 실은 저자의 글 한마디가 이주노동자와 내가 어떤 관계인지를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현대를 살아오면서 깊은 열등의식에 빠져있는 것 같다. 백인 중심 세계로부터 유색인종이라는 열등감, 중국 대륙으로부터 주변국가라는 열등감, 일본인들로부터 받는 침략의 상처 따위로 열등감에 쌓여 스스로 다른 민족을 착취하거나 경멸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 역시 우리보다 나약한 민족 앞에서 얼마나 거만한지, 그리고 얼마나 악랄한지 거울 속에 나를 들여다보는 느낌이 든다.
저자는『 아빠, 제발 잡히지마 』134쪽에서 외국인 연수제도가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고 하였다. 이주노동자와 관련 있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 일상적인 이야기이겠지만 나에겐 생소하게 다가왔다. 낯설어서 강렬하다고나 할까, ‘현대판 노예제도’란 말을 통해, 갑자기 내가 그동안 그렇게 경멸했던 악의 축이 그들에겐 우리의 모습으로 그려질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치 흑인노예를 부리고 아시아 곳곳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백인인 것처럼 느껴졌고, 소수민족을 오랑캐로 업신여기는 중국인처럼 느껴졌다, 우리민족을 침략하고 악랄하게 착취한 일본인처럼도 느껴졌다. 물론 모든 백인이나 중국인 일본인이 직접적으로 다른 민족을 학대하거나 착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식민지배인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본국의 평범한 소시민이라 할지도 간접적인 혜택을 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부의 일부가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알아야한다. 아직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복지부분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래서 저소득층의 생계뿐만 아니라 교육문제에도 힘쓰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 이주 해와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가족의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 국가의 내란을 피서 살고자, 우리나라 저소득층도 기피하고 있는 3D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이런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도 오랫동안 계속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지만, 계약기간 만료로 인해 강제추방을 당한다. 그런 강제추방이 두려워 목숨을 건 사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 아빠, 제발 잡히지마 』에선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 생생히 그려져 있으며, 우리 또한 그들의 고통으로 인해 얻는 이익의 수혜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특별이 이 책이 다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책에 비해 좋았던 것은 단순이 그들과 함께 하며,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고 그들이 지닌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돕고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답답한 푸념이 아니라,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진취적인 기상이 느껴진다.
작가 이란주는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일을 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구출하는 첩보작전을 벌이기도 하고 상주가 되기도 한다. 법원을 드나드는 일은 일상이고,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그들의 고향을 찾는 위험한 일을 감수하기도 하고, 죽은 이의 사인을 알아내기 위한 부검현장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 그라고 해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항상 반가운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하기 버거운 일들이 태반이고 그런 일들을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답답한 심정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꼬마도서관’을 만들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찾아가 책을 빌려준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지적능력 향상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무슨 책을 보냐고 하는 주변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또한 이주노동자 연대를 결성하여 그들이 귀환해서 잘 살 수 있도록 돕고 송출비용을 최대한 낮추고 충분한 교육을 통해 이주노동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하는 등 다양한 일들을 모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나라가 간호사를 송출하는 것과 관련지어, 외국인 노동자 한 사람이 다른 나라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은 국가에서 키워 놓은 인적자원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고 역설하고 있다. 사회에서 한 사람의 인적자원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경비를 투자하는데 그런 인력을 선진국에서 얼마간의 돈을 더 주고 데려간다면 선진국만 이익이라는 것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볼 때는 선진국의 지식과 기술을 익혀 자국으로 돌아와 보급해야 국가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력 송출국이나 도입국에선 이주노동자 송출 제도를 정비하여 저임금에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것을 박고, 국민과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책을 읽은 뒤, 전철이나 거리에서 보이는 외국인들이 친근감 있게 느껴졌다. 그들이 길을 묻거나 도움을 청한다면 선뜻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고 이웃에 있다면 가깝게 지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저자 역시 이런 작은 변화를 바라며 바쁜 와중에 책을 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