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잘 가요, 언덕>


<잘 가요, 언덕>의 작가가 연예인 차인표라는 사실에 나와 내 주변사람들은 두 종류의 반응을 보인다. 반신반의하는 부류와 호심을 갖고 다가서는 부류이다. 그 중 중학생인 아들은 책 표지와 제목을 보고 책을 들더니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차인표 장편소설 <잘 가요, 언덕>이라는 표제를 보고 책을 손에 든 까닭은 연예인이라는 유명세 때문이겠지만,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것은 그만큼 잘 읽히고 재미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잘 가요. 언덕>을 계기로 아들은 집에 있는 소설책들을 꺼내보기 시작하면서 소설이 자기 취향에 맞는 것 같다고 한다.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연예인들이 책을 내는 일은 종종 있어 왔지만 소설책을 낸 것은 처음인 듯싶다.

요즘은 글쓰기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책 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소설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플롯이 전개 되어야하고 문장력이 매끄럽고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독자가 소설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런 측면서 보면 연예인 차인표는 단순히 책 한 권을 낸 것이 아니라 소설가로 등단한 샘이다. 그것도 아주 성공적으로 말이다.

<잘 가요, 언덕>에서는 작가 차인표가 지닌 몇 가지 미덕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큰 미덕은 용서이다. 용이는 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물어간 백호를 용서하라하고 종군 위안부로 끌려간 꽃다운 소녀였던 할머니들께도 이젠 용서하라고 한다.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던지고, 용서는 빌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별과 같은 평화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라는 답을 순이의 말을 빌러 우리에게 전한다.

우리는 종종 일제강점기에 대한 일본인에게 반성을 촉구할 때,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인에 비교한다. 독일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학살한 일에 대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반성하고 사죄의 뜻을 전하고 보상비를 지불했다. 그에 비해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행위와 야만적인 행위에 대해 변명은 물론 정당성까지 주장하고 나선다. 이런 일본인을 빗대어 작가는 빌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를 하느냐고 용이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순이를 통해 평화를 위해서라는 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평화를 위해서 모든 잘못을 묻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용서 이전에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상대가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군인도 우리처럼 가정을 갖고 있으며, 우리와 같은 정서를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 단지, 참전하는 일이 자신의 조국의 번영을 위한 일이라고 믿었기 에 조선을 침략하는 일에 참여했던 것이라는 것을 일본 장교인 가스오와 늙은 군인 아쯔이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일본인들이 하고 있지 않은 사죄를 가스오의 입을 통해 전하고 있다.

“가즈오는 군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조국 일본이 이런 야만적이고 천인공노할 일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징집. 이것은 국가가 할 짓이 아닙니다. 군대가 할 짓도 아닙니다. 국가와 국가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전투 중에 군인들끼리 서로 총을 겨누는 것과, 죄 없는 어린 처녀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징집해 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범죄입니다. 범죄 중에서도 최악의 범죄인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가장 저급한 자나 저지를 수 있는 이 역겨운 범죄를 대 일본제국 육군성이 주도하고 내무성, 외무성, 조선총독부까지 참여하여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입니다....중략 ....” (책 103, 104쪽)

작가는 <잘 가요. 언덕>을 통해 평화를 말하고 있지만, 이 평화는 서로가 같은 마음 일 때 이루어진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우리가 방심하고 있을 때 일본인의 침략이 있어 왔다. 단순히 감상적으로 평화를 논하기엔 상대가 지닌 야심이 너무 크고 우리가 치러야할 희생도 너무 크다. 그러기에 용서 이전에 일본인은 일제침략에 대한 사죄와 그에 따른 보상을 해야 마땅하다. 우리가 그들에게 사죄와 보상을 바라는 또 다른 까닭은 일본인이 백호와 같은 야만적인 맹수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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